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집중력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

나의 대자godson는 아홉 살 때 잠깐이었지만 기이할 만큼 강렬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빠져들었다. 아이는 <교도소 록Jailhouse Rock>을 목청껏 부르며 엘비스 특유의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와 골반 흔들기를 따라 했다. 이 스타일이 이제 웃음을 자아낸다는것을 몰랐기에, 자신이 쿨하다고 믿는 어린아이답게 마음이 아릴만큼 진심을 담아 노래하고 춤을 췄다. 춤과 노래가 다시 시작되기 전의 짧은 휴식 시간에, 아이는 엘비스에 대한 모든 것("전부요! 전부 다!")을 알려달라고 졸랐고, 나는 그 감명 깊고 슬프고 분한이야기를 대강 읊어주었다. - P10

이러한 현실은 내가 수년 전부터 느낀 더 광범위한 느낌, 관광객의 나쁜 습관을 훨씬 뛰어넘는 그 느낌과도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마치 우리 문명이 간지러운 가루를 뒤집어써서, 우리가 정신을 씰룩거리고 굵적이느라 중요한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독서처럼 긴 집중력을 요구하는 활동은 수년간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애덤과의 여행이 끝난 후 나는 의지력에관한 세계 최고 과학 전문가인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대학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cister 교수의 연구 작업을 읽었고, 직접 그를 인터뷰하러 갔다. 그는 30년 넘게 의지력과 자제력을 연구했으며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들을 이끌었다. 66세가 된 이 교수의 맞은편에 앉아 우리가 집중력을 잃은 듯 보이는이유와 집중력을 되찾을 방법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교수는 내가 이 주제를 자신과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 희한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주의력도 전보다 약해진 것 같습니다"라고말했다. 원래 그는 몇 시간이나 한자리에 앉아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신이 널뛰는 것 같았다. 그는 최근에 "기분이나빠지기 시작하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그러면 확실히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가 자신이 이룬방대한 과학적 성취를 외면하고 캔디크러시사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가 말했다. "집중력이 예전만 못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냥 굴복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지죠." - P18

그는 수십 년간 이 주제를 연구한 뒤 현재 우리가 "집중력 문제를 유발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고 믿게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집중력을 깊이 오래 유지하는 일이 모두에게 극도로 힘들어지며,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그는 집중력을 저하하는 여러 요인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신체에 원인이 있지만 다음질문의 답을 알아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사람들을 좋종이 지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구체적 요소가 유행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중에 그에게 물었다.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의 집중력을 망치길 원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는 잠시생각한 뒤 말했다. "아마도 현재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일들이겠죠"
나는 집중력 저하가 주로 나나, 여러분이나, 여러분 자녀의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모두가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은 매우 강하다. 그러한 세력 중에는 거대 테크 기업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이매일 우리의 주의력에 산을 들이붓고 있다는 것, 전 세계의 집중력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자신을 탓하고 자기 습관을 바꾸라는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 P22

몇 년 전에 파괴적 습관을 고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사전약속 pre-commitment‘이라는 것임을 사회과학자들에게서 배웠다. 사전 약속은 가장 오래된 인류 이야기 중 하나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등장한다. 호메로스는 옛날에 이상한 이유로 선원들이 빠져 죽는 바다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 바다에는 두 세이렌이 살고 있었다. 여성과 새의 모습이 독특하게 뒤섞인 아름다운 세이렌은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바다로 유인했다. 선원들은 섹시한 물새 같은 세이렌의 행동을 보고 바다로 뛰어들었고, 곧 물에 빠져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이 유혹적인 여성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아냈다. 배가 세이렌이 사는바다에 접근하기 전에 선원들에게 자기 손발을 돛대에 단단히 묶어두게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을 때 아무리 간절히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 P36

