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탐구 경로를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역사적, 진화론적 경로를 검토해보자. 마음은 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이 있지만 마음이 태초부터 있었던 영구불변의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마음 (그것이 마음이었다면 말이다.)을 지닌 존재에서 진화했고 그 단순한마음을 지닌 존재는 더 단순한 마음을 지닌 존재에서 진화했다. 지금부터 40억~50억 년 전, 적어도 이 지구에는 간단하건 복잡하마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변혁이 어떤 순서로 왜 일어났을까?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억측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지만 중요한 단계들은 밝혀졌다. 일단 그 이야기를 하고나면 적어도 우리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틀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마음에서 사이비 마음, 원시 마음, 얼치기 마음, 또는 얼치기-절반반토막 마음을 구분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 옛 구조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지라도 그것이 얹혀 있는 저울이나 애당초 그 저울을 만들어 낸 조건과 원리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 P44
하나하나의 세포(제한된 수의 업무를 수행하는 작은 행위자)는 바이러스처럼 무심하게 움직인다. 이런 멍청한 난쟁이가 대거 집결하면 거기서 정말로 마음이 있고 진짜 의식이 있는 사람이 나오는 것일까?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다른 식의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로봇의 후예라고 해서 우리가 곧 로봇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물고기의 직계 자손이지만 물고기는 아니며 세균의 직계 자손이지만 세균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튼 만일우리 안에 신비에 쌓인 잉여 요소(이원론자와 생기론자는 바로 이런 것을믿는다.)가 있다면 모를까, 우리는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몇조개에 이르는 거대 분자들의 집결체다. 그리고 이 분자들은 결국 최초의 자기 복제 거대 분자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로봇으로 이루어진 존재도 참다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이 그런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P54
단순한 세포가 처음 등장하고 나서 약10억 년이 지났을 무렵 우리 조상은 이미 대단히 복잡한 기계 (기계로 만들어진 기계)로 발전했지만 아직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궤도는 전처럼 수동적이고 방향성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환경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뽑아 쓰고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지키고 고치는 수많은 전문 하부 조직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미세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정교조직은 마음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les)는 그런 조직이나 그런 조직의 후예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알고있었다. 그는 그것을 양육혼(養育魂, nutritive soul)이라고 불렀다. 양육혼은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가령 어떤 세포의 세포질 안에서 떠도는 미세한 하부 조직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질료가 아니라 형상이다.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단세포 유기체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육체는 다른 조건에서는 다르게 활성화되는 자기 조절적, 자기 방어적 조직이 필요하다. 이 조직은 자연선택에 의해 탁월하게설계되었으며 하부 수준에서는 유기체가 떠돌다가 마주치는 수동적 조건에 의해 켜지거나 꺼지는 아주 작은 다수의 수동 스위치로이루어져 있다. 인간도 동물처럼 좀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신경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양육혼(자기 조절적, 자기 방어적 조직)이 있다. 대사계, 면역계처럼 우리의 몸 안에서 자기 보수와 건강유지의 소임을 맡는,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복잡한 체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 P56
우리는 이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체계들과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구분짓지만 묘하게도 그 체계들의 세세한 작동 구조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것들이 마음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은 스위치는 원시 감각 기관과 유사하며 스위치가 꺼지고 켜질 때 나타나는 효과는 지향적 행위와 흡사하다. 왜 그럴까? 정보에 따라 조절되지만 추구하는 목표를 달리 하는 체계들이 만드는 효과이기에 그렇다. 이런 세포와 세포의 조합은 마치 자신이 상황을 지각하고 거기서 규정된 방식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특수한 원인을 집요하고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하인 내지는 아주 작고 단순한 머리를가진 행위자처럼 움직인다. 세계는 작게는 분자에서 크게는 대륙에 이르기까지 그런 존재로 가득차 있다. 그런 존재에는 동식물과그것을 이루는 부분(및 부분의 부분들) 같은 자연물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공물까지 포함되어 있다. 비근한 예로 자동 온도 조절 장치는그런 단순한 유사 행위자에 해당한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는 이 모든 존재를지향계(intentional system)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지향계가 행위(가짜이든 진짜이든)를 한다고 가정하는 관점을 지향적 자세 (intentionalstance)라고 부르겠다. - P58
지향적 자세 지향적 자세는 어떤 대상(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 또는 인공물일 수도있다.)의 행위를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행위‘를 ‘선택‘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전제 아래 이해하는 신낙이다. 따옴표에 둘러싸인 이 용어들은 흔히 말하는 ‘인생 철학‘, 곧우리가 남들과 심리적 고민을 놓고 대화를 나눌 때 쓰는 일상의 담론에서 나온 말이다. 지향적 자세는 우리가 서로를 상대할 때 흔히취하는 자세나 관점이다. 다른 존재를 바라볼 때 지향적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의인화하는 일과 비슷하다. - P59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지향적 자세는 우리가 갖다 붙이는 목표가 진짜도 아니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행위자에 의해 ‘정말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좌우지간먹혀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융통성은 제대로 된 목표가 어떻게 추구되는가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거대 분자는 정말로 스스로를 복제하고 싶어 할까?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이 나오든 지향적 자세는 사태를 설명한다. 실험실 접시의 바닥을 아무렇게나 휘젓고다니면서 독성이 강한 쪽은 피하고 영양분이 많은 쪽으로만 다가가는 플라나리아나 아메바 같은 단순한 유기체를 생각해 보자. 이유기체는 좋은 것을 좋고 싫은 것을 피한다. 물론 이것은 물건을쓰는 사람이 느끼는 좋고 싫음이 아니라 유기체 자신이 느끼는 호불호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합리적 행위자의 기본특성이지만 이 단순한 유기체가 정말로 무언가를 추구하긴 추구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물음에 답할 필요가 없다. 어떤 답변이 주어지든 그 유기체가 예측 가능한 지향계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 P67
정리하자면 지향계는 그 행동이 지향적 자세에 의해서 예측되고 규명되는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자기 복제하는 거대 분자, 자동 온도조절 장치, 아메바, 식물, 쥐, 박쥐, 사람,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흥미도에서는 차이가 많을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지향계다. 지향적 자세의 핵심은 어떤 존재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그 존재를 행위자로 예우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 존재가 영리한 행위자라고 가정해야 한다. 멍청한 행위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해괴망측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행위자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는 오직 지혜로운 수만을 둔다는이 대담한 가정 덕분에 우리는 예측력을 얻는다. 행위자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토대, 행위자가 가지는 목표나 욕구의 토대와 관련된 특수한 믿음과 욕망을 행위자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주어진 조건을 묘사한다. 이 경우 우리의 예측력은 이런 특수한 상황과 밀접하게 결부되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론가로서 보이는 믿음과 욕망, 또 문제의 지향계가 드러내는 믿음과 욕망의 특수한 내용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그런 체계를 지향계(intentionalsystem)라고 부른다.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지향성과 통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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