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대한 아이디어를 낚아채려고 열심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본다. 그들은 원대한 아이디어가 자신을 그저 그런 사상가에서 선구자격 사상가로 바꿔주길 바란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숙고하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아이디어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에 내보낸다.
선구자격 사상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고되게 주의를 기울이고싶어 하지 않는다. 주의 기울이기의 고됨은 유도나 활쓰기가 고된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명상이나 양육이 고된 것과 비슷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고된 것과도 비슷하다. 주의력은 뜨개질이나 펜싱처럼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주의력은 정신 상태이며, 방향성이다. 우리는 주의력을 학습하기보다는 주의력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소크라테스처럼 멈취 서서 자기 머리 밖으로 나올 때에만 가능하다. 시몬 베유는 이를 "탈창조decreation‘라 칭했다.
나는 "자아 벗겨내기 unselfing" 라는 아이리스 머독의 용어를 더선호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자신이 경험한 자아 벗겨내기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머독은그날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한 마리가 보였다. 머독은 이렇게 말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다. 자만심에 상처 입은 음울한 자신은 사라졌다. 이제 황조롱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문제들은 전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 P238

관심은 질보다 양을 파악하기가더 쉽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가장 쉬운 것을 평가한다.
- P247

베유는 행동과 결과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한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관심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위험하다. 결과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유가 주창한 것과 같은 순수한 관심에는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출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묻어 있지 않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 P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