얼 밀러 Earl Miller는 우리가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살아가려 노력하는 대신 일제히 거대한 망상에 빠져들었다고 직언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이해해야 하는 사실, 자신이 앞으로 설명할 모든 내용의 근원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건 바로 "우리 뇌는 동시에 한두 개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매우매우 단순합니다." 우리는 "인지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뇌의 근본적인 구조" 때문이며, 이구조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인정하지 않고 미신을 만들어냈다고 얼이 내게 말했다. 그 미신의 내용은 사람들이 실제로 동시에 세 가지, 다섯 가지, 열 가지를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미신을 사실로 둔갑하기 위해 우리는 애초에 인간에게 적용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 용어를 하나 빌려왔다. 1960년대에 컴퓨터과학자들은 프로세서가 여러 개라서동시에 두 가지(또는 그 이상)의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의 성능에 ‘멀티태스킹‘이라는 이름을붙였다. 우리는 이 개념을 가져와 인간에게 적용했다. - P59

동시에 여러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연구실로 불러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게 한 다음그 일을 얼마나 잘해내는지 관찰했다. 그러나 이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얼이 설명한 것처럼)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것이다.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순간 뇌를 재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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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가을 케네디와 톨런이 뉴욕시 브롱크스에서 민주당 시장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던 중에는 한 소년이 케네디의 PT109 넥타이핀을 가져가려고 했다. 소년의 손을 잡은 케네디는 소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건 형한테 받은 거니까 안 가져갔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 뒤로 케네디는 형 케네디가 준 넥타이핀이아닌 또 다른 PT109 넥타이핀을 달았고, 유세장에서 분실할 때를 대비해 여유분으로 넥타이핀 한 상자를 갖고 다녔다. 하지만 이날 오후시애틀에서 케네디는 어분의 넥타이핀을 전부 호텔방에 두고 왔다. 케네디와 톨런이 강당 입구에 도착했을 때, 케네디는 톨런이 달고있는PT109 넥타이핀을 빌려달라고 했다. 톨런이 말했다.
"안돼요, 바비"
케네디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톨런이 마지못해 말했다.
"좋아요, 빌려줄게요. 하지만 돌려줘야 해요."
케네디는 몇 초간 멍하니 톨런을 쳐다보았고 마침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 알겠어요. 이거 형이 준 거죠? 그쵸?"
"아뇨"
톨런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덧붙였다.
"의원님이 제게 준 겁니다."
케네디는 천천히 몇 번을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짓다가 활짝웃었다.  - P111

이 나흘간 케네디가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아무도 알지 못했다. 케네디는 존슨의 불출마로) 사라져버린 베트남 전쟁과 존슨의 직무 수행이라는 두 이슈가 사실 자신에게도 난감한 문제였음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정치인이었다. 케네디가 아무리 진심으로 ‘내탓‘이라는 말을 자주 했어도 미국이 애초에 전쟁에 관여하게 만든 데에대한 책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슨의 대통령 직무 수행도 마찬가지였다. 존슨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 케네디였다. 하지만 동시에 케네디는 존슨의 불출마로 자신이 출마 선언을 할 때 "(존슨) 한 사람에 반대" 하기보다 "새로운 정책을 제안"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영리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 P124

