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들을 일으킨 어떤 유인원의 머리는 무엇 때문에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되었는가? 왜 뇌의 확장이 한 종류의 유인원에게만 일어났고 다른 유인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무엇이 그 놀라운 속도와 변화하는 가속도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 책의 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이나, 그 해답은 성에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새로운 이론이 옳다면, 사람의 큰 머리의 진화는 동일한 성 안에서 일어난 붉은 여왕 식의 성적 경쟁의 결과이다.
어떤 단계에서는 인류 조상의 머리가 크게 진화한 것이 쉽게 설명된다. 머리가 큰 조상들은 그렇지 못한 조상들보다 자손을 많이두었다. 그리하여 큰 머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들은 부모들세대보다 더 큰 머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발작적으로 일어나고, 어떤 곳에서는 다른 곳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뇌용량을 세 배 정도 커지게 만들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뇌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P473

문제는 우리가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적용된다고 여겨온 인간 지능의 모든 면들이 다른 유인원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우리 뇌의 상당 부분은 시각의 지각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루시에게 갑자기 다른 먼 친척보다 더 뛰어난 시각적 지각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억, 청각, 후각, 얼굴 인식, 자각, 손의 조작 등은 모두 침팬지의 뇌보다 인간의 뇌에서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감각들이지만, 왜 이러한 감각들로 인해 침팬지보다인간이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데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그 도약은 정도의 차이가 아닌 종류의 차이를 말한다. 이는 먼저 가장 커다란 뇌인 인간의 뇌가 가장 효율적인 뇌가 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한때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들을 쉽게 정의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는 학습을 하고 동물들은 본능이 있는 식이다. 인류는 도구를 쓰고 의식, 문화, 그리고 자각을 가지고 있으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차이점들은 흐릿해지거나 종류의 차이가아닌 정도의 차이로 보였다. - P474

그러나 그 아이는 어휘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따로 배운 것이아니다. 아이는 그것과 함께 사물들의 이름들을 배우고자 하는 굉장한 호기심을 타고난다. 더 나아가 아이가 컵이라는 단어를 배웠을때, 그 아이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가 컵이 손잡이 혹은 그 내용물에 상관없이 어떤 컵에나 적용되는 일반적인 이름이며, 그런 종류의 모든 물체들을 컵이라고 부른다는 것을안다. 이러한 두 가지 타고난 본능, 즉 ‘사물 전체에 대한 가정‘과 ‘분류적 가정‘이 없었다면, 언어는 훨씬 더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들은 전에 본적이 없는 동물을 가리키며 그 지역 안내원에게 "저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별 볼일 없는 탐험가 같은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안내인은 ‘캥거루‘라고 답변하였고, 그지역 말로 그것은 ‘나는 모르겠습니다‘ 라는 뜻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공유하는(준비된) 가정 없이 어떻게 배울(적응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응성과 준비성이 정반대라는 종전의 관념은 명백하게 틀렸다. 한 세기 전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는 사람은본능보다 학습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같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때문에 비웃음을 샀으나, 그가 옳았다. - P477

언어의 예로 되돌아가보자. 과학자들은 언어에 대하여 연구하면할수록 언어에서 무척 중요한 점들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문법이나 말하고자 하는 욕구 등은 전혀 모방을 통해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언어를 개발한다. 이 말이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 것이다. 따로 격리해서 기른 아이들은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바랐던 것과는 달리, 자라나면서 저절로 유대어를 말하지는 않기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의 특이한 어휘와 억양의 특별한 법칙과 구문들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언어학자들은 모든 언어에는 공통된 ‘기본 구조‘가 있으며,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뇌에 프로그램되어있다는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므로모든 문법들이 비슷한 기본 구조(예를 들어, 언어는 단어의 순서나 억앙을 사용해서 어떤 명사가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강조한다)를 형성하고있는 이유는 모든 뇌가 같은 ‘언어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명백하게 ‘언어 기관‘을 이미 두뇌에 가지고 있으며, 규칙을 적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배우지 않고도 기초적인 문법 규칙들을 웬만큼 터득한다. 이런 능력은 컴퓨터도 없다. - P478

