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군신 관계(충)와 부자 관계(효)에는 근본적 차이가있었다. 군신 관계는 군주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가변적이었다. 군주가 왕도를 떠나 악을 행하고 간쟁을 듣지 않으면 신하 스스로 군신관계를 끊고 떠날 수 있었다. 심지어 반정이나 역성혁명易姓革命도 가능했다. 곧 충은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였다. 이에 비해 부자 관계는 부모가 아무리 패악하더라도 자식으로서는 관계를 스스로 끊을 길이 유교적 테두리 안에서는 없었다. 이렇게 효는 상상을 초월하는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였다. 바로 이 점이 조선이 고려 때와 달리 황제(천자)를 바꾸는 데에 심각한 이념적 부담을 가진 이유였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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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중화의 요건으로 공간(중원). 종족(한인漢人)·문화(유교) 세 가지를 거론하는데, 고려 선배들은 종족 요인을 별로 개의치않았다. 중원의 패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는 굳이 종족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면, 종족과 무관하게 (한인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천명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은 달랐다. 조선인이 보기에 명은 단순히 강대국 차원을 넘어, 하-은-주-한-당-송-명으로 이어지는 유교적 중화문명의 주인공, 곧 중화문명국이자 천자국이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종족 변수를 중시한 주자학적 화이관華夷觀이 매우 강고하였다. 그 결과 16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명·조선 관계의 본질을 이전의 군신 관계에 부자 관계를 추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충忠과 효孝에 동시에 기초한 이른바 군부君父 신자臣子관계로 이념화한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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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에서 제국이 바뀔 때면 고려는 그것을 천명天命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제국 질서에 동참하였다. 때로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패권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현실적 결정을 내리곤 하였다. 고려가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은 중원의 제국은 무려 아홉 나라였다. 5대에 속하는 후당-후진-후한-후주 등은 차치하더라도, 송(960~1279)에서 요로, 요에서 금으로, 금에서 원으로, 원에서 명으로 황제국(책봉국)을 수시로 바꾸는 등 고려는 형세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갈아타기 선수‘였다. 한 예로,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궤멸한 후에 고려 조정이 취한 외교 노선이 거란제국을 새로운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책봉·조공 관계를 맺은 사실을 들수 있다. 몽골과는 40년을 싸웠어도, 결국에는 원이 주도하는 새로운국제 질서에 순응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 ‘선배‘들은 황제국을 수시로 바꾸면서도 윤리적·이념적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약 300년 후 조선 ‘후배‘들은 명의 쇠락과 청의 흉기를 천명이 바뀐 결과로 인정하기를 단연코 거부하였다. 심지어 남한산성에 고립된 극한 상황에서조차 차라리 여기서 함께 죽자는 극단적 척화론이 수그러들 줄 몰랐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조선 전기 (15~16세기) 200여 년 사이에 한반도의 지배 엘리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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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현재를 조금 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분명해 보이는 게 실제로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타인, 다른 시간과 장소를 경험해 봐야 한다. 죽은 사람들이 여기서도 도움을 주는데, 그들은 현재의 우리와 아주 흡사한 눈으로 세상을 봤지만 세상을 아주 다르게 봤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 보면 고국의 생활 방식이 삶의 한 방식이긴 하지만, 반드시 그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책을 읽으면 우리가 지닌 성별부터 재산에 이르는 모든 생각이 수많은 생각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P34

몽테뉴는 자신이 사랑했던 고대 철학자들처럼, 철학의 적절한 주제는 온갖 다양성과 복잡성을 지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고대 격언 "너 자신을 알라."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라는 의미로 해석했고, 우리가 이런 ‘자기 이해‘를 얻는 데 철학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이해를 자기 계발로 착각한다. 자기계발 업계는 일반적으로 쉬운 해답, 즉 마치 지혜처럼 들리는 잘 포장된 만병통치약 세트를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그런걸 팔지 않는다. 사람은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복잡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몽테뉴는 그방법을 보여 주는 데 달인이다. 몽테뉴에게 자기 이해란 자신을 잘 다듬어 장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광야를 탐험하는 것이다. - P37

여기서 오웰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간디에대한 우리의 존경심이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이 가정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인은 인간 삶의 최고 형태다. 모두가 성인이 되면 좋겠지만, 성인이 되기는 어려우며 인간은 결점이 많고 게으르므로 성인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성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나은 삶을 사는 것이니 성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오웰은 묻는다. 왜 인간 삶의 최고 형태가 성인이라고가정해야 하는가? 성인은 사실 그렇게 감탄할 만한 게 아닐 수도있지 않은가?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웰의 요점은 성인이 되려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성을 덜어 내면 소중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릴랄이 옳고 간디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릴랄의 우선순위가 옳고 간디의 우선순위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좋은 인간이 되길 원할 뿐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좋은 인간이 되는 게 성인이되는 것보다 낫다.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 아니다. 성인이 실패한 인간이다. - P43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을 중심으로 삶을구성한다. 우리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유,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해 주는 것 또는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해주는것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성인 간디는 사람들이 의미를 찾는것, 이를테면 가족, 음악 또는 철학을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것으로본다. 하릴랄이 갈망하는 가정생활이 간디의 눈에는 무미건조하고 하찮고 시시한 것이다. 그와 우리는 단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지향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오웰이 보기에 성인의 삶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은 인간성의 가치를 제대로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볼 때 나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생각, 즉 부정적인 감정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잡초라는 생각이 오웰이 반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논리를 따른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가장 좋은 종류의 감정적 삶은 나쁜 감정이없는 삶이다. 분노, 질투, 악의를 덜 느끼면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 성인이 되기는 어렵고 이를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걸 열망해야 한다. 나쁜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감정 성인이 되는게 아예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우리는 감정 성인이 되길 원하면 안 된다. 아주 조금도 안 된다. 감정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감정 성인은 여러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감정 통제형성인‘이다. 이런 성인들은 나쁜 감정은 정원의 잡초와 같아서 뿌리를 뽑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땅에 소금을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초월해서 그걸되도록 적게 느끼거나 (최선의 시나리오라면) 전혀 느끼지 않아야 한다. 급진적인 해결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철학의 역사에는 감정통제형 성인이 많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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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신 마님, 부자는 저세상에서도 잘 지내겠죠. 부자는 촛불도 밝히고, 헌금도 하고, 거지에게 동냥도 주지만, 농부들이 뭘 하겠어요? 이마에 성호를 그을 시간도 없고, 거지중에서도 상거지인데 어디서 구원받을 수 있겠어요. 가난 때문에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고통스러워서 좋은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마치 개처럼 짖어 댈 뿐인데, 언제나 그런 일뿐인데, 친절하신 마님, 그런 일은 당치도 않죠. 분명히 우리는 저세상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지 않을거예요. 행복이란 모두 부자들에게나 있는 거죠.
스쩨빠니다는 유쾌하게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어려운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인 듯했다.  - P303

예전에 그는 슬플 때면,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논리로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논리를 따지지 않고 깊이 공감한다. 진실하고 솔직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만 울어요, 내 사랑」 그가 말했다. 「그만 됐어요••••••. 이제 얘기 좀 합시다, 뭐든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남의 눈을 피해야 하고 속여야 하며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며 자주 만날 수 없는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수 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 견딜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는 머리를 감싸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좀 더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그 끝이 아직 멀고 멀어,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일이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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