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가 너를 아주 극도로 미워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네가 잘되는 일에 조력을 안 했던 거야. 네가 내게 한 짓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제인, 언젠가 네가 내게 행패를 부렸던 일,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미워한다고 잘라 말하던 그 말투, 나를 생각하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내가 너를 말할 수 없이 가혹하게 다룬다고 하던 그 어린애답지 않던 목소리와 눈초리. 나는 네가 내게 대들어 네 본심으로 독설을 퍼부어 대던 때의 기분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어. 난 무서웠다. 마치 내가 때려주고 밀어붙인 짐승이 사람의 눈을 하고 노려보며 사람의 목소리로나를 저주하는 것만 같았다. 나 물 좀 다오! 아! 빨리!"
- P444

그 시신은 나에게기이하고도 엄숙한 물체였다. 나는 우울하고 고통스러운마음으로 그 시신을 응시하였다. 부드러움도 다정함도 연민도 희망도 안도도 그것은 느끼게 해주질 않았다. 오로지-나의 손실이 아니라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불쾌한 고통과, 이런 꼴로 죽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생겨나는 우울하고 눈물도 안 나오는 당황뿐이었다.
일라이자는 태연하게 모친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동안의 침묵 끝에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의 체질이면 오래오래 사실 수 있었을 텐데, 걱정 때문에 감수(減壽)하신 거야."
그러고 나서 그녀의 입은 잠깐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이 가라앉자 그녀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나도 나왔다. 우리 둘 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2권에 계속)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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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는 약 9,000종의 조류가 살고 있으며, 그들의 다양한 부리는 페일리가 ‘신의 창의력‘을 확신하는 데 기여했다. 홍학의 부리에는 깊은 홈통과 섬세한 필터가 있어 혀로 퍼 올린 물과 진흙이 이곳을 통과하며 여과된다. 물총새의 부리 안쪽에는 튼튼한 버팀대와 받침대가 있어 ‘나르는 착암기‘ 처럼 땅을 연거푸 들이박음으로써 강둑에터널을 뚫을 수 있다. 어떤 핀치의 부리는 목공소를 방불케 한다. 새들의 윗부리 안쪽에는 턱ridge 이 져 있는데, 이것이 내장된 바이스vise(기계공작에서 공작물을 끼워 고정하는 기구 옮긴이) 처럼 씨를 고정시키는 동안 아랫부리로 씨를 썰어서 열 수 있다.
그러나 모양이 소박하는 화려하든, 각각의 부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홍학의 부리는 연못물을 여과하는 데 적합하며, 매의 부리는 토끼, 여우, 또는 다른 새를 갈기갈기 찢는 데 적합하다. 만약 홍학과 매가 전문분야를 맞바꾼다면 매는 더러운 연못물에빠지고 홍학은 눈이 찔릴 것이다.
다윈은 이상과 같은 큰 변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개체 간의 작은 변이들을 추론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개체의 부리 모양에 나타난 최소한의 특징조차도 때때로 그 새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변이는 이런 식으로 새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새들이 잠자지 않는 시간을 대부분 먹는 데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부리의 형태는 궁극적으로 새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단축시킬 것이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저울이 삶과 죽음 중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작은 낟알 하나이다."
- P106

이상과 같은 실험들은 ‘동일한 먹이를 동일한 방식으로 섭취하는 종들은 하나의 시험관, 바위, 섬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한 종이 다른 종을 멸종시킨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윈의 상상과 비슷하다. 다윈은 "경쟁과 갈등이 계통수의 수많은 가지와 잔가지들을 멸종으로 이끌 수 있다" 라고 상상한 적 있다. 중간 가지들은 하나씩 죽고, 살아남은 가지들은 구부러지거나 뒤틀리거나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이는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달라짐을 의미한다.
••••••
그러나 간혹 비슷한 부리를 가진 종들이 충분한 부분적 차이 local difference 를 진화시켜 경쟁의 강도가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두 종은 모두 생존한다.

