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들을 일으킨 어떤 유인원의 머리는 무엇 때문에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되었는가? 왜 뇌의 확장이 한 종류의 유인원에게만 일어났고 다른 유인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무엇이 그 놀라운 속도와 변화하는 가속도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 책의 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이나, 그 해답은 성에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새로운 이론이 옳다면, 사람의 큰 머리의 진화는 동일한 성 안에서 일어난 붉은 여왕 식의 성적 경쟁의 결과이다. 어떤 단계에서는 인류 조상의 머리가 크게 진화한 것이 쉽게 설명된다. 머리가 큰 조상들은 그렇지 못한 조상들보다 자손을 많이두었다. 그리하여 큰 머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들은 부모들세대보다 더 큰 머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발작적으로 일어나고, 어떤 곳에서는 다른 곳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뇌용량을 세 배 정도 커지게 만들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뇌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P473
문제는 우리가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적용된다고 여겨온 인간 지능의 모든 면들이 다른 유인원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우리 뇌의 상당 부분은 시각의 지각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루시에게 갑자기 다른 먼 친척보다 더 뛰어난 시각적 지각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억, 청각, 후각, 얼굴 인식, 자각, 손의 조작 등은 모두 침팬지의 뇌보다 인간의 뇌에서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감각들이지만, 왜 이러한 감각들로 인해 침팬지보다인간이 더 많은 자손들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데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그 도약은 정도의 차이가 아닌 종류의 차이를 말한다. 이는 먼저 가장 커다란 뇌인 인간의 뇌가 가장 효율적인 뇌가 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한때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들을 쉽게 정의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는 학습을 하고 동물들은 본능이 있는 식이다. 인류는 도구를 쓰고 의식, 문화, 그리고 자각을 가지고 있으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차이점들은 흐릿해지거나 종류의 차이가아닌 정도의 차이로 보였다. - P474
그러나 그 아이는 어휘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따로 배운 것이아니다. 아이는 그것과 함께 사물들의 이름들을 배우고자 하는 굉장한 호기심을 타고난다. 더 나아가 아이가 컵이라는 단어를 배웠을때, 그 아이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가 컵이 손잡이 혹은 그 내용물에 상관없이 어떤 컵에나 적용되는 일반적인 이름이며, 그런 종류의 모든 물체들을 컵이라고 부른다는 것을안다. 이러한 두 가지 타고난 본능, 즉 ‘사물 전체에 대한 가정‘과 ‘분류적 가정‘이 없었다면, 언어는 훨씬 더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들은 전에 본적이 없는 동물을 가리키며 그 지역 안내원에게 "저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별 볼일 없는 탐험가 같은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안내인은 ‘캥거루‘라고 답변하였고, 그지역 말로 그것은 ‘나는 모르겠습니다‘ 라는 뜻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공유하는(준비된) 가정 없이 어떻게 배울(적응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응성과 준비성이 정반대라는 종전의 관념은 명백하게 틀렸다. 한 세기 전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는 사람은본능보다 학습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같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때문에 비웃음을 샀으나, 그가 옳았다. - P477
언어의 예로 되돌아가보자. 과학자들은 언어에 대하여 연구하면할수록 언어에서 무척 중요한 점들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문법이나 말하고자 하는 욕구 등은 전혀 모방을 통해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언어를 개발한다. 이 말이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 것이다. 따로 격리해서 기른 아이들은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바랐던 것과는 달리, 자라나면서 저절로 유대어를 말하지는 않기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의 특이한 어휘와 억양의 특별한 법칙과 구문들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모든 언어학자들은 모든 언어에는 공통된 ‘기본 구조‘가 있으며,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뇌에 프로그램되어있다는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므로모든 문법들이 비슷한 기본 구조(예를 들어, 언어는 단어의 순서나 억앙을 사용해서 어떤 명사가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강조한다)를 형성하고있는 이유는 모든 뇌가 같은 ‘언어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명백하게 ‘언어 기관‘을 이미 두뇌에 가지고 있으며, 규칙을 적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배우지 않고도 기초적인 문법 규칙들을 웬만큼 터득한다. 이런 능력은 컴퓨터도 없다. - P478
