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삼가며 쓴 것이 역시 이렇게 따분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 글의 의도는 마리서사를 빌려서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에 짧은 시간이기는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좌·우의 구별 없던, 몽마르트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글쓰는 사람과 그 밖의 예술하는 사람들과 저널리스트들과 그 밖의 레이맨들이 인간성을 중심으로 결합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절이었다. 그당시는 문명(文名)이 있는 소설가 아무개보다는 복쌍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더 무게를 가졌던 시절이고, 예술 청년들은 되도록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그 당시의 표준을 가지고 재어 볼 때 정도(正道)를 밟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몇 사람이나 될까. 가장 가까운 주위에 자랑할 만한 사람이라면 이활, 심재언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들도 그때만큼 틈이 없다. 아웃사이더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되고, 공부하고 놀 틈이 있어야 되는데 이들에게는 공부할 시간도 놀 장소도 없다. 질식한 아웃사이더들이다.  - P178

이 글을 쓰려고 까만 볼펜을 드니 둘째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이 변색을 한 것이 눈에 뜨이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오. 변색이란 것이 과장이 아니오. 하얗게 바래 있소. 아니 하얗게 떠 있소. 두 손가락의 피부가 표백을 한 거요. 술잔을 쥔 부분의 피부가 표백을 한 것이오.
어저께 당신이 준 5000원 중에서 2500원어치를 마신 거요. 내가 쓴 돈이 그것이지 마신 분량은 내가 지불한 돈의 배가 더 될 거요. 내가 낸돈은 일차의 대푯값하고 이차의 맥주값뿐이지, 삼차에 들어앉은 집에서 마신 것은 다른 친구가 냈으니까. 술 많이 마셨다는 자랑이 아니오.
괴롭단 말이오. 아침에 깨어 보니 또 요에 오줌을 쌌구려. 지금 이 글을 그 축축한 요 위에 팔을 비벼 대면서 쓰는 거요. 정말 괴롭소. 비명이 아니오. 세상에서는 자학이 나쁘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자학의 미덕에 대신하는 종교를 찾지 못하고 있소. 속되어 가는 나 자신에 대한이나마의 변명이라도 없이는 어디 살겠소? - P184

이런 악덕은 누차 말해 두거니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의일이다. 그래서 나는 전법(戰法)을 바꾸었다. 이왕 도둑이 된 바에야 아주 직업적인 도둑놈으로 되자. 아무개 아버지 같은 좀도둑이 아니라 남의 땅에 허가 없이 집을 짓는, 아무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한 집의 주인 같은 날도둑놈이 되자. 그래서 하다못해 무허가의 죄명으로 집을헐리고 때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편이 낫다. 그 편이 훨씬 남자답고 떳떳하다. 즉, 나다.
이 내가 되는 일, 진짜 속물이 되는 일, 말로 하기는 쉽지만 이 수입도 사실은 여간 어렵지 않다. 속물이 안 되려고 발버둥질을 치는 생활만큼 어렵다. 그리고 그만큼 고독하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고독은 나일론 재킷이다. 고독은 바늘 끝만치라도 내색을 하면 그만큼 손해를보고 탈락한다. 원래가 속물이 된 중요한 여건의 하나가, 이 사회가 고독을 향유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물이 된 후에 어떻게 또 고독을 주장하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속물은 나일론 재킷을 입고 있다.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는 고독의 재킷을 입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이 글 제목대로 ‘거룩한 속물‘ 즉 고급 속물의 범주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느끼고 있는 것은 이 나일론 재킷을 입은 속물이다. 고독의 재킷을 입지 않은 것은 저급 속물이지 고급 속물은 아니다. 고급 속물은 반드시 고독의 자기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규정을 하면 내가 말하는 고급 속물이란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 즉 진정한 의미에서는 속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 P189

