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물려받은 것이다. - P27
하지만 형인 톰이 갑자기 병상에 눕게 되면서 모든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8개월 동안 나에게 현실세계란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병실과 퀸스에 있는 방 하나짜리형의 아파트가 전부였다. 졸업 후 뉴욕 중심가의 고층 빌딩에서 화려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들이었다. 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서 있고 싶었다. - P32
뉴욕 평균 크기 아파트 약 3천 개를 합친 면적의 미술관은 너무도 장황하게 펼쳐져 있어서 이런 전시실 정도는 거의 붐비지않는다. 몇 분간 C구역에 서서 멈춘 게 아닐까 싶은 느린 속도로시간이 서서히 전진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앞으로 손깍지를 낀다. 뒤로 손깍지를 낀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본다. 문설주에 기댔다가 잠시 서성거렸다가 벽에 기대어본다. 새끼 오리처럼 아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주위를 경계하며 가만히 서 있는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준비가 되지 않은 듯 안절부절 못하고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주 동안 형이 죽은 뒤 처음으로 내 삶이방향을 잡았다고 느끼게 해준 일들을 지나오고 있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훈련을 받고, 뉴욕 주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고, 지문을 등록하고, 근무복 제작실에서 미술관의 재단사가 내 치수를 재고...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더 지난 후,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의 역할이 될 수 있겠다고 믿기 시작한다. - P33
내가 태어났을 때 형인 톰은 채 두 살이 되지 않았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형도 어린이였고, 내가 사춘기를 거칠 때는 형도 10대였다. 그리고 내가 스물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직후 형이 이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런 건 모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동생에게 형은 언제나 다 큰 어른인 법이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교실에 가면 선생님이 출석부를 한 번쓱 쳐다보고는 반쯤은 기쁘고 반쯤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브링리라고? 톰 브링리 동생?"이라고 물었다. 백 살까지 산다 해도나는 어딜 가나 톰 브링리의 동생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 P55
자가면역질환으로 위기가 극에 달하자 형은 우리를 한 사람씩 차례로 자기 방으로 불러 작별 인사를 했다. 방에서 나온 후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져 더 이상 부서질 수도 없게 된 심장을부여잡고 의료 정보가 담긴 소책자 뒤에 이렇게 갈겨썼다.
이제 곧 말을 못 하게 될 거야. 하지만 행복해. 여러 가지로 운이좋았지. 가족, 크리스타를 잘 돌봐줘. 수학을 끝내지 못한 건 후회가 돼.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넌 걱정 안 해. 훌륭한 녀석. 사랑해.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산거 같아. 잠들었는데 그사이에 누가비디오를 대여점에 돌려줘버렸어. 누구나 고통을 겪지, 내 차례야. 누구나 죽어, 내 차례고, 고통을 피하는 약을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싶지 않기도 해. 죽는 건 상관없어. 다만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아. 모두들 늙어가는 걸 보고 싶은데... 크리스타를 행복하게 해줘.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 P61
그 그림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초기 르네상스 전시실로 갔다. 어머니는 내가 찾은 그림보다 더 인정사정없고, 더 아름답고, 심지어 더 진실되어 보이는 그림 앞에 서 있었다. 14세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 Nicolas diPietro Gerini라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었다. 특징 없는 금색 배경 앞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Lamentation‘ 혹은 ‘피에타 Pieta‘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 P67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지친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브루클린을 향해 달리는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한 생각이 머리 속에서 형태를갖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브루클린의 5번가를 따라 걸으면서 멕시코 식당 대여섯 개를 지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3층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문에 열쇠를 넣고 돌릴 즈음에는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2008년 가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일을 시작했다. - P70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렇게 뛰어난 많은 사람을께 일한다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거야!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어! 나는 중요하고 존재감 있는 자리의 명함을 지니고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만 계속하면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이 달갑지 않은 역설을 직시하는 데는 거의 3년이 걸렸다. 내가 만약 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동안 틈틈이 내 생각들을 흐릿하게나마 적어두었을 테고, 영감을 주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과감히 도전해 글을 써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빅 리그였기에 내 생각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고 야망은 이상하리만치 줄어들었다. 나는 「평론 한 마디」라는 섹션에 들어가는 한 단락짜리 서평을 쓰는 데도 스스로가 아닌 목소리를 사용하고, 내 것이 아닌 권위를 주장하고, 정말 그렇게느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의견들을 피력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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