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부가 주거 구역이나 업무지구라기보다 관광용 테마 공원처럼보이는 도시들이 많다. 뉴올리언스나 방콕에 대규모 관광객들이 없다.
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런던, 뉴욕, 파리, 상하이 같은 금융 중심지들에서조차 중심부의 상당 부분이 관광객들을 배려한 술집과 식당, 즉석식품점과 오락시설, 호텔과 호스텔과 에어비앤비airbnb 아파트를 갖춘 곳으로 바뀌었다. 현지 주민들이 차츰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은 확실히 현대 대도시들의 모습을 바꾸고 있는 중요한 힘 중 하나다.
그것은 대도시를 일시적으로 찾은 사람들이 현지 주민들보다 더 많을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 P414

인상파 화가들은 도시 생활의 병폐를 찾아냈을 뿐 아니라 그 처방전도 제시했다. 도시에 흠뻑 스며들 때 우리는 플라뇌르나 바도가 된다. 도시를 판독하는 사람, 도시 생활의 연극을 지켜보는 사람이 된다. 도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적 자기방어수단은 ‘냉담함‘이나 ‘무감각함‘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도시가 펼쳐질 때의 광경과 소음, 정서와 느낌에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는 날카로운 플라뇌르나 호기심 많은 바도, 목적 없는 거리를 배회하는 건달이나 소극적인 구경꾼, 적극적인 참여자일 수 있다. 우리는 미식가일 수도, 대식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선명한 형체가 없는 익명의 군중 속에 녹아들며 ‘원격성‘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쉽게 눈에 띄는 모임과 하위문화(이웃, 클럽, 술집, 카페, 팀, 교회등)를 선택함으로써 ‘근접성‘을 만끽할 수도 있다. 도시에서 소외와 사교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우리는 마네의 그림에 나오는, 인파속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카유보트가 화폭에 담은, 도시적소외의 비밀을 즐기며 (잠시) 홀로 산책하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는 스스로 선택한 공동체에 흠뻑 젖어 들 수도 있다.
- P430

그동안 도시를 상상 속에서 빚어낸 사람들, 소설, 그림, 사진, 산문 등을 통해 도시의 거리를들의 체험을 전달한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 특히 중산층이나 상류층 남성들이었다. 보들레르는 대도시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밀림이나 평원을 탐험하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썼다. 도시의 사회적 지층과 다채로운 지형을 누비며 도시를 차지하는 것은 남성적 행위였다. 20세기까지, 서양에서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로, 혹은 남자들의 성적 구애에 넘어갈 공산이큰 여자로 치부되었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여자들은 그야말로 거리의 여자들이었고, 관음적 성향의 플라뇌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세기 초반에 사회현상을 조사하려고 무일푼의 여자로 변장해 거리를 누렸던 메리 힉스Mary Higgs 는 "가난한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시선은 직접 느껴봐야 실감이 날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 문제는 지금도 남아 있다. 
- P437

 심리지리학으로 부르는 심층지형학으로 부르든 간에 플라느리를 둘러싼 역사와 문학을 통해 우리는 도시 생활과 도시 관광을 즐기는 방법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얻을수 있다. 훌륭한 건물과 기념물은 마치 도시가 정지해 있고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도시의 진면목은 움직일때 드러난다.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 유기체를 지탱하는 힘줄과 결합조직에서 드러난다. 걸어 다니기는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무엇보다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 비결이다. 걸어 다니기는 현지인이나 방문객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 P441

