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격동의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어떤 이는 전통 동양화를 고수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서양화로 전향할 것입니다. 대부분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했죠. 그러나 응노는 그 두 가지 길을 모두 가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민족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모두들 서양화만을 그린다면 동양화는 대체 어떻게될 것인가 하는."

그는 동양화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전통 동양화가 아닙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선택합니다. (사실상 지구상에) 어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개척‘하기로 한 것이죠.
동양화로는 이미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응노, 그렇기에 이제 그가할 일은 서양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서른두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 P114

‘새로운 가치 창조‘, 그가 믿은 예술가의 사명은 이렇게 ‘문자추상‘
으로 귀결됩니다. 그가 동양의 산물인 서예를 서양의 20세기 산물인 추상화에 짬뽕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생각 때문입니다.
"서양의 추상화의 시조는 바로 동양의 서예정신, 곧 글씨 예술이지요. ‘그런데 동양 사람들은 서양 것만 좋아하고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온 것은 너무 무시하고 있어요." 
정말 기막힌 통찰입니다. 동양에서 기원전부터 나타난 한자와 그것을 쓰는 서예, 여기에는 서양에서 20세기에 와서야 나타난 추상화의속성이 이미 담겨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자는 ‘자연물의 모양을 따서 만든 상형문자‘와 ‘소리와 의미를 형태로서 표현한 표음문자, 표의문자‘로 이루어져 있죠. 이것은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등 20세기 추상미술 선구자들이 추상화를 창안했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그는 서양의 20세기 추상미술의 흐름 위에 ‘원조 추상화‘인 서예를 올려 동서양의 비빔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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