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중 집회소의 홀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당신은 젊었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의 당신 모습이 그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 당신, 그 쭈그러진 얼굴이 젊었을 때의 당신 얼굴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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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는데 머리 크기만 커지자 여러 가지 고민스러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큰 아기를 낳기 위해서 골반은 넓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산도도 넓어지니까요. 하지만 직립 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골반이 좁을수록 좋습니다. 다리를 앞뒤로바삐 움직이며 걸어야 하는데 다리가 좌우로 멀리 벌어져 있으면 중심이 흔들거리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인류는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출산과 보행 중에서 결국 보행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골반이 커지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으니까요. 좁은 산도를 통해 머리큰 아기를 낳는, 유례가 없는 출산의 어려움은 그대로 감내하고 말이지요!
경이롭게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출산과 분만은 수도 없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산도보다 머리가 큰 아이를 낳기 위해 여자의 골반은 뼈와 뼈 사이가 물렁해졌고, 벌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게됐습니다. 골반뿐 아니라 골격 전체의 관절이 벌어집니다.  - P65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58만~1만 2000년 전) 기간에 아프리카는 건조해졌습니다. 숲이 점점 줄어들고 초지가 늘어났습니다. 식물성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점점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류의 조상에게 무척 불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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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류는 동물성 지방을 얻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방법이랄 것도 없습니다. 사자부터 독수리, 하이에나까지 모든 경쟁자들이 내장과 고기를 다 발라 먹고 버리고 간 찌꺼기를 먹는 거니까요. 바로 뼈입니다. 뼈는 무시할 게 아닙니다. 팔다리의 뼈 속에는 골수가 있고 머리뼈 속에는 뇌가 있습니다. 골수와 뇌는 모두 순수한 지방 덩어리로 영양이 풍부한데, 이를 노리는 경쟁자는 벌레와 박테리아 정도입니다. 초기 인류가 아무리 약했다 해도, 이정도는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뼈 안의 영양분을 취하는 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뼈는 매우 단단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팔다리뼈는 먼 훗날 무기로도 사용할 정도로 굵고 단단합니다. 이빨로는 이런 뼈를 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인류는 돌로 뼈를 깨서 골수를 빼 먹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뼈 깨는 돌은 점점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석기‘가 되었습니다. 호모 하빌리스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도완 석기는 이렇게 뼈깨는 돌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P77

노화 과정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 중에 ‘다면 발현(pleiotropy, 多面發現) 가설‘이 있습니다. 다면 발현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관여하는 현상입니다. 어떤 유전자가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한 기능을담당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시에 그 유전자는 노년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렇다면 해로움만 따져서 이 유전자가 사라져야 할까요? 다면 발현 가설에 따르면,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했던 유전자는 선택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게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포 지방 단백질E 엡실론 4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중 지방단백질을 치우는 유익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노년의 치매나 뇌졸중과 관련이있어도 계속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은 공짜가 아니라 노년에 치러야 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얻은 대단히 값비싼 적응 능력인 셈입니다.
한가지 더, 그럼 만약 지금이라도 채식을 한다면 노년에 이런 병의 위험에서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가 없어질수는 없으므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 P81

결국 락타아제 돌연변이는 목축업과 낙농업 때문에 증가했다는 ‘가설‘은 맞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의문이 있습니다. 어떤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돌연변이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후손을 많이 남겨야가능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은 마실 수있는 사람에 비해 일찍 죽거나 후손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죠. 인류 진화 역사에서는 극히 최근인 1만 년 전에 발생한 신생 돌연변이가 어떤 인구 집단에서는 구성원 중 최고 90퍼센트가 이 돌연변이를 지닐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우유를 소화시키는 능력이 대단히 강력한 자연 선택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 P90

