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는 오래전에 나타났고 어떤 시점부터는 걷잡을 수 없었다. 두세 차례 문단속을 꼼꼼히 하는 게 대수는 아니다. 두세번이 네다섯 번이 되고, 열두 번이 되고, 새로운 의심과 그 크기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형식, 반드시 문에 정면으로 서서 확인해야 한다거나, 확인중에 현관 센서등이 꺼지면 무효라거나, 나조차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건들이 생겼다. 현관문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닫힘과 열림, 잠김과 풀림, 있음과 없음, 연결됨과 끊김의 개념이 적용되는 모든 사물이 신경쓰였다. 창문, 냉장고 문, 수도꼭지, 가스 밸브, 병뚜껑, 신분증, 비상금, 배터리, 전화기, 각종 가전제품, 특히 광열 기구의 전원코드•••••• 말하자면 전부. 아니다. ‘거의 전부‘는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전부는 전부를 재촉한다. - P271

그래서 지금, 콘크리트 평야 위에서 검은 연기를 뿜는 초대형 기계, 소방차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 거침없이 부는 초겨울의 바람, 좌석도 가방도 시간도 잃은 채 어리둥절해하고 화를 내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러 언어로 웅성거리는, 오와 열따위는 없이 털썩 앉거나 서성거리거나 제각각이지만 아주 흩어지지는 않는 사람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위태로운 우애를 담아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이것은 아무 결심도 아니지만 한번 더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앞뒤로 줄을 서서 대피한 아까의 일본 청년이 곁에 있다가뜻밖에 한국어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네요."
- P2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롤로그

2007년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자고 있던 여자는 어느새 일어나 등에 베개를 받치고 앉아 있다. 침대 옆에 있던 여행 안내서를 대충대충 넘겨 보면서 자기 티셔츠를 걸친 여자의 흐트러진 긴 머리칼을 보자 반사적으로 간밤의 일이 떠올랐다. 그대로 가만히 서서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장면들을 음미하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턴다.
여행 안내서에서 눈길을 든 여자가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비죽내민다. 삐죽거리는 입술이 어울리는 나이는 살짝 지났지만, 이제갓 사귀기 시작한 사이니 예뻐 보일 따름이다.
"우리 정말로 산을 기어오르거나 협곡에 매달리는 뭐 그런 걸 해야 해? 우리 둘이 처음 제대로 된 휴가를 같이 보내는 건데, 이건말 그대로 어디서 몸을 던지거나…" 그녀는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는 척한다. "플리스로 된 기능성 옷을 입어야 되는 일정뿐이잖아." - P9

잠시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피마저 얼어붙을 듯 소름끼치는신음이 들렸다. 남자는 입가를 씰룩거리더니 한 번 더 이 세상 소리같지 않은 비명을 질렀다.
트레이너 부인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게 느껴졌다.
"월. 그만두지 못해!‘
그는 어머니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또 한 번 원시적인 소리가 명치 근처 어딘가에서 흘러나왔다. 끔찍하고 듣기 괴로운 소음이었다. 나는 움찔거리지 않으려 애썼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모로 꼬아 어깨에 처박고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기괴하고, 모호한 분노가 서린 얼굴이었다. 가방을 꾹 움켜쥔 내 손등뼈에 핏기가 가셔 새하였다. 
"월! 제발 이러지 마!" 부인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신경질이 희미하게 배어들어 있었다. "제발 부탁이야. 이러지 마."
‘아. 하나님.‘ 나는 생각했다. ‘저 이 일 못 해요. 못 하겠어요. 꿀꺽. 침을 크게 삼켰다. 남자는 아직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뭐라도 하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저, 저는 루라고 해요." 어울리지 않게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손을 내밀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잡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나서 그냥 힘없이 흔들기만 했다. "루이자를 줄인 애칭이죠."
그러자 놀랍게도 남자의 생김새가 말끔하게 정리되더니. 머리도 어깨 위에 반듯이 자리를 잡았다.
윌 트레이너는 찬찬히 나를 바라보았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않는 미소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클라크씨." 그가 말했다. "제 간병인을 새로 맡으셨다고요."
네이선이 발판 조정을 마쳤다. 그러고는 일어서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신 나쁜 사람이에요, 트레이너 씨. 아주 나빠요." 네이선은 씩 웃더니 내게 두툼한 손을 내밀었고 나는 비실비실하게 그 손을 잡고서 흔들었다. 네이선은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안 할 듯싶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였다. "방금 보신 건 윌이 제일 잘하는 크리스티브라운 흉내랍니다.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으르렁거리기만 하지 물지는 않거든요."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세대적인 배회transgenerational haunting‘에 관한 아브라함과 토록의 연구가 시사하듯, 발화 불가능한 트라우마는 그것을 처음 경험한 사람과 함께 사멸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것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어서 비밀이 감춰진 그 장소에 출현한다. "되돌아와 배회하는 유령은 타인 안에 매장된 망자의 존재를 증언한다." 한국 위안부들이 성 노예로 살았던 자신의 과거에관해 침묵을 유지하려고 애쓴 그 50년 동안 그들의 비밀은 이미 그다음 세대로 전달되었고, 이 가운데 일부는 똑같은 성적예속의 길을 따르게 된다(또는 그에 이끌린다). 일부 연구는 초기세대의 기지촌 성노동자들이 강요된 성노동을 했던 다른 가족의 역사에 관한 비밀을 물려받은 위안부의 딸들임을 시사한다. 위안부는 양공주의 유령이다. - P30