만약 실제로 우리가 교육의 산물이라면 (그 누가 어린 시절의 많은영향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겠는가-목격자 같은 어투?), 우리는 다양한 교육에 의하여 현재의 우리 부자이건, 가난하건, 거지이건, 도둑이건 간에)가 되도록 프로그램되었고,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는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신봉하는 그러한 환경적 결정론은 그 사회학자들이 공격하는 생물학적 결정주의만큼이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주의이다. 다행스럽게도 진실은 우리가 그 두 가지가 뒤엉켜 있는 변화 가능한 혼합체라는 점이다. 우리가 유전자의 산물이라 할 경우, 그 유전자들은 언제나 모두 경험에 의하여 발전하고 재조절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이 물체의 외곽을 인지하기를 배우는 것 또는 두뇌가 어휘를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환경의 산물이라 할 경우, 환경이란 특수하게 설계된 우리의 뇌가 배우기로 선택한 바로 그 환경이다. 우리는 일벌이 유충에게 먹여 여왕벌로 만드는 데 쓰는 ‘로열 젤리‘ 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벌역시 어머니의 미소가 행복의 근원임을 배우지 못한다. - P486

 진화론적인 견해를 가진사람들에게는 왜 우리가 학습을 그렇게도 가치 있게 여기는지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학습이 본능의 능력을 더하거나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능 자체를 대체한다면, 우리는 원숭이들이 저절로 알게 되는 일들, 예를 들어 부정한 배우자는 간통을 한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다시 배우기 위하여 삶의 절반을 소모하게 될것이다. 왜 성가시게 그런 것들을 배워야만 하는가? 어째서 볼드윈효과는 그런 일들을 본능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힘든 사춘기의 현상들을 거치는 데에다 시간을 더 쓰게 하는가? 만약 박쥐가 타고난 초음파 비행 능력을 단순히 개발하기보다 매번 부모에게 배워야만 했다면, 또 뻐꾸기가 겨울에 아프리카로 가는 길을 출발하기도 전에알지 못하고 배워야만 했다면, 세대마다 죽은 박쥐와 길을 잃은 뻐꾸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자연은 박쥐에게 메아리 되어 울리는 음파로 대상의 위치를 아는 본능을 부여하고, 뻐꾸기에게는 이동하는 본능을 주었다. 그 이유는 그러는 것이 그 동물들에게는 학습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박쥐나 뻐꾸기보다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수학과 수천 개의 어휘와 사람들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를 배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본능을 가졌기 때문이지(아마도 수학의 경우는 예외가 될지도 모르나), 우리가 박쥐나 뻐꾸기보다 본능을 덜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 P491

이런 축적된 지식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토록 다양하고 풍요로운식사법을 발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행착오의 결과들이 축적되지 않았다면 각 세대마다 새로 배워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식은 과일과 산양의 고기 정도로 제한되었을 것이며, 감히 식물 뿌리나 버섯 같은 것들을 먹으려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아프리카의 꿀길잡이새 사이의 놀라운 공생관계를 보면, 그 새는 사람을 꿀벌의 집으로 안내하고 사람이 떠난 후에 남기고간 나머지 꿀을 먹는다. 이 관계는 꿀길잡이새가 꿀이 있는 곳으로인도한다는 것을 사람이 전해들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지식을 축적하고 전승하는 데에는 방대한 양의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커다란 두뇌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또 한 번 그 논증은 아프리카의 모든 잡식성 동물에게 똑같은 정도로 적용된다. 개코원숭이들은 언제 어디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지, 또 지네류나 뱀을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있다. 침팬지들은 실제로 특별한 종류의 식물을 찾아나서는데 그 식물의 잎으로는 선충에 의한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 또한 침팬지들은 견과류를 쪼개는 방법에도 문화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집단으로 모여사는 어떤 동물이라도 자연사에 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단순히 모방에 의하여 전승된다. 그 설명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 P495