이런 상황에서 털이 없어져서 맨몸이 되는 돌연변이가 우연히 등장합니다. 이 돌연변이를 지닌 인간은 맨몸에 난 땀을 증발시켜서 뜨거운체열을 발산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대낮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뭐든 장점이 생기면 예기치 못한 단점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게 되면서 인간은 물에 그만큼 많이 의존하게 됐습니다. 건조화가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마실 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이 행동반경 내 어디에 있는지가 대단히귀중한 정보가 됐죠. 물은 계절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정보(기억)를 저장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일도 중요해졌습니다. 또 자주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나오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도 중요해졌습니다.
자외선도 문제였습니다. 자외선을 막아 주던 털이 없으므로, 인류의 피부는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자외선은 피부암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체내의 엽산을 파괴해 기형 태아가 생길 확률을 높입니다. 후손을 남길 확률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일입니다. 체내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다면 진화에서 매우 유익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피부에서 이 역할을 하는 것은 멜라닌(melanin) 색소입니다. 인체의 멜라닌 색소는 특수한 세포가 생산하는데, 멜라닌 색소가 많아지면 피부색도 검어집니다. 이게 바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류가 검은 피부를 지녔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인류는 털과 땀을 맞바꾼 후에는 검은 피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이에반해 털이 있는 동물의 피부는 됩니다. 털이 가려 주기 때문에 굳이 색소가 필요 없고, 색을띨 다른 이유도 없어서지요. 인간 역시 머리털로 덮여 있는 두피는 하얗습니다.). - P99

하지만 피부색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중요합니다.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멜라닌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오히려 멜라닌이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데, 우리 몸에는 약간의 자외선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몸에서 유일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비타민 D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비타민 D는 칼슘 흡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없으면 칼슘이 흡수되지 않아 뼈가 물렁해지고 형태가 일그러집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한 시기가 길어지거나 성장기의 중요한 때에 이러한 시기를 겪으면 구루병이 됩니다.
물론 뼈가 튼튼하지 않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나 가임기여성의 뼈 중에는 형태가 일그러지면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나오는 골반뼈입니다. 산모와 아기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세 앞에서, 인류는 다시 멜라닌이 없는 흰 피부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광범위한 지상의 ‘피부색 유전자 분포‘는 위도에 따라 가지런한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적도 부근 지역은 자외선이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 1년 내내 충분히 내리됩니다. 온대 지역은 자외선이 부족한 기간이 한 달 정도이며 냉대 지역은 자외선이 1년 내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 원주민의 피부 속 멜라닌 농도는 바로이런 자외선 부족 정도와 대략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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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도에 살아도 얼마나오래전에 이주한 집단이냐에 따라, 그리고 평소 비타민 D를 음식으로얼마나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P100

 흰 피부의 돌연변이는 적어도 수만 년 전에는 나타났어야 합니다. 5000년은 의외로 최근입니다. 이렇게 늦게 나타난 이유는 농경의 발생과 정착입니다. 농경 이전 시대에는 자외선이 부족한 지역에 살아도 비타민 D를 합성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식물, 해산물, 고기를 충분히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작물에 의존하는 식생활이 정착되면서 곡류와 전분류에 점점 의존하게 됐습니다. 먹을거리를 통하여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게 되자 멜라닌을 없애고 자외선을 이용해서 비타민 D를 합성하게끔 하는 돌연변이가 유익하게 된 것입니다. - P102

장한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입니다.  노인들이 간접적으로 자손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이 가설에 따르면 폐경 이후의 어자(할머니)들은 직접 새로운 자손을 낳지는 않지만, 손주들을 돌보는 방법으로 후손의 생존률을 높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진화에도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딸의 아이들이 잘 클수록 왕성한 경제 활동을 통해 도와줍니다. 이런 적응 체계가 성립하려면, 나이가 들수록 출산율은 감소하는 반면, 체력등에서는 노화가 늦춰져야 합니다. 이는 여자들이 폐경 후에도 한동안 활동력을 유지하는 실제 관찰 결과와도 잘 일치하는 모습이죠. - P108

