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죽은 자들이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 가. 책을 읽다가, 문득 그들과 있었던 일들에 사로잡힌다. 어차피 살아 있는 이들이라고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죽음과 함께 바로 잊히는 이도 있고, 실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기억하게되는 이도 있다. 대체로 슬픔과 고통, 당혹감을 안겨준 사람이 더 오래 가슴에 남는 것 같다. - P144
한열이 자꾸만 소환되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그가 살아남았다면 살아갔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를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에 살게 되었다면 우리를 대신해 죽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기린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런 존재, 조용히 기억하고 기리는 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전태일이겠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세월호의 승객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한열이었다. 내가 그였을 수 있고, 그 또한 나였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종로에 나가면 ‘도나 기를 아십니까‘ 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내 어깨에 앉아 있기 때문에 삶이 피곤한 거라고 단언하는 이들, 코웃음을 지며 그들을 지나쳐가지만, 그들의 말이 비유라면 몇 그른 말도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어깨가 늘 그렇게 무겁다는 것 이 세상에는 먼저 죽은자들의 문이 있다는 것, 한열을 떠올릴 때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 P150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을뿐." 그의 말대로 어떤 미래는 이미 실리콘밸리에 도착해 있다. 거기서는 구글이 제작한 무인자동차가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어떤 미래는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 P163
나 역시 그리스인들이 수천 척의 배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 정벌을 떠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역시 이 두 작품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이런 어법을 이탈로 칼비노에게 배웠다. 「왜 고전을 읽는가」의 서두에서 칼비노는 고전을 사람들이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게 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가 고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의 겸연쩍음을 짚었다면 또 다른 정의는 그것을 사면하고 있다. 그는 고전이 처음 읽을 때조차 다시 읽는다는 느낌을주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처음 읽는데도 어쩐지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 P203
이순신을 소재로 한 수많은 서사물, 김훈의 『칼의 노래」라든가 영화 <명량>을 통해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잘 알려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 때에는 누구든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현대의 작가라면 적어도 이순신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연대기순으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명량해전이 임박한 시점이라든가,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통제사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극적인 포인트에서부터 시작해 간혹 과거의 일화들을 회상해가며 결정적 장면, 즉 그의 전사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이런 기법들을 터득하고 있었으며,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점이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호메로스가 이천팔백여 년 전에 이미 대단히 ‘현대적인‘ 작품을 쓰고 있었다고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오히려 현대의 작가들이 쓰고 있는 작품들이, 소설이든 영화든 TV 드라마든 간에, 고대적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이야기 방식에서 그렇게 멀리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지 몇 백 년이 지난 후 쓰인 다른 작품을 보면 이런 심증이 좀 더 굳어진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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