험프리와 알렉산더가 묘사한 것은 본질적으로 붉은 여왕 식체스게임이다. 인류가 더 빨리 달릴수록, 즉 인류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류는 더욱더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심리적으로 지배하고자 한 사람들은 전 세대에 좀 더 지능이 높았던 이들의 후손이자 자신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핑커와 블룸이 말했듯이, "때로는 분명히 악의적인 의도를 지니기도 하고 자신과 지적 수준이 거의 비슷하기도 한 개체와의 교류는 인식에게 끊임없이 상승해야 한다는 힘겨운 요구를 가한다."
만약 투비와 코스미데스가 정신 모듈에 대해 옳게 보았다면, 이러한 지능적 체스 게임에 의해 선택되어 크기가 커진 모듈 중에는 ‘마음의 원리‘ 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우리는 언어 모듈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가설에 대한 증거가 상당히 많다. 소문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습관의 하나이다. 직장동료, 가족들,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보면, 그 주제가 그곳에 없는(같이 있을 때도 있다) 동료의 행동, 야망, 의도, 약점이나 그와 관련된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연속극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이유이다.  - P504

최소한 마키아벨리 가설은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똑똑해지더라도그와 동격인 경쟁자를 제시해준다. 독자들에게 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는 잔인함을 다시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체스에서 그만하면 충분히 잘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듯이 그만하면 충분히 똑똑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승리하든지 패배하든지 둘 중하나일 뿐이다. 세대를 반복하면서 이루어지는 진화 경쟁이 그러하듯이, 경기에서 이김으로써 더 우수한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더 나아지기 위한 압력은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두뇌가 가속적으로 커지는 것은 한 종 내에서 무기 경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제프리 밀러가 주장하는 것이다. 지성에 대한 진부한 이론들 - P513

밀러는 뇌가 점점 더 커질수록 장기적인 부부 사이의 유대가 더 필요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의 아기는 미숙하고 무력한 채로 태어난다. 사람의 아기가 유인원처럼 태어날 때 어느 정도 발육이되어 있으려면 어머니의 자궁에서 21개월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골반은 그렇게 큰 머리를 가진 태아를 배고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아이는 9개월째에 태어나서 무력한 자궁 밖의 태아가되어 처음 일 년을 보내게 된다. 유인원이라면 세상에 나가야 할 때이지만 인간 아이는 아직 채 걷지도 못한다. 이러한 무력함이 여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아이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남편을곁에 붙잡아두어 아이 키우기를 돕게 한다. 이것이 바로 셰헤라자데효과이다. - P516

인류학자들은유형성숙 이론을 확고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일부일처제에 의한 자식 양육의 개념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둘을 합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남자들이 젊어보이는 여자들을 선택하기 시작한다면, 여자들에게서 어른의 모습이 나타나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어떤 유전자가 여자들을 같은 나이의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해줄 것이다. 따라서 그 여자는 더 많은 자손을 낳을 것이고, 그 자손들은 그 여자에게 바로 그 유전자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유형성숙에 관한 유전자라면 어떤 것이라도 젊음의 모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유형성숙은 성선택의 결과일 수 있으며, 유형성숙은 지적 능력의 증가(어른이 되었을 때 두뇌의 크기도 커지므로)를 말하므로 인간의 위대한 지능은 바로 성선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 P519