"누군가가 인종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의 관용 정신에 호소할수 있다면, 다음번 대통령 선거운동은 그걸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제 존슨의 재선과 전쟁 문제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 상황이된 만큼 케네디는 자신이 말했던 것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4월 4일 다시 시작된 케네디의 선거운동은 드디어 존슨과 베트남 문제에서 해방되어 인종, 빈곤 문제, 희생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마침내 얻은 자유 유세‘가 될 것이었다. 케네디가 상원에서 주장한 이런 이슈들은 현직 대통령의 실패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전쟁 같은 이슈보다 더 중요했다. 케네디는 보고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꼈으며, 그래서 이 문제들에 더 관심을 가졌다.
케네디는 상원의원으로서 외딴 인디언 보호구역을 방문했다가 그곳 학교의 도서관에 인디언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이 없는 걸 알게 된뒤로 인디언들을 옹호하게 되었다. 상원 소위원회가 개최한 치카노의노조 결성에 관한 청문회에 참석한 뒤로는 치카노 농부들의 영웅이 되었다. 뉴욕의 할렙과 베드퍼드 스타이베선트에 있는 공동주택을 돌아보고 할렘 갱단의 조직원에게 질문했고, 쥐에 물려 얼굴이 상한 어린푸에르토리코 소녀와 만난 후에는 도시 빈민의 대변인이 되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수돗물이나 화장실도 없는 버려진 버스에서 살고 있던 뉴욕주의 로체스터 교외 수용소를 다녀온 뒤에는 이주 농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의 한 버스에서는 영양실조로 배가 부풀어 오른 아이들 십여 명이 더러운 매트리스에 누워있었다. 현장을 떠나기 전 케네디는 그런 수용소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보좌관인 제리 브루노에게 "이런 게 정치를 하는 이유예요. 자리를 이용해서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까 말이죠"라고 말했다. 브루노는 케네디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것을 보았다. - P125

미시시피주 클리블랜드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은 형 케네디 암살이후 바비 케네디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케네디가 1964년 상원의원에 출마한 이유는 형 케네디를 기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유산을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이유는 베트남 전쟁과 미시시피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고통을 끝내기위한 것이었다.
상원의원이 된 바비 케네디는 과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거하는 데 집착했을 때 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빈곤 문제를 이념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꼈고, 그래서그가 낸 법안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했다. 케네디는 복지정책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혜택받는 사람의 자존심이 상하고 공동체 내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서였다.
케네디는 주민의 참여 없이 정부가 도시에 있는 가난한 동네를 개선할수 없으며, 빈곤퇴치 정책은 공동체 조직이 구상하고 시행해야 한다고생각했다. 또한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중요한데, 가난한동네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역 주민과 기업이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28

또 다른 제안은 전미운수노조에서 해왔다. 노조 간부 한 명이 테드케네디에게 바비 케네디를 지지하는 대가로 전임 노조 위원장인 지미 호파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지미 호파는 바비 케네디가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던 시절에 다수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뒤 연방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었다. 노조 간부는 현직 법무부 장관인 랩지클라크에게 부탁해 교도소 내 매트리스 공장에서 노역하는 호파를 농장 노역장으로 옮겨서 실외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테드 케네디와 데이비드 버크는 그 제안을 바비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호파가 형의 암살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던 바비 케네디는 이렇게 답했다.
"노조 간부에게 돌아가 내가 램지 클라크에게 (노조의 지지를) 부탁할일은 없을 거라고 전해. 지미 호파가 영원히 매트리스 공장에 있었으면하고, 만약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호파가 출소할 가능성은 눈곱만치도 없을 거야." (1971년 닉슨 대통령은 지미 호파를 감형하고 풀어주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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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번거롭고 때로 굴욕스러운 일을 겪다 보니 푸드 스탬프를 신청하거나 복지 혜택을 받을 때 수혜자가 마주하는 관료주의적 장벽이 떠올랐다.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나약함을 서류로 증명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함이 매우 현실적이며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심 앞에 우리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고통을 통해 수치심 머신이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수치심을 건드려 이윤을 챙기는 이들 앞에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 P273

남아공 국민은 이 역사를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피해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얻었고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사실을 확인하고이에 합의하면서 자기본위적 신화도 증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학습 과정이 있어야 사회는 불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공의 현실이 보여주듯이, 진실과 마주한다고 해서 수 세기에 걸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첫발을 내디뎌야만, 국민이 수치심의 첫 두 단계(상처받고 부인하는 단계)를 지나 현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나아가도록 이끌 수 있다.
어떤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냉정하게 초당파적 진실을 수용하면서 나름의 화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투운동이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수치심과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경찰의 조지 플로이드 살해 후 터져 나온 시위는 인종과 정의에 관한 토론을 미국 전역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확대했다. 이는 희망찬 시작이지만, 인종차별기제에 관한 철저하고편향 없는 분석이 아직 부족하다. 그 실상을 가감 없이 밝혀야 수치심 머신의 청사진이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그럴 때만 우리는이 기계의 엔진을 멈추게 할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P284

