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상징적인 인물로 주목받고 있음을 의식하는 사람은 끊임없이자신의 영혼을 탐색하게 마련이다. 자신이 주위 사람들이 기대하는 고귀하고 숭고한 원칙을 준수하면서 살고 있는지 자신의 생활을 부지런히점검하면서, 공적인 자신과 사적인 자신 사이의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게 마련이다.
그 즈음에 나는 날마다 이런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제 자신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에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제 자신은 역사 속에서 이미 준비되어 왔던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자에 불과함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제가 몽고메리 시에 오지 않았더라도 몽고메리에서는 보이곳이 발생했으리라는 사실을, 저를 이곳에 이르게 한 것은 역사의 힘과 이름 없는 5만여 앨라배마 흑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제가 지금 이곳에 설 수 있는 것은 역사의 힘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분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 P145

인도를 떠나면서, 비폭력저항운동이야말로 피억압 민중들의 자유를향한 투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나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비폭력운동이 달성한 놀라운 성과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인도는 독립을 달성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전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독립을 달성했다. 인도 어디에서도 폭력적 운동으로 인한 증오와 원한의 여파는 느껴지지 않았다. 묵묵히 순종하는 방법은 도덕적 그리고 정신적 자살행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폭력적인 방법은 살아남는 자들에게 원한을 심어주고 파괴자들에게는 잔인성을 심어준다. 그러나 비폭력적인 방법은 속죄를 이끌어내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속에는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흑인들에게자유를 안겨주겠다는 원대한 결단이 자리잡았다. 인도 방문 덕분에 비폭력주의에 대한 나의 인식과 열정은 보다 깊어진 것이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차 아편전쟁을 통해 명국이 뜯어간 영토는 홍콩 성의 맞은편 구룡반도의 일부인 야무야우마레이•침사추이•몽콕 뿐이었습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여의도 면적 정도밖에 안 되는 코딱지만한 땅이죠.
이에 반해 러시아는 총 한발 쏘지 않고, 오로지 강화협상 중재의 대가로 강 너머와 연해주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덩어리를 떼어갔습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세 배가 넘는 땅덩어리를 세치 혀로 얻어낸 주민공은 스물아홉의 젊은 외교관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미그나리데프, 그는 10대에 이미 런던에서의 스파이 활동, 중앙 아시아에서의 모험 활극을 찍고 베이징에 온 야심만만한 청년이었습니다. 흑룡강 너머와 연해주는주민 이주가 제한된 봉금지로 그 땅을 영토로 존속시킬 만한 백성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 딸들에 대한 청조의 수호 의지 또한 빈약했습니다. 그 사실을 꿰뚫어본 이그나티메프는 러시아가 만주에 대규모 병력을 전개시킬 능력이 없었음에도 적당한 허풍과 공갈, 교묘한 설득으로 저 거대한 땅덩어리들을 후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만강까지 확장된 러시아의 강역은 이후 두고두고 극동 지역에서의 세력 판도에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상수로 자리 잡습니다.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을 구분하는 방법
그러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10종 기본 운형을 사용해 분류해보자(그림2 2). 먼저 적란운 적운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1)천둥을 동반하는 빛이 보이거나 천둥소리가 들린다면 그 구름은 적란운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2)개개의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올랐거나 돔 형태이고 3)구름 꼭대기의 일부가 보풀처럼 생겼다면 적란운, 아니라면 적운이다. 2)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면, 두루마리 모양이거나 개개의 구름이 불명분하고 연속적인 층 형태의구름인지 확인한다. 이런 특징이 있고 5)대양이나 달이 뚜렷하게보이면 권층운이다. 그렇지 않고, 어슴푸레한 회색 ~ 어두운 회색의 시트 같은 층 형태 구름이라면 고층운이다. 좀 더 농밀하고 크며 하층까지 걸쳐 있고 강수 현상이 보이면 난층운이며, 이와 같은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면 층운이다.
4)의 특징이 보이지 않을 경우, 8)하얗고 작은 다발 같은 모양이거나 섬유 모양의 구름이라면 권운이다. 9)손을 벌려서 하늘을향해 뻗었을 때 개개의 구름이 검지 폭보다 작다면 권적운, 10)개개의 구름이 둥그스름하고 손가락 1~3개를 합친 폭 정도라면 고적운이다. 또한 주먹보다 크다면 층적운이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욱진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아내와 함께 사찰에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의 증인에 따르면 그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1977년 여름에는 양산에 있는 통도사에 갔죠. 그때 삼소굴에서 칩거하며 참선 중인 경봉 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스님 "뭐하는 사람인고?"
욱진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스님 "노래하는 새하고 웃는 꽃을 그리는가? 그거 못 그리면 붓대 꺾어."
욱진 "저는 까치를 그립니다."
스님 (욱진의 그림을 본 후) "애 봐라,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우주가 있네. 절에 들어왔으면 딱 좋았을 텐데."
욱진 "그림 그리는 것도 같은 길입니다."

