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우리는 현재를 조금 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분명해 보이는 게 실제로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타인, 다른 시간과 장소를 경험해 봐야 한다. 죽은 사람들이 여기서도 도움을 주는데, 그들은 현재의 우리와 아주 흡사한 눈으로 세상을 봤지만 세상을 아주 다르게 봤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 보면 고국의 생활 방식이 삶의 한 방식이긴 하지만, 반드시 그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책을 읽으면 우리가 지닌 성별부터 재산에 이르는 모든 생각이 수많은 생각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P34
몽테뉴는 자신이 사랑했던 고대 철학자들처럼, 철학의 적절한 주제는 온갖 다양성과 복잡성을 지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고대 격언 "너 자신을 알라."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라는 의미로 해석했고, 우리가 이런 ‘자기 이해‘를 얻는 데 철학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이해를 자기 계발로 착각한다. 자기계발 업계는 일반적으로 쉬운 해답, 즉 마치 지혜처럼 들리는 잘 포장된 만병통치약 세트를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그런걸 팔지 않는다. 사람은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복잡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몽테뉴는 그방법을 보여 주는 데 달인이다. 몽테뉴에게 자기 이해란 자신을 잘 다듬어 장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광야를 탐험하는 것이다. - P37
여기서 오웰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간디에대한 우리의 존경심이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이 가정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인은 인간 삶의 최고 형태다. 모두가 성인이 되면 좋겠지만, 성인이 되기는 어려우며 인간은 결점이 많고 게으르므로 성인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성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나은 삶을 사는 것이니 성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오웰은 묻는다. 왜 인간 삶의 최고 형태가 성인이라고가정해야 하는가? 성인은 사실 그렇게 감탄할 만한 게 아닐 수도있지 않은가?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웰의 요점은 성인이 되려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성을 덜어 내면 소중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릴랄이 옳고 간디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릴랄의 우선순위가 옳고 간디의 우선순위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좋은 인간이 되길 원할 뿐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좋은 인간이 되는 게 성인이되는 것보다 낫다.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 아니다. 성인이 실패한 인간이다. - P43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을 중심으로 삶을구성한다. 우리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유,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해 주는 것 또는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해주는것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성인 간디는 사람들이 의미를 찾는것, 이를테면 가족, 음악 또는 철학을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것으로본다. 하릴랄이 갈망하는 가정생활이 간디의 눈에는 무미건조하고 하찮고 시시한 것이다. 그와 우리는 단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지향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오웰이 보기에 성인의 삶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은 인간성의 가치를 제대로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볼 때 나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생각, 즉 부정적인 감정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잡초라는 생각이 오웰이 반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논리를 따른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가장 좋은 종류의 감정적 삶은 나쁜 감정이없는 삶이다. 분노, 질투, 악의를 덜 느끼면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 성인이 되기는 어렵고 이를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걸 열망해야 한다. 나쁜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감정 성인이 되는게 아예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우리는 감정 성인이 되길 원하면 안 된다. 아주 조금도 안 된다. 감정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감정 성인은 여러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감정 통제형성인‘이다. 이런 성인들은 나쁜 감정은 정원의 잡초와 같아서 뿌리를 뽑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자라지 못하도록 땅에 소금을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초월해서 그걸되도록 적게 느끼거나 (최선의 시나리오라면) 전혀 느끼지 않아야 한다. 급진적인 해결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철학의 역사에는 감정통제형 성인이 많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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