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미 현실이 된 세계

형님, 일전에 읽은 예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c.1606)

어두운 밤, 퍼붓는 빗속에 텐트를 쳤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높이 올라왔기를 작동 중인 세탁기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폴대가 세차게 흔들리는 텐트에 몸을 구겨 넣었다. 거센 바람이 텐트의 젖은 입구를 후려치며 얼굴에 물보라를 뿌려댔다. 폭풍은 밤늦도록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젖어드는 침낭에 누워있다 보니 괜한 짓을 했다 싶어 후회막급이었다. - P12

복잡한 개념이라도 서사가 덧입혀지는 순간 공감대가 형성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중심으로 철학적 담론의 틀을 짜고, 칼 세이건이 상상 속 우주선의 빛나는 갑판에서 천체물리학을 가르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만으로는 건들 수 없는 뇌의 구역에 파고들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는 화학물질의 분비를 자극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학습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결국 이야기로 전달하고 이야기로 듣는 것에 달려 있다. 연구자로 살아가는 동안 처음에는 무관심에 가까웠던 기후변화에 대한 내 태도도 이야기를 통해 완벽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내 마음가짐을 바꾼 이야기는신문의 머리기사나 치열한 정책 논쟁에 있지 않았다. 내가 연구하는 동물과 식물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나를 바꿔놓았다. - P16

 지난 30년간 우리 인간이 대처의 필요성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지구의 다른 종들은 이미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연의 대응을 살펴보면, 아무리 복잡하고 해석이 달라도 결국 미래 기후 시나리오의 결과는 변화에 직면한 개별 동물과 식물의 반응과 행동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어떤 환경에서든 개의치 않고 살 수 있다면 날씨가 달라지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필요조건은 결코 일반화할 수 없다. 세상에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것도 모두 세분화한 환경조건 때문이다. 지구상의 수백만 좋은 각자자기가 사는 곳의 특수한 생태적 상황에 적응해 변해왔다. 환경이 달라지면 대응이 불가피하고, 변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어지면 결국 생태계 전체의 틀이 통째로 새로 짜이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기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가 속도인 것도 그래서다.  - P17

1971년 두 명의 새내기 고생물학자가 미국지질학회 연례 회의에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이란 이론을 들고나왔다. 대학원 시절부터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였던 나일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오랫동안 고생물학 분야의 골칫거리였던 한 질문에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 "잃어버린 고리는 어디에 있는가?" 만약 진화가 정말로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라면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바뀌는 전이 과정이 화석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석 속 종들은 수백, 수천만년 전 지층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윈도 이 문제를 아주 잘 인지했던 터라 "내 이론을반박할 가장 명백하고 심각한 이의 제기"라고 불렀고, 《종의 기원》에서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함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9장을통째로 할애할 만큼 신경 썼다. 암석이란 특정한 조건에서만 생성되고 게다가 극히 일부 암석에만 화석이 남아 있으므로, 대부분의 종과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 다윈은 "자연이 남긴 지질 기록은 세계 역사의 불완전한 보존이다. ••• 곳곳에 짧은 장만 남아 있고, 그마저도 몇 줄씩 흩어져 있는게 고작이다"라는 훌륭한 비유를 남겼다. 엘드리지와 굴드도 지질기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중간단계의 화석이 귀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바로 빠른 진화다. 만일새로운 종이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발생하지 않고 (지질학적 관점에서)하루아침에 생성되었다면, 그 변신 과정은 흔적을 남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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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비롯해 무슬림과 멕시코인, 라티노에 대한 인종주의적 발언들로 상심한미국인들의 폭넓은 계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유럽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방식과 결코 차이가 없다. 유럽에서 먹히는 것이 미국이라고 해서 왜 먹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예비선거 동안 그는 백인 노동자들과 교육받은 백인 계층의 좌절과 환멸을 이용해서 성차별적인 발언과 인종주의적 구호들로 표를 얻었다. 그와 함께 갑자기 미국 내의 소수 집단들에 대한 폄하가 곳곳에서 부각되었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히 사회적인 계급 투쟁이 아니라 이미 미국의 백인 주민들이 자유주의 시대의 성취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려는하나의 문화 투쟁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 대한 관용 및여성과 동성애자들의 권리,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다시 거부되었고, 거부되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 P249