- P113

서로 뿔을 맞부딪치는 수사슴들이나, 먹잇감의 턱을 물어뜯는 사자따위는 잊어라. 다윈주의 경쟁은 이빨과 발톱을 피로 물들이는 전쟁이아니다. 경쟁자들끼리 서로 치고받는 경쟁이 아니다. 전투 소리라고는남가새 열매를 깨뜨릴 때 나는 소리가 전부인 사막섬에서 경쟁이란 마지막 먹이를 향해 나란히 달려가는 침묵의 레이스이다. 떼 지어 함께 먹이를 먹는 동안에도 핀치들은 목숨을 건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힘든 시기가 왔을 때 그들의 목숨은 ‘먹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가‘, 즉 ‘얼마나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보상받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핀치들은 굶주림과 갈증을 겪으며 에너지의 수지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가난한 미코버 씨Mr. Micawher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등장하는 낙천적 인물_옮긴이)가 늘 말했던 것처럼 1년에 20파운드를 벌면서 19파운드 19실링 6펜스를 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이고, 똑같이 1년에 20파운드를 벌면서 20파운드 6펜스를 쓰는 것은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
"저울이 삶과 죽음 중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작은 난알 하나이다" 라는 다윈의 말을 상기하라. ‘남가새 열매를 깨뜨릴 수 있는 부리‘와 ‘그럴 수 없는 부리‘의 차이는 겨우 0.5밀리미터이다.
- P126

그 결과 핀치가 많이 사는 곳에 서식하는 남가새의 경우 분열과의 씨앗이 적은 반면 가시는 더 길고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핀치가 거의 살지 않는 곳(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은 외진 곳)에 서식하는 남가새의 경우, 분열과의 씨앗이 많은 반면 가시는 더 짧고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는 남가새가 핀치에 대응하여 진화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에너지를 가시에 많이 투자하고 씨앗에덜 투자하는 남가새가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더 안전하고 외진 곳에서는 씨앗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데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남가새가 가장 적합하다. 남가새가핀치의 진화를 추동하는 사이, 핀치도 남가새의 진화를 추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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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대프니메이저

창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창조에는 시작이있어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는 새로운 장면, 새로운생물과 무생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느라 늘 분주하다.
임마누엘 칸트, 「천체의 일반 자연사」

1991년 1월 25일 아침 7시 30분, 피터 그랜트Peter Grant 와 로즈메리 그랜트 Rosemary Grant는 덫을 놓은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돌무더기 위에앉아 있다. 피터는 방수처리가 된 노란색 노트를 펼쳐들며 말한다. "좋아. 오늘이 25일이야."
- P30

요컨대 다윈이 생각하는 다윈주의 Darwinism의 핵심은 ‘생물의 변화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일어나고, 변화의 주된 메커니즘을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이다.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다윈이 ‘언제 어디서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라고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자연선택은 까마득한 옛날에 일어난 창조의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뉴턴의 운동법칙처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지금에서 영원으로,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진행된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작용과 반작용은 너무 느려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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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들의 외양, 그들의 표정에 아무런 공감을 느끼질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매력 있고 미남이며 당당하다고 평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한편 로체스터 씨를 험상궂고 침울하게 생겼다고 평하리라는 것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미소 지으며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는 미소였다. 촛불의 불빛에도 그들의 미소와 같은 정도의 영혼은 있었다. 초인종 소리에도 그들의 웃음소리 정도의 의미는 깃들여 있었다. 나는 로체스터 씨가 미소 짓는 것을보았다. 엄한 표정이 누그러지고 눈은 반짝반짝하면서도 유순한 빛을 띠었고 꿰뚫어보는 듯한 영롱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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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복잡한 계로 생각하는 데서 나올 수 있는, 혹은 나올 법한 결과는 어떤 것일까?> 마틴은 이렇게 묻고, 다음과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 결과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력하게 느끼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힘을 부여받은 무력함의 상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그런데 그 몸이 사회와 환경을 비롯하여 다른 복잡한 계들과 연결된 복잡한 계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그 모든 요소를 다 통제한다는 건 너무나도 버거운 과업이 된다.
- P202

 그러나 질병이 정말로 무언가에 대한 벌이라면, 그것은 오직 살아 있는 데 대한 벌일 뿐이다.
어릴 때 내가 아버지에게 무엇이 암을 일으키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생명. 생명이 암을 일으킨단다.」 암의 역사를 쓴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의 저 대답을 교묘한 둘러댐으로만 여겼다. 무케르지는 책에서 생명이 암의 원인일 뿐 아니라 심지어 암이 곧 우리라고 주장했다.
〈그 타고난 분자적 핵심까지 속속들이, 암세포는 과잉 활동적이고, 생존 능력을 타고났고, 공격적이고, 생식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우리 자신의 복사본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이것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 P209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으로 무엇을할까? 내게 이 질문은 시민이 된다는 것과 어머니가 된다.
는 것 둘 다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힘과 우리의 무력함을 조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순없는 것처럼, 아이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순 없다. 도나 해러웨이가 말했듯이, 인생이란 취약성의 기간이다.
- P231

정원의 은유를 우리의 사회적 몸으로까지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정원 속의 정원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정원은 에덴이 아니고, 안락한 장미 정원도 아니다.
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 <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 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야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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