수치심 자체를 이용해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이런 사례들이 있다. 사회운동가들은 미국인 수백만 명을 아편성 진통제에 중독시킨 퍼듀 파마와 그 소유주인 새클러 일가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시위와 법정 소송에 압박을 느낀 퍼듀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소유주 일가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지급해야 했다.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새클러 가문의 이름은 퍼듀가 부정하게 번 돈으로 후원해온 박물관과 대학에서 지워지고 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탐사보도와 법정 소송 덕분에 대중은 새클러 가문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안다.  - P285

이는 상당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2020년 대선 이후, 페이스북은 더 수익성 있는 유해 콘텐츠로 서서히 돌아갔다. 어쨌거나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건 거짓말과 조롱이었다. 이러한 냉소적 태도는 불법화하거나 엄청난 벌금을 물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기업에 책임을 묻기 전까지 의심스러운 정보가 계속불어날 것이다.
이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은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소셜 미디어회사에 망신을 주고, 동시에 거짓 메시지로 이익을 얻거나 그런 메시지와 연관된 곳에서 정치기부금을 받는 정치인에게 모욕을주는 것이다. 미국 정부보다 소셜 미디어에 덜 휘둘리는 유럽연합은 허위 정보를 제공할 경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물린다. 거액의 벌금과 극적인 규제 조치가 있어야 현실은 바뀔 수 있다. - P290

사람들의 인생이 읽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을 주지 않을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면,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보람 있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는 큰 과제이지만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다. 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 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난민을 무시하는 이민국 직원의 태도, 열두 살 난 딸에게 뚱뚱하다고 무안 주는 엄마의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 P292

다음 과제는 수치심을 낳는 행동을 포착한 다음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신앙심을 비웃는 행동이 사회에서 자주 본 모습을 따라 한 것인지, 개인의 상처나 불만에서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일종의 개종 전략인지 살펴본다(내 친구는 자기 친구들을 ‘무신론 전도사‘라고 부른다). 또 이들이 사제에게 학대당한 피해자를 비난하는지 아니면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것인지, 또 그런 비난으로 누가 어떤 이득을 보는지, 그 이득이 돈인지 지위인지 관계의 우위인지를 따져본다.
답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 인지해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진다. 머릿속에 수치심 항목을 만들어놓아야 무례한 댓글, 추잡한 비교행위, 남을 폄하하려는 리트윗, 불가능한 기대치 등 자존감을 꺾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남들이 약자를 놀릴 때이에 동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다. 상당수의 조롱 행위가 온라인에서 일어난다. 온종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유명인부터 이상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 아메리카 원주민 노인과 험악한 눈싸움을 한 우익 고등학생까지, 모두가 온라인에서놀림당한다. 조롱은 직장이나 동네, 어린이 야구장에서도 일어날수 있다. 누가 잘못이라도 하면 다들 한마디씩 해도 되는 줄 안다. 저널리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이렇게 지적했다. "평범한 사람을 떼 지어 공격할 목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면 안 된다."
타격 대상에게 실행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경로를 바꿀 만한 힘이 있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조롱하는지 따져봐야한다. 그 사람의 행동을 고치려는 걸까? 나의 정의감을 친구들에게 과시하려는 걸까? 새로 뜬 캐런 영상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나? 이 여성이 직장을 잃고 다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길 바라는 걸까? 공공연한 인종차별 행위를 인종차별이라고 외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시야를 넓혀 인종차별의 원인을 짚어야 하지 않을까? 경찰이 애초에 백인에게 관대하게 공권력을 행사하고 백인의 경비대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할 일은 리트윗이 아니라 경찰 개혁이 아닐까?
분노하지 말자.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차고 넘친다. 분노는 중독성이 있다. 교도소 개혁에 힘쓰거나 유권자 억압에 저항하고 싶다면 뛰어들라. 그러나 종종 우리는 분노로써 행동을 대신하는데, 분노하면 속이 후련해지고 돈도 안 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모욕 행위를 부추길 뿐이다. 화가 치밀어오를 때,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 화를 내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자. - P295