만약 실제로 우리가 교육의 산물이라면 (그 누가 어린 시절의 많은영향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겠는가-목격자 같은 어투?), 우리는 다양한 교육에 의하여 현재의 우리 부자이건, 가난하건, 거지이건, 도둑이건 간에)가 되도록 프로그램되었고,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는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신봉하는 그러한 환경적 결정론은 그 사회학자들이 공격하는 생물학적 결정주의만큼이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주의이다. 다행스럽게도 진실은 우리가 그 두 가지가 뒤엉켜 있는 변화 가능한 혼합체라는 점이다. 우리가 유전자의 산물이라 할 경우, 그 유전자들은 언제나 모두 경험에 의하여 발전하고 재조절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이 물체의 외곽을 인지하기를 배우는 것 또는 두뇌가 어휘를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환경의 산물이라 할 경우, 환경이란 특수하게 설계된 우리의 뇌가 배우기로 선택한 바로 그 환경이다. 우리는 일벌이 유충에게 먹여 여왕벌로 만드는 데 쓰는 ‘로열 젤리‘ 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벌역시 어머니의 미소가 행복의 근원임을 배우지 못한다. - P486
진화론적인 견해를 가진사람들에게는 왜 우리가 학습을 그렇게도 가치 있게 여기는지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학습이 본능의 능력을 더하거나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능 자체를 대체한다면, 우리는 원숭이들이 저절로 알게 되는 일들, 예를 들어 부정한 배우자는 간통을 한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다시 배우기 위하여 삶의 절반을 소모하게 될것이다. 왜 성가시게 그런 것들을 배워야만 하는가? 어째서 볼드윈효과는 그런 일들을 본능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힘든 사춘기의 현상들을 거치는 데에다 시간을 더 쓰게 하는가? 만약 박쥐가 타고난 초음파 비행 능력을 단순히 개발하기보다 매번 부모에게 배워야만 했다면, 또 뻐꾸기가 겨울에 아프리카로 가는 길을 출발하기도 전에알지 못하고 배워야만 했다면, 세대마다 죽은 박쥐와 길을 잃은 뻐꾸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자연은 박쥐에게 메아리 되어 울리는 음파로 대상의 위치를 아는 본능을 부여하고, 뻐꾸기에게는 이동하는 본능을 주었다. 그 이유는 그러는 것이 그 동물들에게는 학습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박쥐나 뻐꾸기보다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수학과 수천 개의 어휘와 사람들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를 배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본능을 가졌기 때문이지(아마도 수학의 경우는 예외가 될지도 모르나), 우리가 박쥐나 뻐꾸기보다 본능을 덜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 P491
이런 축적된 지식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토록 다양하고 풍요로운식사법을 발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행착오의 결과들이 축적되지 않았다면 각 세대마다 새로 배워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식은 과일과 산양의 고기 정도로 제한되었을 것이며, 감히 식물 뿌리나 버섯 같은 것들을 먹으려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아프리카의 꿀길잡이새 사이의 놀라운 공생관계를 보면, 그 새는 사람을 꿀벌의 집으로 안내하고 사람이 떠난 후에 남기고간 나머지 꿀을 먹는다. 이 관계는 꿀길잡이새가 꿀이 있는 곳으로인도한다는 것을 사람이 전해들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지식을 축적하고 전승하는 데에는 방대한 양의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커다란 두뇌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또 한 번 그 논증은 아프리카의 모든 잡식성 동물에게 똑같은 정도로 적용된다. 개코원숭이들은 언제 어디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지, 또 지네류나 뱀을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있다. 침팬지들은 실제로 특별한 종류의 식물을 찾아나서는데 그 식물의 잎으로는 선충에 의한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 또한 침팬지들은 견과류를 쪼개는 방법에도 문화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집단으로 모여사는 어떤 동물이라도 자연사에 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단순히 모방에 의하여 전승된다. 그 설명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 P495
험프리와 알렉산더가 묘사한 것은 본질적으로 붉은 여왕 식체스게임이다. 인류가 더 빨리 달릴수록, 즉 인류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류는 더욱더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심리적으로 지배하고자 한 사람들은 전 세대에 좀 더 지능이 높았던 이들의 후손이자 자신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핑커와 블룸이 말했듯이, "때로는 분명히 악의적인 의도를 지니기도 하고 자신과 지적 수준이 거의 비슷하기도 한 개체와의 교류는 인식에게 끊임없이 상승해야 한다는 힘겨운 요구를 가한다." 만약 투비와 코스미데스가 정신 모듈에 대해 옳게 보았다면, 이러한 지능적 체스 게임에 의해 선택되어 크기가 커진 모듈 중에는 ‘마음의 원리‘ 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우리는 언어 모듈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가설에 대한 증거가 상당히 많다. 소문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습관의 하나이다. 직장동료, 가족들,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보면, 그 주제가 그곳에 없는(같이 있을 때도 있다) 동료의 행동, 야망, 의도, 약점이나 그와 관련된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연속극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이유이다. - P504
최소한 마키아벨리 가설은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똑똑해지더라도그와 동격인 경쟁자를 제시해준다. 독자들에게 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는 잔인함을 다시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체스에서 그만하면 충분히 잘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듯이 그만하면 충분히 똑똑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승리하든지 패배하든지 둘 중하나일 뿐이다. 세대를 반복하면서 이루어지는 진화 경쟁이 그러하듯이, 경기에서 이김으로써 더 우수한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더 나아지기 위한 압력은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두뇌가 가속적으로 커지는 것은 한 종 내에서 무기 경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제프리 밀러가 주장하는 것이다. 지성에 대한 진부한 이론들 - P513
