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대문 안으로 짓쳐들어오는 걸 잠시 망설이는 동안 아이들은 무기를 든 손을 흔들면서 거푸 기세만 올렸다. 그중의 한 아이가 힘껏 돌팔매질을 했다. 돌멩이가 날아와 푹 꽂히는 땅바닥에서나는 끝내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꿈틀꿈틀 기어오는 기다란 것이 거기에 있었다. 눈어림으로만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한 마리의구렁이였다. 꿈틀거림에 따라 누런 비늘가죽이 이러저리 번들거리는 그 끔찍스러운 몸뚱어리를 보고는 순간, 그것의 울음소리를 듣던 간밤의 기억이 얼핏 되살아나면서 오금쟁이가 대번에 뻣뻣이 굳어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별수 없는 어린애였다. 한순간의 공포를견디고 나서 나는 고함을 지르며 돌팔매질을 해대는 패거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어린애로 재빨리 되돌아왔다. 모든 꿈틀거리는 것들에 대해서 소년들이 거의 본능적으로 품는 적의와 파괴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잽싸게 헛간으로 달려갔다. 지게 작대기를 양손으로 힘껏 거머쥐었다. 내 쪽으로 가까이 오기만 하면단매에 요절을 낼 요량으로 작대기를 쥔 양쪽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억센 힘으로 내 팔을 움켜잡는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 돌아다보니 외할머니였다. 동시에 째지는 듯한 비명이 등 뒤에서 들렸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마치 헌 옷가지가 구겨져 흘러내리듯그렇게  마루 위로 고꾸라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목격했다. 외할머니가 내 손에서 작대기를 빼앗아버렸다. 말은 없어도 외할머니의 부릅뜬 두 눈이 나한테 엄한 꾸지람을 던지고 있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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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삭막한 분위기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귓속엔 권총과 수류탄을 찬채 밤중 몰래 숨어들어온 사람의 그 굵은 음성이 아직 쟁쟁했다. 바로 그가 몇 달 전에 집을 나간 후 소식을 몰라 식구 모두가 애타하던 삼촌임에 틀림없다면, 유감이지만 삼촌의 목소리는 내가 첫귀에거의 못 알아들을 만큼 무섭게 변모해 있었다. 자갈바탕에 함부로굴린 질항아리처럼 그렇게 거칠 수가 없고, 어떤 일에도 신명이 안난다는 투의 그런 무심한 음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바 우리 삼촌은 아무 자리에나 끼어 버릇없이 너털웃음을 잘 웃고 자기와는 전혀 이해 상관이 없는 남의 일에도 곧잘 뛰어들어 판세를 될수록 시끌짝하게 유도하면서 까닭 없이 흥분하고 쉽게 감동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금 전의 그 소리는 어김없는삼촌의 음성이었다. 소리의 변모만큼이나 험상궂어 있을 삼촌의 얼굴 모양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별안간 오금이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이 가려움증은 삽시에 전신으로 번져 꼭 개미집이 많은 풀밭에 누웠거나 한 듯이 등 복판이나 겨드랑 밑 아니면 발가락 사이 같은, 하필 누운 채로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손을 뻗어 용이하게 긁을 수 없는 부위들만 심하게 물것을 타는 것처럼 스물거리는 것이었다. - P33

 사람들이 이내 좌우로 갈라지면서 가운데로 길이 뚫렸다. 낯선 사내가 앞장서 걸어나오고 바로 뒤를 이어 아버지가 따라나왔다. 그리고 한 걸음 떨어져 맥고자의 사내가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팔을 뒤로 결박한 오라의 한쪽을 손에 감아쥐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는 헤벌쭉 웃으며 한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내 앞에서 아버지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몹시 안타까워하는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며 한참이나 무슨 말을 할 듯 할듯하다가는 잠자코 도로 발을 떼기 시작했다. 대문간에서는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할머니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자빠지고 고부라져가며 통곡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게도 어떤 고통의감정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맥고자한테 나를 일러준 그 이북아이를 찾아 동네 안팎을 무작정 뒤지고 다니는 동안, 그것은 일종의 배신감과 어울려갈수록 무서운 분노로변했고, 때로는 감당 못할 큰 슬픔이 되어 눈을 후비고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맥고자의 그 사내는 나한테 그런 얘길 들었다는 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한 바 있었다. 그것은 그때 나이의 내겐 어른들에 의해서 기록된 최초의 치명적인 배신이었다.
11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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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깎는 시대에서 쌓는 시대로 바뀌면 무슨 일이 생길까? 우선깎는 시대에 만연했던 낭비가 사라진다. 「밀로의 비너스」를 만들고자 버려진 대리석을 생각해 보라. 깎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쓸모없이 버려지는 찌꺼기가 많았다. 하지만 쌓는 시대에는 재료를 꼭 필요한 곳에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제조 현장에서 3D 프린팅의 도입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거푸집(금형)의 퇴출이다. 지금은 칫솔 하나, 볼펜 하나, 고무 오리 하나를 찍어내려고 해도 많은 돈을 들여서 금형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3D 프린팅 시대에는 이런 금형이 필요 없다. 원하는 물건의 G코드만알면 1개든, 2개든 원하는 만큼 물건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약 고무 오리를 찍어낼 금형 비용이 약1000만원이고, 고무 오리 1개당 비용이 2만 원이라면 어떨까? 지금은 똑같은 고무 오리를 많이 찍을수록 제조 원가가 계속 낮아진다. 100만개를 만들 때쯤에는 원재료 비용만 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굳이 쓸모가 없더라도 고무 오리를 100만개 이상 만드는 게 훨씬 유리하다.
3D 프린팅을 도입하면 정반대 상황이 된다. 일단 금형을 제작하는 10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1개를만들든 100만 개를 만들든 낱개에 들어가는 원가가 똑같다. 그러니까 똑같은 고무 오리 100만 개를 찍는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대신에 서로 다른 모양의 고무 오리 수백 종을 수백 개씩 생산하는 일이가능해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미 3D 프린팅이 가장 먼저 도입된 분야가있다. 치아 교정이 그 한 예다. 치아의 모양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틀니, 인공 치아, 치아 교정기는 세상에서 딱 하나만 필요하다. 3D프린터로 이런 틀니, 인공치아, 치아 교정기를 만든다면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이다. 실제로 이 분야는 발 빠르게 3D 프린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 P296

