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한 가정에는 별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돈을 벌어 자식들을 키우고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뭐 그렇다. 만약 ‘행복한 가정 대회‘ 같은 게 열린다면, 그것처럼 따분한 일이 없을 것이다. 있을 것 대충 다 있고, 남 하는 거 다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불만도 없고, 애들한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자기 부모라고 대답하는 그런 가정. 그런 집은 차도 어쩐지 레저용 사륜구동일 것 같고 일요일이면 교회며 절이며 가족들이 오손도손 다녀올 것 같고 저녁이면 단란하게 일일 연속극을 보거나 가까운 식당에서 외식을 할 것 같다. 반면 불행의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돈이 없어서, 성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성격이 모나서, 누군가가 바람을 피워서, 시부모가 사사건건 끼어들어서,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빚보증을 잘못 서서, 형광등을 못 갈아 끼워서, 잠잘 때 이를 갈아서…. 그밖에도 수많은 이유로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에서 끝이지만 수만 가지의 불행은 『안나 카레니나』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을 만든다. - P152
그러나 우주에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성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이에도 그 너머에도 수많은 별자리와 행성과 소혹성들이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엔진과 연료가 필요하다.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서에도 일정한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소설은 춤과 같아서 처음에도 즐겁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아는 작가가 많아지고 출판사나 번역자에 따라 책을 고르는요령들을 터득해감에 따라 취향은 분명해지고 만족감도 커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책을 사야 할지 알 수 없던 대형 서점이 자기 방 서재처럼 친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대중가요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다고 느껴질 때 흘리는 눈물도 소중하지만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희롱할 수 있을 때, 나는 그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단계로,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믿는다. 소설에서는 왜 그럴 수 없단 말인가. 소설 역시, 그래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단계에서, 이건 내 얘기가 아니지만 새롭고 탁월해, 라는 단계로 전이할 수 있다. 그 단계의 즐거움이 이전 단계의 즐거움에 비해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대단히 독특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44
작가나 철학자와 같은 활자시대 스타들의 자서전은 점점 출간이 뜸해지고 있는 반면 디자이너나 사진가, 화가와 같은 이미지 시대의 스타들의 인생은 더 자주 전기문학의 소재로 등장할 것이다. 정치가와 부자들, 혁명가와 지식인들이 분점하던 전기의 카르텔은 조금씩 깨지고 있다. 이미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더니, 그 예언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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