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선호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비전에 따르려는 자발성을 말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미술관의 항복은 이미지 기반 문화에서는 예술이 오락으로 마케팅될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잠시 멈추어 이 선택의 결과를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억 대신 수백만 장의 인스타그램 사진만 있는 사회, 즉각적인 복제만을 기대할 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문화를 전달하는 힘든일은 지속하지 않는 사회를 갖게 될 것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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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 세례명은 ‘마리아‘입니다. 세례명이 ‘마리아‘라고 하면 성당 형제자매님이 제게 물어요. 감히 마리아를 세례명으로 써도 되느냐고. 저는 몸을 살짝 기울여 속삭입니다.
"당연히 안 되죠. 교황청에서 저한테만 특별히 허가해 준
거예요."
농담입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리아니 뭐니 질문하는 형제자매님 자체가 없거든요. 제 세례명의 적절성에 어느 누가 관심을 두겠습니까. 설령 "제 세례명은 ‘킴 카다시안입니다."라고 소개해도 관심 따위 못 받을 텐데요. 여하간 저는 마리아이며 가톨릭 전통 가문에서 나고 자랐어요.
부적절하게도 제 이상형은 예수님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요. 타이거 jk나 지미 헨드릭스, 두아 리파 같은... 시대정신에 따라 인종, 젠더 다양성을 고려해 나열했는데 어떻게 좀 괜찮았나요? 말하자면 슬렌더에 숱이 풍성하고 퍼포먼스에 능한 사람에게 끌립니다. 이 중에도 단연 예수님이 가장 섹시하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초능력 하며 전대미문의 대디 이슈까지. 게다가 혈기 왕성한 열두 남정네를 이끈 알파카리스마를 지녔잖아요. - P6

"아니, 이 바보 같은 년이!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받잖아아!
내가 아는 한 치릴로는 로무알다를 좀 불쌍히 여겼다. 로무알다는 사람이 태어나서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 살 된 첫째 아기를 교통사고로 잃는다든지, 하는몇 년 전, 나의 오빠 사무엘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아기를 이다음에 만난다면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을 거라고했다. 네가 그렇게 가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냐고. 이제 사무엘은 먼저 간 아기를 ‘형‘이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어릴 적, 사무엘은 "형은 순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내 귓가엔 이미 ‘콩‘ 소리가 울려 퍼진 듯했다. 나는 사무엘에게 "아기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꾸했다. 나도 이제 아기를 ‘오빠‘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나는 "오빠는 다 잘 먹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순하고 다 잘 먹던 아기에게는 잘못이 없었고 젊은 부모에게도 잘못이 없었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사실이다. - P22

우리 집 전화번호 뒷자리, 변하지 않는 네 개의 숫자, 그건 아기의 생일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렇게 죽은 아기의 생일을챙겼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그래도 아기가 태어났었고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했다. 솔직히 열 살 내게는 이런 의미심장한 것들, 이를테면 전화번호 뒷자리에 담긴 사연,
숫자가 불러일으키는 심상 같은 것들이 좀 부담스러웠다. 집으로 전화를 걸다 별안간 슬퍼져서 무척 억울한 날도 있었다.
우리 남매가 심하게 다툰 날이면 엄마는 아기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했다. 아기는 정말 순했고 귀족처럼 생겼었다고. 너네는 아기가 죽은 다음에 태어난 아이들, 어찌 보면 아기가 죽은 까닭에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인데 이렇게 말썽 파우고 서로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때론 몸까지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낯선 아줌마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위해 아기를 죽이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기의 죽음에 근거해 태어나다니, 최악의 원죄를 지은 나는 정말 못된 아이다. 아기에게 미안했다. 솔직히 짜증도 났다. 우리 집에 늘 ‘유가족‘스러운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에 대하여. 게다가 왜 하필 예쁜 세 살에 죽어 버린 거야. 아기가나처럼 열 살, 오빠처럼 열세 살까지 살아 있었다면 결국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가 버린 아기가 얄미웠다. 영원히 이길 수 없는, 내 부모의 첫사랑.
아기를 상대로 비겨 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긴하다. 어버이날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편지 한 줄을 달랑 적어 전달한 날, 선물이 없는 대신 글씨라도 또박또박 쓰려고 어찌나 애를 썼던지.
‘저희를 위해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신 일에 대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원소윤 올림‘
하나 마나 한 말을 적어 건넸는데 민망하게도 엄마는 그 편지를 액자에 꽂아 거실 벽면에 걸었다. - P74

