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켈은 깡마른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줄어든 것처럼, 그도 줄어들어 있었다. 한때 그토록 가까웠던 누군가가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를 껴안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 냉정하고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과 대조적으로 이상하게 부드러운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전화기너머로가 아니라 직접 듣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예전처럼 말하는 동안 강도가 변하는 광채를 내뿜는 그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래도 라켈은 그와의 만남이 끝나서, 그 만남을 뒤로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남자가 그녀와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의 지저분한 현실이 그들의 삶에 개입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기뻤다.
지금이 더 좋았다. 훨씬 더 좋았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그가 올 것이다. 그는 해리와 달리 제시간에 오는 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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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늘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정보가 꽤 풍성해졌다. 분자유전학적 증거를 볼 때, 고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하마고, 다음은 돼지, 다음은 반추동물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역시 분자적 증거를 볼 때 하마는 다른 우제류(돼지나 반추동물들) 보다는 고래와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근연관계와 외형적 유사성이 때로 합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또 한 사례다. 어류 중에도 다른 어류보다 인간과 더 가까운 녀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인간의 계통은 물을 떠나 땅에 오름으로써 진화의 급물살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간 반면에, 우리가 뒤에 남겨둔 친척인 폐어와 실러캔스는 계속 물에만 머물러 있음으로써 먼 선조를 닮은 모습을 지켜왔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같은 현상이되, 상황이 역전되었다. 하마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아직 땅에 발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먼 친척인 육상 반추동물들과 닮은 모습을 유지했다. 반면에 고래는 바다로 떠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분자생물학자들 말고는 생물학자들조차 고래와 하마의 근연성을 놓쳤던 것이다.  - P233

머나먼 선조어류들이 원래 그 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처럼, 고래의 선조들이 바다로 돌아간 것도 대역사였을 것이다. 공중으로 이륙하거나 풍선을띄우는 것과 좀 비슷하지 않았을까? 중력의 무거운 짐을 벗고 육지에 내렸던 닻을 잘라 둥둥 뜨게 되었으니 말이다.
- P234

1.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는 원래 땅에 살았던 동물들이 남긴 후대의 생존자인지도 모른다. 그 조상 동물들이 이들에 앞서 일부를 바다로 보냈고, 그리하여 오돈토켈리스 등의선조가 되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껍질은 일찍이 땅에서 진화했고, 오돈토켈리스는 물로 간 뒤에 등딱지를 잃고 배딱지만남은 것이다.
2. 중국인 저자들이 제시한 대로, 껍질이 물에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배를 보호하는 배딱지가 먼저 진화하고, 등딱지는 나중에 진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반의 껍질을 지니고 물에서산 오돈토켈리스보다 후대에 땅에서 산 프로가노켈리스와 팔 레오케르시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들은 독자적으로 껍질을 진화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3. 즉,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가 더 일찍 물에서 뭍으로 돌아간 사례라는 가능성이다. 깜짝 놀랄 만큼 흥분되는 생각 아닌가?

거북들이 진화 역사에서 땅으로의 진출 과정을 두 번이나 밟았다는것은 이제 충분한 증거로 거의 확인된 사실이다. 처음에 땅에 살았던 거북들이 그들의 어류 선조가 살았던 물 환경으로 돌아가서 바다거북이 되었다. 그 바다거북들이 다시 땅으로 올라와서 새로운 종류의 땅거북들로 재탄생했다. 그것이 땅거북과다. 이것은 사실이다. 혹은 거의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 왔다갔다 하는 과정이두 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대 거북을낳은 과정이 아니라, 훨씬 이전 트라이아스기에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를 낳은 과정이 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P246

루시와 그 친족들을 연구한 결론은 이렇다. 그들의 뇌는 침팬지만한 크기였지만, 그들은 침팬지와 달리 우리처럼 똑바로 서서 뒷다리로 걸었다. 앞에서 언급한 세 시나리오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셈이다. ‘루시들‘은 직립보행하는 침팬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족보행했다는 사실은 메리 리키(Mairy Leakey)가 화산재 화석에서 발견해낸, 사무치게 감동적인 발자국 증거를 통해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그 발자국 화석은 더 남쪽인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되었고, 루시나 AL 444-2보다 좀 더 오래되어 약 360만 년 전의 것이었다. 보통 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나란히 걸어간 자국이라고 해석된다(손을 맞잡고?).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360만 년 전 지구에는 직립보행하는 유인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뇌는 침팬지만 하지만 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두 발로 걷는 존재들이 있었던 것이다.
- P259

