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은 1년 반 뒤 자신의 대선 전략을 평가 반성하면서 자신의 패배에 기여했던 능력주의적 오만을 드러내보였다. "저는 미국GDP의 삼분의 이를 생산하는 지역의 삼분의 이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녀는 2018년 뭄바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낙관적이고, 다양하고,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장들에서 이겼답니다." 트럼프에 대해선 "혹인의 권리를 못마땅해 하고", "여성들이일터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고장들에서 이겼다고 했다. 그녀는세계화 승자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트럼프는 ‘루저들의 지지를 얻었다."1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한때 특권층에 맞서 농민과 노동자의 편에 선 바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능력주의의 시대에,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사람은 "그래도 나는 미국의 부자와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라며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P55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공적 담론이 공허해지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관료적 능력주의는 ‘사회적 인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뒤틀어놓았다. 그리하여 자격증이 있거나 전문직업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명예는 높아지고,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 사회적 시위와 명망이 추락하여 그들의 사회적 기여 또한 과소평가되는 상황에 부딪친다. 기술관료적 능력주의의 이러한 면은 분노와 양극화에 찌든 오늘날 우리의 정치 양상과 대부분 맞아 들어간다.
- P59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 원칙은 폭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회가 그 원칙에 따르지 못할 때뿐만 아니라, 따를 때도 (더더욱)그렇다. 능력주의 이상의 어두운 면은 가장 매혹적인 약속, 즉 ‘누구나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 안에 숨어 있다. 이 약속은 견디기 힘든 부담을 준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개인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은바람직하다. 이 정도까지는 말이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자이자 시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삶에서 주어진 결과‘라는 말조차 무한 책임론에 일정한한계를 도덕적으로 부과한다. 주어진 결과, lot)‘라고 말할 때 그것은어떤 운명이나, 우연이나, 신의 섭리 등에 따라 정해져 주어진 것이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선택을 넘어서 행운 또는 은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우리는 소득과 직업은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신의 은총 문제라는 옛 논쟁을 떠올린다. 그런 것들은 우리 스스로 얻는 것들인가, 받는 것들인가?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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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GETTING IN

2019년 3월, 고등학생들이 대학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연방 검찰은 깜짝 놀랄 발표를 했다. 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예일, 스탠포드, 조지타운, 서던캘리포니아 등의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 교묘히 설계된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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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리운 마음이 없다는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 할 일이 없다 (인불가이무지 무치지치 무치의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依矣), 부끄러울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 으로 만들어진 글자다. 부끄러운 마음은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내 마음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P217

맹자는 인간이 큰 재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까닭으로 세 가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바로 대궐과 같은 집과 아름다운 처첩들, 그리고 주위의 궁핍한 시림을 도울 수 있는 재력이다. 말하자면 富와 色. 그리고 자비심이다. 이 세 가지 모두를 맹자는 본심을 잃어버린 행위라고 질타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외로 여겨지는 점이 있다. 맹자는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자선행위도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라고 했다.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흔히 보이는 심리인데, 남을 돕는 일을 은근히 자랑하는 ‘과시욕‘, 남보다 내가 더 낫다는 ‘우월의식‘, 스스로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만족하는 ‘자기만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것은, 맹자가 보기에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마음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 P221

 제자 자로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던 말로, 《논어》 (한문)에 나와 있다.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기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바치고,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했던 말처럼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 우리가 잘 아는 ‘견리사의 견위수명‘의 성어가 나오는 말이다. 앞의 예문에서 맹자가 말했던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큰 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이 말들은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수준이다. 아무리 의로운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위해 목숨을 던지고, 커다란 부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겠는가. ‘견리사의 견위수명‘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안중근 의사와같은 인물이 아니면 누구도 자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단호했던 맹자와는 달리 공자는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아니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는한 마디의 말을 남겼다. 공자는 ‘오래된 약속도 평소의 말처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소의 말과 행동에서 신의를 지키고 날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한다면, 비록 부와 권세 앞에서 흔들리기는 하지만 선한 마음을 지키려고노력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P222

