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이 행한 제도와 정책은 여러모로 특이한 것들이 많습니다. 사유재산 제도를 금지하고 토지를 비한 모든 재화를 공동소유, 공동 분배한다든가,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분리한 인력 통제라든가, 그런 성별 분리 정책 폐지 이후에는 혼인 허가증을 직급에 따라 차등 배분하고 무작위로 짝을 지어준다든가 등등, 천호전우제도라는 타이틀로 시행된 태평천국의 사회제도 구상은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만큼 그 실험성과 파격성으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물론 중국사 5천 년에 걸쳐 않은 봉기 세력이 공산주의적인 이상 사치상을 제시해온 바가 있기에, 그러한 전통의 맥락에서 태평천국의 사회제도를 이해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태평천국의 지배영역 전체에 걸쳐 모든 백성을 저 제도의 틀안에 꽉 쥐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것이 말입니다. 태평천국의 행정망이 그렇게까지 총총하고 치밀하게 짜인 효율적인 물건이 아니었고, 정책일관성을 계속 견지해나갈 만큼 통일된 관료집단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태평천국의 여러 특이한 제도들은 전 기간, 전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것들이라기보다는 몇몇 지역에서 단발적으로 띄엄띄엄 시행되었던 것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질 향촌의 전통적인 지주 토호 유지 들이 부와 향촌 축제력을 그대로 쥔 채로 태평천국에 협력하는 형태가 맡았다고 합니다. 향촌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의외로 상당한 결속력으로 묶여 있는 운명 공동체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난리를 맞이해 이들 향촌 공동체가 잠시 태평천국의 편에 세금을 보내는 걸로 안위를 도모함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죠.
뭐, 결국 이 태평천국이라는 현상에는 참으로 여러 양상이 섞여 있지 않았겠습니까. 정말 종교적 열정에 휩싸여 이 쓰나미를 주도한 신병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사회개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 서인도 있었을 것이고, 난생 처음으로 남성과 동등한 사랑대접을 받은 여군 병사도 있었을 것이고, 한촉 부흥을 꿈꾸며 홍수전이 제1의 주원장이 되길 소망한 인족주의자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 마을의 안위를 위해 이 괴상한 장발적 무리에게 협력한 마을 유지들도 있었을 것이고, 단지 청군의 학살을 피해 태평천국을 택할 수밖에없었던 난민들도 있었겠죠.
그 모든 것의 결착이 몇천만의 죽음, 후세의 냉소라는 건....
그 먹먹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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