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주로 일정한 방식이나 틀에 따라 이루어지는 생각, 또는 어떤 내용의 생각을 가리킨다.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말은 사물 현상을 선과 악, 흑과 백, 옳고 그름과 같이 두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는 방식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고, 사고가 인습에 속박되어 있다는 말은 생각의 내용이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고루하거나 편협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 ‘사유‘는 사물에 대해 본질, 의미, 가치 등을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고가 어떤 방식이나 틀에 의한 생각이라면, 사유는 근원적 탐구로서의 생각이라고할 수 있다. ‘인간이 사유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할 때의 사유는 근원적 탐구로서의 생각을 뜻한다. 이 경우 사유의 자리에 사고나 사색을 대신 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썩 자연스럽다고 하기도 어렵다.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사유한다고 했을때에도 ‘사유하다‘는 근원에 대해 깊이 생각함을 나타낸다. - P176
사사師事는 스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만, 사숙私淑은 마음속으로만 스승으로 섬길 뿐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는 것이다. 곧 스승에게 사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사숙을받을 수는 없다. 사사는 대체로 예술이나 기예 등을 익힐때 택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도제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많다. 사숙은 스승으로 섬길 이를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 어려워 그의 작품이나 책, 행적 등을 통해 사상이나 지향하는 바를 본받는 일을 가리킨다. - P179
이렇듯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무엇보다 진실에는 사실에서 볼 수 없는 긴장과 두려움이 서려있다. 17세기의 유럽에서 지동설을 진실이라 믿고 주장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또한 어떤 의문사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은폐나 왜곡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긴장감이 묻어있다. 법정에서 "증인은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는 증인에게 단순한 사실의 진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른 진실된 고백을 촉구하는 것이다.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면, 진실은 ‘참되고 바른 것,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실이 실제와의 부합에 초점이 있다면, 진실은 정직성이나 올바름에 초점이 있다. - P182
‘공상空想‘과 ‘상상想像‘은 잡념과 사색의 중간 지대에서 또 다른 기능을 한다. 그것은 잡념처럼 자유롭지만 어지럽지 않고, 사색처럼 골똘하지만 냉철하지 않다. 오직 직관적이고감성적이다. 사색과 사유가 지적 영역을 넓혀 왔다면 상상과 공상은 창조적 영역을 확장해 왔다. 문명의 찬란한 광휘는 이 둘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일구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과 공상은 서로 어떻게 같고 다른가? ‘공상‘은 현실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상상‘과 같지만,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상상‘과 구별된다. - P185
‘세상世上‘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드넓은 곳을 추상적 · 주관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면, ‘세계世界‘는 지구 전체의 공간을 명시적·객관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곧 세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나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 그런가 하면 세계는 사물의 한정된 영역, 또는 그 영역에 있는 사물의 성질을 가리킬 수 있으나 세상은 그럴 수없다. 예) 직업의 세계 •••••• 한편 세상은 부사적으로도 쓰일 수 있으나 세계는 그럴 수 없다. 예) 세상 편하다 - P1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