브룬힐데 폼젤은 히틀러의 집권이 무엇을 뜻하고 또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넘치고 대중 매체가 발달한 시대에는 원칙적으로 그런 무지가 별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모든 이상 발달 상황, 거의 모든 발언, 한계를 넘은 행위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순식간에 퍼지고, 지속적으로 저장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한정 증폭된다. 인터넷의 거인 페이스북은 지금껏 증오의 포스팅과 선전의 확산에 대한 자신들의책임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플랫폼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생각의 확산과 인력 동원의 핵심 도구가 된 것은 이미오래된 일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관심 영역에 따라, 그리고 진실과 무관하게 극단적인 인간들이 열망하는 모든것을 제공한다. 그 결과 알고리즘을 통해 주어진 내용들은 선입견을 강화하고, 기존의 세계상을 공고히 한다. 그사이 소셜 미디어들은 어두운 쪽으로 사용될 잠재력을 한껏 키우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의 선구자들이 인터넷 망을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으로, 투명성과 민주주의, 자유 운동의 수단으로 환호했던 그 열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인터넷 망은 증오를 배출하고 확산하는 장으로 타락해 버렸다. 사회각 영역에 존재하는 불만들은 과거보다 더 쉽게 하나로 뭉쳐져 확산되기 때문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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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터키에서 보고 있는 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에 있는이 나라의 경우는 <민주주의>라는 공통 가치를 지향하는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겠다고 애쓰는 국가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오고자 하는 난민들에 대한 공포는 유럽 민주주의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유럽 연합은 난민 정책에서 각국의 국가 이기주의로 인해 터키와거래에 나설 수밖에 없고, 에르도안 정권은 이 인간 경멸적거래를 이용해 터키 내부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고 있다. 전쟁 지역 시리아의 난민들은 국제 정치의 놀이공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난민들에게 다시 국경을 개방하겠다는 터키 당국의 위협은 유럽 국가들에 패닉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는 또다시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심각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을 뿐 아니라, 그랬다가는 우익 포퓰리즘이재차 활개 칠 거라는 공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공포는 난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난민들을 처리하는제반 문제와는 별개로 이미 유럽 사회를 인간의 권리와 존엄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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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번째 음이니까. 첫번째 손가락으로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 나는 조금 전의 도를 기억하려 한 번 더 건반을 눌러보았다. 도는 당황한 듯 다시 도하고 소리 낸 뒤 제 이름이 지나가는 동선을 바라봤다. 나는 음 하나가 깨끗하게 사라진 자리에 앉아,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굳어 있었다.
녹색 코팅지가 발린 유리벽 사이론 오후의 볕이 탁하게 들어왔고, 피아노와, 그것을 처음 만진 나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내뱉듯 작게, 중얼거렸다. 도······ - P9

만두 집을 했던 엄마가 어떻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욕심이거나 뭔가 강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때 엄마는 어떤 ‘보통‘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주고, 놀이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들에 고개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이따금 내가 회전목마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한 손으로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 P13

