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평대 사람들의 호구책은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을 통틀어 마지기로 가늠할 만한 전답 하나 없는데다 그저 믿을 데라곤 그들의 삶을 사방에서 캄캄하게 가로막고 있는 산밖에 없었으니 그저 부지런히 골짜기와 등성이를 따라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버섯이나 고사리, 두릅 따위의 나물과 당귀, 복령 같은 약초를 캐거나 골짜기에 올무를 놓아 산토끼나 노루 같은 산짐승을 잡는 것으로 호구책을 삼는, 그야말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원시적 삶의 형태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큰 눈보다는 작은 눈이, 평평한 발보다는 뾰족한 발이 유리해 눈은 점점 작아지고 평평한 발은 우제류(偶蹄類)의 그것처럼 뾰족해졌으며 질긴 가즉을 씹어 무두질을 하느라 이빨이 한층 더 커지는 한편,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오는 추위를 견디느라 코는 길어지고 얼굴은 더욱 납작해졌다. 그것은 진화의 법칙이었다. - P147
언제부턴다 선로를 따라 이름 모를 하얀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낯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찻길 옆에 무슨 꽃이 피든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 몇몇은, 도대체 저게 무슨 꽃일까, 궁금하게 여겼다. 그것은 바다 건너멀리 외국에서 들여온 철도 침목에 씨앗을 숨기고 있다 삼분지 일쯤지구를 돌아 그들이 붙어온 굄목이 자리를 잡자마자 바람을 따라, 철로를 따라, 자연의 법칙을 따라 들로 산으로 퍼져나간 식물이었다.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 P150
금복은 생각이 깊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감정에 충실했으며자신의 직관을 어리석을 만큼 턱없이 신뢰했다. 그녀는 고래의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들었고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 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야 사랑이었고 증오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워야 비로소 증오였다. 그녀는 걱정의 배 위에 두려움 없이 얹어 놓았던 그 손으로 칼자국의 배에는 거침없이 작살을 꽂아넣었다. 그렇다면 자식에 대한 어미로서의 사랑은? 그것은 그저 그랬다. 아니 그보다 더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춘희는 처음부터 금복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삶 안에 들어와 있는 생명체의 존재에게서 낯선 이물감을 느꼈으며 그것을 더없이 불편하게 여겼다. 더구나 춘희가 걱정의 씨라는 것을 안 이후로는 아이를 더욱 멀리했다. 걱정은 한때 자신이 온몸을 바쳐 시랑한 남자였지만 그것은 무지와 혼돈, 식탐과 어리석은 만용, 비극과 불행의 또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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