재미있게도 우리 현생 인류가 주인공인 시대인 후기 구석기 문화는이전까지의 인류 문화와 혁명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암각화 등의 예술과 상징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노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과 상징은 추상적 사고와 연결됩니다. 또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실제적인 기능도 있지요. 예술과 상징이 늘어났다는 건 이 시기에 그만큼 정보의 전달이 중요해졌다는뜻입니다.
노년은 바로 이렇게 정보가 늘어난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손주를 볼 때까지 살면 세 세대가 같은 시대를 공유하게 됩니다. 두 세대가 같은 시대를 사는 것에 비해 오랜 기간 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지요. 만약 두 세대가 50년 정도를 공유한다면, 세 세대는 75년 동안 일어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이렇게 노년은 정보의 생산과 전달, 공유가 늘어나게 된 실질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술과 상징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P113

사람의 뼈와 이빨을 보면 그 사람의 성장과 질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데 그게 고스란히 흔적을 남깁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에나멜질형성 부전(enamel hypoplasia)‘이라는 증상입니다. 영구치가 만들어져야하는 어린 시기에 영양부족으로 치아의 에나멜(법랑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치아 표면 에나멜에 골이 패이지요. 치아는 한 번 만들어지면 평생을 갑니다. 따라서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에나멜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치아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인류학자들이 조사를 해 보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의 치아에서 에나멜질 형성부전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는 오히려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습니다.
몸의 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뼈나 다리뼈의 길이를 재 봤더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에서 오히려 더 작았습니다. 몸집이 왜소해진 것입니다. 역시 굶주림과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농업이 시작되고 풍요로운 식생활이 시작됐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오히려 영양은 부족해지고 건강은 형편없게 변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향은 오늘날의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잔뜩 부푼 어린이들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죠? ‘콰시오커(kwashiorkor)‘라는증세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단지 칼로리 섭취가 적을 때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로리는 많이 섭취하지만 단백질 섭취는 부족할 때 생기는 병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매일 밥이나죽만 먹을 때 생기는 병입니다. 이 병은 그대로 방치하면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공교롭게도 칼로리와 단백질이 모두 부족한 일반적인 영양실조가 차라리 덜 위험할 정도라고 합니다.
먹을거리를 손으로 직접 지어서 땅에서 거두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농업은 다양한 곳에 투자하지 않고 한두 개의 회사 주식에만 ‘올인‘하는 주식 투자와 비슷합니다. 대박이 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둬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재해 등으로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 내내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지요. 반면 농경 이전의 채집 생활을 하는 사회에서는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채집하고 사냥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먹을거리가 떨어져도 다른 먹을거리로 대체할 수 있었죠. 배 터질 정도로 먹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굶주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 P121

군집 생활은 단순히 감염이 쉬워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집건너 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환자가 나타나는 ‘풍요로운‘ 환경을 맞자 병원체는 전에 없던 특이한 적응을 했습니다. 병원성이 더 강해진것입니다. 이전의 병원체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오래 같이 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 수 있으니까요. 만약 숙주가 덜컥 죽어 버리면 거기에 사는 병원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독성을 약하게 해 병에 걸린 사람이 잘 죽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숙주를 죽여도 바로근처에 새로운 숙주가 계속 공급됐습니다. 병원체는 이제 숙주를 죽여도 될 정도의 강력한 병원성을 지니게 됐습니다. 여기에 농사를 짓기위하여 도입한 동물(가축)도 가세했습니다. 동물이 지녔던 병 중 일부가 사람에게 옮겨와 새롭게 퍼졌습니다. 이제 인류는 강력한 질병의 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됐습니다. - P123

