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둘 사이의 일은 "쌍방 과실(mutualabuse)"이지만 <복스>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뎁은 다르보(DARVO)전략을 구사한 혐의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르보란 ‘(사실을) 부인하고 공격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Deny, Attack, and Reverse Victim and Offender)‘ 행동을 가리킨다. 폭력, 성범죄 등의혐의가 있는 남성들이 무죄를 입증하는 대신 ‘사실은 내가 피해자‘라며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여성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즉 이미 영국 법원에서 폭력 사실이 인정된 조니 뎁이 미국에서는 거꾸로 피해자로 둔갑해 허드를 공격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인기를 끌어온 뎁과 달리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앰버 허드가 뎁이 요구한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당연히 뎁도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 아는사람들은 뎁이 건 소송은 돈을 받아내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떨치고 전처를 ‘응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해석한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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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구하기그렇다고 해서 식문화가 발달한 남미와 남유럽 사람들이 당시 미국에 없었던 게 아니다. 미국인의 문제는 문화적 폐쇄성이었다. 미국인들은 남미와 남유럽 문화를 영미 문화보다 뒤떨어진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은 맵거나 향이 강한 음식을 ‘흥분제‘라고생각했고 이런 음식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고생각했다. 향이 강한 음식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연장선에 있는것으로 취급했고 그런 음식을 좋아하다보면 결국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중독성 마약에 빠져들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20세기초만 해도 미국인들은 올리브를 기피했고 마늘과 식초가 반드시들어가는 피클 같은 음식도 피했다. 물론 지금 미국인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갖고 있어서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것이 하나의 지위 상징이 되었다. 이런 태도가 과거 미국에도 퍼져서 남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 문화에서 먹는것처럼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가 사용되었더라면 대기근과 대공황을 견디기 훨씬 쉬웠을 거라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에게 음식 문화의 다양성은 배려가 아니라 삶과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요소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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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미국인인 코니 청이 미국의 주요 방송사에서 앵커를 할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변화였지만 핀 황과 아이샤 라스코가 메이저 언론사에서 자신의 이름과 억양이라는 민족성, 즉 에스니시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방송사가 이제는 단순한 인종적 평등(racial equality)을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한 덕분이었다. 나와다른 인종이나 문화를 ‘배려‘하는 것과 다양성의 가치를 아는 것은 다른 얘기다. 후자의 경우에는 다양성이 조직과 사회에 실질적인 이익임을 아는 것이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내가 ‘베푼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힘들거나 반대에 부딪힐 경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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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종속 집단이나 하위 집단 구성원일 수도 있다. 한때 수탈을 당했더라도 운이 좋으면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빈민, 슬럼거주자, 물납 소작인sharecropper‘, ‘원주민‘, 노예, 임금 계약 바깥에서 계속 수탈당하는 주체로 끝날 수도 있다. 징발된 자산은노동, 토지, 가축, 도구, 광산이나 에너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또한 인간, 인간의 성적·생식적 역량, 자녀와 장기臟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징발된 역량들이 자본의 핵심 특징인 가치 확장과정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도둑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강탈 같은 행위와는 달리, 내가 말하는 수탈은 징발과 징용을 통해 축적에흡수되는 것이다. - P85

나의 명제는 자본주의의 인종화 역학이 착취 대상인 자유로운 주체들과 수탈대상인 종속적 주체들을 구별하는, 구조적 토대를 갖춘 ‘표식‘에응축돼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전개하려면 이제 초점을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옮겨야 한다. 오직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 질서를 주제로 삼을 경우에만 이 구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인종‘의 짜임새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88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종속적 주체를 정치적으로 직조하는 일은 결코 지위의 경계선 긋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정학적경쟁과 경제적 팽창주의가 서로 얽힌 뿌리 깊은 논리를 바탕으로, 강대국들은 (피탈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자본주의 세계체제 주변부로 향했다. 유럽 식민 국가들과 그 뒤를 이은 미합중국 제국주의는 지구상의 가장 먼 곳까지 약탈하며, 수십억 인류를 이런 피탈 주체로 만들었다. 정치적 보호를 박탈당하고, 징발당할 만반의 준비가 된 주체로 말이다. 이들 강대국이 창조한 수많은 피수탈 주체는 이 국가들이 착취를 위해 해방시킨‘ 시민노동자의 수를 초과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예속민이 식민 통치에서 해방됐다고 하여 결코 종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도 나날이 수많은 새로운 피수탈 주체의 무리들이 창조되고 있다. 과거의 식민 지배국과 포스트식민 국가들, 그리고 축적기계에 기름칠을 해주는 글로벌 금융기구를 비롯한 초국적 권력의 합동 작전의 결과다.
이 경우에도 공통된 위협은 바로 정치적인 벌거벗기기다. 즉 한계를 설정하거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피수탈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이며, 피수탈성을 피착취성과 구분하는 핵심 요소다. 그리고 인종적 억압의 핵심을 이루는 것도 바로 이러한 피수탈성, 즉 아무런 방어 수단 없이 폭력에 노출된 상태다. 한마디로 피착취 주체와 종속적인 피수탈 주체를 구별해주는 것은, 이러한 불가침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신호인 ‘인종‘ 표식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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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정중앙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그 지역 억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억양의 정체는 뭐고, 왜 이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을까?
20세기 초중반에 미국 방송에서 많이 사용된 미드 애틀랜틱억양에 대해 지금은 "미국인의 열등감을 보여주는 억양"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 억양은 미국인이 영국식 억양을 흉내 낸 억양이기 때문이다. 영국식을 흉내 냈을 뿐, 정작 영국식 억양은 아니기 때문에 영국에 가려고 대서양을 건너다 만 억양‘이라는 의미로 ‘미드 애틀랜틱 억양‘으로 불리는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윌리엄 F. 버클리(WilliamF. Buckley)가 이 억양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들어볼 수 있고 Mid-Atlantic accent를 검색해도 현대 미국 영어와 비교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억양은 미국인들이 영국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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