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관료들은 좀처럼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사람들은 아랍권에서 널리 쓰이는 <IBM>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인샬라, 보크라, 몸켄>의 머리글자인 이말은 <신이 허락한다면 어쩌면 내일은>이라는 뜻이다. 모든 계획이 임시적이다. 정부 최고위층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영 석유회사사장을 한 시간 전에 연락해서 당장 만날 수도 있고, 사전에 몇 주동안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 P460

리비아 총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고용하는 공무원 조직은 엄청나게 과잉 충원된 상태다. 국영 석유 회사의 직원 4만 명은 실제 필요한 인원의 두 배쯤 될 것이다. 임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직장에서 봉급을 받는다. 그리고 만약 직장감독자가 같은 부족 사람이라면, 직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식량에 국가 보조금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적은 생활비로도 살아갈 수 있는지라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못미친다고 여기는 일자리는 쉽게 거절한다. 고된 노동은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도맡고, 그보다 좀 더 기술이 필요한 일은 이집트 사람들이 한다.
「우리 경제는 역설적입니다. 리비아인 중에는 실업자가 많죠.」공식 실업률은 3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는 또200만 명이나 됩니다. 이 불균형은 재앙입니다.」 가넴은 말했다. 높은 국내 실업률과 수입 노동력이라는 조합은 석유로 부유해진 모든 나라들의 특징이지만, 리비아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하다. 한 결혼에서 아이를 열네 명씩낳은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구의 약 절반이 15세 미만이다. - P462

『녹색서』는 내분을 피하기 위해서 한나라에는 하나의 종교만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그것이 이슬람교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카다피는 자신의선언서에 코란의 기본 교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고(이를테면 자신이 제창한 사회 복지 재분배 정책을 코란에 나오는 자선 개념과 멋대로 동일시했다). 따라서 자신의 선언서는 샤리아 법과 동등한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와 카다피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지만,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는 일절 허락하지 않기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어진 20년의 급진적 행보는 공개 교수형이 텔레비전으로중계되었고, 서양 책과 악기를 불태웠고, 사기업이 갑자기 금지되었고, 반유대주의가 심해졌고, 테러리스트나 게릴라 집단과 공식적으로 연대했다-국제 사회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그러나 불량 국가라는 리비아의 지위 덕분에 카다피는 궁지에 몰린 국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을 다졌다. 그것은 그가 뛰어나게 잘해내는 역할이었다. - P465

 석유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SPLAJ체제는 노동 윤리에 구애받지 않는 인구를 탄생시켰다. 리비아 사람들은 일주일에 닷새 오전만 일한다. 그게 전부다. 그조차 직업이있을 때의 이야기다. 즐리트니는 이렇게 엄하게 말했다. 「사람들이기꺼이 일하겠다고 하면, 가령 건설 현장 일을 하겠다고 하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유한 나라라서, 젊은이들은 힘들게 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석유 같은 자원에 기반을 둔 경제는 다변화하지 않는 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많은 대학생들은 현재 개혁 논의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재능은 결국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한 학생은 내게 불평했다. 「이 MBA 과정을 마쳐도 일자리를 못 구할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온 나라가 고용이 아니라 석유로 굴러가죠.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부는 없어요. 나는 열심히 일할 마음이 있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재무장관 압둘가데르 엘카이르는 내게 말했다. 「석유가 없었다면, 우리도 개발을 했을 겁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라리 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 P479

나는 과거의 낙관주의가 잘못이었음을 깨닫는 뼈저린 경험을 숱하게 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불명예스러운 최후에 뒤이어 혼돈으로 빠져든 리비아의 경우만큼 씁쓸한 사례는 또 없었다. 서구가 카다피 타도를 지지했던것이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서구가 그에 뒤이어 벌어질 일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점이다. 거악이 제거되더라도 그 빈자리를 메울 일관된 선이 없는 한 별다른 성과가 날 수없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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