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사회과학 연구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연구결과를 서사로 변형하는 행위 역시 즉각적으로 관찰하지 못하는것을 필연적으로 배제한다. 주디스 버틀러의 말처럼 "기성의서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서사가 한때 상실을 억누르는 하나의 방편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할 때, 상실의 문제가떠오른다. (…) 진보와 발전의 여러 서사들은 우발적이라는것이 입증되었고, 그 과잉을 통해 배제의 현장들을 저항의현장으로 생성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유령을 규율하고자 하는 서사들은 아브라함과 토록에 따르면 "유령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배제된 것이 들어설 공간이틈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 생산의 형태들은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 판독 불가능한 것, 비합리적인것을 예속• 삭제 •생성한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부모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이 2세대를 배회한다는점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는 아브라함과 토록의 이론을 또 다른측면에서 검증하는 한편, 1세대의 트라우마를 둘러싼 함구는가족의 경계 너머로 이동해 사회 전체로 구석구석 스며든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미친 영향과는 달리 한국전쟁의 지속적인 갈등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국가가 승인한 대량 살상 행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관해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이 그것이
‘잊힌‘ 전쟁이라는 사실은 그 전쟁의 잔혹함이 얼마나 인정받지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만큼이나, 유령이 대량으로 양산되는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탐문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전쟁이 아직 종결되지 않고 있듯 수치스러운 가족의 비밀을 유령으로 만드는 정치 권력의 만행 역시 그러하다. 미국이 군사적 확대와 영구 전쟁에 다시금 몰두하는 맥락 속에서 유령의 언어는 일상용어로 변모했다. 군 교도소에서 종적을 감춘 이라크인과 아프가니스탄인의 몸들은 공식적으로는 실존하지 않는, 수합리적인 관료제의 논리에 따르면 절대 그곳에 없지만 이따금 미디어에서 ‘유령 수감자들‘로 보도되는 존재가 되었다. 미제국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지정학적 무대에서, ‘유령‘은 전쟁에의한 물질적인 말살과 삭제라는 인식론적 폭력 양자에 의해 양산된 사라짐이라는 "인간 간의 그리고 초세대적인 결과를 상징한다"  -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고든의 정의에 따르면 배회는 희귀한 초자연적 사건이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음미되지 않은 변칙성일 때가 더 많다.
사회학이 사회 세계를 활성화하는 기술이라면, 유령 연구는우리가 통상 사회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변형하고 그 경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빈 공간에 거주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그렇듯, 배회는 과거가 어떻게 현재 안에 들어 있는지를, 그곳에 없는 줄 알았던 것이 어떻게 숨막히는 존재감을가지고 당연시되는 현실에 작용하고 종종 거기에 간여하기도하는지"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유령은 배회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 표지 또는 경험적 근거일뿐이다. 유령은 단순히 죽거나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존재이며, 그것을 탐구하는 행위는 역사와 주관이 사회적 삶을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장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보았을 때 유령을 연구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타당하지만, 타당하다는 것만으로는 어째서 유령을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완전히 닿지 못한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휠체어가 돌아서더니 유리 조각을 밟아 바스러뜨렸다. 그 눈길이 나와 마주쳤다. 한없이 지친 눈빛이었다. 어디 감히 동정 따위 할테면 해보라고 도전하는 듯했다.
나는 윌의 허벅지를 내려다보고 주변의 마룻바닥을 살폈다. 파손된 물건들 사이에서 하필이면 얼리샤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은 휘어진 은제 액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길고도 긴 몇 초였다.
"이 물건도 펑크가 나나요?" 그러다 내가 휠체어를 고갯짓으로가리키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잭‘을 어디 받쳐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한순간 내가 드디어 큰 사고를 쳤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보일락 말락 희미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그 얼굴에 스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진공청소기를 가져올게요."
지팡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방에서 나갈 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 P84

"개망나니처럼 행동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말들이 고요한 허공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휠체어가 정지했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그가 천천히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손으로는 작은 조이스틱을 잡고 있었다.
"뭐라고 했죠?"
나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가슴이 터질 듯 두방망이질했다. "친구분들께서 똥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쳐요. 좋아요.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날마다 여기 오면서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생을 불쾌하게 만드시더라도 제 인생은 건드리지 않으시면 정말 고맙겠어요."
윌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한 박자 쉬고 다시 말했다. "그러면 내가 그쪽이 여기 안 오는 게 좋겠다고 한다면?"
"그쪽이 저를 고용하신 건 아니잖아요. 전 당신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트레이너 부인께서 이젠 오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나가요. 특별히 그쪽 걱정이 돼서도 아니고. 이 멍청한 일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쪽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싶어서도 아니에요. 그냥 돈이 필요해서예요. 알았어요? 전 진짜로 돈이 필요하다고요."
윌 트레이너의 표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왠지 놀라움이 엿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자기 말에 토를 다는 일이 굉장히 낯선 일이라는 듯.
‘아. 망했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사고를 쳤구나.‘
그러나 윌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눈길을 피하지 않자 또 재수 없는 소리를 하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휠체어를 빙글 돌렸다. "사진들이나 맨 밑 서랍에 다 넣어둬요. 알겠죠? 전부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윙윙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조는 오래전에 나타났고 어떤 시점부터는 걷잡을 수 없었다. 두세 차례 문단속을 꼼꼼히 하는 게 대수는 아니다. 두세번이 네다섯 번이 되고, 열두 번이 되고, 새로운 의심과 그 크기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형식, 반드시 문에 정면으로 서서 확인해야 한다거나, 확인중에 현관 센서등이 꺼지면 무효라거나, 나조차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건들이 생겼다. 현관문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닫힘과 열림, 잠김과 풀림, 있음과 없음, 연결됨과 끊김의 개념이 적용되는 모든 사물이 신경쓰였다. 창문, 냉장고 문, 수도꼭지, 가스 밸브, 병뚜껑, 신분증, 비상금, 배터리, 전화기, 각종 가전제품, 특히 광열 기구의 전원코드•••••• 말하자면 전부. 아니다. ‘거의 전부‘는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전부는 전부를 재촉한다. - P271

그래서 지금, 콘크리트 평야 위에서 검은 연기를 뿜는 초대형 기계, 소방차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 거침없이 부는 초겨울의 바람, 좌석도 가방도 시간도 잃은 채 어리둥절해하고 화를 내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러 언어로 웅성거리는, 오와 열따위는 없이 털썩 앉거나 서성거리거나 제각각이지만 아주 흩어지지는 않는 사람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위태로운 우애를 담아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이것은 아무 결심도 아니지만 한번 더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앞뒤로 줄을 서서 대피한 아까의 일본 청년이 곁에 있다가뜻밖에 한국어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네요."
- P2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