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지역에 헛소문이 퍼지면서 우리 사이에서 점점자라던 긴장감이 다시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두 루머가 하나로 합해져서 어쩌면 남자친구의 생각은 ‘내가 어쩌면 - 남자친구를 부끄러워해서 집에 찾아오는 것을 꺼린다‘에서 ‘내가 밀크맨과 사귀기 때문에 집에 찾아오는 것을 꺼린다‘로 바뀌었고 내 생각은 ‘엄마가결혼과 아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쩌면 - 남자친구가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싫다‘에서 ‘밀크맨이 어쩌면-남자친구를 죽일까봐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싫다‘로 바뀌었다. 사실을 털어놓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래봐야 좋을 게 없다. 봐라, 지금 막 마음을 열려고 했는데 어쩌면-남자친구가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나? 이렇게 정리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남자친구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에 (어쩌면-남자친구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나를 다짜고짜 비난하는데 내가 왜 대답을 해야 하나?) 다시 한걸음 물러섰고 마음을 닫았고 속이 상하고 화가 났고 그때 또 혐오감이 치솟았다. 아 안돼. 나는 생각했다. - P408
다만 지금은 분노가사라진 듯 흔적도 없었다. 다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느껴지지 않고 바닥을 밟고 있는데도 떠다니는 기분인 한편으로내가 달리 행동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 나에게는분노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러이러하는대신 저러저러했다면, 거기 가는 대신 저기 갔다면, 이렇게 말하지 말고 저렇게 말했다면, 다르게 생겼다면, 그날「아이반호』를 들고 길에 나다니지 않았다면, 그날밤에도그주에도 지난 두달 동안 어느 날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그가 나를 보고 욕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때 나는 비틀거렸고 그 순간 흰색 승합차가 내 옆에 멈춰섰다. 조수석 문이 열렸고 아빠가 말했던 "그 공포의 장소에 처음으로 가는 게 아닌 느낌"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당연한 듯이 올라탔다. - P430
언니는 이 일이 나에게 교훈을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밀크맨의 정치적 위치 때문이 아니었다. 밀크맨을 죽인 사람의 정치적위치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다. 오직언니가 오래전에 잃은 것을 내가 갖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언니처럼 나도 내가 원하는 남자가 아니라, 언니가 그랬듯이 나도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누가 되었건 밀크맨 뒤에 나타날 원치 않는 대체물을 받아들이고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에, 늘 비탄에 잠겨 있던 언니는 이제 황홀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불행 때문에 언니가 황홀감을 느끼다니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행복해하지 마, 언니가 행복해할 일이 아니야. 찰싹! 하고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실제로는, 내 반응을 기다리는 언니 앞에서 나는 늘 그러듯이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처럼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얼굴 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가 감정을 살짝 꾸며내면서, 한순간, 아주 짧은 순간 다소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는 듯한 미묘한 느낌을 주면서 말했다. "언니 지금 오르가슴 느끼는 것처럼 보여." 언니의 환희뺨을 맞아도 싼,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그 못된 환희가 아니라, 평소에는 완전히 죽은 것이나다름없이 끔찍하게 살다가 한순간 살아 있음을 느낀 사람의 환희는 그 즉시 사라졌다. 예상한 대로였다. 나는 정곡을 노렸고 바로 겨냥한 데를 맞혔다. 언니나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서 노리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 P436
그렇게 해서 결론이 났다. 우리는 다시 스트레칭을 했고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양을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우리가 하는 양이 재미없어지자 스트레칭 하는 우리를 밀고지나갔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아, 아무튼 너 참 짜릿하게사는구나 가운데동생"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화가 나지는 않았고 심지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셋째 언니와 친구들은 돌아서서 언니와 형부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거실 창문을 통해 쇼핑백 부스럭거리는 소리 산 물건을 보고 감탄하는 소리 술과 잔과 재떨이와 엘비스 등을 다급하게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동안 우리 둘은 다시 스트레칭을 했고 셋째 형부가물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내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자, 가자." 우리는 작은 대문을 열고 닫고 할 것도 없이 작은 산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고 나는 초저녁의 빛을 들이마시며 빛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부드러워진다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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