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삽화 횟수가 많을수록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며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심각해지고 간격도 짧아진다. 이러한 가속성은 우울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울증의 첫 발병은 대개 충격적인 사건이나 비극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증 발병의 유전적 소인을 지닌 사람들은, 케이 재미슨의 표현을 빌자면 "바짝 마른 장작처럼, 삶에서 불가피하게 튀는 불똥들에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다." 그리고 재발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상황에 관계없이 일어난다. 어떤 동물에게 매일 한 차례씩 자극을가해 발작을 일으키면 결국 나중에는 자극을 가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 번씩 자동적으로 발작이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도 몇 차례 우울증을 겪게 되면 자꾸 되풀이해서 그런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울증이 외적인 비극에 의해 야기된다 해도 결국 생화학적 작용뿐 아니라 뇌의 구조까지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P88

스트레스로 장기간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면 코르티솔 체계가 손상되어, 나중에는 일단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기 시작하면 쉽게 중단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벼운 충격에는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했다 이내 정상화되지만 코르티솔 체계가 손상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것이나 그러하듯 코르티솔 체계도 한번 무너지면 작은 충격에도 다시 무너지기 쉽다. 과로로 심근경색을 일으킨 사람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서도 다시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그것은 심장이 지쳐서이따금 큰 무리가 없이도 그냥 손을 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
내과적 질병이라 해서 사회심리적 원인들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영과 함께 일하는 후안 로페스의 말을 들어보자. "내 아내는 내분비 전문의로 소아당뇨병 환자들을 봅니다. 당뇨병은 분명 췌장의 질환이지만 외부적 요인들의 영향도 받아요. 먹는 음식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도. 가정 환경이 나쁜 아이들은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혈당량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뇨병이 정신 질환이 되는 것은아니에요." 우울증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생물학적 변화를 불러오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CRH가 분비되며 우울증의 생물학적 실재가 야기되는 경우가많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심리학적 기술들은 CRH와 코르티솔 수치를 억제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다시 후안 로페스의 말이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발현을 통제할 수는 있지요." - P92

이런 현상은 가족들과 가족 관계에 커다란 부담을 준다. "아내는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 그녀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웠어. 고마운 일이지." 그러나 대개 가족들과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관대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완전히 무능력자가 된 것처럼 취급하면 그 자신도 스스로를 완전한 무능력자로 보게 되며 결국 그는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진짜 무능력자가 되어 버린다. 약물치료는 사회적 불관용을 낳았다. 한번은 병원에서 어떤 여자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문제가 있니? 그럼 프로작을 먹고 이겨 낸 다음에 연락해라." 우울증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관대할 것인지에 대한 바람직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환자나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우울중 환자의 가족들은 절망에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 P99

 피츠버그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증 우울증의첫 삽화는 대개 생활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두 번째삽화로 가면서 관련성이 적어지고 네 번째, 다섯 번째쯤 되면 생활사건과 전혀 관련성이 없어진다. 조지 브라운은 우울증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자체의 추진력으로 발병하는" 임의적이고 내인적인형태가 되며 생활사건과 분리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우울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한 사건들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사건들을 경험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을 일으키는 이는 다섯 명가운데 한 명 꼴에 불과하다. 스트레스가 우울증 발병률을 높이는건 분명하다. 스트레스 중에서 으뜸은 굴욕감이고 두 번째는 상실감이다. 생물학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최선의 방어책은 외적인 굴욕들을 흡수하고 최소화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다. 조지 브라운은 이렇게 인정한다. "사회심리적 변화가 생물학적 변화를 만든다. 다만 취약성은 반드시 먼저 외적인 사건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한다." - P100

우울증은 불안 증세들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불안증과 우울증을 따로 다룰 수도 있지만 불안증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과대학교의 제임스 밸린저는 그것들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조지 브라운은 간명하게 "우울증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증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두려움에 대한 슬픔의 관계는 희망에 대한 기쁨의 관계와 같다고 했듯 불안증은 우울증의 전조다. 나는 우울증 상태에서 너무도 많은 불안을 겪었고 불안에시달릴 때 너무도 우울했으므로 위축감과 두려움이 뗄 수 없는 관게임을 알고 있다. 순수한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 환자들의 절반가량이 5년 이내에 중증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경우 단일 유전자 세트를 공유한다. (이 유전자세트는 알코올중독 유전자들과도 관련이 있다.) 불안증을 동반한 우울증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자살률이 훨씬 높으며 회복하기도 훨씬 어렵다. 제임스 밸린저의 말을 들어 보자. "날마다 몇 번씩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면 한니발 장군이라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요.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녹초가 되어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을수밖에 없죠.‘ - P103

