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데카르트가 머리의 철학자였다면, 루소는 심장의 철학자였다. 루소는 격정의 지위를 드높였고, 감정을 용인되는 것으로, 이성과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루소가 살았던 이성의 시대에 상상적 사고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세기 후, 무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성주의자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를 껴안는 기술 반대자라고, 모두가 다시 수렵 채집을 하고 모닥불 옆에서 좋은 돌을 두고 다투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루소를 무시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루소가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루소의 주장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자연과 다시 동조하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더 나은 동굴로 돌아가자는 것이랄까. 루소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고속도로가 깔리기 수 세기 전에 환경 문제를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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