문제는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과 ‘최초의호모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사례에서 최초의 호모는 호모 하빌리스다. 그렇다면 최초의 호모 하빌리스 표본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부모는 오스트랄로피테쿠쿠스였다. 자식이 부모와 다른 속에 속한다는 말인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이 잘못된 게 아니라, 모든 생물을 이름표 달린 분류체계에 밀어넣으려고 하는 인간의 고집이 잘못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최초의 호모 하빌리스 표본이라는 생물 따위는 없었다. 어떤 종이든, 어떤 속이든, 어떤 목이든, 어떤 강이든, 어떤 문이든 최초의 표본이라는 것은 없었다. 세상에 살았던 모든 생물은 (당시에 동물학자기 돌아다니면서 분류를 했다면) 제 부모자식과 정확하게 같은 종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에 와서 ‘돌아본다‘는 시점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의 고리를 잃어버렸다는 유익한 사실 덕분에 (그렇다. 이런 역설적인 의미에서는 유익하다), 우리가 이산적인 종 · 속과 · 목 ·강 · 문으로 분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 P268

우리가 후대에 과거를 돌아보기 때문에, 그리고 법적인 용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 이유 때문에, 현대 분류학자들은 화석 하나하나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니 호모니 꼬리표를 매달려고 고집하는것이다. 박물관 안내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 호모하빌리스의 중간쯤‘ 이라고 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역사 부인주의자들은 이런 명명상의 관행을 현실에서 중간 형태들이 없다는 증거로 해석한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투표권이있는 성인(18세 이상) 아니면 투표권이 없는 아이(18세 미만) 둘 중 하나니까, 세상에 청소년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법적으로 투표 연령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근거해 칭소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는 꼴이다.
- P279

좀 더 건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성체와 유아의 머리 모양이 극명하게 다른것을 볼 때, 주둥이 돌출 같은 특징이 사람을 더 닮는 방향으로 (혹은 덜 닮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극히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침팬지의 발생 과정은 사람을 닮은 머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모든 유년기 침팬지에 대해서 실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다양한 중간 형태들을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을 때, 그러면서 줄곧 주둥이 돌출부를 줄여왔을 때, 어쩌면 유년기의 특징들을 성년기까지 존속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을가능성이 충분하다 (2장에서 언급한 유형성숙이다). 진화적 변화의 상당부분은 특정 신체 부위의 상대적 성장 속도를 바꿈으로써 이루어진것이다. 이것을 의시성(서로 다른 시기의) 성장이라고 한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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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경관을 소개하겠다." 하겐 경정이 발표했다. 이쪽은 카트리네 브라트 경관이다."
첫 줄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자발적으로, 그러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인 여자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은 얼굴 양옆으로 맥없이 늘어졌고, 창백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데 이골이 나서 더는 그것이 싫지도, 좋지도 않게 된 매력적인 여자들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푸른색 치마 정장을 입었지만, 스커트 밑으로 보이는 두꺼운 검은색 스타킹과 실용적인 겨울 부츠는 그녀가 자신의 몸매를 이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지워주었다. 그녀는 마치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보려고 일어났다는 듯 모인이들을 눈으로 훑었다. 해리는 그녀가 출근 첫날에 대비해 옷차림이며 이 짧은 등장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했을 거라 짐작했다.
- P32