우리의 목숨을 구하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인 경우가 (대단한것들인 경우 못지않게 많다. 그중 하나는 프라이버시 문제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자신의 불행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기때문이다. 눈부신 미남인 데다 유명하고(고등학교 때 내가 알던 여학생들은 침실에 그의 포스터들을 도배하다시피 붙여 놓았었다.)재능도 뛰어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도 이십대 후반에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노라 토로했다. "허영심이 내 목숨을 구했지요. 사람들이 내가성공할 수 없었다느니, 성공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느니 하면서 비웃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자살할 수 없었어요."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결점투성이이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낮아지지만 대개 자존심까지 잃지는 않는다. 자존심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 우울증과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 깊어져 사랑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때에도 허영심과 의무감이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 P110

존 그리든의 말을 들어 보자. "장기 복용이 정확히 어떤 효과들을 가져올지는 나도 모릅니다. 아직 프로작을 80년 동안 복용한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약을 끊거나 먹었다 안 먹었다 하거나, 부적절하게 복용량을 줄이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분명히 압니다. 뇌가 손상됩니다. 만성화에 따르는 결과들이 일어납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점점 더 심각한 형태의 재발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알면서 왜우울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 이해 못 할 사회적 압력은 대체 어디에 기인할까요? 우울증이라는 병은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1년 이내 재발률이 80퍼센트에 이르며 약물치료를 하면 회복률이 80퍼센트입니다."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로버트 포스트도 같은 의견이다. "사람들은 평생 약에 의존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지만 그 부작용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울증을 방치하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당신의 친척이나 환자가 강심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그에게 복용을중지하라 권유하겠습니까? 그러다 심장이 점차 기능을 잃으면서 폐나 다른 조직으로 혈액이 몰리는 울혈성심부전 발작이 일어나 심장이 다시는 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우울증도 그런 경우와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약의 부작용을 겪는 것이 병을 안고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것이다. - P129

이제 나는 우울증 삽화에 대비해 어떤 절차들을 밟아야 하는지 알게 된 터였다. 어떤 의사들에게 연락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언제쯤 면도칼들을 치우고 개를 데리고 열심히 산책을 다녀야 하는지도 알았다.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우울증이 재발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친구들이 내 집으로 들어와 두 달 동안 함께 살면서 하루 일과 중 힘겨운 부분들을 견뎌 내도록 도와주고, 내 불안과 공포를 대화로 가라앉혀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꼭꼭 끼니를 챙겨 먹도록 하고, 내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 평생의 마음의 벗이 되었다. 동생이 연락도 없이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즉각 내게 주의를 집중했다. 나는 발 빠르게 대처하고,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의사를 확보하고, 자신의 우울증 패턴을 분명히 파악하고, 아무리 힘들고 싫어도 수면과 식사를 조절하고, 스트레스는 즉시 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동원한 덕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재발 첫날에 나는 대리인에게 전화해서 상태가 안 좋으니 아무래도 책의 집필을 보류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재난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노라 고백했다.
"내가 어제 차에 치어 지금 병원에서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언제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나는 멍한 그로기 상태가 되는 걸 무릅쓰고 자낙스를계속 먹었는데 불안이 폐와 위장에서 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하면 상태가 악화되어 곤란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발광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시에 폭격을 피하지 못해 처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그리하여 겨우 남은 유물의 자취가 잔해 속에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독일의 드레스덴이 된 기분이었다. - P140

