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 (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 (resonance)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게 되듯이 인간, 하늘, 땅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킨다. 만일 땅에서 군주가 나쁜 일을하면 우주의 상태 역시 나빠진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종합적 사고의 한 예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인 ‘추상화(abstraction)에대한 관심‘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는 영어의 ‘ness‘에 해당하는 접미사가 없기 때문에 영어의 ‘whiteness‘ 같은 추상적인 의미를 사용할 수 없다. 백조의 흰색이나 눈의 흰색처럼 오직 특정 대상과 관련된 형태로만 쓰인다.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우주관은 우주가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우주의구성 단위가 원자(atom)인지 아니면 파장(wave) 인지가 중요한 논쟁거리여였지만, 중국인들이 보기에 루주란 두말할 아위 없이 연속적인 파장르로 구성된 것이었다. - P43
그리스인들이 자연계‘의 개념을 발견하면서 과학이라는 것이생겨났다. 중국인들이 과학을 일찍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호기심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인간계와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연계‘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별 사물과 그것의 속성에 집착한 탓에 그리스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돌‘이 ‘중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무 조각이 물 위에뜨는 것은 그 ‘나무 조각‘이 ‘부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경우 모두 주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陽)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설명할 때에도 장 전체의 복잡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지 수많은 힘들이 상호 작용하는 장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힘이 작용한다(action at a distance)‘라는 사실을 갈릴레오 훨씬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석과 공명의 원리뿐만 아니라, 갈릴레오조차 깨닫지 못했던, 달의 운동과 조류 사이의 연관성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46
인류학자린 레드워드 홀(Edward Hall)은 이러한 차리를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의 구분을 통해 설명하였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서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철학자 도널드 먼로의 표현을 빌자면 동양인들은 인간을 "가족이나 사회 혹은 도의 원리와 같은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한다." 인간은 ‘인간관계 속에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독립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행위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조정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동양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내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애정을 보이지만, 외집단이나 그저 아는 사이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거리를둔다. 그들은 자신이 내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매우 유사하다고느끼고, 그들을 외집단 구성원보다 훨씬 더 신뢰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자신과 내집단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며, 내집단원이나 외집단원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보편주의적 행동 원리를 따른다. - P55
물론 동양인들이 자신의 특성을 일부러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아니다. 그보다 동양인들에게는 자신이 ‘특별하다‘, ‘남들보다 탁월하다‘라고 믿게 하는 문화적 압력이 없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사회에서 개인의 과제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 혹은 ‘더 독특하다‘라는 평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화목을 유지하고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비판(self-criticism)이 필수적이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다른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집단의 과제 달성을 방해하는 개인의 단점이나 특성을 반드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남들과 마찰 없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만,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친다. 일본의 학생들은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의 능력을 더 개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동양인들에게는 우스워 보이겠지만, 얼마 전 내 고향에서는 교육의 목표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자존감(self-esteem)을 심어주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다는것은 어쩌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 P58
이처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회와 상호의존적인 사회의 특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며, 이러한 차이들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사항으로 요약된다.
• 개인적 행위에 대한 자유 선호 대 집합적 행위에 대한 선호. • 개인의 독특성 추구 대집단과의 조화로운 어울림 추구 • 평등과 성취 지위의 추구 대 위계 질서와 귀속 지위의 수용 • 보편적 행위 규범(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행동 원리)에 대한 선호 대 특수적 행위 규범(유형과 종류와 상황에 따른 융통성 있는 행동 원리)에 대한 선호 위의 네 가지 사항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미미하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어느 사항에서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항에서도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 P65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고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면 독립적 단서에 노출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지내게 되면 상호의존적 단서에 점화(Priming)되어 상호의존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P71
일본도 물론 체면을 중시하지만 조직과 관련된 체면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가족의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과는 다르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 철학자인 하지메 나카무라, 심리학자인 도라 디엔(Dora Dien), 사회철학자인 린위탕 등은 중국과일본의 또 다른 차이들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규제 면에서, 중국의 경우는 그 규제가 상사 혹은 윗사람 등 대개 권위자로부터 비롯되지만 일본의 경우는 대개 동료로부터 비롯된다. 학교내에서의 통제력도, 중국에서는 주로 교사로부터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동료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도라 디엔은 "중국인들은 오륜으로 대표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각 개인의 개성을 유지하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집단 속으로의 개인의 완전한 융합을 강조한다"라고 적고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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