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런 타블로이드관 신문을 몇 가지 정도 산 후 가십거리들을 탐독했다. 전에 영국에 왔을 때 나도 늘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말도 안 되는 기사나 쓸데없는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모리 선생님 생각이났다.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참나무 마루가 깔린 집에 앉아 숨쉬기를 하면서 그 수를 헤아리고, 매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분이 떠올랐다. 반면에 나는 완전히 무의미한 것들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영화배우나 슈퍼모델, 다이애너비, 마돈나, 존 에프 케네디 주니어에 관한 최근 소문들에 매달려 지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묘하게 선생님이 보내는 질 높은 시간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할까?  - P75

"미치, 난 그 이상 자기 연민에 빠지진 않는다네. 아침마다.
조금씩 그런 기분을 느끼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걸로 끝이야."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하루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시간을 정해두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산다면, 무서운 병을 앓는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계신데 ...
"내 몸이 천천히 시들어가다가 흙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되니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기도 해."
그분은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나는 의자에 앉은 선생님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설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고, 바지를 올릴 수도 없는데, 그런데도 운이좋다고? 정말로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건가?
- P94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 가족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 돈도. 명예도."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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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

내 노은사의 마지막 수업은 1주일에 한 차례씩 선생님댁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서재 창기에서 땅에 떨어진 분홍빛 히비스커스 꽃잎을 내다보곤 했다. 수업은 화요일마다 아침 식사 후에 시작되었다. 주제는 ‘인생의 의미.‘ 선생님은 인생에서 얻은 경험들을 강의해 나갔다.
성적 평가는 없었지만 매주 구두 시험이 있었다. 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리고 이따금 선생님의 머리를 베개 위에 편안히 괴드린다든지, 흘러내린 안경을 코 위로 다시 밀어드려야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와 함께 작별의 키스를 해드리면 점수를 더 주섰다.
- P25

모리 교수님을 ‘코치‘ 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그 별명을무척 마음에 들어한다.
"코치라. 그거 좋지. 그럼 내가 자네 코치가 돼주지. 그러면 자넨 내 선수가 되는 거야. 이젠 늙어서 내가 살지 못하는 멋진 삶을 나 대신 살아줄 수 있겠지?"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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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생활이나 국가 정치에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인터넷 관련 사안들이 어떤 투표도 거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봐야 합니다. 몇 명의 엔지니어가 내린 결단으로 사용자의 이해나 동의 없이 인터넷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유사한 일이 분명 미래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정권의 탄생에 관해 말하자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단순한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내 존재는 사회와 무관해지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일반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목소리가 높은 곳까지 닿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엘리트층을 향한 맹렬한 반발로 이어진 것이지요.
- P26

 미래의 주요 문제들은 항상 지구 차원에서 발생할 테니까요. 특히 향후 수십 년 안에 인류는 세 가지 커다란 위기, 바로 핵전쟁, 지구온난화(기후변화), 그리고 과학기술에 의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기존의 사회 질서와 경제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고 수십억 명의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켜 대규모의 무용 계급을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로 인해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국제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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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밀려나가고 있다. 바닷가 부근의 물은 잔잔하고 쇳덩이 빛깔이지만, 롱웨이 록을 지나는 지점부터는 물살이 변덕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얀 물마루마저 보인다. 작은 만에서 바닷가재 부표가 살며시 까딱까딱 움직이고, 갈매기가 마리나 부근의 선창에서 배회한다. 하늘은 아직 푸르지만 북동쪽으로는 막 일어나고 있는 구름 띠와 수평선이 나란하고, 저쪽 다이아몬드섬의 소나무들은 꼭대기가 휘어져 있다.
- P311

 헨리는 이렇게 말하겠지. "오. 그렇지 않아, 올리. 내겐 당신이 예쁘기만 한걸." 그러나 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휠체어에 앉아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올리브는 매일 차를 몰고 가서 그의 곁을 지킨다. 당신은 성녀야, 몰리 콜린스는 그렇게 말했다. 맙소사, 멍청한 여자 같으니, 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
- P314

