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지오크를 만나서 소송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그에게 이 말을 꺼내기가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집행연기를 받아내고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했다면, 난 옳은 결정과 도의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짐은 내가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짐은 게리 몫이었다. 만일 그가 자살을 선택했다면, 난 내 선택에만 책임이 있을 뿐 그의 선택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게리의 생존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난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598

일순간, 희망은 산산이 흩어지고, 그다음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두려움의 장면을 낱낱이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늘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 마지막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오, 하느님. 게리, 너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가버렸니?" - P606

어머니는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있고 싶었던 때였지만,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실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이 무척 좋아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가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그의 상처를 헤아릴 수 있다는 걸 전해주려는 마음이었다. 그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을모습을 내보일 수 있었다. 난 울고 말았다. 존 레논의 죽음을 위해, 그리고 내 과거의 소중한 한 부분이 유린당한 것을 애도하면서. - P621

나도 너처럼, 그랬어야 했어. 멀리 가버렸어야 했던 거야. 그랬다면 어머니는 어쩌면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했을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을 테지.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텔레비전을 켜는 법도 알게 됐을지도 몰라. 어머니가 지닌 두려움들을 극복하는 법도 터득했을 테고. 여러가지 면에서 어머니를 그렇게 쓰러뜨린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어. 그 어처구니없는 수많은 두려움들이 어머니의 몸까지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지. 어머니는 모든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어.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물도 먼지도, 그리고 약과 병, 모두 다. - P626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어떤 때는 저쪽 편에서, 어디서 험한 일을 하거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자거나할 때,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동생이 있다. 그 애는 글도 쓰고, 유명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있어.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도 있겠구나. 그럼 난 큰아빠가 된거구나.‘ 그리고 그 아기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네가 어렸을 때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아기일까, 궁금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때로는 힘이 됐어.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난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었지. 그런데 네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했어. 그리고 말하자면 널 결코 방해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지. 널 찾아가서, 날 인정하도록 하고 널 당황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야. 난 네가 우리의 과거로부터 무사히 빠져나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로 인해 그 과거를 되새기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야. 내 생각은 이랬어. ‘우리 중에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이제 무사하다. 그가 해낸 거야. 난 그를 그렇게 놔두고, 그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도록 놔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를 그렇게 놔주는 건 기쁜 일이야. 그가 우리 가족의 굴레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 P667

그때 잠에서 깬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난 정말로 울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흐느낀다. 실제로 죽은 아이는 없는데, 울음을 그칠수가 없다. 너무 심한 상실감에 빠져서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30분이다. 주방으로 가서 위스키를 한 잔 따른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어둠 속에 앉는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다. 위스키를 다 마신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몹시싫어하는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베개로 내 얼굴을 덮는다.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없어."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 P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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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고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은 지 몇 주일이 흘렀다. 나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깊은 고통과 수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형이 우리 가족들에게 앞으로 평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할 엄청난 공포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차마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맥스 젠슨과 벤부슈널, 두 사람의 가족들에게 저지른 죄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든 이 끔찍한 현실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그건 게리가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유타의 감옥에서 공허하게 보내는 것으로 끝나야 했다.
그리고 난 내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게리 이야기를 했다. 그들에게 살인자의 동생과 친구로 지낼지, 절교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로 만나는 편집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이 무서운 진실을 어느 구석엔가 파묻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 속으로 침투해 아직 버리지 못한 내 꿈을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 P564

이 나라 안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수백만은 될 거야. 그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게리와 같은 선택을 했겠지. 그렇게 죽이고 또 죽으면서 말이야. 감옥에서 보낸 그 잔인한 세월들이 그들을 그렇게 바꿔놓은 거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지.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이 그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로 보이기 시작하지. 그건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구이기도 해. 그들 중에는, 다른 모든 것들은 두려워도 죽음만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 그러면 그들은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말아. 그들은 가둬버릴 수도 없어.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유이기 때문이야. 또 그들은 죽일 수도 없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니까.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야. 그런 사람들 수천 명이, 바로 게리 같은 사람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있어. 문제를안고 있는 아이, 그 문제는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정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런 아이를 그 폭력이 난무하는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넣는다고 해봐 그러면 결국 그 아이는 내 동생 게리처럼 될 가능성이 많지. - P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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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파는 자본가계급의 권력도 차르 체제와 다를 바 없는 소수자의 독재이니 당장 권력을 장악해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한꺼번에 해치우자고 했다. 이 정파의 우두머리가 레닌이었다. 레닌은 차르 정부를 타도하고 세울 정부를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또는 ‘절대다수의 소수에 대한 독재‘라고 했다. 레닌 그룹은 볼셰비키 (Bolsheviki, 다수파)를 자처하면서 반대파를 멘셰비키(Mensheviki, 소수파)라 했다. 두 정파는 1905년 4월 런던에서 연 제3차 당대회 때 완전히 갈라섰고 1917년에는 총을 들고 서로를 죽였다 - P81