채굴이라은 표현을 썼다고 비트코인을 금처럼 땅에서 캐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채굴이란 고용량 컴퓨터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일이다. 이런 연산을 성공적으로 하면 보상으로소량의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이 과정을 금을 캐는 일에 비유해 채굴이라고 부른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고용량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과정이 바로 일대일로 이뤄지는 비트코인의 거래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렇게 비트코인 시스템 유지에 이바지한 대가로 그들에게 새로운 비트코인이 주어진다. 수많은 컴퓨터를 동원한 다수의 참여로거래 내용이 기록되다 보니 비트코인은 해킹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예를 들어 보자. 해커가 은행 거래 기록을 해킹하려면 은행의 중앙서버에 침투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거래 정보의 사본이 여러 곳에 저장돼 있는 데다, 그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연산처리(채굴)가 필수다. 그러니 해커가 비트코인 거래 내용을 조작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금융 혁신을 가능케하는 ‘블록체인 (block chain)‘ 기술이다.
- P301

기왕에 모유의 신비를 탐색하기로 했으니 한가지만 더 언급하자, 살모넬라균(Salmonella), 콜레라균(Vibrio cholerae) 처럼 이름만 들어도무시무시한 병원균은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소화관에 자리를 잡는다. 그때 이 병원균이 달라붙는 곳이 바로 장 세포 표면에있는 특정한 모양의 당 분자인 글리칸(glycan)이다. 병원균 블록이 글리칸 블록과 만나서 결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리고당의 생김새가 바로 글리칸과 비슷하게 생겼다. 병원균 블록이 글리칸 블록 대신 올리고당 블록에 붙으면 세균 감염이 차단된다. 놀랍게도 올리고당은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바이러스(HIV)도 차단할 수 있다. HIV에 감염된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유를 몇 달이나 먹으면서도 안전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 P314

생물학적 위험은 어떨까? 흔히 유기농 먹을거리를 ‘생명의 먹을거리‘라고 부른다. 몸에 좋은 세균도 생명이지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몸에 나쁜 세균이나 인체에 해를 주는 기생충도 생명이다. 즉 유기농 먹을거리는 생명의 먹을거리이기 때문에 좋은 세균뿐만 아니라 나쁜 세균이나 기생충도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끔 유기농 먹을거리는 안전하기 때문에 대충 씻거나 그냥 먹어도 된다고 믿고 또 그렇게 권하는 사람을 보았다. 위험하다. 유기농먹을거리는 농약을 뿌려서 키운 ‘관행 농업‘ 먹을거리보다 훨씬 더 깨끗이 씻어 먹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 묻어 있을지 모르는 나쁜세균이나 기생충을 제거할 수 있다.
햄버거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이 나올 가능성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햄버거 패티가 이 대장균에 오염되어서 사망자까지 나왔다. 그래서 장출혈성 대장균이 일으키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은 ‘햄버거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데2011년 독일에서 뜻밖의 일이 있었다.
장출혈성 대장균에 3,000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최소한 3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도 잘 익지 않은 햄버거 패티가 장출혈성대장균에 오염된 것이 문제였을까? 진짜 원인은 충격적이었다. 한 먹을거리 업체에서 공급한 유기농 채소가 오염되면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장출혈성 대장균도 생명이기 때문에 유기농채소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 P323