욱진의 수행법, 그것은 ‘그림 그리기‘ 였습니다. 쉽게 말해 그는 그림을 그리며 도를 닦은 것이죠.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도 닦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아의 발견과 발현‘입니다. 즉,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견‘(자아의 발견)해 그에 따라 온전히 살며, 그림에 온전히 반영 (자아의 발현)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욱진이 정의하는 도 닦기입니다.
- P199

좋은 반찬은 바로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의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이는 촌사람의 제일가는 즐거움 중의 즐거움 비록 허리에 말(斗)만큼 큰 황금 도장을 차고,
음식을 사방 열자 되는 상에 차려놓고수백 명 여인이 시중을 들어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고농을 위해 쓰다.
나이 일흔하나에.
- 김정희, 대팽고회大烹高會) - P218

스스로 노력해 경제적 풍요를 획득한 민중은 과거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한글을 깨친 민중들이 <홍길동전>, <춘향전> 등 소설을읽으며 사회의 폐단을 비판합니다. 시장에 들러 장을 본 뒤에는 판소리와 탈춤공연을 보며 깔깔댔고, 귀갓길에 그림 한 장을 사 들고 와 집 벽에 붙였죠. 그 그림이 바로 민화입니다. 보통 정규 미술 훈련을 받지 않은 무명 화가들이 슥슥 그려 팔았고, 소비자인 민중이 좋아할 만한 주제와 화풍을 택했죠. 호랑이, 까치, 꽃, 문자, 책거리 등을 그리며 액운을 쫓고, 출세를 하고, 재물을 얻고, 천수를 누리는 등 주술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기술과 규범을 중시했던 양반사회의 서화와 달리 민화에서는 어떤 규칙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조선 민중의 내면에 있는자유분방함, 천진난만함, 익살과 해학, 진한 원색의 선호 등 고유의 정서가 민화에 고스란히 담기게 되죠.
이런 민화 특유의 미학에 욱진은 매료되었습니다. 욱진의 그림에서는 양반의산수화와 서민의 민화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조선의 미학은 이렇게 욱진의 그림에 한데 섞이며 하나가 된 것입니다.
- P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격동의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어떤 이는 전통 동양화를 고수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서양화로 전향할 것입니다. 대부분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했죠. 그러나 응노는 그 두 가지 길을 모두 가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민족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모두들 서양화만을 그린다면 동양화는 대체 어떻게될 것인가 하는."

그는 동양화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전통 동양화가 아닙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선택합니다. (사실상 지구상에) 어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개척‘하기로 한 것이죠.
동양화로는 이미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응노, 그렇기에 이제 그가할 일은 서양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서른두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 P114

‘새로운 가치 창조‘, 그가 믿은 예술가의 사명은 이렇게 ‘문자추상‘
으로 귀결됩니다. 그가 동양의 산물인 서예를 서양의 20세기 산물인 추상화에 짬뽕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생각 때문입니다.
"서양의 추상화의 시조는 바로 동양의 서예정신, 곧 글씨 예술이지요. ‘그런데 동양 사람들은 서양 것만 좋아하고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온 것은 너무 무시하고 있어요." 
정말 기막힌 통찰입니다. 동양에서 기원전부터 나타난 한자와 그것을 쓰는 서예, 여기에는 서양에서 20세기에 와서야 나타난 추상화의속성이 이미 담겨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자는 ‘자연물의 모양을 따서 만든 상형문자‘와 ‘소리와 의미를 형태로서 표현한 표음문자, 표의문자‘로 이루어져 있죠. 이것은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등 20세기 추상미술 선구자들이 추상화를 창안했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그는 서양의 20세기 추상미술의 흐름 위에 ‘원조 추상화‘인 서예를 올려 동서양의 비빔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