 특히 유전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그동안 몰랐던 농경의 숨은 가치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바로 유전자의 다양성입니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진화의 원동력인 유전자다양성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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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발달이 유전자 다양성을 늘렸다는 것은, 인류 문명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사건입니다. 농업이라는 ‘문명‘이, 인류의 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면 진화는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명과문화의 발달, 그리고 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인류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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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 없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미는 모자수의 연인이었고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친구였다. 누구도 유미를 대신할 수 없었다. 이런 말을 유미에게 한 적이 없다니 자신이 유미의 진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몇 년이 아니라 오래오래 유미와 함께 살 줄 알았다. 우스운 행동을 하는 손님 이야기를 이제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장례식장에서 누구보다도 의젓하게 목발을 짚고 서서 어른들과 악수하는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조문객들이 검은 정장을 입은 어린 사내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릴 때 솔로몬은 "울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여자한테는 "엄마는 캘리포니아에 있어요"라고 말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 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솔로몬도 모자수도 그 말의 뜻을 설명하지 않았다. - P154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선자는 쉰두살이었다. 반점과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항상 부지런히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는 경희는 선자보다 열네 살이나 많았지만 훨씬 젊어 보였다. 선자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는 짧은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한 번도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분명 어떤 남자도 자신을 원할 리 없었다. 선자의 삶에서 그런 시절은 이삭의 죽음으로 끝났다. 평범한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했다. 허리와 허벅지도 굵어졌다. 얼굴과 손은 부지런히 일하는 가난한 여자의 것이었고, 아무리 지갑에 돈이 많다 한들 무엇도 선자를 매력적으로 만들수 없었다. 오래전, 목숨보다 더 한수를 원했다. 한수와 헤어졌을때도 그가 돌아와 자신을 찾아내서 붙잡아주기를 바랐다.
한수는 일흔이었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용모가 더 준수해진 것 같았다. 숱 많은 백발을 여전히 세심하게 다듬어 향유를 발라 손질했다. 고급스러운 모직 정장을 입고 멋진 구두를신은 한수는 고상한 정치인이나 잘생긴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누구도 한수를 야쿠자 두목으로 생각할 리 없었다. 선자는 욕실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외출하기 전에 굳이 거울을 보지도 않았다. 보기 흉하거나 부끄러운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여자의 일생에서 누구한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기가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
선자는 차가운 물을 틀어서 세수를 했다. 어찌 됐든 한수가 자신을 조금은 원하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을 깨닫자 당황스러웠다. 선자의 삶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정도면 됐다. 선자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불을껐다. - P171

 수없이 되풀이한 노력을 증거로 내놓고 싶었다. 엄마라는 것은 딸이나 아내, 이혼녀, 여자친구, 식당 주인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에쓰코의 본질에 가까웠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 일은 에쓰코 자체였고,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다쓰오가 태어난 순간부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슬픔과 회의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더라도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였다. 엄마라는 에쓰코의 삶의 일부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터였다. - P243

 에쓰코가 젊은 엄마이던 시절에 깨어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느낀 유일한 시간은 밤에 아이들이 자러 간 후였다. 에쓰코는 그 시절 모습 그대로의 아들들을 보고 싶었다. 통통하고 하얀다리, 이발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서 이상하게 잘린 바가지 머리를 보고 싶었다. 그저 피곤해서 아이들을 야단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 욕조에서 놀게 두고 자기 전에 이야기책을 하나 더 읽어주고 새우튀김을 한 접시 더 만들어주고 싶었다. - P246

"노아는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그 무엇보다도요. 책 읽기를 정발 좋아했어요."
"디킨스의 책을 읽어보셨어요?"
"몰라요." 선자가 말했다. "글 읽을 줄...…."
"정말요? 노아 님 어머님이시니 보쿠 상도 아주 똑똑하실 텐데요. 어른들이 다니는 야간학교에 다니시면 되겠어요. 노아 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선자는 노인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관리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공부하자고 모자수를 꼬드기던 노아가 기억났다.
관리인이 갈퀴를 바라봤다.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서일을 하러 돌아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관리인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선자는 묘비 밑에 맨손으로30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사진이 달린 열쇠고리를묻었다. 흙과 풀로 구덩이를 메우고 나서 손수건으로 열심히 손을 닦았지만 손톱 밑에 흙이 남아 있었다. 땅을 밟아 다지고 손가락으로 풀을 털었다.
선자가 가방들을 집어 들었다. 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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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는 많은 조선인이 북한으로 돌아갔고 더 많은 이가 남한을 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나라에도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유미에게 조선인이라는 것은 벗어날수 없는 가난이나 수치스러운 가족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끔찍한 멍에일 뿐이었다. 왜 거기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자신을 결코 사랑해주지 않는 의붓어머니 같은 일본에 붙어 사는 것 또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미는 로스앤젤레스를 꿈꾸었다. 으스대는 거창한 꿈을 가진 모자수를 만나기 전에 유미는 어떤 남자와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이제 모자수에게 애정을 갖게 됐으니 함께 미국으로 가서 경멸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지 않는 다른 삶을 꾸리고 싶었다. 여기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84

