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제 세례명은 ‘마리아‘입니다. 세례명이 ‘마리아‘라고 하면 성당 형제자매님이 제게 물어요. 감히 마리아를 세례명으로 써도 되느냐고. 저는 몸을 살짝 기울여 속삭입니다. "당연히 안 되죠. 교황청에서 저한테만 특별히 허가해 준 거예요." 농담입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리아니 뭐니 질문하는 형제자매님 자체가 없거든요. 제 세례명의 적절성에 어느 누가 관심을 두겠습니까. 설령 "제 세례명은 ‘킴 카다시안입니다."라고 소개해도 관심 따위 못 받을 텐데요. 여하간 저는 마리아이며 가톨릭 전통 가문에서 나고 자랐어요. 부적절하게도 제 이상형은 예수님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요. 타이거 jk나 지미 헨드릭스, 두아 리파 같은... 시대정신에 따라 인종, 젠더 다양성을 고려해 나열했는데 어떻게 좀 괜찮았나요? 말하자면 슬렌더에 숱이 풍성하고 퍼포먼스에 능한 사람에게 끌립니다. 이 중에도 단연 예수님이 가장 섹시하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초능력 하며 전대미문의 대디 이슈까지. 게다가 혈기 왕성한 열두 남정네를 이끈 알파카리스마를 지녔잖아요. - P6
"아니, 이 바보 같은 년이!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받잖아아! 내가 아는 한 치릴로는 로무알다를 좀 불쌍히 여겼다. 로무알다는 사람이 태어나서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 살 된 첫째 아기를 교통사고로 잃는다든지, 하는몇 년 전, 나의 오빠 사무엘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아기를 이다음에 만난다면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을 거라고했다. 네가 그렇게 가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냐고. 이제 사무엘은 먼저 간 아기를 ‘형‘이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어릴 적, 사무엘은 "형은 순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내 귓가엔 이미 ‘콩‘ 소리가 울려 퍼진 듯했다. 나는 사무엘에게 "아기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꾸했다. 나도 이제 아기를 ‘오빠‘라 부르지 않고 ‘아기‘라 부른다. 나는 "오빠는 다 잘 먹었어?" 질문하던 아이였다. 순하고 다 잘 먹던 아기에게는 잘못이 없었고 젊은 부모에게도 잘못이 없었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사실이다. - P22
우리 집 전화번호 뒷자리, 변하지 않는 네 개의 숫자, 그건 아기의 생일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렇게 죽은 아기의 생일을챙겼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그래도 아기가 태어났었고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했다. 솔직히 열 살 내게는 이런 의미심장한 것들, 이를테면 전화번호 뒷자리에 담긴 사연, 숫자가 불러일으키는 심상 같은 것들이 좀 부담스러웠다. 집으로 전화를 걸다 별안간 슬퍼져서 무척 억울한 날도 있었다. 우리 남매가 심하게 다툰 날이면 엄마는 아기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했다. 아기는 정말 순했고 귀족처럼 생겼었다고. 너네는 아기가 죽은 다음에 태어난 아이들, 어찌 보면 아기가 죽은 까닭에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인데 이렇게 말썽 파우고 서로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때론 몸까지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낯선 아줌마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위해 아기를 죽이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기의 죽음에 근거해 태어나다니, 최악의 원죄를 지은 나는 정말 못된 아이다. 아기에게 미안했다. 솔직히 짜증도 났다. 우리 집에 늘 ‘유가족‘스러운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에 대하여. 게다가 왜 하필 예쁜 세 살에 죽어 버린 거야. 아기가나처럼 열 살, 오빠처럼 열세 살까지 살아 있었다면 결국 우리와 비슷한 모양새,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가 버린 아기가 얄미웠다. 영원히 이길 수 없는, 내 부모의 첫사랑. 아기를 상대로 비겨 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긴하다. 어버이날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편지 한 줄을 달랑 적어 전달한 날, 선물이 없는 대신 글씨라도 또박또박 쓰려고 어찌나 애를 썼던지. ‘저희를 위해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신 일에 대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원소윤 올림‘ 하나 마나 한 말을 적어 건넸는데 민망하게도 엄마는 그 편지를 액자에 꽂아 거실 벽면에 걸었다. - P74
메일을 쓸 때마다 큰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모인 세계‘와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모인 세계‘의 경계가 새로이 생겨났다 지워졌다 했다. 말할 수 있는 일이 말할 수 없는 일을더 흥미롭게 만들었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말할 수 있는 일을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메일의 맺음말은 늘 같았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원소윤 올림‘ 큰아빠는 일주일 내로 반드시 답장을 보내오셨다. 답장이몇 줄이든, 성의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 시절, 그 응답보다 더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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