메일을 쓸 때마다 큰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모인 세계‘와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모인 세계‘의 경계가 새로이 생겨났다 지워졌다 했다. 말할 수 있는 일이 말할 수 없는 일을더 흥미롭게 만들었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말할 수 있는 일을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메일의 맺음말은 늘 같았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원소윤 올림‘
큰아빠는 일주일 내로 반드시 답장을 보내오셨다. 답장이몇 줄이든, 성의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 시절, 그 응답보다 더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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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대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계를 우리 몸에 장착한다. 계몽주의 과학자들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 전문가들은 오감으로는더 이상 충분치 않고, 그것만으로는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새로운 정교한 기술로 오감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칩 제조업체인 퀄컴 Qualcomm의 CEO가 설명했듯이 우리는 "여섯 번째 디지털 감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열성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스마트한 수준을 넘어 감정까지 인식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받아들인다. 과학자이자 인공지능 연구자인 에곤 L. 판덴브룩은 ‘유비쿼터스 컴퓨팅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을 필수 요소로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미래에서라면 기술은 인간을 확장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에 침투할 것이다.
MIT의 앨릭스 펜틀랜드Alex Pentland 와 같은 연구자들은 대면 상호작용과 인간의 기량이 약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해법을 제시한다. 걱정은 그만두고 기계가 일을 하게 두라는 것이다. 그들은 네트워크 과학과 보완적 장치가 약화되는 사회적기량을 대신할 거라고 주장한다. 곧 기계 장치가 우리 대신 자신과 타인의 신호를 읽어줄 테니까. 우리보다 더 능숙하게. 펜틀랜드는 그의 책 <어니스트 시그널>에서 "인간의 행동을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삶을 최적화할 능력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펜틀랜드와 그의 동료들은 이드"를 가시화하는 일종의 프로이트 기계를 만들려 한다. 이 기술이 있다면 사람들은 "집단 내의 정보 흐름을 모니터링함으로써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을 개방적이고 의식적인 정보로 전환할 수 있다." 펜틀랜드와 그의 동료들은 수백년간 개인의 이성을 떠받들어왔던 계몽주의 사상은 잘못되었다고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개인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실상 우리는 "사회적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즉 우리는 비이성적이며 쉽게 속아 넘어가는 무리다. - P197

우리의 상황은 화면의 이미지처럼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감정을 알려주는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는 집단적으로 감정적 기량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페이스북에 우리의 기억을, 구글에 우리의 호기심을, 휴대전화에 내장된 GPS에 우리의 방향 감각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제 이런 기술이 우리 자신에대한 보다 합리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주장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 P203

 그녀는 "도박 기계 설계자들은 도박꾼을 속이기 위해 기술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설계자들조차 금세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된다. 인터내셔널 게이밍 테크놀로지 International Gaming Technology의일원은 왜 어떤 기계가 다른 기계보다 사용자를 붙잡아두는 힘이더 강한 것처럼 보이냐는 쉴의 질문에 B. F.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유능한 세일즈맨이나 정치인은 이미 알고 있듯이, 반복적이고권위를 이용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설득 도구는 언제나 유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득 기술은 과거의 설득 기술과는 달리 윤리적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오늘날의 설득 기술에는 투명성이 부족하다. 정치인이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것은 자신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 쓰인 설득 기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초창기에 열린 설득 기술 콘퍼런스에서 한 참여자는 심박수와 음성을 모니터링하는 센서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눈에 띄지 않는다는점에서 설득 기술에 이상적인 도구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 사용자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는 설득 기술의 설계가 가능하다"면서 찬성의 뜻을 표했다. 대부분의 설득 기술 회사가 선택한 디자인과 마케팅 방식을 보면 이런 기술을 숨겨두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있다. - P207

그러나 일부 윤리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런 기술은 이미 "설득프로파일링"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다." 기술 기업들이 특정 설득전략에 대한 반응을 바탕으로 개인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것이다. 당신은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사는 편인가, 아니면 친구들이 추천하는 책을 사는 편인가? 이를 토대로 아마존은 당신에게 노출될 추천 도서 목록을 미묘하게 조정한다. 정부나 기업이 특정한 감정적 호소에 대한 당신의 취약성 관련 정보에 접근권을 가진다면어떻겠는가? - P208