나는 과거라는 것을, 시간의 경과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너무도 힘들다. 내 집에는 과거를 너무 생생히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읽지 못하는 책들과 듣지 못하는 음반들과 볼 수 없는사진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기에 (지금보다 반드시 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절만의 독특한 행복감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기에) 그때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 한다. 빛나는 청년 시절은 나를 초조하게한다. 나는 항상 과거의 즐거움이라는 벽에 부딪히는데, 내게는 과거의 즐거움이 과거의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 외상후스트레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는 알지만 내게는 다행히도 과거의 외상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의 즐거움들은 견디기 어렵다.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 내겐 현재 최악의 고통이다. 나는 과거의 즐거움의 파편들에게 제발 기억을 되살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지나치게 무섭고 끔찍했던 체험들 못지않게 지나치게 즐거웠던 체험들도 우울증을 낳을 수 있다. ‘기쁨 후 스트레스(post-joy stress)‘라는 것도 있다. 최악의 우울증은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한탄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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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인의 여행 사랑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에는 각종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등 각종 SNS에는 수많은 여행 고수가 저마다의 여행을 소개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또 서점에서는 수많은 여행 안내서와 자칭 타칭 여행 전문가의 에세이가 다양한 여행을 권유한다. 가히 여행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 P7

이 세상에는 어느 하나 같은 장소가 없다. 모든 장소에는 독특한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곳사람들은 자기 삶의 터전에 고유한 의미와 상징을 아로새기며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여행에 지리학적 안목이 필요한 이유다. 여행지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나에 대한 성찰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여행자는 여행지와 그곳의 사람들, 즉 여행되는 것들을좋고 나쁘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행은 항상 여행자와 여행지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여행자는 여행되는 것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함으로써 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시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역량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다.  - P9

 여행은 장소에 대한앎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이루어 가는, 그래서 미래의 나를 가늠해 보고 조형해 나가는 훌륭한 과정이다. 여행을 통해 삶의 경험과 지식은 더욱 풍부해진다. 삶은 여행이고 여행은삶이다. 따라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여행이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지리를 알고 여행을 떠나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 P27

‘장소감sence of place‘은 지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여행의의미와 방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장소감은 익숙함의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제자리에 있는 in place‘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를 벗어난out of place‘ 느낌이다.
우리는 제자리에 있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향유한다. 안식처인 집, 늘 다니는 학교, 일터, 카페 등 낯익은 모든 곳이 마음을편안하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장소에는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바로 이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 P29

편안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롭고도 낯선 장소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사간 새로운 집, 졸업과 퇴사 후 갖게 된 새로운 일터,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용기 내어 들어간 낯선 장소들 이들은 모두 나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낯선 것이 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 내는 노력, 낯선것을 낯익은 것으로 만드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인생의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행이란 바로 이런 새로운 장소감을 느끼는일, 즉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이다. 그러니까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 의도적으로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 P32

