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하였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 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 자체가 상당부분 첨단 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P77

7. 인간을 기르다가 싫증이 나면 어떻게 할까?
우리의 어린 세대는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애완 인간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싫증을 낸다. 애완 인간을 사 달라고 조를 때와는 생판 달라진 모습이다(우리의 자녀가 <제게 애완 인간을 선물해 주세요. 잘 돌보겠다고 약속할게요>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녀석들의 그 말은 그저 나흘 동안만 잘 돌보겠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어린 세대가 애완 인간에 싫증을 낼 때, 우리가 보이는가장 간단한 반응은 인간들을 세면대나 쓰레기통이나 하수도에 버림으로써 그 골칫거리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만일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우리의 하수도에 사는 인간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지구에서 잡아와 길들인 인간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이 전혀 없다. 너무나 <유순한> 그들은 하수도 인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수도 인간들은 그들보다 훨씬 빨리 달리며 끝까지 그들을 추격해서 목숨을 빼앗고 말 것이다. 우리의 귀여운 놀이 동무였던 그들을 그런 식으로 저버리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 우리 (특히 지구의 야생 인간을 기르던 우리)를 어떻게 처분해야 좋을지 모르는 어린 세대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것은 애완 인간들을 가난한 친구들에게 선물하라는 것이다. 그친구들은 아마도 애완 인간을 대신 맡아 기름으로써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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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하였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 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 자체가 상당부분 첨단 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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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관료들은 좀처럼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사람들은 아랍권에서 널리 쓰이는 <IBM>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인샬라, 보크라, 몸켄>의 머리글자인 이말은 <신이 허락한다면 어쩌면 내일은>이라는 뜻이다. 모든 계획이 임시적이다. 정부 최고위층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영 석유회사사장을 한 시간 전에 연락해서 당장 만날 수도 있고, 사전에 몇 주동안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 P460

리비아 총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고용하는 공무원 조직은 엄청나게 과잉 충원된 상태다. 국영 석유 회사의 직원 4만 명은 실제 필요한 인원의 두 배쯤 될 것이다. 임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직장에서 봉급을 받는다. 그리고 만약 직장감독자가 같은 부족 사람이라면, 직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식량에 국가 보조금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적은 생활비로도 살아갈 수 있는지라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못미친다고 여기는 일자리는 쉽게 거절한다. 고된 노동은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도맡고, 그보다 좀 더 기술이 필요한 일은 이집트 사람들이 한다.
「우리 경제는 역설적입니다. 리비아인 중에는 실업자가 많죠.」공식 실업률은 3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는 또200만 명이나 됩니다. 이 불균형은 재앙입니다.」 가넴은 말했다. 높은 국내 실업률과 수입 노동력이라는 조합은 석유로 부유해진 모든 나라들의 특징이지만, 리비아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하다. 한 결혼에서 아이를 열네 명씩낳은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구의 약 절반이 15세 미만이다. - P462

『녹색서』는 내분을 피하기 위해서 한나라에는 하나의 종교만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그것이 이슬람교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카다피는 자신의선언서에 코란의 기본 교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고(이를테면 자신이 제창한 사회 복지 재분배 정책을 코란에 나오는 자선 개념과 멋대로 동일시했다). 따라서 자신의 선언서는 샤리아 법과 동등한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와 카다피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지만,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는 일절 허락하지 않기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어진 20년의 급진적 행보는 공개 교수형이 텔레비전으로중계되었고, 서양 책과 악기를 불태웠고, 사기업이 갑자기 금지되었고, 반유대주의가 심해졌고, 테러리스트나 게릴라 집단과 공식적으로 연대했다-국제 사회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그러나 불량 국가라는 리비아의 지위 덕분에 카다피는 궁지에 몰린 국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을 다졌다. 그것은 그가 뛰어나게 잘해내는 역할이었다. - P465