디아스포라의 조건
한국전쟁 생존자와 그 자녀들이 참여한 램지 림 Ramsay Liem의획기적인 구술사 프로젝트 <어제 안에 오늘>은 아동기와 초기청년기에 직접 전쟁을 경험한 1세대에게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너무나도 생생하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내내 그 기억을 침묵속에 묻어두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하지만 부모가 이야기를들려주지도 않고 한국전쟁에 관한 공적인 담론 역시 부재한 상황하에 미국에서 자라난 2세대들은 그들이 어떤 불분명한존재감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자신들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에 또렷한 각인을 남겼다고 입을 모았다. 한 남성은 부모가 인생 경험을 이야기하기를 거부한 탓에 부모의 과거가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나에게 그건 과거가 아니었어요. 그게 내 삶 속으로 밀려 들어오거든요. 그게 내 누이들의 삶 속으로 (...) 구멍처럼 밀려 들어와요." 한국전쟁 생존자들의 자녀가 말하는 이런 경험- "불운한바람" "구멍, 또는 어떤 손에 잡히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힘의 형태를 하고 있는 침묵이 배회하는 것 같은-은 해소되지않은 트라우마가 무의식을 통해 한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초세대적인 배회에 관한 아브라함과 토록의 이론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성인 자녀, 그리고 집단 차원에서 트라우마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여러사람들을 대상으로 1960년대에 실시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이들의 내담자들이 가족 내의 침묵에 집착하거나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 없는 트라우마를 터트리는 모습은 그들 주위에 타인들의 무의식이 배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기서 짚고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 배회의 효과는 원래의 트라우마가아니라 그것이 감춰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생성된다는점이다. 비밀은 가족의 역사에 관한 의식적인 앎의 틈 안에서 유령으로 몸을 바꾼다. - P36

전쟁은 민간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이주의 조건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미군과 한인 여성이 갈수록 빈번하게 성적 만남을가질 조건을 낳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1945년의 전쟁신부법 WarBrides Act에 힘입어 결혼과 미국 이민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의 동기는 단순히 개인의 욕망과 로맨스에 있지만은 않았다. 그런 만남 속에는 미군 지배라는 권력의 역학, 전쟁의 물질적인 파괴, 그리고 한국 안에서 미국이 자애로운 역할을 수행한다는 서사를 통한 폭력의 미화가 철저하게 뒤얽혀있었다. 예컨대 1950년대 초 미국은 자신이 한국의 친절한 보호자라는 미디어 이미지를 구축하는 한편, 미군이 민간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했다는 증거를 삭제했다. 규범적인 (백인)미국 가정의 서사에 새롭게 삽입된 이인종 부부의 행복한그림-한인 전쟁 신부와 그의 미군 남편-은 미국의 자애로움과 우호적인 한미 관계라는 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 P40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새 가정과 나라에 고마움을 표하는 한인 전쟁 신부, 나중에는 자신의 다른 한인 가족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그들 역시 미국이 주는 선물을 만끽할 수있게 해주는 이 신부의 이야기는 강제 이주민과 자발적인 이주민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그을 때만, 전쟁 신부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쫓겨난 백성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문제삼지 않을 때만, 그리고 우리가 전쟁의 참혹함을 깡그리 망각할때만 성립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배제를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가족에 높은 가치를 둠으로써 성공을 거두는, 감사해 하는 이민자 서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국가적인 담론 속에 편입된다. 물론 그 이면에서 이제 국민으로 간신히 통합된 한인 이민자들은 자신의 새로운 국가를 배반하지 않기위해 비밀을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자신의 사적인 비밀역시 연루되어 있을 때 이 의무는 쉽게 충족된다.  - P41

