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학교! 어제부터 난 학교에 다닌다!
진짜 학교에 다니는 건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다!
이틀밖에 안 됐지만 학교가 좋다.
엄마 아빠는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전부 다 잘되고 있다.
카마일라르 담임 선생님도 정말 좋다.
수학도 정말 좋다.
하늘에서 빅뱅이 일어나 세상이 만들어진 것도 배우고, 과지모도가 주인공인 유명한 이야기도 읽었다. 사람들은 등에 큰 혹이있는 콰지모도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과지모도는 노트르담 탑에 갇힌 여자를 구했다.
- P5

"주말에 내가 누릴 수 없는 생활을 봤더니, 그냥 좀 슬퍼. 오로르를 가르치고 오로르가 아주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당연히 즐겁지.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힘든 게 있단다. 어른은 선택을 해야 하고,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을 계속 설득해야해. 그렇지만 그 선택이 썩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어."
- P22

클로에가 계속 말했다. "오로르는 자기 참모습대로 살면 돼, 다른사람을 괴롭히는 애들은 불안정한 동물들이나 마찬가지야. 혼자 있으면 불안하니까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뭉쳐다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자기 참모습을 들키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눈에 띄는 사람,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을 괴롭히지, 내가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참모습 그대로살아, 그리고 못된 애들이 그렇게 한심한 편지를 또 보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괴롭혀도 당황하거나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지 마."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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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은 각성제로 쓰인 것이지, 처방전은 아니었다.
더 멀리 어슬렁거리다 또 다른 글이 적힌 안내판을 발견한다.
<월든>의 한 구절로, 아마도 소로의 말 중에 가장 유명할 것이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본질적인 실상에 직면하고 싶어서, 그것들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음에 들지만, 한 군데만 살짝 수정하고 싶다. 나라면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고‘ 싶다로 바꿀 것이다. 소로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소로의 실험의 핵심은 보는 것이었다. 나머지, 그러니까 고독과 간소함 같은 것은 잘 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 P132

정말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만의 월든인 이곳에서 더 명료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각적 깨달음, 소로가 성취한 "단 하나의 확장"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망스럽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보는 데는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필요하다고, 소로가 내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 P143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 너머에 있는 세계 개념을 지지했지만 여기에 흥미롭고 (당연히) 우울한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였다. 칸트와 달리 쇼펜하우어는 실재가 단일하고 통일된 독립체이며, 비록간접적일지라도 접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인간과동물, 심지어 무생물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아무 목적 없이 분투하며,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악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힘을 "의지"라 칭했다. 나는 이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본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정신력이 아니라 일종의 힘이나 에너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이다.
중력만큼 유순하지는 않지만,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지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요구는 고갈될 줄을 모른다. 모든 욕망이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그 갈망을 가라앉히거나 그 요구에 끝을 맺거나 그 심장의 끝없는 나락을 채우기엔 세상의 그 어떤 만족도 충분치 않다.
- P155

쇼펜하우어는 다른 동물인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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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란의 인생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알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메시지가 소년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뒤에는 영원히 남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이 말에 내포된 의미 중 하나는 절대로 불평하지 않는다는거였다. 적어도 타당한 이유 없이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는거였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윅스훌트의 거실에 날아들었을 때도, 알란은 가족의 전통에 따라 묵묵히 숲으로가서 나무를 베었을 뿐이다. 물론 다른 때보다 좀 더 오래, 그리고 좀 더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무를 베었지만 말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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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데카르트가 머리의 철학자였다면, 루소는 심장의 철학자였다. 루소는 격정의 지위를 드높였고, 감정을 용인되는 것으로, 이성과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루소가 살았던 이성의 시대에 상상적 사고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세기 후, 무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성주의자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를 껴안는 기술 반대자라고, 모두가 다시 수렵 채집을 하고 모닥불 옆에서 좋은 돌을 두고 다투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루소를 무시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루소가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루소의 주장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자연과 다시 동조하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더 나은 동굴로 돌아가자는 것이랄까. 루소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고속도로가 깔리기 수 세기 전에 환경 문제를 예측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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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월요일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세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 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 불참하게 될 거였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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