맨해튼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사무용 건물들은 뉴욕에 꼭 들어맞는 상징이었다. 20세기로 넘어올 무렵에 하늘 위로 솟구치려는 열망은 뉴욕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즉, 뉴욕 사람들은 공간을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지나치게 빠른 성장 속도, 그리고 도시계획을 둘러싼 시 당국의 자유방임적 태도때문에 맨해튼은 인구과밀에 시달리게 되었다. 맨해튼의 부두는 해안가 쪽 땅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평일에는 외부에서 또 200만 명이 뉴욕의 부실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기업 본사, 은행,
법률 사무소, 공장, 노동 착취 작업장, 최신식 백화점, 허름한 공동주택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맨해튼으로 몰려들었다. 그 같은 압력에 짓눌린 뉴욕은 하늘 위로 부풀어 오르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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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이 행한 제도와 정책은 여러모로 특이한 것들이 많습니다. 사유재산 제도를 금지하고 토지를 비한 모든 재화를 공동소유, 공동 분배한다든가,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분리한 인력 통제라든가, 그런 성별 분리 정책 폐지 이후에는 혼인 허가증을 직급에 따라 차등 배분하고 무작위로 짝을 지어준다든가 등등, 천호전우제도라는 타이틀로 시행된 태평천국의 사회제도 구상은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만큼 그 실험성과 파격성으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물론 중국사 5천 년에 걸쳐 않은 봉기 세력이 공산주의적인 이상 사치상을 제시해온 바가 있기에, 그러한 전통의 맥락에서 태평천국의 사회제도를 이해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태평천국의 지배영역 전체에 걸쳐 모든 백성을 저 제도의 틀안에 꽉 쥐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것이 말입니다. 태평천국의 행정망이 그렇게까지 총총하고 치밀하게 짜인 효율적인 물건이 아니었고, 정책일관성을 계속 견지해나갈 만큼 통일된 관료집단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태평천국의 여러 특이한 제도들은 전 기간,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것들이라기보다는 몇몇 지역에서 단발적으로 띄엄띄엄 시행되었던 것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질 향촌의 전통적인 지주 토호 유지 들이 부와 향촌 축제력을 그대로 쥔 채로 태평천국에 협력하는 형태가 맡았다고 합니다. 향촌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의외로 상당한 결속력으로 묶여 있는 운명 공동체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난리를 맞이해 이들 향촌 공동체가 잠시 태평천국의 편에 세금을 보내는 걸로 안위를 도모함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죠.
뭐, 결국 이 태평천국이라는 현상에는 참으로 여러 양상이 섞여 있지 않았겠습니까. 정말 종교적 열정에 휩싸여 이 쓰나미를 주도한 신병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사회개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 서인도 있었을 것이고, 난생 처음으로 남성과 동등한 사랑대접을 받은 여군 병사도 있었을 것이고, 한촉 부흥을 꿈꾸며 홍수전이 제1의 주원장이 되길 소망한 인족주의자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 마을의 안위를 위해 이 괴상한 장발적 무리에게 협력한 마을 유지들도 있었을 것이고, 단지 청군의 학살을 피해 태평천국을 택할 수밖에없었던 난민들도 있었겠죠.
그 모든 것의 결착이 몇천만의 죽음, 후세의 냉소라는 건....
그 먹먹함은...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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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은 어떻던가?
- 글이 아니라 몸과 같았습니다. 스스로 능히 알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랬겠어.
-그랬습니다. 물 뿌려 마당 쓸고 부르면 대답하는 일이 근본이라고 했는데, 그 분명함이 두려웠습니다.
-아, 그랬겠구나. 그토록 쉬운 말이었구나.
-쉬워서 겁이 났습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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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도 배가돌아오지 않고, 다시 날이 저물어도 배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에물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제가끔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오르지 않았고 마을은 어둠 속에서 고요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집에서 눌렸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울음은 이 집 저 집으로 번져갔다. 여인네들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찢었고 늙은이의 울음은 메말라서 버석거렸다. 마을은 밤새 울었고, 놀란 개들이 짖어댔다.
슬픔은 비빌 곳이 없어서 지층처럼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쌓였고, 사람들은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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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 무안 수군진 판옥선은 백리 밖바다를 나가본 적이 없었고 협선들은 바닥이 썩고 노가 부러져서 선창에 묶여 있었다. 무안 포구에다른 관선官船은 없었다. 장삿배 한 척이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곡식을 싣고 나가서 흑산 바다의 여러 섬들을 돌면서 홍어와간재미, 미역을 매집하는 사선私船이었다. 목선은 길이 마흔 자에, 폭 여덟 발짜리 황포 돛 두 대를 세웠다. 배가 낡아서 목재의 나이테에 허연 골이 드러났다. 고물 쪽 갑판은 사개가 뒤틀린 자리에 꺾쇠를 박았고, 짓무른 뱃전에 청태가 끼어 있었다.
- P7

•••저것이 바다로구나, 저 막막한 것이, 저 디딜 수 없는 것이…
•••마음은 본래 빈 것이어서 외물에 반응해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하니, 바다에도 사람의 마음이 포개지는 것인가.
정약전은 삿갓바위를 지나서 선창 쪽으로 걸었다. 저녁 추위에 매 맞은 엉치뼈가 시리고 결렸다. 엉치뼈는 그 주인의 몸뚱이와는 상관없이 홀로 추위를 향해 불거진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통증은 삭신으로 퍼졌다. 매를 맞을 때, 고통은 번개와 같았고 매를 맞고 나면 고통은 늪과 같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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