나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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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평대 사람들의 호구책은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을 통틀어 마지기로 가늠할 만한 전답 하나 없는데다 그저 믿을 데라곤 그들의 삶을 사방에서 캄캄하게 가로막고 있는 산밖에 없었으니 그저 부지런히 골짜기와 등성이를 따라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버섯이나 고사리, 두릅 따위의 나물과 당귀, 복령 같은 약초를 캐거나 골짜기에 올무를 놓아 산토끼나 노루 같은 산짐승을 잡는 것으로 호구책을 삼는, 그야말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원시적 삶의 형태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큰 눈보다는 작은 눈이, 평평한 발보다는 뾰족한 발이 유리해 눈은 점점 작아지고 평평한 발은 우제류(偶蹄類)의 그것처럼 뾰족해졌으며 질긴 가즉을 씹어 무두질을 하느라 이빨이 한층 더 커지는 한편,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오는 추위를 견디느라 코는 길어지고 얼굴은 더욱 납작해졌다. 그것은 진화의 법칙이었다.
- P147

언제부턴다 선로를 따라 이름 모를 하얀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낯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찻길 옆에 무슨 꽃이 피든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 몇몇은, 도대체 저게 무슨 꽃일까, 궁금하게 여겼다. 그것은 바다 건너멀리 외국에서 들여온 철도 침목에 씨앗을 숨기고 있다 삼분지 일쯤지구를 돌아 그들이 붙어온 굄목이 자리를 잡자마자 바람을 따라, 철로를 따라, 자연의 법칙을 따라 들로 산으로 퍼져나간 식물이었다.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 P150

금복은 생각이 깊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감정에 충실했으며자신의 직관을 어리석을 만큼 턱없이 신뢰했다. 그녀는 고래의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들었고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 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야 사랑이었고 증오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워야 비로소 증오였다. 그녀는 걱정의 배 위에 두려움 없이 얹어 놓았던 그 손으로 칼자국의 배에는 거침없이 작살을 꽂아넣었다. 그렇다면 자식에 대한 어미로서의 사랑은? 그것은 그저 그랬다. 아니 그보다 더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춘희는 처음부터 금복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삶 안에 들어와 있는 생명체의 존재에게서 낯선 이물감을 느꼈으며 그것을 더없이 불편하게 여겼다. 더구나 춘희가 걱정의 씨라는 것을 안 이후로는 아이를 더욱 멀리했다. 걱정은 한때 자신이 온몸을 바쳐 시랑한 남자였지만 그것은 무지와 혼돈, 식탐과 어리석은 만용, 비극과 불행의 또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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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이를 경계해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 소인은 같음을 강요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말했다.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함께할 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만약 나와 동류가 아니라고 해서 비난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따돌린다면 글로벌 시대, 창의력의 시대에 합당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뒤처지고 만다.
- P190

人之於身也 兼所愛 體有貴賤有小大 無以小害大 無以賤害貴 養其小者為小人 養其大者為大人
인지어신야 겸소애 체유귀천유소대 무이소해대 무이천해귀 양기소자위소인 양기대자위대인

사람이 자기 몸은 구석구석 아끼지 않는 데가 없다. 몸에는 귀한 부분과 천한 부분,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천한 것으로 귀한 것을 해쳐서는 안 된다. 작은 부위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되고,
크고 귀한 부분을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된다.
-맹자 고자장구 상 - P198

<<심경>> (원주)에서 주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관‘이란 말은 주관한다는 뜻이다. 귀는 청각을 주관하고 눈은 시각을 주관하지만 둘 다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깥 사물(외물)에 의해 가리어진다.
마음은 생각을 주관하기에 바깥 사물이 가릴 수 없다. 눈과 귀는 작은 것이 되고마음이 큰 것이 되는 까닭이다. 눈과 귀가 바깥 사물에 가려질 경우 그것 역시하나의 사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다른 사물이 이 사물에 접촉하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 마음은 큰 것으로서 생각을 하므로 사물에 가려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눈과 귀가 마음대로 작용해 종국에는 역시 사물에 끌려가고 만다. 따라서 마음과 이목,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만 큰 것, 마음을 먼저 세워야 하는 까닭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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