"일을 많이 하는 게 싫은 게 아냐, 해리, 당신은 일에 ‘집착‘ 했어, 당신이 곧 일이었지. 게다가 당신의 원동력은 사랑이나 책임감 같은 게 아니었어. 개인적인 야망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분노였지. 그리고 복수심, 그건 옳지 않아, 해리. 그런 식은 곤란해. 그 결과가 어땠는지 당신도 알잖아."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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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수 이야기는 이쯤 하자. 반점 크기에 대한 이야기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강하든 약하든 포식자가 존재할 때, 굵은 자갈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반점들이 생겼고, 잔 자갈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점들이 선호되었다. 반점 크기가 돌멩이 크기를 모방한 것이라고 쉽게 해석할 수 있다. 더 환상적인 점은, 포식자가 전혀 없는 두 연못에서는 정확하게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잔 자갈 연못에서는 반점이 큰 수컷 거피들이 선호되었고, 굵은 자갈 연못에서는 작은 반점이 선호되었다. 거피들이 배경에 깔린 돌을 모방하지않을 때에는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쪽으로 변한 것이다. 그것은 암컷을 끌기에 좋은 방법이다. 깔끔하지 않은가!
- P190

진화적으로 논쟁되는 문제들 중에는 동물들이 사려 깊지 못하게시리 서로 다른 속도로 진화하기 때문에, 심지어 전혀 진화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많다. 진화적 변화의 정도가 흘러간 시간에반드시 정비례해야 한다는 자연법칙이 있다면, 생물들 간의 닮은 정도는 근연관계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조류 같은 진화적 달리기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없다. 새들은 파충류였던 옛 기원을 중생대의 먼지 속에 남겨둔 채빠르게 진화했다. 게다가 진화 계통수에서 조류의 옆에 있던 이웃들이 우연히도 하늘에서 날아든 재앙 때문에 모두 죽어버렸으므로, 우리는 조류를 더욱 독특한 형태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반대쪽 극단에는 링굴라 같은 ‘살아 있는 화석‘들이 있다. 이들은 변한 데가너무 없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먼 선조들과 교배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짝짓기용 타임머신을 발명해서 데이트를 주선한다면 말이다.
살아 있는 화석으로 유명한 것이 링굴라만은 아니다. ‘투구게‘ 라고 불리는 리물루스(Limulais)나 실러캔스도 그런 사례들인데, 이들을 다음 장에서 만나볼 것이다.
- P194

편형동물이 물에서나 뭍에서나 흔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마 매우 오랜 기간 흔하게 존재해왔을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화석 역사를 기대해볼 법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록은 거의 하나도 없다. 모호한 한 줌의 흔적 화석들 말고는 여태까지 편형동물의 화석은 한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편형동물은 "맨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발전된 진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벌레의 기준에서 발전된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마치 아무런 진화 역사도 없이 그곳에 그냥 심어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경우에 맨 처음 등장하는 순간"은 캄브리아기가 아니라 현재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적어도 창조론자들에게무슨 뜻이어야 하는지 알겠는가? 창조론자들은 편형동물이 다른 모든 생물처럼 창세기〉의 일주일 안에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편형동물에게 주어진 화석화 시간도 다른 동물들과 똑같았을 것이다. 뼈나 껍질이 있는 동물들이 무더기로 묻혀 화석이 되는 기나긴세월 동안, 편형동물들도 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서도 자기들의자취를 전혀 바위에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만약에 그렇다면, 실제로 화석화한 동물들의 기록에 존재하는 빈틈이 무슨 대수겠는가? 편형동물의 과거 역사가 통째로 하나의 커다란 빈틈인 마당에? 창조론자들이 스스로 내놓은 설명에 따르면,
편형동물도 똑같은 시간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대부분의 동물이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등장했다고 주장하고, 캄브리아기 폭발 이전의빈틈이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정확하게 같은 ‘논리‘를 적용해서 편형동물은 어제 갑자기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편형동물이 다른 동물들과 함께 그 창조적인 일주일 동안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자들의 신념에 위배된다. 양쪽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논증을 통해서 우리는 화석기록상의 선캄브리아기 빈틈이 진화의 증거를 약화시킨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일거에 철저히 무너뜨렸다.
- P203

인간 - 유인원 화석의 첫 후보자가 가짜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역사 부인주의자들에게는 가짜가 아닌 수많은 화석도 무시할 핑계가생겼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 문제를 목청 높여 지적한다. 그러나역사 부인주의자들이 실제 사실들을 살펴본다면, 인간과 침팬지의공통선조에서 현생 인류까지 이어주는 중간 단계 화석들이 이제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분기점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쪽만 그렇다. 공통선조(침팬지도 인간도 아니었다)에서 현생 침팬지까지 이어지는 화석들은 흥미롭게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침팬지가 숲에서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숲은 화석화에 알맞은 조건이 되지 못한다. ‘잃어버린 고리‘ 라는 것이 정말로있더라도, 그것을 불평할 권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에게 있는 것이다. - P206