밀러는 뇌가 점점 더 커질수록 장기적인 부부 사이의 유대가 더 필요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의 아기는 미숙하고 무력한 채로 태어난다. 사람의 아기가 유인원처럼 태어날 때 어느 정도 발육이되어 있으려면 어머니의 자궁에서 21개월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골반은 그렇게 큰 머리를 가진 태아를 배고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아이는 9개월째에 태어나서 무력한 자궁 밖의 태아가되어 처음 일 년을 보내게 된다. 유인원이라면 세상에 나가야 할 때이지만 인간 아이는 아직 채 걷지도 못한다. 이러한 무력함이 여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아이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남편을곁에 붙잡아두어 아이 키우기를 돕게 한다. 이것이 바로 셰헤라자데효과이다. - P516
인류학자들은유형성숙 이론을 확고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일부일처제에 의한 자식 양육의 개념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둘을 합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남자들이 젊어보이는 여자들을 선택하기 시작한다면, 여자들에게서 어른의 모습이 나타나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어떤 유전자가 여자들을 같은 나이의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해줄 것이다. 따라서 그 여자는 더 많은 자손을 낳을 것이고, 그 자손들은 그 여자에게 바로 그 유전자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유형성숙에 관한 유전자라면 어떤 것이라도 젊음의 모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유형성숙은 성선택의 결과일 수 있으며, 유형성숙은 지적 능력의 증가(어른이 되었을 때 두뇌의 크기도 커지므로)를 말하므로 인간의 위대한 지능은 바로 성선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 P519
인간의 마음에 관한 성선택은 이책에서 다룬 수많은 진화 이론 중에서 가장 추론적이고 허약한 이야기의 하나이겠지만,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거리 위에 있는 이야기이다. 나는 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비슷비슷하면서 또 서로 다른가 하는 질문과 함께 그 답은 성의 독특한 연금술에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하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질병과의 끊임없는체스 게임에서 유성생식이 만들어내는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각 개체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풀에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끊임없이 섞인다는 점에서 각 개인은 인류의 한 구성원이다. 이제성에 관한 가장 기묘한 결론 하나를 내리며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그 결론은 인류의 정신이 광적이라 할 정도로 확장되어 온 것은사람들이 짝을 까다롭게 고르기 때문이며, 기지와 재능, 창의성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을 성적으로 매료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외의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다. 물론 종교적인 시각과 비교하자면 이런 식으로 인간성의 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덜 고상한 것이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자유로운 시각이기는 하지 않은가. 그저 달라지라고만 하니 말이다. - P523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이론의 절반 정도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과학의 역사는 그렇게 고무적이지 못하다. 골턴의 우생학, 프로이트의 무의식, 뒤르켐의 사회학, 미드의 문화인류학, 스키너의 행동주의, 피아제의 유아 학습 이론과 윌슨의 사회생물학 등은 모두다 시행착오와 잘못된 전망으로 꼬여 있는 듯이 보인다. 붉은 여왕식 접근법도 이 상처의 역사에 한 장을 더할 뿐인지도 모른다. 이 이론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사람들, 또 이 이론에 반대할 이유가있는 기득권자들의 반격 때문에 과거 숱하게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일격을 맞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일컫는 서구 문화 혁명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신적 차이에 대한 쟁점처럼, 좋아하지 않는 질문은 가차 없이없애버린다. 때때로 나는 운명적으로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없을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바로 그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의 탐구 작업조차 인간의 본성의 속성을 드러내며 채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심 차지만 비논리적이고, 조작적이고, 종교적인 속성이 묻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 『인성론』보다 더 불행한 문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쇄되어 나오는 순간부터 죽은 문헌이었다"라고 한 데이비드 흄의 말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는 흄의 시기 이후에 우리가 얼마나 큰 진전을 이루었는지 기억하며, 예전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가를 기억한다. 우리는 결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왜‘라는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한, 우리는 고귀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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