 석유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SPLAJ체제는 노동 윤리에 구애받지 않는 인구를 탄생시켰다. 리비아 사람들은 일주일에 닷새 오전만 일한다. 그게 전부다. 그조차 직업이있을 때의 이야기다. 즐리트니는 이렇게 엄하게 말했다. 「사람들이기꺼이 일하겠다고 하면, 가령 건설 현장 일을 하겠다고 하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유한 나라라서, 젊은이들은 힘들게 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석유 같은 자원에 기반을 둔 경제는 다변화하지 않는 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많은 대학생들은 현재 개혁 논의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재능은 결국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한 학생은 내게 불평했다. 「이 MBA 과정을 마쳐도 일자리를 못 구할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온 나라가 고용이 아니라 석유로 굴러가죠.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부는 없어요. 나는 열심히 일할 마음이 있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재무장관 압둘가데르 엘카이르는 내게 말했다. 「석유가 없었다면, 우리도 개발을 했을 겁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라리 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 P479

나는 과거의 낙관주의가 잘못이었음을 깨닫는 뼈저린 경험을 숱하게 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불명예스러운 최후에 뒤이어 혼돈으로 빠져든 리비아의 경우만큼 씁쓸한 사례는 또 없었다. 서구가 카다피 타도를 지지했던것이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서구가 그에 뒤이어 벌어질 일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점이다. 거악이 제거되더라도 그 빈자리를 메울 일관된 선이 없는 한 별다른 성과가 날 수없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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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준 편지』를 한편씩 읽었습니다. 부산 원도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시인 김수우씨와 그곳을 드나들던 스물다섯 법대생 김민정씨가 무려 10년간 주고받은 편지들이 달빛처럼 은은한 울림을 주었어요. 긴 인연의 폭과 흐름이담긴 이 서간집은 요즘 제 화두인 관계와 인연을 너른 폭으로 조망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잊은 듯 살다가도 문득 따뜻한 애정이 솟구치며 그리워지는 것, (...) 불가에서는 이를 좋은 인연이라 하더군요. 잊고 있다가도 만나면 더없이 기쁜관계 말입니다."
이런 대목에선 저의 이름 없는 관계들이 적합한 이름을부여받은 듯했어요.
사실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찬찬한 관계로 기우는 마음이, 나이가 들어가며 끈끈한 관계의 부침을 감내하지 못하는 저에 대한 정당화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떡볶이 먹고 시시콜콜 잡담을 나누는 소소한 사이도, 다글다글 뒤엉켜 사느라 못난이 같은 내 모습을 들킨 징한 인연도 있듯이, 이렇게 조금은 멀리서 서로의 일상을 애틋하게 바라봐주는 고고하고 너그러운 관계도 필요하구나, 참으로 근사한 인연이구나, - P73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는첫째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주말마다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과학관으로 데리고 다녔다. 극성깨나 부렸지. 그런 과거의 일면에 대한 부끄러움, 거기다가 자식 교육에 손놓은 엄마라는 미안함, 또 자식이 중산층 계급으로 안정된삶을 살길 바라는 아직 식지 않은 욕망의 잔열까지 고루 착종된 아주 복잡한 감정이 그들을 통해 건드려졌던 것 같아.
반면에 책은 현실의 안전한 도피처였다. 정돈된 단어와이론들 안에서 난 안정감과 고양감을 느꼈어. 적나라하고어지러운 세속에 가담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지. 엄마라는 내 정체성이 비활성화되는 관계, 즉 비출산 비혼 동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책 얘기 세상 얘기 나누는쾌락에 빠졌고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빠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피한 게 아니라 너를 통해 상기되는 나의 결핍과 불안을 마주하기 싫었던 거 같아.  - P78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뒤처진 새」라이너 쿤체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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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에서 나는 모험가가 되려는 사람이 으레 겪게 마련인 문제에 맞닥뜨렸다. 그 문제란 내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대개 이전에 이미 누가 발견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과거 천년동안 해온 일을 현재에 똑같이 하더라도 거기에 자의식이 덧발라지면 이미 똑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자랑스러워했고, 이 공연은 물론 그들의 전통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에서의 자연스러운 밤을 겪은 뒤라 까다로워진 우리에게는 이들의 연습된 공연이 하와이의 나이트클럽 쇼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다. 수도에 있을 때 미스 솔로몬 제도를 뽑는 미인 대회를 구경했었는데, 그때 여자들은 갈기갈기 찢은 분홍색 비닐로만든 치마에 코코넛과 끈으로 만든 비키니 상의를 입고 빙글빙글도는 춤을 선보였었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러웠고, 부조리한 요소때문에 도리어 좀 사랑스럽기까지 했지만, 또한 좀 슬펐다. 지금 이 공연도 슬펐다. 이것은 전통 자체라기보다는 전통의 상연이었다.
- P423