 "어떻게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만들수 있겠어요? 엄마가 날 더럽혔어요." 노아는 선자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조용히 말했다. "난 평생 일본인들한테 내가 조선인 핏줄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인들이 화가 많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요. 평생 이런 소리를 견뎌야 했어요. 난 백이삭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 핏줄은 내 핏줄은 조선인 핏줄이에요.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야쿠자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절대 이 피는 바꿀 수 없어요. 차라리 태어나지않는 게 나았어요. 어떻게 내 삶을 망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리 경솔할 수가 있죠? 어리석은 엄마와 범죄자 아버지라니. 난 저주받았어요."
선자는 충격 어린 눈으로 노아를 바라보았다. 어린 아들이었다면 입을 다물라고 예의를 지키라고 부모를 모욕하지 말라고 야단쳤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선자가 어떻게 폭력배들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사방에 조직범죄자들이 있었고 선자는 그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폭력배 밑에서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좋은 회사들은 조선인들을 뽑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받은 조선인조차 고용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해야 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선자네 동네에 살았다. 그들은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친절했고 공손했다. 그렇지만 선자는 이런 말을 차마 아들에게 할 수 없었다. 노아는 공부하고 일하며 이 거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아이였고,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선자의 아들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없었다.
"노아야." 선자가 말했다. "나를 용서하래이 엄마가 미안타, 나는 그냥 니를 학교에 보내고 싶었데이. 니가 그거를 얼마나 바랐는지 아니까 니가 얼마나 열심히……."
"당신, 당신이 내 삶을 빼앗았어요. 난 더 이상 내가 아니에요."
노아가 손가락으로 선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아가 돌아서서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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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함께 여행을 떠나요

2001년, 저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에서 조교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왔습니다.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잦은 이사로 짐이 거의 없었고, 일본에서 박사 후 과정을 끝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짐을 한 번 더 줄인 상태였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짐을 부치면서 내친 김에 자동차까지도 함께 보낼 참이었습니다. 당시 몰고 다니던 1994년형 닷지 미니밴 ‘보이저‘는 수동으로 창문을 여닫고, 에어컨도 없고, 오디오 시스템이라고는 달랑 라디오 하나 있었지만 그래도 잔 고장 하나없는 믿음직한 자동차였습니다. 그러나 짐을 모두 보내고 홀가분하게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비행기 편에 몸을 실어 이사를 하려던 계획은이내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도 교수가 직접 차를 몰고 가보라고 권한것입니다. 저는 안 된다고 펄펄 뛰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자리를 잡고 싶기도 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였고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결국은 미국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지도 교수의 끈질긴 설득에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 P5

인류의 진화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정답은 없다." 입니다. 진화에 유익한 형질, 적응에 유리한 형질은 우연의 작품입니다. 우연히 이루어진 환경 변화 속에서 마침 우연히 생겨난 형질이 유익했고, 유익한 형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겼을 뿐입니다. 어느 한때 유익하다고 영원히 유익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인류의 진화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그렇습니다. 길게 보면 커다란 흐름이 있습니다. 직립 보행이 그렇고, 두뇌용량의 증가가 그렇고, 문화에 대한 의존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직선이 아닌, 꼬불꼬불한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고, 환경에 맞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가장 좋은 선택을 고민하기보다는 그때 적합한 선택을 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것뿐입니다. - P14