올리브는 아래층으로, 하얀 시하실로 내려갔다. 작은 벽장 같은 욕실로 들어서면서 올리브는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그리고 흰색 면 블라우스에 끈적이는 짙은 색 버터스카치 소스가 기다.
랗게 띠를 이루고 있는 걸 보았다. 별인간 심기가 다소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이걸 보고도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올리브는 오라 숙모와 똑같은 늙은 할망구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에 헨리가 그 할망구를 차에 대워 나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가끔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들르곤 했고, 올리브는 오라 숙모가 녹은 아이스크림을 앞자락에 흘리는 걸 지켜보았다.
그 광경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오라 숙모가 죽었을 때, 올리브는그 딱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어 기뻤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오라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라숙모가 아니었고, 아들은 자기가 흘렸을 때 이 점을 곧바로 지적했어야 했다. 이들이 뭔가를 앞자락에 흘렸다면 올리브가 응당 지적했을 것처럼, 아들 내외는 자신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어린아이로 여겼던걸까? - P407

그렇기에, 지금 그녀 곁에 앉은 이 남자가 예전 같으면 올리브가 태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라. 그도 필시 그녀를 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둘은 이렇게 만났다.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 치즈 두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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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은 심장발작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죽게 될까봐 걱정했다. 지난번 발작은 부엌에서 일어났지만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몹시 불안했다. 수년 전에, 그런일을 목격했다. 한 남자가 노상에서 죽은 것이다. 구급 의료진이 남자의 웃옷을 찢었는데, 조금만 집중해서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를 울게 만들 광경이었다. 배가 드러난 사내의 활짝 벌린 팔이 축 늘어져 있던 것, 아무것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누운 모습.
죽어서 누워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애잔하고 가련한 일인가, 제인은 생각했다.
- P231

드뷔시의 곡이 연주되는 동안 그는 팔짱을 끼고 잠이 들었다.
남편을 보며, 제인은 음악으로 가슴이 충만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곁에 앉은 이 남자, 평생 어린 시절의 고통을 떨치지 못했던 이 늙은(!)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언제나 밥에게 화를 냈다. 지금 이 순간도 제인은 그의 얼굴에서 의뭉스럽고, 늘 겁에 질린 어린 소년이 보이는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이 순간마저도, 그의 얼굴에는 불안으로 긴장한 표정이 감돌았다. 행운이야. 제인은 손모아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그의 다리에 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군가를 수십 년 동안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 P235

"사람마다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겠지요." 데이지가 예의 그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는 상냥한 목소리밖에 가진 게 없어,
올리브는 생각했다. 데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냥한 사람, 제길, 전부 엿 먹으라고 해, 올리브는 개가 기다린다며 아직 가득찬 찻잔을 그대로 두고 일어섰다.
이런 식이었다. 올리브는 아무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며칠마다 우체국에 갔는데, 그것도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에밀리 벅은 매번 그렇게 물었고 올리브는 짜증이 났다.
"그럭저럭 지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헨리 앞으로 오는 게 태반인 우편물을 받는 게 정말 싫었다. 게다가 청구서는 왜 그리 많은지! 청구서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것들은 아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광고 우편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올리브는 커다란 회색 쓰레기통 곁에 서서 광고 우편물을 죄다 버렸는데,
가끔 청구서가 쓰레기통에 섞여 들어가면 에밀리가 카운터 안쪽에서 계속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숙이고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야 했다.
카드 몇 개가 날아왔다.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슬픕니다."
"...… 소식에 마음이 아프네요." 올리브는 카드마다 답장을 했다.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이렇게 썼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거 다 아는 처지에 마음 아플 게 뭐가 있어요." 자기가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라도 든 것은 한두 번밖에 없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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