오늘날 수치심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갇혀야 하는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수치심을 없애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는저녁 식사 자리부터 복지사무소, 기업 이사회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영역이든 개인적 영역이든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자고 요구하는 일이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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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진영 내의 논쟁은 1967년 가을과 겨울 내내 계속되었다. 하지만 11월 말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으로 사실상 출마가 불가피하게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로버트 케네디가 11월 26일 <페이스더네이션>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었다. 바비는 미국이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수만 명을 죽이겠다고 말할 권한이 있을까요? 이미 우리는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고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는데, 그렇게 해도된다고 말할 수 있나요? ••• 전 우리한테 그런 권한이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케네디는 이 문제를 계속 도덕적인 프레임에 넣으며 말했다.
"우리가 네이팜 폭탄을 사용할 때, 마을이 파괴되고 주민들이 죽을그 문제는 이곳 미국에 있는 우리 미국인들의 도덕적 책임이자 도덕적 의무입니다."
한 패널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존슨이 재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케네디는 이 질문에 솔직히 답할 수 없어서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로부터 6주 뒤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인 월터 리프먼은 케네디와 개인적으로 만나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의원님이 존슨의 재선이 국가의 재앙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물론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의원님을 평생 떠나지 않을 질문은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의원님께서 최선을 다했냐는 겁니다." - P62

케네디는 출마 여부를 두고 크리스마스 휴가 내내 고민했다. 새해가 되자마자 가까운 친구와 측근에게 자신은 1972년 대선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장 저를 지지할 사람들이 없어요. 출마해도 사람들은 제가 존슨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앙갚음하는 거로 여길 겁니다."
1월 4일 샌프란시스코 연설에서는 존슨의 베트남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선거에서는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1월 30일 기자들과 아침을 먹으며 진행한 비공개 대화에서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존슨 대통령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또다시 불출마 의사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다음 날 베트콩은 남베트남 도시와 군 시설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구정 설날에 벌어져서 구정공세라고 불린 이 공격은 베트콩에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지만, 심리적으로는 승리였다. 미국인 다수가 존슨 행정부의 전쟁에 대한 낙관적인 공언이 근거 없거나 의도적인 거짓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9일 뒤 시카고에서 케네디는 구정공세가 "우리 스스로 현실을 외면하는 데 이용한 정부의 망상을 산산이" 깨버렸다며, "완전한 군사적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게아니라고 했다. 대다수 미국인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P64

케네디는 평소 자신답지 않은 외교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꺼렸다. 남미 방문을 앞두고 브리핑을 하던 국무부 관리가 브라질 정부의 인권침해에 관해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피할 수 있는 외교적 수사를 제안하자, "전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아요"라고 쏘아붙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 말인즉슨 브라질 정부가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를 폐쇄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를 빼앗고, 정적들의 권리를 전부 빼앗은 후에 국외로 추방해도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 정유 회사를 건드리면 국물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것 같군요." - P75