포레 족은 지금은 더 이상 이런 장례를 치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널리 행해졌던 장례였지요.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끔찍한 장례를 치렀을까요? 바로 죽은 사람을 먹으면 그 사람이 살아 있는사람의 일부가 돼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이러한 믿음은 그리 낯설거나 특이한 게 아닙니다. 일부 다른 문화권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의 야노마모 족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화장한 뒤 재를 죽에 섞어 친척이자 이웃인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 먹습니다. 비유이긴 하지만, 기독교 성찬식에서는 예수가 빵을 뜯어서 자신의 몸이라고 믿고 먹으라 하고, 포도주를 따라서 자신의 피라고 믿고 마시라 권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포레 족의 식인 풍습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끔찍한 모습을 걷어내면, 그 안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 P29

하지만 주의할 게 있습니다. 식인 ‘행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곧식인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앞서소개한 포레 족에서처럼, 인류 역사에 식인 행위는 분명 있었습니다. 보다 오래전으로 돌아가 봐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고인디언 유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했습니다.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도 식인이 용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데스산맥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 예지요. 이들은 생존을 위해 죽은 동료의 시신을 먹었습니다. 미국에서 서부 개척을 위해 이주하다 길을 잃고, 결국 식인으로 연명하다가 겨우 일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한 상황에 몰려 예외적인 행위를 한 이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약 2010년에 남미 칠레에서 무너진 탄광 속에 갇혔던 광부들이 극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해도, 도덕적인 잣대로 이들을 ‘식인종‘이라 부르며 심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래전 인류의 화석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이들은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인육을 먹었을까요? 혹시 원수를 갚으려고 신체 일부를 삼킨 건 아니었을까요? 혹은 플라이스토세라는 척박한 빙하기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선택을 했을까요? - P31

이런 동물에게 서열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게 하는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몸집과 송곳니입니다. 수컷에게는 이 두 가지가 최대한 크고 강할수록 유리하겠죠. 유인원 가운데에서 이런 특성을 보이는 종이있을까요? 바로 고릴라가 그렇습니다. 고릴라는 암수 사이에 몸집, 두개골, 송곳니 크기가 대단히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암수 사이의 크기 차이는 수컷끼리의 경쟁을 알려 줍니다. 암컷에 비해 수컷의 몸집이 크면 클수록 수컷끼리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나타내지요. 실제로 고릴라는 짝짓기를 할 때는 수컷이 미리 힘 대결을 펼쳐 서열을 정해 두고, 가임기가 되면 높은 서열을 지닌 수컷만 암컷에 접근하는 모습을보입니다.
한편 고릴라와 반대에 서 있는 유인원도 있습니다. 침팬지입니다. 침팬지의 암컷은 모두 서로 다른 시기에 가임기를 맞습니다. 365일 내내 임신 가능한 암컷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수컷 침팬지에게는 대단히 고민스러운 상황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수컷이라도 1년 내내 암컷을 감시하며 다른 수컷들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고릴라는 가임기에만 반짝 지키면 됩니다.). 암컷 입장에서도 시름이 깊습니다. 고릴라 암컷처럼 편하게 앉아 기다리면 검증된 강한 수컷이 다가오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암컷 침팬지는 고릴라와 전혀 다른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가능한 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수컷 역시 최대한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실제로 다수가 무리를 이뤄 사는 침팬지 수컷은 서열 다툼을 별로 벌이지 않기 때문에 따로 강한 수컷이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가임기 암컷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침팬지 무리에서는 교미가 1년 내내 벌어집니다. 그럼 다른 수컷을 물리치고 자신의 새끼를 남기고 싶은 수컷은 도대체 무엇으로 경쟁을 할까요? 바로 정자입니다. 수컷은 최대한 많은 정자를 내보내 다른 수컷의 정자와 경쟁시킵니다. 이 경우,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비결은 최대한 많은 정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커다란 몸집은 필요 없습니다. 오로지 고환만 크면 됩니다. 그래서 침팬지는 몸집이나 두개골 크기는 암수가 별로 차이 나지 않지만(송곳니만은 차이가 크게 납니다.), 유인원 가운데 몸집에 비해 가장 거대한 고환을 갖고 있습니다. - P40

