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서 제국이 바뀔 때면 고려는 그것을 천명天命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제국 질서에 동참하였다. 때로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패권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현실적 결정을 내리곤 하였다. 고려가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은 중원의 제국은 무려 아홉 나라였다. 5대에 속하는 후당-후진-후한-후주 등은 차치하더라도, 송(960~1279)에서 요로, 요에서 금으로, 금에서 원으로, 원에서 명으로 황제국(책봉국)을 수시로 바꾸는 등 고려는 형세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갈아타기 선수‘였다. 한 예로,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궤멸한 후에 고려 조정이 취한 외교 노선이 거란제국을 새로운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책봉·조공 관계를 맺은 사실을 들수 있다. 몽골과는 40년을 싸웠어도, 결국에는 원이 주도하는 새로운국제 질서에 순응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 ‘선배‘들은 황제국을 수시로 바꾸면서도 윤리적·이념적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약 300년 후 조선 ‘후배‘들은 명의 쇠락과 청의 흉기를 천명이 바뀐 결과로 인정하기를 단연코 거부하였다. 심지어 남한산성에 고립된 극한 상황에서조차 차라리 여기서 함께 죽자는 극단적 척화론이 수그러들 줄 몰랐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조선 전기 (15~16세기) 200여 년 사이에 한반도의 지배 엘리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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