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 무안 수군진 판옥선은 백리 밖바다를 나가본 적이 없었고 협선들은 바닥이 썩고 노가 부러져서 선창에 묶여 있었다. 무안 포구에다른 관선官船은 없었다. 장삿배 한 척이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곡식을 싣고 나가서 흑산 바다의 여러 섬들을 돌면서 홍어와간재미, 미역을 매집하는 사선私船이었다. 목선은 길이 마흔 자에, 폭 여덟 발짜리 황포 돛 두 대를 세웠다. 배가 낡아서 목재의 나이테에 허연 골이 드러났다. 고물 쪽 갑판은 사개가 뒤틀린 자리에 꺾쇠를 박았고, 짓무른 뱃전에 청태가 끼어 있었다.
- P7

•••저것이 바다로구나, 저 막막한 것이, 저 디딜 수 없는 것이…
•••마음은 본래 빈 것이어서 외물에 반응해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하니, 바다에도 사람의 마음이 포개지는 것인가.
정약전은 삿갓바위를 지나서 선창 쪽으로 걸었다. 저녁 추위에 매 맞은 엉치뼈가 시리고 결렸다. 엉치뼈는 그 주인의 몸뚱이와는 상관없이 홀로 추위를 향해 불거진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통증은 삭신으로 퍼졌다. 매를 맞을 때, 고통은 번개와 같았고 매를 맞고 나면 고통은 늪과 같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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