인간의 마음에 관한 성선택은 이책에서 다룬 수많은 진화 이론 중에서 가장 추론적이고 허약한 이야기의 하나이겠지만,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거리 위에 있는 이야기이다. 나는 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비슷비슷하면서 또 서로 다른가 하는 질문과 함께 그 답은 성의 독특한 연금술에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하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질병과의 끊임없는체스 게임에서 유성생식이 만들어내는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각 개체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풀에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끊임없이 섞인다는 점에서 각 개인은 인류의 한 구성원이다. 이제성에 관한 가장 기묘한 결론 하나를 내리며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그 결론은 인류의 정신이 광적이라 할 정도로 확장되어 온 것은사람들이 짝을 까다롭게 고르기 때문이며, 기지와 재능, 창의성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을 성적으로 매료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외의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다. 물론 종교적인 시각과 비교하자면 이런 식으로 인간성의 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덜 고상한 것이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자유로운 시각이기는 하지 않은가. 그저 달라지라고만 하니 말이다. - P523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이론의 절반 정도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과학의 역사는 그렇게 고무적이지 못하다. 골턴의 우생학, 프로이트의 무의식, 뒤르켐의 사회학, 미드의 문화인류학, 스키너의 행동주의, 피아제의 유아 학습 이론과 윌슨의 사회생물학 등은 모두다 시행착오와 잘못된 전망으로 꼬여 있는 듯이 보인다. 붉은 여왕식 접근법도 이 상처의 역사에 한 장을 더할 뿐인지도 모른다. 이 이론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사람들, 또 이 이론에 반대할 이유가있는 기득권자들의 반격 때문에 과거 숱하게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일격을 맞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일컫는 서구 문화 혁명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신적 차이에 대한 쟁점처럼, 좋아하지 않는 질문은 가차 없이없애버린다. 때때로 나는 운명적으로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없을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바로 그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의 탐구 작업조차 인간의 본성의 속성을 드러내며 채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심 차지만 비논리적이고, 조작적이고, 종교적인 속성이 묻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 『인성론』보다 더 불행한 문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쇄되어 나오는 순간부터 죽은 문헌이었다"라고 한 데이비드 흄의 말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는 흄의 시기 이후에 우리가 얼마나 큰 진전을 이루었는지 기억하며, 예전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가를 기억한다. 우리는 결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왜‘라는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한, 우리는 고귀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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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55년 10월

모자수는 좋아하는 만화책과 오래된 동전, 아버지의 안경처럼 특별한 물건을 보관해두는 트렁크 뚜껑 안쪽에 레슬링 선수 역도산 사진을 붙여놓았다. 이 조선인 레슬링 선수와 달리 모자수는 상대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서 몸싸움을 오래 벌이기를 좋아하지않았다. 역도산은 가라테촙으로 유명했고, 이와 비슷하게 모자수도 상대를 정확하게 겨냥해서 쳤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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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돌아가야겠어." 하루키가 말했다. "늦으면 혼날 거야."
"넌 겁쟁이구나." 모자수가 말했다. "선생님이 너한테 소리칠까봐 그렇게 신경 쓰여? 가라 선생님은 너보다도 더 겁쟁이야."
하루키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괜찮다면 쉬는 시간에 나랑 같이 앉아도 돼." 모자수는이런 제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하루키가 그 개자식들한테 다시 한번 말을 걸려고 애쓰다가 거부당하면 도저히 참을 수없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하루키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고 곤혹스러웠다.
"정말이야?" 하루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처음에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결코 잊지 않았다.

2권에서 계속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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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신장주의자들은 여성들이 남성들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회에서 남녀 비율에 맞추어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들이천성적으로 남성과 다르다면 그들의 주장은 옳다. 만약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다면, 남성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만큼 여성의 권익을 대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성적 평등을 믿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적 동등을 믿는 것은 가장 별나고 반反여권신장주의적이다.
이 모순을 인정하는 여권신장주의자들은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웃음을 산다. 문학평론가이자 독설가인 카밀 파글리아Camille Paglia는 여권신장주의는 성공할 수 없는 속임수를 시도하고있다고 보는 몇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 속임수란, 여성의 본성은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고집하면서 남성의 본성을 바꾸려는 것이다. 남자는 숨겨놓은 여성이 아니며 여자는 숨겨놓은 남성이 아니라고 파글리아는 주장한다. "깨어라,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 P400

그렇지만 동성애의 원인이 태어난 이후가 아니라 모체의 자궁 안에 있을 때 받은 불균형한 호르몬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은 또한 성 선호 심리가 출생전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이 사실은 동성애가 유전적으로 결정됨을 보여주는 최근의 연구 증거들과 잘 맞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게이gay 유전자‘에 대해 특정 조직의 테스토스테론 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유전자로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동성애는 선천적이기도 하고 후천적이기도 하다. - P403

