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仁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
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ㅁ(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공경과 아량, 신의, 민첩함, 친절이라는 다섯 가지 기본 덕목을 항상 실천한다. 물론 공자가 친절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공자는 친절을 개인이 원할 때 베푸는 것에서 철학의 핵심 개념이자 훌륭한 통치의 근간으로 한 단계 승격시켰다. 공자는 친절과 사랑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려놓은 첫 번째 철학자였다.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말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보다 약 500년 일찍 황금률을 제시했다.
공자에게 친절은 무른 마음이 아니다. 약함도 아니다. 친절은 실용적인 덕목이다. 공자의 한 추종자는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면
"손바닥 위에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 P311

"이런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친절의 힘을 기록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거의 성스럽기까지 한 책무라고, 굴드는 말한다. 냉철한 과학자인 굴드는 선함을 기록하는 데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친절은 귀하게 여기면 더욱 늘어난다.
친절에는 전염성이 있다. 도덕적인 행동을 목격하면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촉발되어 흘러넘친다. 친절한 행동을 목격한 사람은 더욱 친절하게 행동하게 된다. 최근 있었던 여러 연구에서증명된 현상이다.
나도 친절의 전염성을 몸소 체험한다. 친절한 행동에 주의를 온통 집중하며 F 노선을 탔던 1주일 이후 나는 더 친절한 사람이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 쓰레기를 줍는다. 바리스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가 보지 않을 때 팁을 놓아둔다. 이런 작은 행동으로 노벨상을 타거나 성인군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삼나무 씨앗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물이다. - P320

소로가 가르쳐주었듯이, 우리는 볼 준비가 된 것만 본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작은 것을 볼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쇼나곤은 그렇지 않았다.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달콤한 시럽을 뿌려 반짝이는 금속 그릇에 담아낸 빙수, 수정으로 만든 묵주 등나무꽃, 매화꽃 위에 내려앉은 눈, 딸기를 먹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 연못에서 꺾은 작은 연잎."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쇼나곤은 사쿠라, 즉 벚꽃을 무척 좋아했다. 벚꽃은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삼 일쯤 만개했다가 다 떨어져버린다. 다른 꽃(예를 들면 매화)은 훨씬 오래 피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연약한 것을 피우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불교 개념인 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지고,
그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문화는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일부 문화는 감내한다. 일본 문화는 찬양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  - P340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 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사람들이 소로에 대해서 한 말은 쇼나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로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꽉 붙잡거나 이용하거나 남김없이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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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아이폰을 지닌 터너

2009년 초여름 어느 날 아침,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게요. 어이없는 문장인 줄은 알지만,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시간에 맞추어 이미지 하나가 도착했다. 옅은 분홍색과 젊은 자주색, 살구색 구름이 여름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며 요크셔(Yorkshire) 해안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수채화처럼 섬세하면서도 스테인드글라스와도 같이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미술 작품들이 그러하듯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이었다. 호크니는 자신의 아이폰(iPhone)으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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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후, 미국인 선교사 존 모트 John Mort가 간디에게 평생 가장 창조적이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간디는 남아공에서겪었던 기차 일화를 들려주었다. 조용한 결의의 순간을 창조와동일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간디가 예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한다. 간디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고극장이나 미술관에 가는 일도 드물었다. 간디에게는 아름다움을보는 소로의 눈이나 음악을 듣는 쇼펜하우어의 귀가 없었다. 런던에서 댄스 교습에 등록한 적이 있었지만 곧 자신에게는 리듬이없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하지만 간디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결론이다. 일반적인 방식과 달랐을 뿐, 간디는 창조적인 사람이었다. 간디의 붓은 결의였고, 간디의 캔버스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악에 맞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헤맸다.
- P266

간디는 이 관점을 다음과 같은 짧은 단어로 요약했다. "욕망 없음" 나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욕망 없는 행위를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카르마 요기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많은 것을 한다.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만 빼고,
우리의 방식은 다르다. 우리는 결과 중심적이다. 헬스 트레이너, 비즈니스 컨설턴트, 의사, 대학, 세탁소, 갱생 프로그램, 영양사, 재정 자문가, 많은 곳에서 결과를 약속한다.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할 자격을 갖추면,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 P280

마침내 간다는 새로운 형태의 비폭력 저항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티아그라하, 사티아saty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이라는뜻이고, 마그라하agraha 는 ‘결의‘ 또는 ‘단호히 하다‘라는 뜻이다.
진리의 힘(영혼의 힘‘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이것이 바로 간디가 품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에는 수동적이거나 물렁한 면이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능동적인 힘"이다. 사티아그라히, 즉 비폭력 저항가는 무장한 병사보다도 더 능동적이며, 더 용감하다. 간디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는 그 어떤 위대한 용기도, 지능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오직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만이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간디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대의명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 P284

간디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대편을 친구로 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한다. 대부분의 폭력은 부도덕한 충동이 아닌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총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반한 반응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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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대한 아이디어를 낚아채려고 열심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본다. 그들은 원대한 아이디어가 자신을 그저 그런 사상가에서 선구자격 사상가로 바꿔주길 바란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숙고하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아이디어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에 내보낸다.
선구자격 사상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고되게 주의를 기울이고싶어 하지 않는다. 주의 기울이기의 고됨은 유도나 활쓰기가 고된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명상이나 양육이 고된 것과 비슷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고된 것과도 비슷하다. 주의력은 뜨개질이나 펜싱처럼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주의력은 정신 상태이며, 방향성이다. 우리는 주의력을 학습하기보다는 주의력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소크라테스처럼 멈취 서서 자기 머리 밖으로 나올 때에만 가능하다. 시몬 베유는 이를 "탈창조decreation‘라 칭했다.
나는 "자아 벗겨내기 unselfing" 라는 아이리스 머독의 용어를 더선호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자신이 경험한 자아 벗겨내기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머독은그날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한 마리가 보였다. 머독은 이렇게 말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다. 자만심에 상처 입은 음울한 자신은 사라졌다. 이제 황조롱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문제들은 전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 P238

관심은 질보다 양을 파악하기가더 쉽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가장 쉬운 것을 평가한다.
- P247

베유는 행동과 결과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한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관심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위험하다. 결과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유가 주창한 것과 같은 순수한 관심에는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출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묻어 있지 않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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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안느 선생님이 말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 정말 무섭고 힘든 일과 마주쳤을 때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열까지 세는 거야. 겁먹거나 놀랐을 때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멀리해야 할 것을 찾게 되거든."
나는 크게 겁먹은 적이 없다. 언니는 내가 겁이 없는 게 자폐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지금은 겁나고 무서웠다. 아나이스를 당장 감옥에서 빼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245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가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떠나는 거 싫어요. 정말."
조지안느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았다. "아직 몇 달은 더 남았어."
"그래도.…...
"오로르, 인생은 아주 거대한 이야기야. 우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곧 끝나겠지. 그래서 나는 조금 슬펐다. 물론 나는 선생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모든 모험이, 자기인생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다음 모험으로!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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