"왜 화석기록에 개구리원숭이가 없나요?" 그야 물론 원숭이는 개구리에서 유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있는 진화론자치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다. 혹은 오리가 악어에서 유래했다거나 그 거꾸로라거나 하는 말을 한 사람도 없다. 원숭이와 개구리가 선조를 공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공통선조는 개구리처럼 생기지도, 원숭이처럼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도롱뇽을 살짝 닮았을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적절한 연대에서 도롱뇽을 닮은 화석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요점이 아니다. 수백만 가지의 동물종 각각이 다른모든 동물종과 선조를 공유한다. 진화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왜곡된 나머지, 개구리원숭이나 악어오리를 기대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개하마나 코끼리침팬지 따위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냉소해야 하리라. 사실 포유류로만 국한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캥거루바퀴벌레나 문어표범이라고 해서 안 될 게 뭔가? 이런 식으로 바뀔 수 있는 동물 이름은 무한히 많다. 물론 하마는 개에서 유래하지 않았고, 거꾸로도 아니다. 침팬지는 코끼리에서 유래하지 않았고, 거꾸로도 아니다. 원숭이가 개구리에서 유래하지 않았듯이, 어떤 현생 종도 다른 현생 중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극히 최근에 갈라진 종들은 예외다),

- P208

동물계에 위계가 있다는 이 개념은 진화라는 발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배경을 엄청나게 흐려놓았다. ‘하등‘ 동물이 ‘고등‘ 동물로 진화한다는 가정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사다리 위쪽으로든 아래쪽으로든 연결고리들을 볼 수 있어야한다. 발판이 수두룩하게 빠진 사다리는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고리‘를 언급하는 회의론의 이면에는 발판이 빠진 사다리 이미지가 숨어 있다. 그러나 실은 사다리 신화라는 것 자체가 몹시 잘못되고 반진화적인 개념이다.
- P213

게다가 동물의 몸은 모든 부분이 다 같은 속도로 진화하지 않는다. 허리 아래로는 원시적이지만 허리 위로는 고등하게 진화할 수도있다. 좀 더 진지한 예를 들면, 어떤 동물은 신경계가 보다 원시적이지만 다른 동물은 골격계가 보다 원시적일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원시적‘ 이라는 단어는 ‘선조를 닮았다‘는 뜻일 뿐 ‘단순하다(덜 복잡하다)‘는 뜻은 아님을 명심하자. 말의 발은 사람의 발보다 단순하지만(말은 발가락이 다섯 개가 아니라 한 개다), 사람의 발이 더 원시적이다(우리와 말의 공통선조는 우리처럼 발가락이 다섯 개였으므로, 말이 우리보다 더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 P215

그런데 우리는 왜 새들을 파충류에서 떼어낼 생각을 했을까? 진화적으로 조류가 파충류의 한 가지일 뿐인데, 왜 새들에게 ‘강‘의 명예를 안겨줘도 좋다고 판단했을까? 생명의 계통수에서 조류의 가까운 이웃이었던 녀석들, 조류의 바로 옆을 둘러쌌던 파충류들이 우연히도 멸종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종류에서는 새들만 남아서 행진해왔기 때문이다. 새의 가까운 친척들은 모두 오래전에 멸종한 공룡들이었다. 만약 공룡 계통이 폭넓게 생존해왔다면, 새들이 두드러져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이 척추동물문에서 별개의 강으로 격상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는 어디에 있나요?" 같은 질문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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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은 이미 답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겹치기다!
100미터짜리 길고 강한 밧줄이라도 그 속 섬유들의 길이는 총장의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륜연대학에서 겹치기 원리를 응용하려면, 우선 나이가 알려져 있는 현대의 나무에서 참조 지문 패턴을 읽는다. 그리고 현대 나무의 오래된 고리들과 같은 지문을 오래된 나무의 젊은 고리들에서 찾는다. 그런 다음 그 오래된 나무의 오래된 고리들 지문과 같은 패턴을 더 오래된 나무의 젊은 고리들에서 찾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꼬리를 물고 올라가면, 이론적으로는 화석림을 사용해 수백만 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고고학적 시간 규모인 수천 년 수준에서만 연륜연대학이 사용된다.
- P128

