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은 각성제로 쓰인 것이지, 처방전은 아니었다.
더 멀리 어슬렁거리다 또 다른 글이 적힌 안내판을 발견한다.
<월든>의 한 구절로, 아마도 소로의 말 중에 가장 유명할 것이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본질적인 실상에 직면하고 싶어서, 그것들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음에 들지만, 한 군데만 살짝 수정하고 싶다. 나라면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고‘ 싶다로 바꿀 것이다. 소로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소로의 실험의 핵심은 보는 것이었다. 나머지, 그러니까 고독과 간소함 같은 것은 잘 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 P132

정말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만의 월든인 이곳에서 더 명료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각적 깨달음, 소로가 성취한 "단 하나의 확장"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망스럽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보는 데는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필요하다고, 소로가 내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 P143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 너머에 있는 세계 개념을 지지했지만 여기에 흥미롭고 (당연히) 우울한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였다. 칸트와 달리 쇼펜하우어는 실재가 단일하고 통일된 독립체이며, 비록간접적일지라도 접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인간과동물, 심지어 무생물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아무 목적 없이 분투하며,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악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힘을 "의지"라 칭했다. 나는 이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본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정신력이 아니라 일종의 힘이나 에너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이다.
중력만큼 유순하지는 않지만,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지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요구는 고갈될 줄을 모른다. 모든 욕망이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그 갈망을 가라앉히거나 그 요구에 끝을 맺거나 그 심장의 끝없는 나락을 채우기엔 세상의 그 어떤 만족도 충분치 않다.
- P155

쇼펜하우어는 다른 동물인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