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풀 개념은 이제야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성적으로 번식하는 개체군, 가령 까마득히 먼 남대서양에 고립된 어센션 섬의 쥐들이라면, 섬 안의 모든 유전자가 끝없이 섞일 것이다. 그래도 각 세대가 전 세대보다 더 적은 변이를 보이는 내재적 경향성은 없을 것이고, 갈수록 지루한 중간 형태들이 되어가는 경향성도 없을 것이다. 유전자들은 말짱하게 보존된다. 세대가 지남에 따라 이 개체의 몸에서 저 개체의 몸으로 옮겨갈 뿐이다. 결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결코 서로 오염시키지 않는다. 어느 한 시점에 모든 유전자는 개체들의 몸 안에 담겨 있거나, 아니면 정자를 통해 새로운 개체의 몸으로 이동하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세대를 아울러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섬의 모든 쥐 유전자는 잘 섞인 한 벌의 카드처럼(물감처럼 혼합되는게 아닌) 하나의 유전자풀을 이룬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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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는 감추지 않거나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의 뜻을 나타낸다. 감추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꾸미지 않는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덧붙이거나 부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정직은 거짓 없음에 더해 규범성을 함의한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따라야 하고 사회 윤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비로소 정직하다 할 수 있다. 공직자로서 부정한 청탁이나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할 만하고.. - P205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거나 떳떳하거나 기품을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런 심리가 충족되지 않거나 훼손되었을 때 수치를 느끼게 된다. 이렇듯 수치는 명예나 위신, 체면, 품위 등이 손상되어 남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치욕이나 굴욕도 남들 앞에서 떳떳지 못한 느낌을 가지는 상태라는 점에서는 수치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치욕과 굴욕은 수치에 비해 욕됨, 모멸감의 의미가 더 추가되는 어감이 있다. - P213

두 단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질투‘가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로 인하여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기분을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시기‘는 상대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이 거슬리거나 아니꼬워 상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자는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가능성이 있어 자기 성찰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후자는 오로지 증오심에 매몰되어 자기 성찰에 이를 가능성이 희박하다.  - P226

‘신문訊問‘은 법원이나 수사 기관 등이 어떤 사건에 관하여 피의자나 피해자, 당사자, 증인 등에게 말로 물어서 조사하는 일을 가리킨다. 
‘심문審問‘은 법원에서 사건 당사자나 이해관계저에게 개별적인 진술을 할 기회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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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속은 불쑥불쑥 뒤어나오는 온갖 종류의 영광으로 불타올랐다. 라파스를 비추는 일몰, 인부들이 죽은 비둘기와 똥들을 다 파내고 난 멕시코 대성당 유적의 그림자. 그의 아내 허벅지 사이에 겹겹이 드리워진 무한한 그림자, 코르테스 바다에서 본 고래, 고래가 물속에서 솟아올라 산산이 부서지는 바닷물 가운데 떠 있는 모습은 마치 부서진 유리 스커트를 입은 듯 했다. 마치 공기가 그 무지막지한 덩치를 끌어올린 것만 같았다. 고래는 옆을 지나는 자그마하고 하얀 앵무새 같은 물고기들을 둥근배 아래로 날리면서 다시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페를라는 비를 싫어했지만, 빅 엔젤은 이게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새 삶이 오고 있군, 삶은 계속되고 있어. 그는 하느님에게 눈썹을 찡긋해보였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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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는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다.
이것은 진화가 펼쳐낸 지상 최대의 쇼이다.
- P5

우리는 범죄가 저질러진 뒤에 현장에 도착한 탐정과 같다. 범인의 행동은 과거가 되어 사라졌다. 탐정이 실제 범행을 제 눈으로 목격할 가능성은 없다. 더구나 고릴라 실험이나 비슷한 다른 실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눈을 불신하라는 것을 배웠다. 탐정이 실제로갖고 있는 것은 남은 흔적들뿐이지만, 그것들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발자국이 있고, 지문이 있고(요즘은 DNA 지문도 있다), 혈흔, 편지, 일기장 등이 있다. 우리도 세상의 현재 모습을 잘 살피면, 이러이러한 역사가 아니라 저러저러한 역사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구나 하고 말할 수 있다.
- P32

우리가 한 세대 사이에서 토끼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어느 시대든, 엄마들과 딸들 사이의 변이보다는 현재 개체군 내부의 변이가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엄마들과 딸들을 비교하거나 할머니들과 손녀들을 비교함으로써 ‘시침‘ 의움직임을 판별할라치면, 설령 사소한 차이들이 있더라도 같은 초원에서 뛰노는 친구나 친척 토끼들과의 차이에 파묻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 P43

