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존슨 대통령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미네소타 출신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존슨 대통령을 이겨야 했다. 그렇게 유권자를 모을 힘을 보여주면 공화당의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리처드 닉슨을 11월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민주당의 중진들에게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비 케네디가 처음 참가할 수 있는 예비선거는 5월 7일 인디애나선거였다. 이후 5월 14일 네브래스카와 워싱턴 D.C., 5월 28일 오리건, 6월 4일 캘리포니아와 사우스다코타, 6월 18일 뉴욕 예비선거가예정되어 있었다. 케네디와 보좌관들은 출마 선언과 인디애나 예비선거 사이의 7주간 당 지도부 일부가 존슨 대통령에게 대의원 지지를 약속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케네디는 당 지도부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예비선거가 있는 주와 없는 주 모두에서 집회, 공항환영식, 차량 행렬에서 대규모의 열광적인 군중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인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쉽지 않은 전략이었다. 지지 군중이 지나치게 열광할 경우 온건파와 당 지도부가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지지자들이 적게 모이고 반응이 미온적이면 당 지도부가 존슨 대통령을 계속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략을 더 어렵게 만든것은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로서 케네디가 가진 약점이었다. 1951년에 이미 정치를 시작했고, 형 케네디의 대선을 승리로 이끈 노련한 선거사무장이었지만, 공직 선거에 출마한 경험은 1964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가 유일했다. 상원 선거운동 당시에는 연설이 어설펐고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목소리가 단조로웠고 툭하면 말이 길게 끊어졌을 뿐 아니라, 열광적인 군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해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다. - P53

전세 비행기를 마련할 시간도 없어서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일반 항공편을 탔는데, 케네디가 탑승 게이트 앞에서 동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다른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승객 중에는 케네디의 출마를 반기는 사람과 분노하는 사람이 섞여있었다.
케네디의 선거운동 캠프가 항공기로 이동할 때는 대개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장난도 치는 유쾌한 분위기였지만 첫 비행만은 다른때와 달리 긴장이 감돌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비행기 엔진소리, 밤 하늘, 그리고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일을 향해 가고 있는 수행원들, 이 모든 것이 마치 적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침투하는 공수부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도착하는 곳에서 해방자로 환영을 받을 수도, 도착하기도 전에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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