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 연결• 특이점singularity • 기본 소득basic in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互酬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인연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와 맺는 관계의 번거로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 책에서 홍콩에서 살아가는 탄자니아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형성하는 경제 구조를 독해하여 우리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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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자니아의 행상인, 노점상, 길거리 장사꾼을 ‘위장 실업자‘, ‘불안정 취업 계층‘으로 자리매김하는 비공식 경제의 시각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참여 관찰을 위해 길거리 장사꾼에게 장사를 배우러 간나에게 영세 상인들은 아무리 변변치 못하고 빈곤하다 해도, 직원이 없다 해도, 개성적인 발상과 지혜, 경영 철학과 사상, 수완을 가진 ‘창업가‘였다. 실제로 내 스승들은 "너는 우잔자ujanja 하지 못해 (요령이 부족해)"라며 때때로 혀를 차면서도 "잘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잘 속아주는 것도 동료들 사이에서 돈을 버는 데 중요해", "네가 속이는 방식에는 균형이 없어"라며 장사의 철칙을 일러주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지혜와 실천을 통해 ‘속고 속이며 서로 돕는‘ 사회적 세계를 창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홍콩과 중국에 온 탄자니아인을 설령 난민, 망명자, 불법 노동자, 유랑 상인이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개발도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로 바라보기보다는 중국 시장에 도전하는 ‘창업가‘로 보는 측면에 더 관심을 가졌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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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보스‘와의 만남

홍콩의 10월은 여름이다. 반소매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무덥다. ‘장난감 상자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도 묘사되는홍콩은, 갖가지 색깔의 간판을 내걸고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 사이를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는,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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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면 5·18민중항쟁 39주년이다. 5.18 국립묘지에서는 매년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된다. 광주시장을 비롯하여 고위 관료들이나 정치인이 대거 참석하는데, 어떤 때는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매년 참석하라는 초청장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한 번도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감히 기념식장에 앉아 5월 영령들을 바로 쳐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5월은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역사의 증언자이자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녹두서점은 학생이나 운동권과 연관되어 있던사람들이 주로 드나들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들 중심의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밥도 못 먹었다는 청년, 양말이라도 갈아 신었으면 좋겠다던 어린 시민군,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 밥이라도 해 주고 싶어 자신은 남아 있겠다던 아주머니, 버스터미널에서 구두를 닦다가 공수의 만행에 떨쳐 일어선 박래풍, 술집에서 술을 팔다가 항쟁에 발벗고 뛰어든 아가씨! 이 책은 바로 이들에 대한 헌사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자괴감이 온몸을 감싼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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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통일운동을 했거나 진보운동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서면 오히려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며 현장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운동권의 일선에 있던 사람들도 ‘모든 죄를 운동권에 뒤집어씌울 것이란 이유로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 결국 현장을지킨 운동권은 야학이나 극단 광대, 신협이나 양서조합 같은 운동권 이선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조직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남 일대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이양현은 자신이 참여함으로써 막 싹트는 노동운동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며 노심초사했다. 어떤 사람은 당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것처럼 과장하기도 하지만 실체 없는 이야기이다. 함평고구마사건 2주년을 준비하던 가톨릭농민회 조직도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동화작가이자 농민운동가였던 윤기현도 개인 신분으로 참여한 것이지 전혀 농민 조직을 동원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항쟁의 도화선 노릇을 했지만 막상 사태가 커지자 극히 일부만 남았다. 책임져야 할 학생 지도부와 운동권 일선이 사라진 공백을 다행히 운동권 이선에 있던 사람들과 밑바닥 사람들이 메워 주었다. 수백 명이 죽었는데 학생 지도부나 운동권 일선은 아무도 죽지않았다. 옥중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전개한 박관현만 죽었을 뿐이다.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자수한 학생 지도부를포함해 운동권 사람들은 100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농민들이 주력 부대였던 것도 아니다. 중산층 시민들이 중심이었다고 할수도 없다. 피바다를 이룬 참혹한 공간을 목숨 걸고 지킨 사람들은 실로 기층민중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기층민중들이 지도부도 없이 이렇게 장렬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5월 27일 새벽, 그 애절한 방송을 듣고서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 뛰쳐나가지 못했던 많은 광주시민은 그 일 때문에 모두 마음에 큰 병이 들고 말았다. 광주는 아직도 그 병이 완치되지 않아 신음하고 있는 도시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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