투치족이 르완다에 도착한 시점이 언제인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후투족이 먼저 정착한 다음에 그곳에 와서 봉건적 지배 계급으로 자리 잡았다. 벨기에 식민 통치자들은 키가 작고 피부가 검고 코가 넓적한 후투족 농부들보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투치족 목동들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인구의 15퍼센트밖에되지 않는 투치족을 태생적 귀족 집단으로 선언했고, 후투족에게 주지 않는 특권을 투치족에게 주었다. 이 정책은 격렬한 증오를 낳았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 말기로 갈수록 벨기에인과 투치족 군주의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벨기에는 권력을 후투족에게 넘겨주었다. 1962년 독립한 후에도 후투족이 계속 통치했고, 후투족은 주기적으로 투치족을 공격했다. 이후 25년 동안 지속된 민족 분쟁으로많은 투치족 사람들이 우간다나 콩고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르완다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후투 정부가 투치족의 귀향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자. 투치족은 군대를 조직하여 -폴 카가메가 이끈 르완다 애국 전선RPF이었다-국경에서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1993년, 유엔의 중재로 후투 정부와 투치 반군은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후투 강경파는 권력 배분이 달갑지 않았다. 1993년 말과 1994년 초, 후투 파워 운동을 이끄는 이들이 학살의 기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난하고 불만 많은 청년들을 모아서 <함께 싸우는 이들>이라는 뜻의 인테라함 군대를 결성했고, 그들에게 투치족은 인간이아닌 적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정확하게는 <바퀴벌레>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또 르완다 최초의 민영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밀콜린을 세웠고, 그 전파를 통해 증오의 메시지를 퍼뜨렸다.‘ 무기도 비축했다. 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체테와 칼이었다. 그들은 또 체계적으로 정부에서 온건파를 몰아냈다. - P430

르완다 학살이 시작된 것은 1994년 4월 6일, 쥐베날 하브자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된 직후였다. 이후 백 일 동안 투치족 80만 명이 살해되었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는 살해가 임상적이고 체계적이고, 원격적이었던 데 반해 르완다 대량 학살은 직접 손을 쓴 일이었다. 인테라함뿐 아니라 농부들도 주로 농기구로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살해가 그 시기 자행된 폭력의 전부였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르완다에는 <두드려 맞지 않은 여자는 진짜 여자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처럼 문화에 깔린 여성 혐오는 민족주의적 흑색 선전에 쉽게 자극받아서 더 거세어졌다. 강간은 제노시데르들이 명시적으로 밝힌 공격 수단이었다. 라디오 밀콜린은 투치 여자들이 후투 남자들을 유혹하여 후투족의 대를 끊어 버리려 한다는 주장을 전파로 내보냈다. 후투인들은 호리호리하고 당당한 투치 여자들을 오만하다고 여겼고, 그 여자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장담했다.
남자들이 강간한 것은 피해자들에게 모욕과 수치를 안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살해의 한 방법이었다. 많은 남자가 HIV 보균자였고, 후부족 지도부는 그런 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투치 여자들을 감염시키라고 장려했다. 남자들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강간했고 여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 위해서 강간했으며, 좀 더 느리고 좀 더 고통스러운 살인 방법으로서 강간했다. - P431