그녀는 후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유세를 떠는 것 같고, 그런검열과 의식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자신이 지겨워진다. 그녀는 지각한 탓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나쁜 배역을 억지로 맡아버린 학생처럼 연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내뱉는다. 이제 그만 후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예감에서부터 체념까지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을 순간 끝내버리는 듯한 훈련된 눈빛이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다. 후배는 궁둥이에 커다란 얼룩을 단 채,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그녀가 후배를 달랜다. 언니가 몸도 안 좋고 요즘 신경이 예민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온 문제다. 서로를 위해 더 이상 함께 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달까지 여유를 갖고 정리하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후배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알았어요. 그녀가 후배를 바라본다. 후배가 말한다.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언니. 그녀는 아무 말도 않는다.
‘저 아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자기가 먼저 괜찮다고 해버리는 걸까?‘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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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이라는이분법의 핵심이다. 위협은 사랑만큼 강력한 정치적 동기다. 2016년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구조사 결과 클린턴은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강력히 지지하기 때문에 투표했다고 답한 유권자들의 표 53%를 얻었지만, 트럼프는 상대편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답한 유권자들 사이에서 11% 차이로 앞섰다. 즉, 트럼프의 승리는 클린턴에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들 덕분이었다. 실제로 일부 선거 전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 대다수는 트럼프에 대한 지지보다 클린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동기였다고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진보주의자라면, 클린턴에게 투표하기 위해 꼭 그를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트럼프가 하고 말한 모든 것은 공화당이 제정신이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화당에 권력이 넘어가면 안 된다는 증거였다. 클린턴 선거운동의 상당 부분은 그러한 시각에서 진행되었다. 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되면 안 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보수주의자들에게 트럼프와 같은 역할을 했다. 클린턴은 현대에 들어 가장 양극화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인종과 젠더 문제에서 버니 샌더스보다 더왼쪽으로 달림으로써 예비선거에서 이겼고, 공화당 선거운동은 클린턴을 말 그대로 ‘감방에 처넣어야 할 범죄자‘로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됐다. 만약 당신이 공화당 지지자거나, 단순히 민주당 권력 연합체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트럼프에게 표를 주기 위해 꼭 그를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 P242

투표할 때 당신은 한 후보, 한 연합체, 한 사회운동, 한 미디어 생태계, 일련의 기부자들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우려하는족속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투표한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지지 후보에 대한 애정을 키울 이유를 제공하고, 애정을 갖지 못하더라도 어찌 되었건 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정당화할 이유를 제공한다. 한 후보의 인격보다 소속 정당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정치는 개인이 아니라 정당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이 처한 현실을 보라. 정당들, 특히 공화당은후보 지명과 관련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한 정당이누군가를(누구라도) 지명하면, 그 사람은 당 엘리트들과 유권자 모두의 지지를 보장받게 된다. 표 분할이 흔했던 골드워터나 맥거번 시절과달리, 당의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라면 그 누구라도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아주 좋은 기회를얻게 된다.
이는 어쩌면 더 무서운 일일 수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선동적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더 큰 힘을 얻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오랫동안 보수주의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해온 《내셔널 리뷰》는 "트럼에 반대하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트럼프가 행여 대통령이나공화당 지명자, 심지어는 보수 진영의 강한 지지를 업은 실패한 후보가 된다면, 그것이 보수주의자들과 관련해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이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소련을 서서히 해체하고 잠시나마 사회주의의 빛을 흐려지게 만들었던 운동이 장사치 뒤로숨어버렸을 것이다. 입헌 정치, 결혼, 생명권과 같은 ‘영구적인 것들‘과관련한 운동은 트위터 피드를 위한 박수 부대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 - P244

1990년 린스는 「대통령제의 위험성 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라는논문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다수는 입법권을 가진 쪽이 행정권을 획득하는 의원내각제 체제였다.‘ 하지만 미국은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였다. 대통령은 의회와별개로 선출되고 종종 의회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이 시스템은 이전에도 시도된 적이 있었으나 걱정스럽게도 이 시스템이 살아남은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
문제는 간단하다. 의원내각제에서 수상은 입법부를 장악하는 연합체의 지도자다. 만약 그 연합체가 선거에서 진다면, 권력을 잃는다. 어떤 순간에도 오직 한 정당이나 연합체만이 권력을 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통령제에서는 한 정당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다른 정당이 대통령직을 장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정당 모두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린스는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민을 대신해서더 큰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는가? 대통령인가 아니면 입법부 내 다수당인가?"
대통령과 의회가 다른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실시된 투표로 뽑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통령은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는 경향이있지만, 입법부는 작은 마을들과 시골 지역들에 더 큰 힘을 주는 상황에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고 린스는 지적했다. 단일 유권자들 사이의 민주적 의견 차이를 해결하기만도 어려운데 하물며 다른 유형의 유권자들을 반영하는 의견 불일치에 직면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은 답이 없는 질문이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이 타협을장려한다고 가정하는데, 경쟁하는 정치적 연합체들이 타협에 열려 있을 때라면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스템은 위기를 부추길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군부가 중재자로서 정치에 개입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종류의 위기다. - P252