 케네디는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에 전에 먼저 고백과 사과를 했다.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고백을 하겠습니다. 저는 베트남 문제에 관해 초기에 내렸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미국이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만든 그 결정들말입니다."
그러고는 "그런 노력이 처음부터 성공 불가능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케네디 행정부가 지지한 남베트남 정부에 "부패와 탐욕과 비효율이 가득" 했다고도 인정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크니, 저는 역사와 국민앞에서 제가 져야 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오류라고 할지라도 그런 오류가 지속되는 상황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비극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얻도록 도와줍니다. …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는 자만이다. 그어느 때보다 지금이 우리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케네디의 사과는 이날 아침 연설에서 가장 큰 환호성을 받았다. 학생들이 케네디 같은 어른이 실수를 인정한 사실을 고마워했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한때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에 케네디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을 수월하게 해주었을 수도 있다.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를 도덕적 근거를 들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처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만, 지금 미국이전쟁을 수행하는 방향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또한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처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만, 지금 미국이 마치 세상에 다른 나라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국은 물론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의 판단과 기대에 반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 P80

이런 미국인의 고통을 끝내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선언한 케네디는 미국 정치의 담화에서 신성시되는 한 가지 명제에 이의를제기했다. 경제 성장과 소비,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은 서로 델 수 없는관계에 있다는 명제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공동체의 우수성과 가치를 포기해가면서 물질적인 것의 축적을 추구해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GNP는 연간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미국을 GNP로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의 GNP에는 공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우는구급차가 포함됩니다. 현관문을 걸어 잠그는 특수열쇠와 그 열쇠를 부순사람들을 집어넣을 감옥도 GNP에 포함됩니다. 미국의 삼나무가 훼손된것도, 자연의 신비를 파괴하고 도시를 확대된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폭탄과 핵탄두 제조비용 ..…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GNP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또는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시poetry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국민의 결혼생활은 얼마나 건강한지, 토론은 얼마나 지적인지, 그리고 공직자가 얼마나 청렴한지는 GN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용기도 측정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GNP는 삶을 가치 있게만드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GNP는 미국에 대해 거의 모든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도, 정작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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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존슨 대통령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미네소타 출신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존슨 대통령을 이겨야 했다. 그렇게 유권자를 모을 힘을 보여주면 공화당의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리처드 닉슨을 11월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민주당의 중진들에게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비 케네디가 처음 참가할 수 있는 예비선거는 5월 7일 인디애나선거였다. 이후 5월 14일 네브래스카와 워싱턴 D.C., 5월 28일 오리건, 6월 4일 캘리포니아와 사우스다코타, 6월 18일 뉴욕 예비선거가예정되어 있었다. 케네디와 보좌관들은 출마 선언과 인디애나 예비선거 사이의 7주간 당 지도부 일부가 존슨 대통령에게 대의원 지지를 약속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케네디는 당 지도부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예비선거가 있는 주와 없는 주 모두에서 집회, 공항환영식, 차량 행렬에서 대규모의 열광적인 군중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인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쉽지 않은 전략이었다. 지지 군중이 지나치게 열광할 경우 온건파와 당 지도부가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지지자들이 적게 모이고 반응이 미온적이면 당 지도부가 존슨 대통령을 계속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략을 더 어렵게 만든것은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로서 케네디가 가진 약점이었다. 1951년에 이미 정치를 시작했고, 형 케네디의 대선을 승리로 이끈 노련한 선거사무장이었지만, 공직 선거에 출마한 경험은 1964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가 유일했다. 상원 선거운동 당시에는 연설이 어설펐고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목소리가 단조로웠고 툭하면 말이 길게 끊어졌을 뿐 아니라, 열광적인 군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해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다. - P53

전세 비행기를 마련할 시간도 없어서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일반 항공편을 탔는데, 케네디가 탑승 게이트 앞에서 동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다른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승객 중에는 케네디의 출마를 반기는 사람과 분노하는 사람이 섞여있었다.
케네디의 선거운동 캠프가 항공기로 이동할 때는 대개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장난도 치는 유쾌한 분위기였지만 첫 비행만은 다른때와 달리 긴장이 감돌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비행기 엔진소리, 밤 하늘, 그리고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일을 향해 가고 있는 수행원들, 이 모든 것이 마치 적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침투하는 공수부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도착하는 곳에서 해방자로 환영을 받을 수도, 도착하기도 전에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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