 결국 고릴라도 침팬지도 둘 다 진짜 아버지를 알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침팬지와 고릴라 가운데 어떤 짝짓기 방식도 수컷에게 "암컷이 낳은 자식이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 자식이다."라는 보장을 못합니다.
이 경우 유인원 수컷이 취할 전략은 일단 태어난 새끼에게는 더 이상 정성을 들이지 않고 오직 많은 새끼를 만드는 일에만 ‘올인‘하는 것입니다. 짝짓기에만 열중하고 육아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 방식이죠.그래서 유인원의 세계에는 ‘키워 주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침팬지에게는 아버지가 없다"는 말의 속뜻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다릅니다. 고릴라처럼 몸집이 크지도 않고, 침팬지처럼 고환이 크지도 않은 인간의 남자는 다른 영장류와 전혀 다른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새끼 키우기‘에 공을 들이는 방법입니다.
최초로 두 발로 걸은 인류를 생각해 봅시다. 여성이 임신 혹은 수유중일 때는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좁은 지역을 돌며 식물성 먹을거리를 수집했습니다. 반면 딸린 몸이 없어서 두 손이 자유로운 남자들은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동물성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해서 가져온 먹을거리를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리한 전략은 뭐니 뭐니 해도 가임기 여자의 환심을 사는 것이겠죠. 그런데 임신이나 수유 중인 여자는 어떨까요? 배란이 억제돼 있으므로 환심을 사 봤자 자손을 남기는 데 하등 유리할 게 없습니다. 그냥 먹을 것을 갖다 주지 말고, 다른 여자를찾는 게 나을까요? 하지만 변수가 있습니다. 만약 여자의 뱃속에 있는아이, 혹은 젖먹이 아이가 자기 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여자와 아이에게 먹을거리를 나눠 주는 일은 자신의 자손을 남기는 데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되기 때문이죠. - P42

이제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여자에겐 남자가 계속 자신에게 고기를 가지고 오게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하지만 가임기는 기껏해야 한 달에 하루, 이틀입니다. 그럼 나머지 날에는 남자가 가져오는고기를 받을 수 없는 걸까요? 여자가 내놓은 해답은 위장 전략입니다.
자신이 항상 가임기인 듯 속여서 계속해서 고기를 받으면 되죠. 가장확실하게 속이는 방법은 남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속일 뿐 아니라, 아예 여성 자신도 자신의 가임기를 모르게 됐습니다. 가임기를 정확히 모르는 인간은 늘 수시로 성교를 해야 했고, 남자는 계속 같은 여자에게 되돌아오게 됐습니다. - P44

인간의 아버지는 생물학적인 관계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믿음)을통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몸 역시 그에 맞춰 진화했습니다. 남자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갖게 되면 남성 호르몬이 줄어듭니다. 남성 호르몬은 생물학적인 ‘수컷다움‘을 관장합니다. 이 말은 ‘수컷 노릇의 사령부‘가 아버지 노릇을 위해 퇴진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러브조이 가설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수컷과 암컷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을 넘어선 사회 문화적인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탄생은 그것을 증명합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 P48

르(Hadar) 유적, 탄자니류 화석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Australopithecus Afarensis‘는 새로운 종으로 분류됐는데, 연대측정 결과 300만~35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때까지 발견된 종중 가장 오래된 인류 조상 화석입니다(유명한 ‘루시(Lucy)‘가 바로 이 중에 속합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가장 오래된 화석이라는 점 말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견이 고인류학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인류 진화 역사에서 두 발로 걷게 된일(직립보행)이 커진 두뇌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두뇌를 기준으로 찾아야 할 게 아니라, 두 발로 걸었다는 증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두뇌는 침팬지 정도 크기에 불과합니다. 치아는 큰 편이고, 도구 사용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보나 인류보다는 침팬지의 조상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가 달랐는데, 그게 바로 두 발로 걸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골격에서도 직립 보행의 흔적이 보였고, 탄자니아의 라에톨리 유적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두발로 걸은 뚜렷한 증거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최초의 인류를 찾으려는 노력에도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직립 보행을 한 흔적이 있는지가 인류의 조상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됐습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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