1960년대 당시 동독의 의사였던 군터 되르너Gunter Dörner는 쥐를이용한 일련의 실험에서, 동성애 성향의 쥐의 뇌는 모체의 자궁 안에 있을 때 암컷의 뇌보다 더 많은 황체형성 호르몬을 분비한다는사실을 밝혀냈다. 동성애의 ‘치료‘ 법을 찾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여 그 동기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되르너는 각 발생 단계별로 수컷 쥐를 거세한 후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였다. 일찍 거세당한 수컷일수록 다른 수컷에게 더 자주 섹스를 구걸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영국, 미국, 독일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에서도 태어나기 전에 테스토스테론이 결핍되면 남성 동성애 경향이 증가한다고 확인되었다.
X 염색체가 한 개 더 있는 남성이나, 모체의 자궁 안에서 여성 호르몬에 노출된 적이 있는 남성은 여자 같은 남자이거나 남성 동성애자이기 쉽다. 여자아이 같은 남자아이들은 실제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나중에 남성 동성애자가 되는 경향이 크다. 흥미로운 일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처럼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임신해서 태어난 남자는 그렇지 않을 때 태어난 남자들보다 남성 동성애자가 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은 테스토스테론과 함께 동일한 물질에서 만들어진다. 아마도 코티솔이 원료 물질을다 써버려서 테스토스테론이 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 P402

반대로 연애 소설은 전적으로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것 역시그다지 큰 변화 없이 허구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여자가 열망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섹스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좀 더 분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정도이다. 작가들은 출판사가 제시하는 형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성교 행위는 이런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은 사랑, 서약, 가정사, 그리고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를 길들이는 이야기로채워진다. 난잡한 성교 같은 것은 거의 없으며, 성교가 있더라도 주로 여자 주인공의 감정 반응(특히 촉각적으로 그녀가 느끼는 것에 대한)에 대해서만 묘사될 뿐이지, 남자 몸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성격에 관해서만은 매우 자세히 묘사되게 마련이다.
엘리스와 시먼스는 연애 소설과 포르노가 남녀 모두에게 상대적이고 이상적인 환상을 나타낸다고 지적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생들의 성적 환상에 대한 데이터는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남자 포르노를 배급하려는 잡지가 계속 실패하고(이러한 목적으로 제작된 포르노 잡지 《플레이걸Playgirl》의 주독자층은 남자 동성애자들이다), 남자들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파는 난잡한 성관계를 주제로 한 소설이 유행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서점에 가면 표지에 여자 사진이 크게 실려 있고 책 속에는 더많은 여자 사진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남성용 잡지가 있으며, 표지에 여자가 나오고 책 속에는 성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이 나와있는 여성용 잡지들이 있다. 연애 소설은 여자 사진을 표지에 실어여성을 겨냥하고, 성적인 소설은 여자 사진을 표지에 담아 남자를겨냥한다. 유행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성에 의해움직이는 출판 산업은 성에 대한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 P412

이제 그 역설이 풀린다. 동물의 어느 한쪽 성이 까다로운 정도와 부모 역할에 얼마만큼 투자하는가 하는 정도는 분명히 관계가 있다. 검은뇌조는 정자 외에는 투자하는 것이 없으며, 이들은 암컷과 닮은것이면 무엇이든, 심지어 박제된 새나 모형 새와도 짝짓기를 하려고든다. 수컷 신천옹은 한 마리의 암컷에서 나온 자식을 정성껏 보살핀다. 수컷 신천옹은 암컷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고 까다로우며 최고의 짝을 고르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남성의 까다로움은 자신과 비슷한 원숭이 사촌과는 달리, 남자들이 실제로 부부를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노력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반영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일부일처제가 남성에게 남긴 유물이다. 즉, 단한 번의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한다. 사실 젊은 여자에게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끌리는 것은 부부관계가 일생 동안 지속될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포유동물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발정기에 있는 침팬지는 늙은 암컷도 젊은 암컷만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남성들이 20대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홍적세의 남자들이 현대 남성들처럼 일생을 걸고 결혼한다는 이론에 증거를 하나 더해주는 것이다. - P415

이러한 보편성 중 가장 지속적인 것은 성 역할놀이이다. 에드워드윌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양한 여러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뭔가를 추구하고 획득하려는반면에 여자들은 보호되고, 물물교환의 대상이 되었다. 아들은 젊은 혈기로 방탕하지만 딸들은 순결을 잃을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게된다. 성의 매매가 이루어질 때 대체로 구매자는 남자들이다." 

