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에는 교조 운동 같은 것은 서푼어치 가치도 안 되는 총리 선출보다 훨씬 더 중요하면 중요했지 못한 것은 아닌데 2000만의 늠름한 대변인들은 지금 명분이 서지 않는 감투 싸움에만 바쁘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교조원도 교원도 아니지만 혁명에 대한 인식 착오로 ‘과정‘의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만은 그들과 동일하다. 4월 혁명후에 나는 세 번이나 신문사로부터 졸시를 퇴짜를 맞았다. 한 편은 ‘과정‘의 사이비 혁명 행정을 야유한 것이고, 한 편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야유한 것이고, 나머지 한 편은 청탁을 받아 가지고 쓴 동시인데, 이것은 이승만이를 다시 잡아 오라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읽히기에 온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통과가 안 되었다. 그런데 이 동시를 각하한 H신문사는 사시(社是)로서 이기붕이까지는 욕을 해도 좋지만 이승만이는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규가 있다는 말을 그 후 어느 글 쓰는 선배한테 듣고 알았다. 여하튼 시작(詩作) 15년간에, 그것도 두 달 사이에 세 편의 시를 퇴짜를 맞아 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검열에 통과가 안 됐다면 싸우기라도 해 보겠지만 아는 친구들이 허다하게 있는 신문사에서 멱국을 먹었으니 하소연할 데도 없다. 아무튼 정치 하는 놈들이 살인귀나 강도같이 보이는 나의 편심증(偏心症)은 아직 손톱눈만큼도 치유될 기세가 없으니 초조하기만 하다. 1960.8.22. - P95
그런데 이런 집에도 양계를 하니까 돈이 있는 줄 알고 또 얼마 전에는 도둑까지 들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 보니 여편네가 도둑이 들었다고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도둑이 어디 들었느냐고 물으니 만용이(만용이란 닭 시중을 하는 앞서 말한 대학생)방 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여편네와함께 계사 끝에 떨어져 있는 만용이 방 쪽으로 기어갔습니다. 어둠을뚫고 맞지도 않는 신짝을 끌고 가 보니 만용이는 도둑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도둑이라는 사람은 나이 50이 넘은 사나이였습니다. 헙수룩한 양복을 입고 외투는 입지 않고 만용의 방 밖에 서서, 무슨 동네에서 마을이라도 온 사람처럼 태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당신뭐요?" 하고 나는 위세를 보이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둑의 얼굴이 너무 온순하고 너무 맥이 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여보, 당신 이디 사는 사람이오? 이 밤중에 남의 집엔 무엇하러 들어왔소?" 말이 없습니다. ‘닭 훔치러 들어왔소?" 말이 없습니다. 여편네가 고반소"에 신고해야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도 말이 없습니다. 나는 버럭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래위를훑어보았으나 그런 기색도 없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하고 존댓말을 썼습니다. 그제서야 사나이는 "백번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 하고 비는 것이었습니다. 말투가 퍽 술이취한 듯했으나 얼굴로 보아서는 시뻘건 얼굴이 술이 취해 그런지 추위에 달아 그런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 사람이 밤길을 잃은 취한(醉漢)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이어디요?" 쑥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우이동입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소?" "모릅니다....... 여기서 좀 잘 수가 없나요?" 이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도둑은 발길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두서너 발자국 걸어 나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다보고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태연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나는 도둑의 이 말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같이 생각되어서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고, 기가 막히고도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도둑은 철조망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이 말은 사람이 보지 않을 제는 거리낌없이 넘어왔지만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다시 넘어 나가기는 겸연쩍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구태여 갖다 붙이자면 내가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면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도둑은 나고 나는 만용이입니다. 철조망을 넘어온 나는 만용이에게 ‘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하고 노상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64.5. - P120
장마가 지면 강물 내려가는 모양이 장관이다. 황갈색으로 변색한강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내려가는 것을 보면 사자 떼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달려 내려가는 것 같다. 높아진 수위는 사자의 등때기처럼 실거린다. 군데군데 하얀 거품이 이는 것은 숨 가쁜 사자의 입거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수천 마리의 사자의 떼가 아니라 한 마리의 사자같이 보이기도 한다. 한 마리의 사자. 그러면 저 거센 물결들은 사자의 휘날리는 머리털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 사자는 머리 쪽과 궁둥이 쪽이 서로 늘어나서 동서로 잡아당긴 엿가락처럼 자꾸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그 신장되는 등 위를 물결이 흘러 내려가는 것 같다. 혹은 뛰어가는 사자는, 꿈속에서 달려가는 것처럼 열심히 달려가기는 하지만 밤낮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되는 연상을 주는 강물은 삼라만상의 요술을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지만, 나는 어느덧 연상에도 금욕주의자가 되었는지 너무 복잡한 연상은 삼가기로 하고 있고, 그저 장마철에 신이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사자가 달려가는 것 같다는 정도의 상식적연상으로 자제하고 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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