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는 어딘가 눈 덮인 산에서 당장이라도 메아리쳐 올 듯 시마무라의 귀에 남아 있었다.
「어딜 가세요?」 하고 고마코는 시마무라가 자동차 운전수를 찾으러 가려는 것을 말리며,
「싫어요. 전 안 돌아가요」문득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육체적인 증오를 느꼈다.
「당신들 세 사람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진 몰라도 그 아들은 지금 죽을지도 몰라. 그래서 만나고 싶어하니까 찾으러 온 게 아냐? 그냥 돌아가. 평생 후회할 거야. 이렇게말하는 사이, 숨이라도 끊어지면 어떡할 거야? 고집 부리지 말고 깨끗이 잊어버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요」
「당신이 도쿄로 팔려갈 때 배웅해 준 오직 한 사람 아냐? 가장 오래된 일기에 맨 먼저 써놓은 그 사람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않는 법이 어디 있나? 그 사람 목숨의 맨 마지막 장에 당신을 쓰러 가는 거야」
「싫어요,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이 말이 차가운 박정함으로도, 너무나 뜨거운 애정으로도 들리기에 시마무라는 망설였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지 마시고 가르쳐주세요. 정말로 그 이야기들은 어디서 오는 거예요?"
하룬이 끈질기게 물으면, 라시드는 신비롭게 눈썹을 꿈틀거리며, 허공에서 마녀가 주술을 쓸 때와 같은 손가락 모양를 만들었습니다.
"드넓은 ‘이야기 바디‘에서 본단다. 따뜻한 이야기 물을 마시면, 보물처럼 오르는 이야기가 나를 가득 채우는 걸 느낄 수 있지."
이 말을 듣고 눈은 오히려 애가 탔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그 또한 물을 어디에 보관세요? 뜨거운 물병에 넣어두었을 텐데, 전 그런 것들 본 적이 없거든요."
"뜨거운 물은 ‘물의 정령‘들이 설치해놓은 눈에 보이지 많는 수도꼭지에서 나온다." 라시드는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걸 마시려면 가입자로 계약해야 해"
"어떻게 하면 가입지가 될 수 있어요?"
"아, 그건 너무 복잡해서 설명할 수가 없구나."  - P356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의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까마득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친다.  - P369

「보다」 안에 담긴 작업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해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변화라면,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희망의 총량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이제는 희망을 품는 것은 고사하고 다들 자기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도 지키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문명보다는 야만을 향해 조금 더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 문명이라면 그 반대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 같다는 거죠.
- P3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극의 주인공들은 항상 너무 늦은 순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곤 하지만, 독자는 독서를 통해 커다란 위험 없이 무지와 오만을 발견하곤 했다. 특히 고전이란, 이탈로 칼비노의 정의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준비해두고 있다. 읽지않았으면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독자의 오만은 오이디푸스의 헛된 자신감을 닮았다. 그리고 그 자만심은 독서를 통해서 비로소 교정된다.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다. 나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 P219

동시에 소설도 우리를 통해 증식을 거듭한다. 그렇게 이야기와 인간이 하나가 되면서 이야기의 우주가 무한히 확장해간다.
한때 나는 인간이 이야기의 숙주라 생각했다. 이야기가 유전자처럼 인간을 탈것으로 삼아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부분을 이야기로부터 배웠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런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인간이 바로 이야기다.
- P247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이다. 아, 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어, 인물들은 생생하고, 사건들은 흥미롭고, 읽는 내내 정말 흥분되더군, 주인공은 지난밤 꿈에도 나왔어. 이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우리가 알아낸 모든 것은 작가가 꾸며낸 허구에 불과하다. 그 모든 요소와 장치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창조한 그 세계에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제공된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는다면 뭔가 얻는 것이 있어야 하지않겠는가?" 아마 플로베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 아까운 시간을 들여 고작 ‘바람피우면 죽는다‘ 같은 교훈이나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시간의 낭비일 겁니다. 분명히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뭔가를 얻는다. 그런데 그 뭔가를 남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미로와 타인이 경험한 미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하다.  - P277

소설은 우리에게 가해자의 내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뉴스에서는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우리가 사를리 에브도/에릭 가너 / 이라크다"라고 외치면서 피해자와의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소설은 우리가 라스콜니코프, 험버트 험버트, 히스클리프라고 말함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독선을 해체한다. 이것은 가해자와 연대하자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혹시 자기 안에도 이런 괴물이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가해자의 내면이 어느 정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한편 독자의 내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나쁜 인물의 이야기를 오래 읽어줄 사람은 없다. ‘복잡하게 좋은‘ 사람의 이야기는 그보다는 흥미롭겠지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의 이야기만은 못할 것이다.
- P3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가 들수록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죽은 자들이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
가. 책을 읽다가, 문득 그들과 있었던 일들에 사로잡힌다. 어차피 살아 있는 이들이라고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죽음과 함께 바로 잊히는 이도 있고, 실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기억하게되는 이도 있다. 대체로 슬픔과 고통, 당혹감을 안겨준 사람이 더 오래 가슴에 남는 것 같다.
- P144

 한열이 자꾸만 소환되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그가 살아남았다면 살아갔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를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에 살게 되었다면 우리를 대신해 죽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기린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런 존재,
조용히 기억하고 기리는 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전태일이겠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세월호의 승객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한열이었다. 내가 그였을 수 있고, 그 또한 나였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종로에 나가면 ‘도나 기를 아십니까‘ 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내 어깨에 앉아 있기 때문에 삶이 피곤한 거라고 단언하는 이들, 코웃음을 지며 그들을 지나쳐가지만, 그들의 말이 비유라면 몇 그른 말도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어깨가 늘 그렇게 무겁다는 것 이 세상에는 먼저 죽은자들의 문이 있다는 것, 한열을 떠올릴 때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 P150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을뿐." 그의 말대로 어떤 미래는 이미 실리콘밸리에 도착해 있다.
거기서는 구글이 제작한 무인자동차가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어떤 미래는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 P163

나 역시 그리스인들이 수천 척의 배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 정벌을 떠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역시 이 두 작품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이런 어법을 이탈로 칼비노에게 배웠다. 「왜 고전을 읽는가」의 서두에서 칼비노는 고전을 사람들이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게 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가 고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의 겸연쩍음을 짚었다면 또 다른 정의는 그것을 사면하고 있다. 그는 고전이 처음 읽을 때조차 다시 읽는다는 느낌을주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처음 읽는데도 어쩐지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 P203

이순신을 소재로 한 수많은 서사물, 김훈의 『칼의 노래」라든가 영화 <명량>을 통해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잘 알려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 때에는 누구든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현대의 작가라면 적어도 이순신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연대기순으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명량해전이 임박한 시점이라든가,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통제사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극적인 포인트에서부터 시작해 간혹 과거의 일화들을 회상해가며 결정적 장면, 즉 그의 전사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이런 기법들을 터득하고 있었으며,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점이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호메로스가 이천팔백여 년 전에 이미 대단히 ‘현대적인‘ 작품을 쓰고 있었다고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오히려 현대의 작가들이 쓰고 있는 작품들이, 소설이든 영화든 TV 드라마든 간에, 고대적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이야기 방식에서 그렇게 멀리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지 몇 백 년이 지난 후 쓰인 다른 작품을 보면 이런 심증이 좀 더 굳어진다.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