존 투비와 리다 코스미데스는 이와 같은 보편적 형태에 대한 문화적 해석에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주장을 했다.

‘문화‘가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해준다는 주장은 여자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전쟁 축제에서 남자들을 잡아 남편으로 삼거나, 부모들이 딸이 아닌 아들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아들을 도피시켰다는 보고가 있을 때, 혹은 신체적인 매력, 경제력, 상대적인 나이 등에 대한 선호도의 문화적 분포가 한쪽으로 왜곡되어 있는만큼 다른 쪽으로도 왜곡되어 있을 때 비로소 진지하게 다룰 수있을 것이다." - P419

웨스터마크의 주장에서는 친숙한 사람들에 대한 성적 기피가 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결혼한 지 몇 주일만 지나면 자신의 결혼 상대에 대해 성적으로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물의 뇌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로 유아기의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 라는 것이 있는데, 그때 배운 어떤 것은 그 시기가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로 대체되지도 않는다.
콘라트 로렌츠 Konrad Lorenz는 병아리들이나 새끼 오리들은 맨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에 ‘각인‘ 되는데, 그 물체는 보통 그들의 어미이고 매우 드물게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로렌츠 그 자신)가 될 수도 있으며, 그 후로 병아리나 새끼 오리들은 그 물체를 쫓아다니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태어난 지 2~3시간이 지난 병아리나 2일이 지난 병아리들에게는 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병아리들은 생후 13시간에서 16시간 사이에 가장 민감하게 각인을 한다. 바로 그 민감한 기간에 병아리들은 부모의 모습을 머리에 새겨두는 것이다. - P433

미국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스머츠Robert Smuts 교수가 주장하듯이, 날씬함이란 한때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고 상대적인 빈곤의 표시였다. 오늘날에는 가난 때문에 생긴 날씬함은 제3세계에서나 볼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된 나라의 부유한 여자들은 지방분이 적은음식을 사 먹을 여유가 있으며, 운동을 하거나 몸을 날씬하게 하는데 돈을 쓰고 있다. 날씬함은 이제 예전의 풍만함처럼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가 되었다.
스머츠는 유행하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따라 남자들의 선호도가 간단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젊은 남자들은 특히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날씬함과 부유함의 상관관계를 수없이 목격하며 성장한다. 젊은이의 무의식적 사고는 이상적인 여성의 선호도를 형성하게 되는 결정적 시기에 그러한 상관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날씬한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 P439

무엇이 성적 매력을 결정하든 간에 붉은 여왕은 작용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만약 아름다운 여자와 지배적인 남자가 그들의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졌다면 (실제로 지배적인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선택하였고, 그들은 함께 자신들의 경쟁자들의 노고에 기억하여 살아왔다). 각 세대마다 여자들은 조금씩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며 남자들은 조금씩 더 지배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자들 역시 그와 같은 성공적인 부부들의 자손들이므로 그렇게 하였을 것이고, 그리하여 전반적인 기준 역시 향상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는 새로운 창공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 더욱더 밝게 빛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배적인 남자는 그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난폭해지거나 더욱더 무자비한 책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다른 곳이나 다른 시대라면 아무리 예외적으로 보일 만한 것이라도 흔한 것이 되면 그에 대해 우리의 감각은 쉽게 무디어진다. 찰스 다윈이 이렇게 썼듯이 말이다.