항공 업계에서는 불연성 소재로 좌석 쿠션을 만들거나 통로에 비상등을 추가하는 등 재료와 구조를 바꿔서 항공기의 위험을 줄이는 복잡한 과정을 "치명성 제거 delethalization"라고 부른다. 디지털시대의 쾌락도 비슷한 치명성 제거의 과정을 거쳤다. 개인의 쾌락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퍼지고 전시된 적은 없었다. 유튜브의 동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위험한 행동을 대리로 목격할 수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가 사적 경험의 대량소비를 촉진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연결된 느낌은 가짜 친밀감일 뿐이다.
또한 매개는 쾌락을 균질화한다. 마치 모든 경험이 똑같은 몇개의 필터를 통과한 것처럼, 마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도전이나 곡예를 하고 촬영을 하고 공유를 하는 것처럼 쾌락을 순응적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쾌락과 경험을 공개하는 플랫폼들은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경험에서 불쾌한 부분을 제거할 것을 장려한다. 당신의 쾌락은 다른 모든 사람의 쾌락과 마찬가지로 앱과 플랫폼을 통해 여과되고 같은 방식으로 소비된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들이 잘 조정된 끊임없는 흐름으로 소비되는것이다. 이것은 소심한 형태의 쾌락으로서 그 증가세는 너무 강렬하거나 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통제할 수 없거나 너무 육체적이거나 너무 비순응적인 경험으로부터의 집단적인 후퇴를 암시한다. 쾌락은 디지털 형태로 더 쉽게 소화되고 공유될수 있도록 치명성이 제거된다. 그러면 쾌락이 완전히 탈바꿈된다.
때로 쾌락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 조작된 경험, 즉 위험보다는 통제, 우연보다는 검색, 변덕보다는 알고리즘, 개인 정보 보호보다는 편의를 우선한다. 다시 말해 쾌락의 가장 큰 변화는 쾌락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화된다는 점이다. - P222

새로운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여행의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낯선 땅의 기묘한 냄새와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수돗물에서 나는 톡 쏘는 냄새, 이상하게들리는 전화 벨소리, 음정이 맞지 않는 듯한 불규칙한 경찰 사이렌, 혀에 느껴지는 유난히 진한 커피의 질감. 사소한 감각적 경험조차도 장기 기억을 만들어낸다.  - P227

 "전형적인 것은 비판 없이 즐기지만, 새로운 것에는혐오감을 느끼며 비판한다."
이는 매개된 경험이 촉진하는 또 다른 경향, 즉 인내심 부족으로이어진다. 오락을 편리하게 즐기게 될수록 어렵거나 불편한 문화적 표현에 마주하려는 결의는 약해진다. 이제 음악과 이미지는 우리에게 직접 전달되고, 우리는 집에서 편안하게 그것들을 소비한다. 인터넷에서 유명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영향은 어떨까? 벤야민이 주장했듯이 "예술의 중요한 과제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온전히 충족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것이 캔버스와 스크린의 차이다. 벤야민은 말했다. "그림은 관람객을 사색으로 이끈다.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연상되는 것들에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영화 프레임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장면은눈에 포착되자마자 바뀐다." 캔버스의 특성 (유일무이함, 영속성)은 "일시성과 재현성"을 촉진하는 스크린과는 반대다. 그리고 캔버스는 집에서 마음대로 소비할 수가 없다. 캔버스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편안함 너머의 세계로 나서야 한다.
벤야민은 인내심 부족이 결국 예술의 "오라"를 파괴하고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겸손을 없앨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의 오라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 이제 오라는 예술과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술 장치에 존재한다.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 과거에는 예술과 종교가 가졌던 힘을 기술에 부여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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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득 어제 일리 떠올랐다. 그러자 어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欺霜賽雪( 희기가 서리를 능가하여, 백설을 걸고 내기할 수 있다)‘ 넉 자를 썼다가 주인이 돌연 안색이 나빠졌으니 오늘은 단연코 그 치욕을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점포 머리에 달 만한 액자를써드릴까요?" 했더니, 주인을 비롯하여 모두들 좋다고환호한다. 나는 곧바로 ‘기상새설‘ 네 글자를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그런데 여럿이 서로 쳐다보는 품이 어제 전당포주인과 마찬가지로 적이 수상쩍다. 속으로, ‘이것 참 괴이한일이구나‘ 여기며 물었다.
"이 말은 이 가게와 별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가게는 부인네들 장식품을 취급하지,
국숫집은 아니거든요."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전날의 일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시험 삼아 한번 써 본것이오."

