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이유를 잘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 P7

또한 다자키 쓰쿠루를 제외한 다른 넷에게는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 있었던것이다.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와 오우미(靑海)이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와 구로노(異)였다. 다자키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이름에 색깔이 있건 없건그 사람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건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했고,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꽤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다른 넷은 당연한 것처럼 곧바로 서로를 색깔로 부르게 되었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라고, 그는 그냥 그대로 ‘쓰쿠루‘라 불렸다.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도 없이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하고.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슬픈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매그위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나는 앞으로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있을 자리는 바로 그곳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제 그에 대한 나의 모든 혐오감은 완전히 녹아 없어졌으며,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쫓기고 부상당하고 족쇄에 묶인 이 사람에게서 나는 오직, 내 은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 그리고 나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와 관대함의 감정을 기나긴 세월동안 조금도 변함없이 간직해 온, 그런 사람의 모습만을 보았기때문이다. 그에게서 나는 오직, 조에게 배은망덕하게 행동했던 나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의 모습만을 발견했던 것이다.
- P355

정말이지 조의 자상한 보살핌은 그때그때의 내 필요에 너무나 홀륭하게 잘 부합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의 손 안에 놓인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는 예전처럼 친밀하고 솔직 단순한 태도로,
그리고 드러내지 않고 보호해 주는 태도로 내 곁에 앉아서 내게 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고향 집의 낡은 부엌에서 지내던 그 시절 이후의 내 모든 삶이 지나간 내 열병의 정신이상증세의 하나였다는 믿음에 거의 빠져 들곤 했다.  - P393

다음 날 아침 나는 더욱 튼튼하고 상쾌해진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났으며, 지체 없이 조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아침 식사 전에 그에게 이야기하리라.
일단, 즉시 옷을 입고 그의 방으로 가서 그를 놀라게 하리라. 왜냐하면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방으로 갔다. 그는 방에 없었다. 방에 없는 것은 조만이 아니었다. 그의 짐 상자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침 식탁이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식탁위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편지의 짤막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난 이제 떠난다. 사랑하는 핍, 네가 다시 건강해졌고 내가 없이도 더 잘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추신, 언제나 최고의 친구.

편지 안에는 내가 체포당했던 원인인 빚과 그 소송 비용을 지불한 영수증이 동봉되어 있었다.  - P402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폐허의 장소에서 걸어 나갔다. 오래전 내가 대장간을 처음 떠났을 때 아침 안개가 걷혔던 것과 똑같이, 그렇게 저녁 안개가 그 순간 대지 위에서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밑으로 넓게 펼쳐져 나타난, 고요한 달빛 속의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 P4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네는 누구를 위해서 이 비밀을 밝히고자 하겠는가? 그 아버지를 위해서? 아이 어머니 때문에 그에게는 별로 득이 될 게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럼 그 어머니를 위해서? 만약 그녀가 그런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그녀는 현재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럼 그 딸을 위해서? 그녀의 출생 비밀을 밝혀 남편에게 알림으로써 20년 동안 피해 왔고 또 앞으로도 평생 안전하게 피할 수 있을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은 그 딸에게도 도움될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하네, 하지만 핍, 여기에다 자네가 그녀를 사랑해 왔으며, 그래서 그녀를 자네의 그 ‘가련한 환상‘, -그런데 그런 환상을 머릿속에 한두 번씩 품어 본 남자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네. - 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는 가정을 한번 덧붙여 보게. 그렇다면 나는 말하건대, 자네는 그렇게 비밀을 밝히느니 차라리 붕대를 감은 자네의 그 왼손을, 붕대를 감은 자네의 그 오른손으로 꽉 찍어서 잘라 낸 다음 그 도끼를 웨믹에게 주고는 남은 오른손마저 잘라내 버리라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네, 그리고 자네는 아마 잘 생각해 보고 나면 정말로 주저 없이 그렇게 할 것이네."
나는 위믹을 바라보았다. 마우 엄숙한 얼굴로 있던 그는 자기입술에 집게손가락을 엄숙하게 갖다 댔다. 나는 똑같이 그렇게했다. 재거스 씨도 똑같이 그렇게 했다. "자, 웨믹." 재거스 씨는 이제 평소의 태도를 다시 취하며 말했다. "핍 군이 들어왔을 때 어떤 항목을 하던 중이었지?"
- P2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뿐만 아니라 기린을 잡은 사람은 고기를 남들에게 나눠줘야하므로, 영리한 사람이라면 집 안에 틀어박혀 공익 정신이 강한누군가가 베이컨을 나눠준다는 희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짐승이 클수록 잡은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어지는데도 하드자족은 거의 전부를 이웃에게 나눠줘버릴 큰 짐승의사냥에 집착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너그러운 자선가가 되게 하는가?
호크스의 공동 연구자인 닉 블러던존스 Nick Blurton-Jones의 개념을 빌리자면, 그녀는 음식나누기를 일종의 <공인된 도둑질>이라고 믿고 있다. 기린을 잡은 사람이 먼저 자기가 가져갈 수 있는 최대량만큼 고기를 베어내고 나면,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고기를 가져가는 것을 막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고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짓궂은 심술일 뿐이다. 음식나누기가 인류의 진화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의 기원은 짐승 세계에서도 관찰되는 공인된 도둑질이라는 이 생각... - P157