정확한 연도까지 제시해주는 체계로 나이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빙호점토층은 빙하호 바닥에 깔린 퇴적층인데, 이 또한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계절마다 해마다 달라진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같은 원리가 적용되고, 정확도도 같다. 산호초 또한 나무처럼 해에 따른 성장고리를 드러내는데, 환상적이게도 이것으로 고대에 지진이 일어났던 연대까지 탐지할 수 있다.  - P129

우리는 이제 전체 문제의 요점에 바싹 다가왔다. 불안정한 방사능동위원소들은 저마다 독특한 속도로 붕괴하며, 그 속도는 정확하게알려져 있다. 다른 원소들에 비해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붕괴하는윈소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붕괴는 지수적이다. 즉, 방사능 동위원소 100그램에서 시작한다면, 주어진 시간 동안 그중 정해진 양이, 가령 10그램이 다른 원소로 변하는 게 아니라, 남은 양 중에서 정해진 비율이 변한다는 뜻이다.
붕괴율을 재는 잣대로는 ‘반감기‘가 선호된다. 방사능 동위원소의 반감기는 원소들 중 절반이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원소가 붕괴했는가에 상관없이 반감기는 늘일정하다는 것. 이것이 지수적 붕괴의 참뜻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런 연속적 반감에서는 원소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시점을짚어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가령 반감기 열 번)이 흐른뒤에는, 남은 원자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다없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탄소-14의 반감기는 5천~6천 년이다. 따라서 약 5만~6만 년보다 오래된 표본에 대해서는탄소 연대 측정이 소용이 없다. 그때는 더 느린 시계를 찾아야 한다.
루비듐-87의 반감기는 490억 년이다. 페르뮴-244는 3.3 밀리초다. 이처럼 너무나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은, 굉장히 넓은 범위의 시계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탄소-15의 반감기는 2.4초라서 진화적 질문에 답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탄소-14의 반감기는5,730년이므로 고고학적 시간을 재기에 딱 알맞다.  - P135

예를 들어, 포유류 등 특정 종류의 화석은 반드시 특정 시점 이후에만 등장하고,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대한 대답은 모두 그렇다다. 언제나 그렇다! 예외는 없다. 이것은 진화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코 필연적인 사실이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층 판별 기법이나 시계열 파악 기법으로부터 꼭 따라나와야 하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데본기 암석이나 그보다 더 오래된 지층에서는 막연하게라도 포유류라고 볼 수 있는 화석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후기 암석보다 데본기 암석에서 통계적으로 드물다는 말이 아니다. 특정 시점 이전의 암석에서는 말 그대로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데본기에서 더 깊이파내려가 실루리아기를 지나고 더 오래된 오르도비스기까지 지났더니, 캄브리아기 (가장 오래된 지층이다)에서 갑자기 포유류들이 콸콸 쏟아져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실제로 발견하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논증을 순환논증으로 비난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언제든 누군가 캄브리아기 암석에서 포유류를 한 마리만 캐내면, 진화 이론은 당장에물거품이 될 것이다. 캐내기만 한다면! 달리 말해, 진화는 반증 가능한 이론이고, 따라서 과학적인 이론이다. - P142

그렇다면 탄소시계는 언제 영점화될까?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물이 죽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생물은 먹이사슬에서 잘려나가고, 식물을 통해 대기로부터 신선한 탄소-14를 받아들이는 일도 더는 불가능하다. 이후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시체는 장작이든 천조각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 속의 탄소-14들이 착실히 붕괴해 질소-14 가된다. 따라서 표본 속의 탄소-12에 대한 탄소-14의 비율이 점차 떨어져, 생물이 살았을 때의 값인 표준 대기 비율에서 점차 멀어진다. 결국에는 온통 탄소-12만 남는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탄소-14함량이 너무 줄어 측정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은 생물이 죽어 먹이사슬에서 벗어나고 대기와의 상호교환이 불가능해진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을 계산하는 데 쓰일 수 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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