속물의 특성은 겸손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에 12층인가의 고층 건물을 지은 사람을 상대로 그 건물의 뒤에 사는 사람이 햇빛을 막아서 그늘이 진다는 피해로 오랫동안 소송을 걸었다가 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인이라면 옆의 집에 그늘이 지는 것을보고 집까지는 헐 용기가 없더라도 미안한 생각쯤은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 소설가나 방송 작가들을 보면 그늘이 진 옆의 집에 미안한 생각을 품기는커녕, 왜 나만큼 큰 집을 못 짓느냐고 호통을치면서, 쓰레기와 오물까지도 아침저녁으로 내리쏟는다. 유독 신문 소설가나 방송 작가뿐이 아니다. 이런 그레셤의 법칙은 문화 단체와 예술 단체의 이름으로, 교수의 이름으로, 학장의 이름으로, 아나운서의 이름으로, 신문기자의 이름으로 날이 갈수록 더 성해 가기만 한다. 유능한 아나운서와 유능한 사회자는 대담자나 회담자나 청중을 리드해간다는 미명으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이다.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잡아 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대제도(大制度)는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다. 아무것도 안 붙인 가슴보다는 지옥의 훈장이라도 붙이고 있는 편이 덜 쓸쓸하다. 아무 목걸이도 없느니보다는개의 목걸이라도 걸고 있는 편이 덜 허전하다. 하나님이시여, 이 ‘테리어‘종들에게 구원을! - P191

목욕통에 얼어붙었던 물이 윗덮개가 조용히 풀리기 시작한다. 위의 3분가량에 흥건히 물이 괴어 있고, 얼음의 근심은 소리 없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직도 마당 위에 얼어붙은 먼지에 쌓인 얼음들은 요지부동이지만, 직경 2미터도 안 되는 목욕솔의 해빙이 알려 주는봄의 전조는 새싹을 보는 것보다도 더 반갑다. 새싹이 틀 때 봄을 느끼는 것은 이미 늦은 감이 들고, 가을의 낙엽을 보고 셸리처럼 지나치게 일찍이 봄을 예고하는 것은 너무 시적이어서 싫고, 그저 남보다 조금먼저 범인(凡人)처럼 봄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 좋다.
새싹이 솟고 꽃봉오리가 트는 것도 소리가 없지만, 그보다 더한 침묵의 극치가 해빙의 동작 속에 담겨 있다. 몸이 저리도록 반가운 침묵. 그것은 지긋지긋하게 조용한 동작 속에 사랑을 영위하는 동작과 침묵이 일치되는 최고의 동작이다.
가라앉은 얼음을 겨우내 굳어 온 근심이라고 생각할 때, 이 불행의 잠수 행위는 희열에 찬 풍자까지도 풍겨 주고, 어지러운 현실의 걱정이야 어찌되었든 우선 까닭 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수돗가에 씻어 놓은 저녁쌀이 튀어나올 듯이 하얗게 보이고, 마루에 올라와 난롯가에서 손을 비벼 보면 손의 두께까지도 제법 두툼하게 느껴진다. - P209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시인이란 반드시 시 작품을 신문이나잡지에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사람만을 말하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소위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번 4.19나 4.26 을 냉담하게 보고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게 날뛰는친구도 보기 싫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이런 위인들을 보면 분이 터져서 따귀라도 붙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나는 극언(極言)하건대 이번 4.26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시인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소위 시인들 속에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놀랐다. 나의 친척에 모 국민학교 교감이 있는데 이 작자가 4.19 날의 데모를 보고 집에 와서 여편네한테 ‘학생들도 이제 볼 장 다 봤어. 그런 폭도들이 어디 있어……." 하며 밤새도록 부부 싸움을 했다나. 그런 시인이나 이런 교감은 모두 다 모름지기 이승만의 뒤나 따라가 살든지 죽든지 양자택일하여라.
4.26 후 나의 성품이 사뭇 고약해져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 흥분한 탓이려니 해서 도봉산 밑에 있는 아우 집에 가서 한 이틀 동안을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왔는데 서울에 와 보니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정 고약해져서 시를 쓰지 못할 만큼 거칠어진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윤리의 명령은 시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거센 혁명의 마멸(磨滅) 속에서 나는 나의 시를 다시한 번 책형대(책刑臺) 위에 걸어 놓았다.
《경향신문》, 1960.5.20 - P232