사회주의혁명은 선진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러시아 같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법칙이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는 당장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패전은 혁명을 촉진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조국이 전쟁에 패배하게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 P90

레닌은 평생 누군가와 싸웠는데, 싸움 상대는 대부분 적이 아니라 노선이 다른 혁명가였다. 첫 번째는 나로드니키, 다음은
‘합법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나로드니키는 테러를 일삼았고 차르를 암살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그토록 위험한 나로드니키를 공격했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아 경찰이 단속을 느슨하게 하자 그 틈을 타 많은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 레닌은 그렇게 형성된 ‘합법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에 반대하는 개량주의를 퍼뜨린다고 봤다.
레닌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비롯한 ‘수정주의자‘와도 싸웠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파멸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이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폭력혁명 없이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회활동을 통해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테니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기다리지말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일상 활동으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레닌은 유배 중인 혁명가들을 모아 러시아는 당장 혁명을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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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자살했을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심리적 부검을 합니다. 그 사람의 의학적 기록과 사회적 관계를 검토하며무엇이 그 개인을 자살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 파악하지요. 한국과 같이 한 사회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을 때, 우리는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 공동체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시작됐습니다. 비정규직 고용이 전 사회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2000년대에 한국사회를 아프게한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에게 삶보다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원인으로 저는 비정규직 고용을 주목합니다. 이시기부터 저임금으로, 위험한 작업환경을 감수하며 고용불안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가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일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자신이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일해야 했습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 해고된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될 수 있고,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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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며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의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다.
‘큰‘ 사건은 ‘작은‘ 사건의 집합이므로 사실상 수백 가지 사건을 다뤘다고 할 수 있다. 하필 왜 이 사건들을 선택했는가? 세계를 지금 모습으로 만든 결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끝나고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그런 사건을 고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적 거리는 생겼다고 본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 사람이다. 21 세기가 열릴 때 마흔한 살이었다. 20세기에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가치관을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마음을 열어 세상의 변화를 껴안으려고 노력했지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가 늘 수월하지는 않았다.
내 인생의 절반은 냉전 시대였다. 전직 장군들이 양복을 입고 우리나라를 지배했다. 말할 자유가 없었다. 말을 해도 통하지않았다. 가난한 사람이 많았고 사는 게 고르지 않았다.  - P5

그때 작가 에밀 졸라 (Émile Zola)가 참전해 전황을 단숨에 바꿨다. 그는 에스테라지에 대한 무죄선고가 나오고 이틀이 지난1898년 1월 13일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나는 고발한다」였다. 

나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으며,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오늘 나의 행위는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 수단일 뿐입니다. 나의 불타는 항의는 영혼의 외침입니다. 부디 나를 중죄 재판소로 소환해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사하기를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P31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첫번째 이유는 ‘인간적 요소‘일 것이다. 드레퓌스 가족은 서로 믿고 사랑했다. 그 사랑과 믿음으로 참혹한 불운과 시련을 이겨냈다.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의 주인공들, 알지도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누명을 벗기려고 부당한 비난과 박해를 감수하며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문학의 향기를 풍긴다.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드러낸 피카르 중령,
지성과 열정의 화신 졸라, 끝까지 책임을 다한 클레망소, 언론의 선동과 반유대주의자의 집단 광란을 이성의 힘으로 이겨낸 시민들,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재심 요구파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한 세계의 지식인들, 그들은 인간이 어리석고 때로 기괴하지만 지적 재능과 선한 본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했다. - P39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극심한 군사적 경쟁체제에서 발전한 근대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들의 무덤‘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제국을 무너뜨리고 국민국가의 시대를 열었다. 세르비아에 최초의 선전포고를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해체되고 독일어를 쓰는 주민이 다수인 지역만 남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됐다. 러시아 황제의 궁전에는 붉은 깃발이 올랐다. 세계제패를 꿈꿨던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는 권좌에서 떨어졌고 독일민중은 ‘바이마르공화국‘을 세웠다. 400년 넘게 존속한 오스만제국도 사라졌다. 제국의 장군이었던 케말 파샤(Kemal Pasha)가 터키어를 쓰는 주민이 다수인 지역을 묶어 터키공화국을 수립했다.
세계 최대 채무국이었던 미합중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이자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 P61

 그러나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세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분할통치 전략에 휘둘린 아랍은 요르단과 시리아 등 여러 나라로갈라져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 영국은 인도의 독립운동을 더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일본은 3·1독립투쟁을 총칼로 짓밟았고 중국 대륙을 조금씩 먹어 들어갔다.
아시아·아프리카 ·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의 민족주의자들은 윌슨 대통령의 말을 오해했다. 그가 거론한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은 식민지와 종속국의 자주권을 존중하거나 보장한다는뜻이 아니라 패전국의 식민지를 적절하게 재분배하자는 말이었다. ‘민족자결주의‘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한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옛 영토를 처리하는 원칙이었을 뿐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은 끝나지 않았고, 더 무서운 전쟁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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