우리의 삶은 늘 움직이면서 이루어진다. 매일 집을 떠나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길게 어딘가를 계속 움직이다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 출퇴근과 등하교의 여정을 생각해 보라. 매일 집을 떠나 비교적 익숙한 곳들을 순회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상대적으로 먼 낮선 곳으로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동의 끝자락에는 결국 집이있다. 떠남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제자리에 있기와 제자리 벗어나기는 반복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가 멀고 가까운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늘이동 중에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모든 장소에는 저마다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들도 의식하지 않으면 그 이면을 결코 볼 수 없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이서, 오늘의 일상에서 오감의 안테나를 세워 보자.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이나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여행은 흔히 생각하듯 그리 대단하지않다. 낯선 것들과 함께 낯익은 것들도 낯설게 바라보며, 그 속에깊이 자리 잡은 의미를 확인하고 끄집어내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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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1912년 평양 근교 지역의 한 기독교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모든 한국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김일성의 아버지는 평소 조용한 한의사였지만 일본인들의만행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비판했고, 결국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사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1931년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하자 그곳도 더 이상 평화로운 장소가 되지 못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어머니가 김일성에게 일본인들을 만주에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중국 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라고 권했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유격대 내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의 과단성과 용맹함은 곧 두각을 드러내어, 한 군단 전체의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그를 비롯한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이때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김일성은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도 출세 가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소련군 대위가 된그는 소련의 깃발 아래서 1945년까지 싸웠다.
결국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한국에서 물러났다. 김일성은민족적 영웅의 후광을 둘러쓰고 망명에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으며 국민들이 자신을 <위대한 영도자>로 원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두 전승국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각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두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타 공인의 공산주의자를 한반도 전체의 머리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망명 중이던 또 다른 한국인을 데려와 반도 남쪽의 국가수반으로 세웠다. 김일성은 북쪽 부분으로만 만족해야 했으나, 그러지를 않았다. 대신 그는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놈들도 몰아낸 자신인데, 미국과그 졸개들에 불과한 유엔군을 몰아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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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초기 단계가 마무리되자 체계적인 절차를 밟아 갔다. "세 단계로 나누었지요. 처음에는 잊는 법을 가르쳤어요. 우리는 날마다 잊는 연습을 했어요. 완전히 잊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잊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 기간 동안 나는 음악, 수예, 뜨개질, 음악회 가끔은 텔레비전 보기 등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 하고 싶다는 일들을 하게 합니다. 한 꺼풀만 벗기면 우울증이 있지만, 온몸의 살갗 바로 아래에 우울증이 숨 쉬고 있지만, 그것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잊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죠. ••••• 그들이 있는 법을 잘 배워서 마음을 비우면 다음에는 일을 가르칩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르치지요. 집 청소나 아이들 돌보는 훈련만 받는 이들도 있고, 고아들을 돌보는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도 있고, 진짜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들은 일을 배우고 자신에 대한 긍지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다 배우면 그다음에 사랑을 가르칩니다. 나는 우리 집 옆에 간이 한증탕을 하나 지었어요. 여기 프놈펜에는 그때보다 좀 낫게 지어서 쓰고 있고요. 그들을 그곳에 데려가서 목욕도 하고 서로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도 발라 주게 하고 손톱 손질법도 가르치는거예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까요. 그들은 그런 느낌을 간절히 원하죠. 다른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들을 육체적 고립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결국 감정적인 고립도 해소되니까요. 함께 몸을 씻고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서로 얘기도 나누고, 조금씩 서로를 믿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친구를사귀게 되고 더 이상 혼자 외롭게 살 필요가 없게 되지요. 그리고 나한테밖에는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게 됩니다." - P53

우리에게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기본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나는 우울증이 그 스펙트럼 안에, 슬픔뿐 아니라 사랑과도 가까이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실 나는 모든강력한 감정들은 함께 있으며 그것들 각각은 흔히 우리가 반대의것이라 여기는 감정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울증 삽화를 세차례나 겪었고 현재 우울증으로 인한 무능력 상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우울증 자체는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나의 일부다. 우울증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곧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싸움에 앞서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일찍이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 시인]가 한 말이다. 미래에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우리 인간은 화학적 조작을 통해 두뇌의 고통의 회로를 찾아내 그것을 통제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경험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복잡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의 일부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것보다 심각한 문제다.) 나는 세상을 구차원으로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커다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 나는 고통받는 능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평생 막연한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심한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이며, 이 책도 그런목적을 위해 쓰인 것이다. - P56

우울증은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고 동요시킬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후자의 경우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우울증으로 인한 붕괴는 광기에 이르는 건널목이다. 물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감춰진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는 "물질의 비특징적 행위(uncharacteristic behavior of matter)다. 또 그것은 누적 효과다.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 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 이따금 슬픔을 느낄 뿐이다. 일단 선을 넘으면 모든 규칙이 바뀐다. 영어로 쓰여 있던 것들이 중국어로 쓰여 있고, 빨랐던 것들이느려지고, 꿈속 세상은 명료한데 현실 세계는 단속적인 무의미한이미지들로 이어진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서서히 감각들을 잃게 된다. 우울증 환자인 마크 바이스라는 친구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했다. "갑자기 화학작용이 느껴지는 때가 있지. 호흡이 변하고 내 숨결에서 악취가 나. 오줌 냄새에 구역질도 나고. 거울 속 얼굴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럴 때면 알 수 있어."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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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는 자신의 대꾸에 대해 베니가 한 대꾸에 내놓을 대꾸가 벌써 준비되어 있는 듯,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알란이 두 형제의 말을 끊으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대개 <네가 멍청해! 아냐, 멍청한 건 너야! - 아냐, 멍청한 건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문제는 베니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란은 물론 그의 몫까지마셔 줄 수 있지만, 이 경우 효력은 장담할 수 없단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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