둘째, 우리는 한 현생 동물을 다른 현생 동물과 잇는 일련의 단계를 확인했다는 점을 명심하자. 토끼를 표범으로 진화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머리핀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역 진화고, 거기서 표범까지내려오는 과정은 진화라고 말할 순 있다. 현생 종이 다른 현생 종으로 진화하진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현생 종들은 선조를 공유하는 친척들이다. "정말로 인간이 침팬지에서 진화했다면, 왜 아직도 침팬지들이 돌아다니는 거죠?" 심란할 정도로 흔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이다.
셋째, 머리핀 굴곡에서 미래로 나아갈 때, 우리는 임의로 표범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진화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경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기에 또 지적하자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다른 종착점으로 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다른 쪽을 다 무시한 것이다. 머리핀 굴곡의 동물은 토끼와 표범만의 공통선조가 아니라, 다른 많은 현생 포유류의 선조다.
넷째 요점은 앞서 이미 강조한 것이다. 머리핀 양끝(가령 토끼와 표범)의 차이가 아무리 크고 넓어도, 양자를 잇는 연결고리들의 각 단계는 아주아주 작다. 각 개체는 연쇄사슬에서 제 양옆에 있는 개체들과 몹시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딸은 비슷할 수밖에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 역시 앞서 언급했지만, 그 개체는 자신을둘러싼 개체군의 전형적인 구성원들보다 오히려 연쇄사슬 양옆의개체들을 더 닮았을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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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주로 일정한 방식이나 틀에 따라 이루어지는 생각, 또는 어떤 내용의 생각을 가리킨다.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말은 사물 현상을 선과 악, 흑과 백, 옳고 그름과 같이 두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는 방식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고, 사고가 인습에 속박되어 있다는 말은 생각의 내용이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고루하거나 편협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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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사물에 대해 본질, 의미, 가치 등을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고가 어떤 방식이나 틀에 의한 생각이라면, 사유는 근원적 탐구로서의 생각이라고할 수 있다. ‘인간이 사유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할 때의 사유는 근원적 탐구로서의 생각을 뜻한다. 이 경우 사유의 자리에 사고나 사색을 대신 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썩 자연스럽다고 하기도 어렵다.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사유한다고 했을때에도 ‘사유하다‘는 근원에 대해 깊이 생각함을 나타낸다.
- P176

사사師事는 스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만, 사숙私淑은 마음속으로만 스승으로 섬길 뿐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는 것이다. 곧 스승에게 사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사숙을받을 수는 없다. 사사는 대체로 예술이나 기예 등을 익힐때 택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도제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많다. 사숙은 스승으로 섬길 이를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 어려워 그의 작품이나 책, 행적 등을 통해 사상이나 지향하는 바를 본받는 일을 가리킨다.
- P179

이렇듯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무엇보다 진실에는 사실에서 볼 수 없는 긴장과 두려움이 서려있다. 17세기의 유럽에서 지동설을 진실이라 믿고 주장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또한 어떤 의문사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은폐나 왜곡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긴장감이 묻어있다. 법정에서 "증인은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는 증인에게 단순한 사실의 진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른 진실된 고백을 촉구하는 것이다.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면, 진실은 ‘참되고 바른 것,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실이 실제와의 부합에 초점이 있다면, 진실은 정직성이나 올바름에 초점이 있다.
- P182

‘공상空想‘과 ‘상상想像‘은 잡념과 사색의 중간 지대에서 또 다른 기능을 한다. 그것은 잡념처럼 자유롭지만 어지럽지 않고, 사색처럼 골똘하지만 냉철하지 않다. 오직 직관적이고감성적이다. 사색과 사유가 지적 영역을 넓혀 왔다면 상상과 공상은 창조적 영역을 확장해 왔다. 문명의 찬란한 광휘는 이 둘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일구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과 공상은 서로 어떻게 같고 다른가?
‘공상‘은 현실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상상‘과 같지만,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상상‘과 구별된다.
- P185

‘세상世上‘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드넓은 곳을 추상적 · 주관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면, ‘세계世界‘는 지구 전체의 공간을 명시적·객관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곧 세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나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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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세계는 사물의 한정된 영역, 또는 그 영역에 있는 사물의 성질을 가리킬 수 있으나 세상은 그럴 수없다.
예) 직업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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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상은 부사적으로도 쓰일 수 있으나 세계는 그럴 수 없다.
예) 세상 편하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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