이와 마찬가지로 사냥을 잘 하는 하드자족 남성은 적지 않은 사회적 보상을 받는다. 훌륭한 사냥 능력은 다른 남성들의 부러움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여성들의 존경을 가져다 준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훌륭한 사냥꾼은 더 많은 혼외 관계를 갖는다. 이것은하드자족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이크족이나 야노마모족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다른 종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아주 보편적 현상이며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인간이 덩치 큰 짐승 사냥에 집착하는 이유에 관한 열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포획률이 더 높은 작은 짐승을 포기하고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큰 짐승을 쫓아다니는 것이 전세계 인간 남성의 뚜렷한 공통점이다. 사냥꾼의 입장에 서서 이 문제를 검토해보자. 뿔닭 한 마리를 잡으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먹는다. 작은영양 한 마리를 잡으면 일부를 떼어 과거에 빚을 진 적이 있는 이웃에게 나눠준다. 그러나 기린을 잡으면 고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좋은 부위를 떼어 이웃집 여자에게 몰래 건넨다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 P159

트로브리안드의 감자 사건에 관한 말리노프스키의 기록은 인간사회의 선물을 둘러싸고 있는 전혀 이타주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잘 포착하고 있다. 또다른 기록에서 그는 해안 지대의 어업 마을과 내륙의 감자 재배 마을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어촌 사람들은 진주잡이를 시작했는데, 곧 그것이 고소득을 보장해 준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진주만 채집해도 감자와 생선을 충분히 살 수있었다. 그러나 내륙 마을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계속 감자를 선물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어촌 사람들은 감자 재배 마을에 보낼 생선을 잡기 위해 진주잡이를 포기해야 했다. 선물은 이처럼 의무를 창출하기 때문에 하나의 무기가 된다. 그러나 선물은 의무감이 전제되었을 때에만 무기가 될 수 있다.
선물 주고받기와 경쟁적인 호의가 우리의 본능 이전에 존재했던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본능, 즉 호의에 대한 존경과 함께 나누지 않으려는 자에 대한 경멸의 본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소유물 중에 음식먼큼 기꺼운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 본성의 이상할 정도로 관대한 측면, 즉 다른 소유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지나친 호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관한 단서를 우연히 찾아냈다. 나눔의 이득, 즉 노동의 분화와 협동적 시너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인간에게 최초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 것은바로 육류 사냥이었다.
음식나누기가 인간의 보편적 관습이고 그중에서 육류 배분이 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육류의 일회 획득 단위가 어떤 식량보다도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P128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유혹의 도구였던 남성의 사냥 행위가 아내와의 거래 도구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냥을 하게 된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에 따르면 노동의 성적분화는 인류 그 자체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 사건이다. 노동의 성적 분화 없이는 인류의 자연 서식지였던 메마른 초원에서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수렵만으로 생존하기에는 사냥에 너무 서투르며, 채집에서 얻는 식량은 기후에 따라 채집량의 변동이 너무 심하고 우리의 큰 덩치와 잡식성 위장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공급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합치면뛰어난 생존 능력이 획득된다. 여기에 날로 먹으면 위장이 튼튼해지는 것 외에는 득될 것이 없는 거친 푸성귀의 예비 소화 과정, 즉조리 기술을 추가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덩치 큰 군집성 사바나원숭이의 생태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