린스가 주장한 것처럼, 권력이 다른 부들(정부를 구성하는 3부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옮긴이) 사이에 분배되는 대통령제는 이 부들을 통제하는 정당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을 때 작동하며, 이것이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미국 정치 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또한, 이 점이 중요한데,
‘전국화‘되어 있다. - P259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강한 지역 감각에 기반하고 있다. 하원은 두 정당의 회의를 개최하는 곳이 아니라 435개 선거구의 회의를 여는 곳이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을대표하는 곳이 아니라 50개 주의 이익 균형을 맞추는 곳이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적 정체성이 국민이라는 더 추상적인 결합이 아니라 각자의 도시와 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화국 설립자들의 믿음(그 당시에는 옳았다)을 반영한다.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논집 46에서 "많은 고려사항을 볼 때 (•••) 모두의 최초이며 가장 자연스러운 애착은각 주의 정부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라고 썼다.
주와 지역 정치가 국가 정치의 중심이라는 점은 양극화에 대해 미국정치 시스템이 가진 제동장치 중 하나였다. 양당 경쟁의 제로섬적인 힘은 특정 지역에 뿌리를 둔 정치인들의 지역적 이익 앞에서 완화되었다. 당신은 공화당 의원이고, 법안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민주당 의원들일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오클라호마주 공화당 의원이고, 그리고 젠장, 이법안이 오클라호마주에 도움이 된다면? 당은 당신이 그 법안에 반대하길 바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찬성한다면 당신의 지역구는 절실히 필요했던 다리를 건설할 돈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그 다리에 새기는 것은 동료 의원들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
최소한 과거에는 그랬다.
대니얼 홉킨스는 ‘점점 더 미합중국이 되어 간다에서 미국 정치의 골치 아픈 전국화를 추적했다. 전국화의 핵심은, ‘우리는 국가보다우리의 고향과 더 깊은 일체감을 가질 것이다‘라는 미국 건국자들의 가장 분명한 가정을 뒤집는 것이다.  - P261

분류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대칭적으로 들릴 수 있다. 공화당은백인 유권자의 정당이 되었고, 민주당은 비백인 유권자의 정당이 되었다. 하지만 그 둘의 정당 구조는 매우 달라졌다. 분류는 민주당을 서로다른 이들의 연합체로 만들었고 공화당원은 더 같게 만들었다.그 결과 민주당에 호소하려면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이는 뉴햄프셔주의 진보적인 백인들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전통주의적 흑인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보스턴에 사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과 캘리포니아에 사는 불교 수행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지지를 얻기 위해 넓게 움직여야 하며, 권력을 얻기 위해 우파 영역까지 손을 뻗어야 한다. 반면 공화당은 깊이를 추구할 여유가 있다.
이는 여론조사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보수라고 부르는 미국인의 비율은 오랫동안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압도했다. 1994년,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을 38% 대 17%로 압도했다. 이 격차는 최근 몇 년 동안 좁혀졌지만, 2019년 1월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이 35% 대 26%로 앞서고 있다. 공화당원들 중 4분의 3이 자신들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민주당원들 가운데 절반만이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한다. 그리고 민주당에 이것은 역사적인 고점이다. 2008년까지 민주당 안에서는 자신을 중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진보주의자보다 많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공화당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당원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럴수 없었다. 그들은 백인들과 흑인, 진보주의자와 중도파, 고정된 사람들과 유동적인 사람들로 구성되는 연합체의 요구를 들어야 했다. 민주당은 서로 다른 집단에 서로 다른 정책을 약속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해, 정당 구축에 있어서 이념적 접근법 이상의 교류주의적 접근법을 내놓았다. - P286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의 정치 시스템은 지리적 단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고, 이 모든 단위는 인구가 밀집한 도시보다인구가 적은 시골에 특혜를 준다. 이는 버몬트가 뉴욕과 같은 권력을행사하는 상원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거구 획정 방식 때문에 하원에서도, 그리고 선거인단 때문에 백악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대통령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 결과를 반영하는 대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권력은 권력을 낳는다. 공화당은 당파적인게리맨더링, 친기업적인 선거자금법, 엄격한 유권자 신분증 요건, 반도조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다수당 지위를 이용하고 있고,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민주당이 선거에서 더 불리하게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다(물론 그렇다고 믿지만). 대신 나는이 시스템이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양극화를 억제하고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양극화를 확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P297