만약 우리의 여자들이 메디치의 비너스처럼 아름다워진다면 우리는 당분간은 매혹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다양성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얻게 되자마자 우리는 그때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적인 것을 뛰어넘는 약간은 과장된 어떤 특징을 우리의 여자들에게서 보기를 원할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왜 우생학이 결코 효과가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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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는 모든 조선인은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본의 영토 확장 전쟁이 무분별하다고 여겼다. 중국은 조선이 아니었고, 대만이 아니었다. 중국은 백만 명을 잃고도 계속 버틸 수 있었다. 중국은 일부 지역이 함락된다 해도 여전히 엄청나게 거대한 나라였다. 사람 수와 의지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나라였다.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랄까?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기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인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게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결국 배고픔 앞에 장사없는 법이었다. - P275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아들을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칭찬하면 안 되고, 그랬다가는 화를 불러올 뿐이라는것을 선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선자가 잘한 일이있으면 항상 칭찬했다. 선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아버지는 습관처럼 선자의 정수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렸다. 다른 부모였다면 딸을 응석받이로 키운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불구인 아버지가 자식의 멀쩡한 이목구비와 팔다리에 감탄하는 것에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선자가 걷고 말하고 간단한 암산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선자는 아버지의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며 의지했다. 누구도 칭찬을 바라서는 안 되고, 특히 여자는 더 그러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선자를 아주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선자는 아버지의 기쁨이었다. 선자는 노아도 그렇게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아들들을 보내준 하나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남편의 형 집에서는 하루도 더 못 살겠다 싶은 날들이 있었다. 늦은밤까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감옥에 가서 남편 밥을 건네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럴 때면 선자는 단 한 번도 자기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기쁨이라는 것을, 아들들이 선자의 기쁨이라는것을 상기시켜주었다. - P284

"모자수" 이삭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노예에서 해방시켰죠…." 머리가 너무 심하게 욱신거려서 다시눈을 감아야 했다. 두 아들이 자라서 학교를 마치고 혼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간절하게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오래오래 살고 싶어진 지금에서야 죽음을 앞두고 집에 보내졌다.
"나한테 두 아들이 있어요." 이삭이 말했다. "나한테 두 아들이 있어요. 노아와 모자수가. 우리 아들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선자는 이삭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이삭의 얼굴이 낯설면서도 평온해 보였다. 선자는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말했다.
"모자수가 많이 컸어예. 늘 밝고 낯도 안 가려에 웃는 게 억수로 이쁩니더. 아주 사방을 뛰어댕겨예. 엄청 빨라예!" 선자는 양팔을 흔들며 아기가 아장아장 뛰는 흉내를 내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이삭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순간, 모자수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자신 외에도 단 한 사람 더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선자는 아이들에 대한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요셉과 경희가 두 아이를 예뻐했지만 선자는 아이가 없는 두 사람의 슬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때때로 선자는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워서 자신의 기쁨을 두 사람에게 숨겼다. 고향에서는 건강하고 착한 두 아들을 가진 것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선자에게는 집도 돈도 없었지만 노아와 모자수가 있었다.
이삭이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제 아이들을 볼 때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주님. 제 아이들을 보고 축복해줄 때까지는요.
주님, 저를 아직 데려가지 마시옵소서••••••."
선자도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이삭이 다시 눈을 감았고 어깨가 고통으로 움찔거렸다.
선자가 끊어질 듯 약한 숨결을 확인하려고 오른손을 이삭의 가슴에 놓았다. - P299

"그럴 거예요. 내가 공산주의자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난 일본이 조선을 다시 넘겨받는 것에 반대해요. 소련과 중국이 조선을통치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미국이 차지하는 것도 싫고요. 왜조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창호 씨가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서로 싸우고 있잖아요. 꼭 할머니 둘이 말다툼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상대방의 못된 점을 할머니들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면서 부추기고 있는 것같아요. 할머니들이 화해하고 싶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말은 무시하고 두 사람이 한때 친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누님을 지도자로 올려야겠는데요." 창호가 집을 향해 수레를 밀면서 말했다. 잠깐 걷는 길이었지만 경희와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원하게 됐다. 때로 경희 옆에 있기가 너무 버거워서 그런 모임에 나갔다. 한편으로는 날마다 경희를 볼 수 있기에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창호는 경희를 사랑했다. 이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집까지 몇 걸음밖에 남지 않자 두 사람은 느릿느릿 걸으면서 그날 하루 일어난 이런저런 일을 소곤거렸다. 마음이 퍽 흡족했고 수줍음이 조금 줄었다. 김창호는 계속 사랑의 고통을 겪게 될 터였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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