일전에 4월 이후의 새로운 현상에 대한 잡담이 나온 자리에서 어느문학지 기자가 하는 말이, 요즈음 통 잡지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면서이것이 ‘나츠가레‘‘가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정치에 몰두하여 문학잡지 같은 것은 보지 않게 된 바람에 그런 것이라고 하는말을 들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문학지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그들이 문학을 애호하는 것은 (적어도 문학지를 구매한다는 것은) 평화 시절에만 국한될 한사(閑事)에 불과하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진정한 문학의 본질은 결코 한시(閑時)에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애완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개혁적인 시기에 처해있을수록 그 가치가 더한층 발효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은 (그것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문학계 전반에 대한 기막힌 모욕이요 경멸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혁명이란 이념에 있는 것이요, 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을 앞장서서 지향하는 것이 문학인일진대, 오늘날처럼 이념이나 영혼이 필요한 시기에 젊은 독자들에게 버림을 받는 문학인이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그 기자의 말을 듣고 내심으로는 오히려 통쾌한 감이 들었고, 우리나라 문학계도 이제야 비로소 응당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고 쾌재를 부르짖었다.
젊은 층의 전면적인 불신임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계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문학계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각성의 시기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 P237

이(李) 정권 때의 일이다. 펜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 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 자유가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
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은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 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 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않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 문제이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모든 창작 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상으로는 38선이 있지만 감정이나 꿈에 있어서는 38선이란 터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 활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이행해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문학을 해 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년 동안 문학 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문학 작품이 없는 곳에 문학자가 어디 있었겠으며 문학자가 없는 곳에 무슨 문학 단체가 있었겠는가. 아마 있었다면 문학 단체의 이름을 도용한 반공 단체는 있었을 것이지만, 이 반공 단체라는 것조차 사실에 있어서는 반공을 판 돈벌이 단체이거나, 문학과 반공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돈벌이 단체에 불과하였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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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식인의 규정부터 해야 한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우선 일본만 보더라도 이런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은데 그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민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닿는다 해도 기껏 모깃소리 정도로 들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소리가 모깃소리만큼밖에 안 들리는 사회란 여론의 지도자가 없는 사회이며, 따라서 진정한 여론이 성립될 수 없는 사회다. 즉 여론이 없는 사회다. 혹은 왜곡된 여론만이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소위 4대 신문의 사설이란 것이 이런 왜곡된 가짜 여론을 매일 조석으로 제조해 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씌어지고 있다. 이것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민주주의 사회의 여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더도 말고 우리나라의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서만도 허다하게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지식인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지식인이 가물에 콩 나기만큼 있기 때문에 문학가가 아직도 사회적인 멸시를 받고, 그나마 여론을 조성하는 자리에서는 대학교수보다도 볼품이 없고, 우리의 시와 소설은 아직껏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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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없는 나라에 웬 교회만 이렇게 많은가. 왜 교회를 볼 때마다 공장이 연상되는가? 요즘 2, 3년 내로 머리악*을 쓰고 집들을 짓는 바람에 교회와 그 주위의 민가들과의 콘트라스트가 약간 완화되기는했지만, 그래도 매머드 교회들의 위관은 속인들로 하여금 그리 좋은 기분을 갖게 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교회인가?
이런 질문을 우리들은 집채만 한 배우 얼굴이 걸려 있는 극장이나궁전 같은 고층 병원 앞을 지나갈 때처럼 교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하게 된다. 저것은 우리의 병원이 아니다. 저것은 내가 들어갈 극장이 아니다. 저 국민학교는 내 자식을 넣기에는 힘에 겹다. 이와 비슷한 해답이 교회를 볼 때마다 나온다.
오늘날 우리들의 잠재의식은 대제도(大制度)에는 거저가 없다는 공포에 젖어 있다. 저 큰 집을 어떻게 거저 들어갈 수 있을까? 입장료가 없을까? 이렇게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들어가도 타박을 맞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이다.
그것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우리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한다. 우리들에게 조금도 물질적인 해는 주지 않지만 사실은 깜짝 놀랄 만큼 무섭게 우리들을 이용하고 있다. 입장료도 무섭지만 입장료를 안 받는 것은 더 무섭다.
교회가 이러한 현대의 대제도의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대제도의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공포를 주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매머드 건물을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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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내 여자친구가 물어오면, 나는 그녀에게, 내가 열세 살이던, 어느 날 밤 더그 형이 친구들 무리와 함께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서는 이웃집 앞에 주차된 폰티악 조수석 창문을 향해 석회석 벽돌을 내던졌던, 우리가 펜실베이니아주에 살게 되면서 맞이한 첫 여름에 대해 말해준다. 나는 내가 포치에 나와 앉아 있었고 그 모든 일을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음날 이웃집에 사는 칼러 씨가 건너와 더그 형이 자기 자동차 창문을 박살냈다며, 아내가 목격까지 했다고 말했다. 더그 형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그러자 큰 언쟁이 일었다. 그들은, 더그 형과 칼러 씨는 이십여 분가량 언성을 높였다. 결국 우리 어머니가 사과를 한 후 칼러 씨에게 수표를 써주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나중에, 칼러 씨가 가고 난 후에, 내가 밖으로 나가, 그의 폰티악의 비닐 카시트에서 유리 파편을 털어내고, 거리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노라고 말한다. 석회석 벽돌은 여전히 차 바닥에 있었다고.
잠시 후, 칼러 씨가 집에서 나오더니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아도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그것은 이후 좀체 내 마음을 떠날줄 모르는 말이다-그는 말했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 P154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누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언덕 지대를 바라다보았다. "모르겠어. 앨릭스, 난 이제 서른이 다 됐어. 서른." 누나는 말을 멈추고 술을 조금 마셨다. "리처드와 나는 삼 년을 사귀었어. 삼년을 꼬박.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 누군가를 알게 돼. 익숙해져버리게 된다고. 그이가 완벽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망할 새끼처럼 구는 경우가 안 그런 경우만큼 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작년부터 그이가 우리를 위해, 우리가 좀더 나이가 들었을 때를 위해 따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 그게 자꾸 발목을 잡아, 그이가 벌써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누나는 한숨을 내쉬고 몸을 기울여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봐야." 누나가 잠시 뒤 말했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겠어?"
나는 누나에게 팔을 둘렀고, 내게 온몸을 맡긴 누나의 무게감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누나가 내게 안긴 것은 아주 오래된, 몇년 만의 일인 것 같았다. 나는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오자, 누나가 내 가슴께로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 P245