이 대목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독감의 두 유형가운데 A형이 상대적으로 독성이 강하다. A형 독감은 이론적으로는144종의 변종이 가능하다. 2009년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신종 플루(HINI)‘도 A형 독감이었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했던 HINI 바이러스는 이제 계절 독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B형 독감은 딱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WHO는 겨울이 오기 전에 유행 독감을 전망한다. 그래야 제약업체가 맞춤한 백신을 독감 유행 전에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O는 보통 A형 두 종류, B형 한 종류의 독감을 꼽는다. 2017~2018년 겨울에도 A형 두 종류(HINI, H3N-)와 B형 한 종류(빅토리아)가 선정됐다.
제약 업체는 이 전망대로 백신을 제조해서 공급했다. 보건소.
병원과 의원 등에서는 바로 이 백신을 65세 이상 노인과 어린아이에게 무료 접종했다. 이른바 ‘3가 백신‘이다. ‘4가 백신‘은 WHO가 권장한 세 종류의 독감에다 B형 독감의 나머지 한 종류(야마가타)까지예방이 가능하도록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WHO 독감 유행 전망은 종종 빗나간다. 2017~2018년겨울에도 그랬다. A형 독감 두 종류는 WHO의 예상대로였는데, B형독감은 애초 예상한 종류(빅토리아)가 아닌 다른 것(야마가타)이 유행했다. 결국, 3가 백신을 접종받은 노인, 어린아이 상당수가 미처 유행을 예상치 못한 다른 종류(야마가타)의 B형 독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 P398

특히 프랑스의 고독사 대응 가운데 혼자사는 노인과 주거가 불안정한 대학생의 동거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고독사를 막는 방안으로 일종의 대안 가족(공동체)의 탄생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노인과 대학생의 소통 가능성까지 높일 수 있으니얼마나 기막힌 방안인가.
물론 안다. 생면부지에 자칫하면 잔소리꾼이 되기 십상인 노인이나, 버릇없고 사사건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의 대학생보다는 귀여운 개나 고양이가 가족으로서는 낫다. 하지만 아파서 쓰러졌을 때는 개나 고양이보다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낫다.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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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일단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 실제로 미국의 비정부조직 SGAC(Space Generation Advisory Council)가 주최하고 유엔이 지원하는 ‘소행성 움직이기 대회 (Move an AsteronCompetition)‘가 2008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소행성의 진행 방향을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해서 상을 준다.
한가지만 소개하자. 2012년 우승자는 당시 MIT에 재학 중이던 한국계 대학생 백승욱 씨였다. 백승욱 씨의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흰색 페인트 통을 던져서 소행성을 흰색으로 칠하기만 하면 이동경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홍미로운 아이디어다. 소행성에 묻은 흰색 페인트는 햇빛을 반사한다. 그런데 마찰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햇빛을 반사하는 것만으로도소행성이 상당한 힘을 받게 된다.
거칠게 원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의성질도 띤다. 빛의 입자인 광자는 공기의 흐름인 바람처럼 압력을 가진다. 우주 공간은 마찰이 없기 때문에 그 빛의 힘이 쌓이면 무시할수 없는 효과를 낸다. 소행성에 묻은 흰색 페인트가 빛을 반사할 때, 그 힘의 반작용으로 궤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흰색 페인트로 지구를 구하다니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 P250

가장 걱정되는 일은 해수면 (바닷물의 표면) 상승이다. 흔히 해수면상승하면 얼른 떠올리는 장면이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오가지도 못하는 북극곰의 처량한 모습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서식지가 없어지는 북극곰의 처지가 딱하긴 하다. 하지만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고 바닷물의 표면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북극의 얼음은 바다(북극해)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이 녹는 일은 해수면 상승과 관계가 없다. 뜨거운 땡볕에 손이 가는 아이스커피를 생각하면 된다. 컵을 가득 채운 커피 위에 둥둥 떠 있는 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컵 밖으로 물이 넘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워진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육지에갇혀 있는 얼음이 녹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눈이 얼음덩어리로 변한 빙하가 바로 그런 얼음이다. 북아메리카 북쪽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섬인 그린란드의 빙상(대륙빙하), 남극 대륙의 빙상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이나 알프스 산맥의 빙하 등이 예다.
특히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의 빙상이 문제다. 그린란드는 최대 3킬로미터 정도 두께의 얼음이 멕시코만큼 넓은 지역을 덮고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만 녹아도 대략 해수면이 6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다. 루크 투르셀 (Luke Trusel) 등의 과학자가 주도해 2018년 12월 5일<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그린란드 대륙빙하의 녹는 속도는 18세기 초 산업 혁명 이전과 비교했을 때 5배나빨라졌다.
지구 얼음 전체의 약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남극 대륙을 2킬로미터 두께로 덮고 있는 빙상의 사정은 어떨까? 남극 빙상이 녹는 속도 역시 2000년대 10년 동안 50퍼센트나 증가했다. 한가지 예로, 남극에서 빙상이 가장 빨리 녹고 있는 아문센 해역은 크기가 한반도 전체 면적의 3배 정도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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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 P7

날이 어두워지면서부터는 입장들이 뒤바뀌어 위로하는 사람과 위로받는 사람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할머니의 말씨는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더욱 암시적이 되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띠기조차 했다. 반면에 어머니와 이모는 까닭없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일껏 까려고 가져다놓은 완두줄거리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기만 했다. 결국 일감은 외할머니 앞으로 떠넘겨지고, 어머니와 이모는 심란스럽게 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중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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