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방주 프로젝트는 왜 동물원에서 표본을 구하지 않고 어렵게 야생에서 표본을 구하는 걸까? 개별 동물의 유전자는 그들이 지역 환경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반영해 분화된다. 따라서 동물원에서만 표본을 채취한다면 다양성이 한정적이다. 한 종의 유전체 전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유전적 다양성의 일부만을 보관하는 셈이다. 그래서 다양한 지역의 표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10

이 숲은 이차림이다. 본래의 나무와 식생이 잘 보존된 원시림에 비해 한 번 파괴된 후 복원되어 생기는 이차림은 식생이 단순하고 생물다양성이 떨어진다. 여기는 나무가 꽉 차 있어야 할 곳에 덩굴 식물이 많다. 정글은 나무가 빽빽이 차 있어 태양이 흙에 닿지 못해 덩굴이 자라기 좋지 않은데 이곳은 이차림이라 높은 나무가 부족하고 덩굴이 무성하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일날에는 틀림없이 엄마가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추수를 감사하는 보름달이 뜬 다음 날 아침 카야는 사라사 드레스를 입고 오솔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악어가죽 구두를 신고 긴 치마를 휘날리며 엄마가 판잣집으로 걸어온다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아무도 오지 않자 카야는 그리츠 냄비를 들고 숲을 지나 바닷가로 갔다. 손을 모아 입에 대고 고개를 젖혀 울음소리를 냈다. "키-우, 키우, 키-우." 은빛 반점들이 저 높은 하늘에서 나타나 파도를 넘어 바닷가로 왔다.
"다들 왔구나.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숫자는 셀 수가 없는데."
우짖는 새들은 빙글빙글 돌다 자맥질하고 카야의 얼굴 근처에서 떠다니다 옥수숫가루를 던져주자 땅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조용해져서는 가만히 서서 몸단장을 했다. 카야는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모래밭에 앉았다. 커다란 갈매기 한 마리가 카야 곁의 모래사장에 내려와를 쳤다.
"나 오늘 생일이야." 카야는 갈매기에게 말했다.
- P35

학교에 갔던 날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백열을 내뿜는 태양아래 카야는 해변에 있는 오빠의 나무 요새에 올라가서 해골이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는 배를 찾았다. 상상력은 깊디깊은 외로움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 P48

몇 달이 흘렀다. 남부의 겨울은 온화하게 다가와 슬며시 눌러앉는다. 담요처럼 포근한 햇살이 카야의 어깨를 감싸고 점점 더 깊은 습지로 유혹했다. 가끔 알 수 없는 밤의 소리가 들려오고 코앞에서 내리꽂힌 번개에 소스라쳐 놀랄 때도 있었지만,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로 여기가 가장 최근에 발견된 황금못입니다."
황금못Golden Spiko, 국제층서위원회는 지질시대의 공식적인 경계인 국제표준층서구역에서 동물군의 변화, 대멸종 등 전 지구적인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지질 기록이 보존된 특정 지층의 특정 층준을 지정하여 황금못을 박아 표시한다.  - P43

1. 인류세가 지질학 · 층서학적으로 실재하는가?
2.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가?

두 안건 모두 위원 34명 중 29 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인류세가 정식 지실시대에 한발 더 가까워섰다는 소식이었다.
인류세 실무그룹은 인류세를 정식 지질시대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2021년까지 국제층서위원회에 전달하기로결의했다. 이 제안서가 국제층서위원회와 국제지질학연합에서 통과되면 인류세가 공식화된다. 우리의 이름 인류가 지질연대표에 새겨지는 것이다.
- P51

진열대 맨 위 칸은 비어 있다. 거기에 인류세가 들어가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멸종의 원인은 이전의 다섯 번의 대멸종과 같은 운석 충돌, 화산 폭발, 빙하기 도래 등이 아니라 한생물종일 가능성이 크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렇게 새 지질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겨 넣을 자격을 획득했다.
- P72

고생대의 대표적 화석은 삼엽충, 중생대는 암모나이트다. 멀지않은 미래에 우주의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지금 시대의 어떤화석을 발견할까?
현재로서는 ‘닭 뼈가 유력한 후보다. 동 시간대에 77억 인구가 약 230억 마리의 닭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 한 명당 닭 세마리꼴이다. 2008년에는 한국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해 약 1000만마리의 식용 닭이 살처분돼 매립되기도 했다. 그럼 그 뼈들은어떻게 될까? 썩거나 화석이 된다. 닭 뼈는 산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보통은 잘 썩지만, 매립지 환경은 산소가 별로 없기때문에 화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닭 뼈는 지구 전역에서 화석화가 진행 중인데 수적으로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인류세를 대표할 만한 화석으로 지목된다. 닭이 삼엽충, 암모나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다. 닭 입장에서는 황당할 일이다
- P75

"온도가 떨어지면 안 돼요."
냉동방주가 멸종에 맞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보관의 용이성이다. 유전자 표본을 보관하고 있는 케이스라고 해봐야 새끼손가락 하나보다도 작다. 케이스는 더 작게도만들 수 있기 때문에 큰 냉동고 하나만 해도 수십만 종의 유전자표본을 담을 수 있다. 냉동고 4개가 모인 이 방 하나에 5000 종 넘는 멸종위기종 표본이 수집되어 있다. 지구의 과거와 미래가 이 단출한 건물에 모여 있다.
달팽이에서 시작해 곧 멸종될 수 있는 심각한 종들로, 세계자연보전연맹UCN 야생동물 적색 목록에 올라 있는 종들로 대상을 넓힌 냉동방주 프로젝트는 계속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모든 동물종의 유전 정보를 수집해 보관하는 것도가능하다고 믿는다. 매우 큰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미 22개국이 참여 중이다.
그렇게 보관한 유전자 표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설립자 앤은 대담하다.
"저희가 하나의 세포에서 그 동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거예요. 만약 정자와 난자를 구할 수 있고, 수정할 동물이 있다면 다시 살려낼 수 있어요."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롤로그

1969년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 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듯-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퇴옌에 위치한 고층 건물의 싸늘한 지하실에 아파트 주민회의 두 대표가 걱정스런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작업복 차림에 유달리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야기를하는 남자의 입에서 하얀 회반죽 가루 같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게 바로 곰팡이의 특징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남자는 말을 멈추고, 이마에 찰싹 날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가운뎃손가락으로 눌렀다.
"하지만 있다는 거죠."
- P6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