 일 년이면, 클로이는 예술 지구에 있는 갤러리에 새로이 취직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스물네번째 생일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밤, 여느 밤과 다를 바 하나 없이 그녀는 일터에서 돌아올 것이고 부엌 식탁내 맞은편에 앉을 것이다. 그녀의 손은 축축해져 있을 것이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을 것이다.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나는 한순간 그녀가 내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담뱃불을 붙이고 눈을 감을 것이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내게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할것이다. 그날 밤 늦게,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자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것이고 나는 부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집 저편에서 전화기에 토해내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우리 둘 다 그날 밤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많은 말이 오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늘한 어둠 속에 마치 이방인들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서로에게 눈길을 삼간 채, 허리케인의 끝자락을 통과해 휴스턴 외곽의 작은 병원으로 차를 몰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가 막 서명함으로써 포기한 아이에게 지어줄 수 있었던 이름들을 떠올리며, 어두운 방안에 홀로 앉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오늘 오후, 부드러운 라임색 카펫 위 그녀의 벌거벗은 몸 옆에 누워, 비와 웃음소리를들으며, 나는 다만 클로이의 피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이름처럼 서늘하고 부드러운, 내 젊은 아내의 창백한 피부. 바깥거리에서 음악 소리가 커지고 클로이가 내 쪽으로 몸을 굴린다. 맨 먼저 나의 가슴에 키스하고 차츰차츰 아래로 내려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조금 후면 우리는 매일 밤 그러하듯이, 우리의 조그만 매트리스 위에서 함께 잠이 들 것이다. 창문 밖 종려나무들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 - P248