백일 후, 투치족의 RPF 반란군이 수도 키갈리를 장악하면서 학살은 끝났다. 인테라함웨 군인들은 대부분 콩고로 피신했고, 그곳난민 수용소에서도 소란을 피워 댔다. 카가메는 민족 간 가교를 구축하겠다는 입발림 다짐을 하면서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로 투치족이 장악한 권력 구조를 세웠으며 후투파워 운동이 두려워했던 바로 그 결과였다 나머지 세계는 그의행보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카가메는 요즘도 주기적으로 콩고의수용소를 급습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쟁이 끝난 뒤 약 2만 명이보복 살해당했다. 다시 투치족이 장악한 체제하에서 후투족은 증오하는 소수 집단의 노예가 된 처지로 느끼면서 살고 있고, 투치족은 자기 가족을 살해한 후투족을 미워하면서 살고 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은 그들이 목격하거나 당하거나 가했던 트라우마들이다.  - P432

테라함의낙태는 르완다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이지만, 어떤 여자들은전후의 혼돈 속에서 스스로 인공 유산을 행했다. 어떤 여자들은 영아 살해를 자행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다른 여자들은 강간당해 낳은 아이를 교회 문 앞에 버렸다. 전국에고아원이 즐비하다. 어떤 여자가 자식을 버렸는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자식을 버리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그러나 여자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킨 아이는여자들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강간당해 낳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신에 가까운 일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강간이 여러 트라우마 중 하나일 뿐이라면 더 그렇다. 여자들은가족을 잃었다. 사회적 지위를 잃었다. 한때 든든하게 느껴졌던 사회 구조를 잃었다. 삶이 안정적이거나 지속적이라는 느낌을 잃었다. HIV로 건강을 잃었다. 내가 그런 여자들과 아이들을 만났던2004년 봄, 아이들은 아홉 살이었다. 후투족 아버지를 닮은 생김새가 드러날 만큼 충분히 성숙한 나이였다. 나는 여자들이 어떻게 그런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혹은 사랑하지는 않아도 보살피기는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르완다로 갔다.
르완다 사회는 이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적대적이다. 어떤 여자들은 제 가족과 공동체에게 책망을 받았다. 여자들을 받아주지 않는 병원도 있다. 혼혈인 <나쁜 기억의 아이들>은 후투족에게도 투치족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족이 강요해서 아이를 포기한 여자들도 있어요.」 키갈리에서 만난 에스페랑스 무카마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카마나는 르완다 과부들의 조직인 아베가에서 일13한다. 「처음에 이 여자들은 자기 자식을 인간으로 여기는 것조차어려워했어요. 악마의 자식이라고 여겼으니까요. 대부분의 여자들이 아이에게 영영 진정한 애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살려 둘 만큼은 사랑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여자들을 격려해야하고, 아이는 죄가 없다는 말을 거듭 들려줘야 해요. 아이를 죄 없는 존재로 보기가 여자들에게는 어렵죠. 자기 자신을 죄 없는 존재로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요.」 여자들은 모두 경제적 곤란을 겪는다. 결혼 상대로 부적합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과 자식의 생계를 어렵사리 스스로 잇는다. - P433

 르완다 국립 대학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 학부의 장피에르 가친지 교수는 말했다. 그는 르완다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하며, 이제 르완다에서는 어머니와 자식의 강한 유대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가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강간과 전쟁은 둘 다 트라우마라는 것, 여자들은 두 트라우마를 동시에 겪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시의 강간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범죄입니다. 여느 때의 강간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물론 강간은 어느 때든 직접적인 피해자에게 심한 트라우마를 안기지만, 전시의 강간은 사회 규범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므로 그 일을 겪은 사회에게도 심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무카마나는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여자들은 아이에게 엄하고 쌀쌀맞게 대합니다. 학대할 때도 있죠.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엄마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울어도 달래 주지 않죠. 그래서 아이들은 이상 행동을 발달시킵니다. 그 아이들 역시 차갑고 차분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집에서 사랑을 못 받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낯선 사람을 따라가 버립니다.」 아이들은 종종 과거를 상기시키는 어두운 이름을 갖고 있다. 어느 아이의 이름은 <전쟁>을 뜻하는 인쿠바였다.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은 그 아비를 연상시키는 <작은 살인자>였다.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은 <미움의 아이>였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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