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렇게 우연히 노래랑 나랑 만났는데, 또 너무 좋은데, 나는 내려야 하고, 그렇게 집에 가면서,
나는 그 노래 제목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용대가 물었다.
"그럼 다 듣고 내리지 그랬어요."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따금 그 아가씨 말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던 기분이. 어쩌면 명화, 그렇게 잠깐 살고 만 북쪽 여자도 용대에겐 끝까지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다 듣고 내리지 못한 노래. 생각도 잘 안 나면서 잊을 수 없는 음악 말이다. 명화는 많은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용대가 섭섭한 것은, 그녀 역시 자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가버렸다는 거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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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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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의 반복이 소위 ‘팔자‘다. 팔자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엇박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스텝이 꼬이면 강밀도(intensity) 역시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강밀도는 각각의 리듬에 변화와 개성을 부여하는 진동 혹은 임팩트다. 그 기준은 청정함이다. 청정하다는 건 말과 행동, 명분과 실상, 앎과 삶 사이의 간극이 없음을 의미한다. 간극이 없어야 다음 스텝으로 경쾌하게 넘어갈 수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발산과 수렴을 스스로 조율하는 힘에 다름 아니다. 다양성의 시공간이 열리는 것도 그 속에서다. 고로, 인생과 우주의 원칙은 간단하다. 리듬을 타고 강밀도를 높여라!
- P223

공간을 사랑하는 법도 시간을 조율하는 기술도, 스펙이 아무리 빵빵하다 한들 기본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거꾸로 기본기만 제대로 익혀도 어디서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요컨대, 몸과 시공간, 그리고 삶은 나란히, 함께 간다. 계절의 변화가 ‘천지인‘ 삼박자의 리듬을 타는 것처럼.
그래서 알게 되었다. 왜 『논어』에서 문자보다 ‘쇄소응대‘ (灑掃應對; 청소와 응대)를 더 강조했는지, 출가하면 왜 설거지와 청소부터 시키는 건지. 화창한 봄날 왜 이리 꽃샘추위가 지독한지도.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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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황진이 청순하지도 요염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구획자체를 간단히 뭉개 버렸다. 또 의존하지도 매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전하는 ‘사랑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이란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것. 그러니 누구든 ‘사랑의 화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P96

더 놀라운 건 그 내용이 거의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희한하게도 모든 상처의 원천은 유년기다. 임마가 나를 버렸어, 아빠가 집을 나갔어, 언니 혹은 오빠 때문에 내가 방치되었어, 결국 문제는 가족이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질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된다는 건 의장막을 벗어나 세계를 직접 대면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삼각형과는 전혀 다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고, 선배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혹은 영웅과 라이벌을 만나고 또 은인과 원수를 만나고…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상처가 삶을 지배한다면 그건 그 사이에 전혀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보통의 심리치료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고 치유하며 통합하는 직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을 얻게 되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통을 유발한 책임을 부모나 주의 사람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자신은 희생자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허훈,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이담북스, 2010, 83쪽)  - P104

그래서 아주 역설적이게도 가방끈이 길수록 ‘자율성 제로‘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즉, 요즘엔 대학원생들조차 뭘 배우려면 유명학원에 등록을 하거나 그 방면의 매뉴얼을 확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도서관과 책을 뒤지고 친구나 선배한테 물어 가면서 앞을 스스로 구성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발성과 능동성을 상실하는 것, 교육적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큰 마이너스는 없다. 대체 왜 그토록 서두르고 조급해하는가? 라고 물으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맞는 말이다. 개천에선 원래 용이 나지 않는다. 용은 본디 ‘큰 물‘에서 나는 법이다. 헌데 ‘큰 물‘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건 사이즈가 아니다. 얼마큼 활개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지가 꽁꽁 결박당해서는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되기어렵다. 그럼 뭐가 나느냐고? 도처에서 ‘괴물‘이 출현한다. 용과 괴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용은 여의주를 머금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면서 모든 미꾸라지들을 함께 도약하도록 이끄는 존재다. 괴물이란 영화 <괴물>에서 보듯,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느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존재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존재, 그것이 바로 괴물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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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은 어떠니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2년 만이었다. 오늘은 일이 있다고 했다. 선배는 선배답지 않게 물었다. 몇 시에?
저녁때 고향에 가봐야 해요. 뭉그적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덧붙였다. 친구 장례식이 있어서요. 선배는 "아……" 하고 대꾸한 뒤 꾸물대다 물었다. 그럼 오후는 어떠니?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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