그렇지만 나는,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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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에는 교조 운동 같은 것은 서푼어치 가치도 안 되는 총리 선출보다 훨씬 더 중요하면 중요했지 못한 것은 아닌데 2000만의 늠름한 대변인들은 지금 명분이 서지 않는 감투 싸움에만 바쁘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교조원도 교원도 아니지만 혁명에 대한 인식 착오로 ‘과정‘의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만은 그들과 동일하다. 4월 혁명후에 나는 세 번이나 신문사로부터 졸시를 퇴짜를 맞았다. 한 편은 ‘과정‘의 사이비 혁명 행정을 야유한 것이고, 한 편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야유한 것이고, 나머지 한 편은 청탁을 받아 가지고 쓴 동시인데, 이것은 이승만이를 다시 잡아 오라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읽히기에 온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통과가 안 되었다. 그런데 이 동시를 각하한 H신문사는 사시(社是)로서 이기붕이까지는 욕을 해도 좋지만 이승만이는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규가 있다는 말을 그 후 어느 글 쓰는 선배한테 듣고 알았다.
여하튼 시작(詩作) 15년간에, 그것도 두 달 사이에 세 편의 시를 퇴짜를 맞아 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검열에 통과가 안 됐다면 싸우기라도 해 보겠지만 아는 친구들이 허다하게 있는 신문사에서 멱국을 먹었으니 하소연할 데도 없다. 아무튼 정치 하는 놈들이 살인귀나 강도같이 보이는 나의 편심증(偏心症)은 아직 손톱눈만큼도 치유될 기세가 없으니 초조하기만 하다.
1960.8.22. - P95

그런데 이런 집에도 양계를 하니까 돈이 있는 줄 알고 또 얼마 전에는 도둑까지 들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 보니 여편네가 도둑이 들었다고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도둑이 어디 들었느냐고 물으니 만용이(만용이란 닭 시중을 하는 앞서 말한 대학생)방 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여편네와함께 계사 끝에 떨어져 있는 만용이 방 쪽으로 기어갔습니다. 어둠을뚫고 맞지도 않는 신짝을 끌고 가 보니 만용이는 도둑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도둑이라는 사람은 나이 50이 넘은 사나이였습니다. 헙수룩한 양복을 입고 외투는 입지 않고 만용의 방 밖에 서서, 무슨 동네에서 마을이라도 온 사람처럼 태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당신뭐요?" 하고 나는 위세를 보이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둑의 얼굴이 너무 온순하고 너무 맥이 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여보, 당신 이디 사는 사람이오? 이 밤중에 남의 집엔 무엇하러 들어왔소?" 말이 없습니다. ‘닭 훔치러 들어왔소?" 말이 없습니다. 여편네가 고반소"에 신고해야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도 말이 없습니다. 나는 버럭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래위를훑어보았으나 그런 기색도 없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하고 존댓말을 썼습니다. 그제서야 사나이는 "백번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 하고 비는 것이었습니다. 말투가 퍽 술이취한 듯했으나 얼굴로 보아서는 시뻘건 얼굴이 술이 취해 그런지 추위에 달아 그런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 사람이 밤길을 잃은 취한(醉漢)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이어디요?" 쑥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우이동입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소?"
"모릅니다....... 여기서 좀 잘 수가 없나요?" 이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도둑은 발길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두서너 발자국 걸어 나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다보고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태연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나는 도둑의 이 말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같이 생각되어서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고, 기가 막히고도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도둑은 철조망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이 말은 사람이 보지 않을 제는 거리낌없이 넘어왔지만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다시 넘어 나가기는 겸연쩍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구태여 갖다 붙이자면 내가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면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도둑은 나고 나는 만용이입니다. 철조망을 넘어온 나는 만용이에게 ‘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하고 노상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64.5. - P120

장마가 지면 강물 내려가는 모양이 장관이다. 황갈색으로 변색한강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내려가는 것을 보면 사자 떼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달려 내려가는 것 같다. 높아진 수위는 사자의 등때기처럼 실거린다. 군데군데 하얀 거품이 이는 것은 숨 가쁜 사자의 입거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수천 마리의 사자의 떼가 아니라 한 마리의 사자같이 보이기도 한다. 한 마리의 사자. 그러면 저 거센 물결들은 사자의 휘날리는 머리털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 사자는 머리 쪽과 궁둥이 쪽이 서로 늘어나서 동서로 잡아당긴 엿가락처럼 자꾸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그 신장되는 등 위를 물결이 흘러 내려가는 것 같다. 혹은 뛰어가는 사자는, 꿈속에서 달려가는 것처럼 열심히 달려가기는 하지만 밤낮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되는 연상을 주는 강물은 삼라만상의 요술을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지만, 나는 어느덧 연상에도 금욕주의자가 되었는지 너무 복잡한 연상은 삼가기로 하고 있고, 그저 장마철에 신이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사자가 달려가는 것 같다는 정도의 상식적연상으로 자제하고 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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