정체성 마음챙김
모든 정치는 정체성의 영향을 받는다. 모든 정치가 말 그대로 정체성 정치이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정체성의 영향을 받고, 정치는 인간 인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상황에서 분리할 수 없다. 우리가 처한 맥락이 얼마나 우리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는지 우리는 결코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자랐는지, 누구를 믿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존경하고 무시하는 법을 배웠는지. 이런 것들은 의식의 차원을 넘는 영역이기도 하다. 정체성이 활성화되는 데 걸리는 1000분의 1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신적 프로세스는 우리가 간단히 떼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체성이 휘두르는 힘을 통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이용할 수는 있다. 기억하라. 우리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다.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은 정체성이다. 하지만 ‘공정한 사람‘, ‘기독교인‘, ‘호기심 많은 사람‘, ‘뉴요커‘도 정체성이다. 자신을 가난한 사람, 동물, 아동권리의 옹호자로 보는 것은 한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정체성이다. 정치적 연합체들에는 정체성을 정의하고, 통제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거대한 기구가 있다. 당신이 이 상부 구조에서 벗어나고자한다면,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 P317

우리가 모든 정보를 회피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 내직업적 이익에 반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단도직입적으로 하겠다. 우리는 국가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반면 우리는 지방 정치에는 너무 적은 관심을 쏟고 있다. 주와 지방에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트럼프가 올린 트윗에 분노하는 데 소비하는 시간은(분명 이 행위가그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며, 핵심은 그가 대화를 통제할 수 있도록 모든 미디어 산소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웃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쓰는 것이 더 낫다.
대니얼 홉킨스는 "미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선출직 공직자가 있으며, 그중 537명만이 연방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다"라고 썼다‘ 537명의연방 공직자들은 가장 많은 유권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가장 적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직자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그들은커피 한잔으로도 기꺼이 우리를 만나줄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이건 우리가 게으르고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미디어가 전국화되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주와 지역 차원에서 특별한 결과물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관련해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주와 지역 저널리즘을 되살리는 것은 그 자체로 책 한 권이 필요한 주제이다). 그저 노력하라는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없다. 당신의 미디어 식단에 지역 뉴스 매체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지역 관련 정치적 정체성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도움이 된다. 특히나 소셜미디어 친구들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전국 단위 출판물들이 당신이 사는 지역이나 주에 관한 이야기를 떠밀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 P321

우리가 종종 미국 민주주의의 황금기로 떠올리는 시대는 오늘날보다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진보적이었고, 덜 점잖았다. 트럼프의 가장 무절제한 감정 분출과 가장 외설적인 생각도 역사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정치 기관들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할 수 있는, 통치를 잘했던 체제들과 비교해서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가내일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훨씬, 훨씬 더 잘하고 있을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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