 한켠에는 미국을 자애로운 보호자로 바라보는 서사의줄기를 따라가는 민족주의, 밸러리 워커딘Valerie Walkerdine의 표현에따르면 "그 허구를 살아 있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그래서 그것을 구성하는 타자의 시선에 흠뻑 취하고자 하는" 민족주의가있다. 다른 한편에는 양공주를 미국에게 강간당한 민족의 상징으로 상정하는 반미 민족주의가 있다. 양 진영 모두 이인물을 각자의 정치적 의제를 위해 사용해왔다. 한쪽은 국가안보에 종사하는 몸으로, 다른 한쪽은 구출해야 하는 몸으로. 두 경우 모두에서 양공주는 통일과 해방을 맞이한 고국을 향한 환영에 가까운 갈망이 과잉 투여된 인물이며, 이 갈망이면에는 화해와 통일로 가는 방안에 관한 내적인 분열뿐만아니라 분단이 야기한 커다란 상처가 있다. 하지만 이는고국에서 밀려난 사람들에 의해 디아스포라적인 렌즈로 전달된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 역시 양공주를 가시화하는 데, 그러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에 판타지의 층을 하나 더 덧씌우는 데 일조한다. 이런 욕망들이 양공주에게 투사되고, 이로써 양공주는 어떻게 한국의 민족 정체성이 민족의 반복적인 균열 위에서 구축되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차학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그 자신이 경계가 될 것"이다." 이제더 이상 미군 기지촌의 어두운 골목이나 미군 클럽의 뒤편칸막이로 쫓겨나지 않게 된 양공주는 트라우마로 얼룩진한국사의 다른 유령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크린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가시성 안팎을 드나들며 국내외의 현장에서 중앙무대를 차지하는 인물이 된다. - P52

한인의 미국 이주 역사는 명예 백인이라는 사회학적판타지에 혼란을 일으키며 한국인을 다른 아시아 집단과 차별화한다. 사회학적 기준에 따르면 한인들은 모든 아시아계가운데 가장 동화가 잘 된 집단으로 분류되고, 이는 더일반적인 범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따라붙는 ‘명예백인‘이라는 꼬리표를 강화한다. 군인 신부로서의 양공주와그 자녀들은 미국 내 한민족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는이주 집단으로서의 한인이 주로 미군 지배라는 수단을 통해 미국에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유사한 군사적 개입 때문에 미국으로 오게 된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라오스인, 몽족 같은 다른 집단들도 있지만 이들이 겪은 폭력의 역사는 우리처럼 인종을 뛰어넘는 로맨스와 국제적 협력이라는 환상에 의해 50년 넘는 세월 동안 가려지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한미 관계를통해 탄생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차이의 선을 뛰어넘는 화합의 산 증거라기보다 군사화의 표지를 달고 있는 몸들에 더 가깝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은재를 비롯한 서너 명뿐이었다.
스무 명은 엎드려 자고, 다섯 명은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은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으며 모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공교육이란 중산충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 아니냔 말이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코 등을 떠올리며…… 어떤 지도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들의 발화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1991년 12월 전까지 50년 동안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트라우마로 보이던 것이 한국의 국가적 의식에서 존재감을갖게 되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여성들은 한국사에서 은폐되었던 잔혹 행위를 폭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거나 그런 터무니없는 행위가 일어났음을 노골적으로 부정했다. 이는 옛 위안부여성의 침묵에 더욱 부채질을 했고, 이와 함께 이런 트라우마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