••••••

일행들에게 일전의 일을 이야기하니 배꼽을 잡고 웃지 않는 이가 없다. 그후로는점포 앞에 ‘기상새설‘이란 넉 자를 볼 때마다 ‘음, 필시 국숫집이로군‘ 했다.
이는 그 주인장의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 P226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한다. 다른 사람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대체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위쪽으로는 깨진 기와 조각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혹은 네 조각을 모아 쇠사슬 모양을 만들거나, 또는 네조각을 등지게 하여 노나라 엽전 모양처럼 만든다. 그러면 구멍이 찬란하게 뚫리어 안팎이 서로 비추게 된다. 깨진 기와 조각도 알뜰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천하의 무늬를 여기에 다 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난하여 뜰 앞에 벽돌을 깔 형편이 안 되는 집들은 여러 빛깔의 유리 기와 조각과 시냇가의 둥근조약돌을 주워다가 꽃 • 나무 • 새 · 짐승 모양을 아로새겨 깔아 놓는다. 비올 때진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기와 조각 하나, 자갈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고루 활용했기 때문에 천하의 고운 빛깔을 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똥오줌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거름으로 쓸 때는 금덩어리라도 되는양 아까워한다. 한 덩어리도 길바닥에 흘리지 않을뿐더러, 말똥을 모으기위해 삼태기를 받쳐 들고 말 꼬리를 따라 다니기도 한다. 똥을 모아서는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육각으로 또는 누각 모양으로쌓아 올린다. 똥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이에 다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리라.
"저 기와 조각이나 똥덩어리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어찌 성지, 궁실, 누대, 점포, 사찰, 목축, 광막한 벌판, 아스라한 안개 숲만 장관이라고 할 것인가 - P241

무릇 수레는 하늘에서 나와 지상에서 운행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레는 육지를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집인 셈이다. 나라에 크게 쓰일 물건으론 이 수레만 한 것이 없다. 

••••••

우리나라에도 수레가 없지는 않으나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않고 바퀴 자국이 한 궤도를 그리지 못하니, 수레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우리나라는 마을이 험준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대체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았을 뿐이다. 수레가 다니게 되면 길이야 저절로 닦일 터,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만 걱정한단 말인가. - P246

 그런데 이곳에서 흔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하디 귀해, 다만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실물은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인가. 단지 실어 나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수 천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 안에 수레가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양반들 잘못이라고 답할수밖에 없다. 양반네들은 평소 글을 읽을 때 주례는 성인께서 지으신 글이라며 "윤인輪人"이니 "여인與人"이니
"거인車人" "주인"이니 하고 떠들어 댄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운행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 글만 읽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니, 이런 공부가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P250

해가 뜰 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야 좋을 성싶지만 사실은 그게 해돋이구경으론 가장 멋대가리가 없다. 둥글고 붉은 구리 쟁반 하나가 바다 속에서불쑥 솟아날 뿐이니 무에 볼 것이 있겠는가. 해는 임금의 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임금을 찬미하여 "바라볼 땐 구름이요, 다가서니 해일러라"라고 한것이다. 이렇듯 해가 돋기 전에는 반드시 자욱한 구름 기운이 그 가장자리에몰려들어 마치 앞길을 인도하는 듯, 뒤를 따르는 듯, 의장을 갖춘 듯, 수천수만의 기병이 임금을 옹위하여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펄럭이고 용과 뱀이꿈틀거리는 듯해야 비로소 장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구름이 너무 많이끼면 도리어 흐리고 가려져서 또한 볼 것이 없다. 새벽엔 밤새 모아진 순음의기운이 내리 쏘이는 태양과 맞부딪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바위 틈에선 구름을 토하고 시냇가에선 안개를 뿜어내면서 서로 피어올라 해가 돋을락 말락 할 때 원망스러운 듯 수심에 겨운 듯 흙비 속에 잠긴 듯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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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되겠습니다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기에게 물어봐야 될 것이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 같은 기쁨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한것 아니겠나.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삶이란 성인이든 우매한 백성이든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온갖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 황해도의 고을 이름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 P140

한 관인이 마루 위 걸상에 걸터앉아 있고 그 뒤에는 한 사람이 손에 붓과 종이를 들고는 공손한 자세로 서 있다. 뜰 아래엔 죄인 하나가 꿇어앉아 있다. 좌우에는 한쌍의 사령이 큰 곤장을 짚고 서 있다. 하지만 거행하라는 분부나 호통도 없이, 그저 관인이 죄인을 마주보고 순순히 말로 따진다. 한참만에야 큰 소리로 "매우쳐라"고 호통하니, 사령이 손에 들었던 곤장을 던지고 죄인 앞으로 달려가서손으로 따귀를 네다섯 번 때리고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막대를 들고섰다. 다스리는 법이 아무리 간단하기로 ‘따귀형‘은 난생 처음 봤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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