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 누리게 하시며
고통을 평화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시옵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중.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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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안 영감
Toine

사방 10리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투른방의 술집 주인 앙투안을, ‘뚱보 투안‘이나 ‘내 코냑 투안‘ 혹은 ‘화주火酒‘라고도 불리는 투안 영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작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처박힌 그 작은마을을 유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은 구덩이와 나무들로 둘러싸인 노르망디 양식의 집 열 채로 이루어진 초라한 농촌 마을이었다.
집들은 투른방이라 불리는 굽이 뒤, 잡초와 가시양골담초로 덮인 골짜기 속에 웅크려 있었다. 폭풍우 치는 날 새들이 혹독하고 짠 바닷바람에 맞서 밭고랑 속에 몸을 숨기듯, 마치 그 골짜기 속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 같았다. 폭풍우 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불처럼 주변을 부식시키고, 태우고, 겨울의 서리처럼 주변을 메마르게 하고 파괴한다. - P585

투안 할멈은 격분해서 다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하나 딱 하나 있어...... 그 일은 일어나고 말 거야.
그 배가 곡식자루처럼 터져 버릴 거라니까......"
그러고는 술꾼들이 와 하고 웃는 가운데 화난 채로 나가 버렸다.
사실 투안 영감의 모습은 보기에도 놀라웠다. 몸이 너무나 두텁고, 뚱뚱하고, 빨갛고, 엄청나게 뚱뚱했던 것이다. 그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운외양으로 죽음의 술책에 놀림받는 거대한 남자였다. 그의 몸은 천천히 파괴적으로 변해 갔지만, 겉으로 볼 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흰머리가 나고, 몸이 야위고, 주름살이 생기고, 점점 쇠약해져서 맙소사, 저 사람 엄청 변했군!"이라는 말을 듣는데 말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살찌우는 데서, 그를 괴물처럼 만들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서, 그를 울긋불긋하게 채색하는 데서, 그를 파괴하는 데서, 그에게 초인적인 외양을 부여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부과한 몸의 왜곡이 그에게는 불길하고 딱한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 익살스러운 것, 재미있는 것이 되었다.
투안 할멈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딱 하나 있어. 머지않아 그 일이일어날 거야" - P589

세례
Le Baptême

"박사님. 코냑을 좀 더 드세요"
"그러지요"
늙은 해군 군의관은 작은 술잔을 내밀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예쁜 액체가 잔 가장자리를 따라 차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높이로 잔을 들어 올려 램프 불빛에 비춰 본 뒤, 냄새를 맡고 몇 모금 마셨다. 오랫동안 혀 위에 굴리고 입천장을 적시며 음미했다.
그런 다음 말했다.
오, 매력적인 독이여! 유혹적인 살인자여, 달콤한 파괴자여! - P600

무분별
Imprudence

결혼 전 그들은 별에서 사는 것처럼 서로를 순결하게 사랑했다. 그들은 어느 해변에서 매혹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그는 그녀가 달콤하다고생각했다. 장미처럼 탐스러운 그녀가 엷은 양산을 쓰고 생기 있게 화장한 얼굴로 긴 수평선 위를 지나갔다. 파란 파도와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는 금발의 날씬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싱그럽고 짭짤한 공기와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 파도가 일렁이는 드넓은 풍경 속에서 갓피어난 듯한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영혼 속에, 혈관 속에 아련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일깨웠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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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시코! 여기 코냑 두 잔만 주게. 좋은 것으로, 마르탱이 돌아왔거든 우리 집사람의 남편 말이야. 자네도 알지? 실종된 ‘두 자매 호‘에 타고 있던 마르탱 말이야."
그러자 배가 나오고 혈색이 붉고 뚱뚱한 주인이 한 손에 술잔 세 개,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마르탱, 자네가 돌아왔군!"
마르탱이 대답했다.
"그래 돌아왔어!" - P567

포로
Les Prisonniers

숲에서는 나무에 내리는 눈송이가 가볍게 떨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눈은 정오부터 내렸다. 작고 고운 눈송이들이 차가운 거품처럼 나뭇가지를 감싸고, 덤불 숲의 낙엽을 은빛 지붕으로 얇게 덮어 놓았다. 눈송이들은 폭신한 흰 양탄자처럼 길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숲의 깊은 침묵을 더욱 두텁게 했다.
삼림 관리인의 집 문 앞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팔을 걷어붙인 채 돌위에 놓인 장작을 도끼로 패고 있었다. 그녀는 삼림 관리인의 딸이자 또 다른 삼림 관리인의 아내로, 키가 크고 야위었으며 힘이 센 숲의 여자였다 -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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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있는
제자에게

옛 제자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상하고 초췌해져 있었다.
이유가 있을 텐데 입을 쉬이 열지 못하던 제자는 마침내 오열을 터트렸다.
실컷 울게 가만히 기다려준 뒤 따뜻한 차와 보드라운 수건을 건네주었다. - P17

내 자식을 내 친구 자식과 비교하기 전에
나부터 내 친구와 비교해보자!
사실 비교할 가치가 없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니까.
내 자식이 나를 향해 "내 친구 엄마는..." 하며
다른 친구 엄마를 부러워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양육자의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라면
결국 자신의 피양육자를 타인의 자식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시샘과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
마음은 지옥이 되고 불행의 가시밭길이 펼쳐진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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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트라우마에 의해 인간은 꿰뚫린다. 정신분석 사전은 그 꿰뚫림의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충격의 강렬함, 주체의 무능력, 효과의 지속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실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을 때에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걸 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런 말은 지금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체가 될 것을, 심지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 P42

중년의 사내는 홀로 카페를 정리하며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그는 노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공포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건 그가 너무도 잘 아는 허무였다. 모든 것이 허무였고 인간 또한 허무였다. 바로 그 때문에 빛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가필요한 것이다." (241쪽) 이 소설의 제목인 ‘깨끗하고 불빛 환한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이 여기에서 나왔다. 삶의 허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소, 노인이 밤마다 떠나지 못하는그 카페 같은 곳.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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