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붉은날개지빠귀 성체의 경우에 성선택이 수컷에게는 매우 화려한 어깨와 큰 목소리, 수컷끼리의 폭력적인 태도를 이끌어내고암컷에게는 상대적으로 별 볼일 없는 깃털을 발현시키는 것 같다. 반대로, 생존 능력과 새끼 양육 능력 등, 짝 찾기 능력을 제외한 모든형질을 형성하는 광범위한 과정인 자연선택은 붉은날개지빠귀 암컷의 외양을 위장하기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듯하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동안 위험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갈색과황갈색 반점이 찍힌 깃털은 트인 둥지 위로 드리운 큰고랭이와 부들개지의 얼룩진 그늘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군집이 조밀하게 들어차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위장 효과가 탁월하다. - P181
새끼들의 보채기가 의미하는 것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새끼들이 소리를 내고 입을 크게 벌리며 보챌 때 그 신호에는 실제로 어떤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신호가 누구에게 유익한지 생각해볼 수 있다. 로버트 트리버즈는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에 관한 유명한 논문에서 자연선택이 부모의 투자를 더 많이 유지하려는 행동 쪽으로 기운다고 주장했는데, 거기서 신호 문제도 함께 다루었다. 그는 새끼들이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보았다. 새끼들이 생리적인 필요를 과장해도 부모는 정보가 부족해서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 덕분에 새끼의 정직성 문제가 최근 많은 연구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새끼들의 신호를 여러 당사자가 참여하여 먹이 공급과 경쟁자의 행동 변화에 따라 전술을 조정하는, 소위 역동적 사회 활동으로 보는 근본 관점에서 시작하여 연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 P203
그런데 왜 숙주는 이런 참극을 방관만 하는 것일까? 이것은 자연계의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왜 개개비 부모는 뻐꾸기 알이 부화하기 전에 그것을 둥지 밖으로 던져버리지 않는 걸까? 알일 때는자기가 낳은 알과 구별하지 못한다 치더라도 부화한 후에는 누가 봐도 개개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왜 그 녀석을 쫓아내서 희생을 줄이지 않는 걸까? 자연선택이 개개비 염색체에 대해서는 작용하지 않는 걸까? 뻐꾸기와 숙주의 수수께끼에 관해서는 책 한 권을 다 써도 모자라겠으나 여기서는 세 가지 간단한 답만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자 한다. 19) 첫째, 포타이누스 개똥벌레 수컷의 딜레마처럼 모든 개개비가 뻐꾸기의 방해를 받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케임브리지셔 주위 켄펜에서 킬너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연간 탁란율은 1~2%에서 거의 25%까지 다양하다. 이는 특정 둥지에 뻐꾸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75~99% 나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개개비 부모로서는 기존에 해오던 방식 그대로, 둥지에 무엇이 있든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개개비 둥지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개개비 새끼만 있는 것이다. 이런 빈도의존적 입장을 다르게 표현해보면, 현재 살아 있는 모든 빼꾸기의 100%가 숙주의 양육을 받았지만 숙주 입장에서 본 확률은 잡초를 솎아내야 할 만큼 크지 않다. - P209
숙주가 겉모양으로 알이나 새끼를 분간하는 능력에 의존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다시 말해, 개개비 부모가 첫 번째 새끼의 외양을 친자 구분의 기준으로 삶아버리면 행여 뼈꾸기 새끼가 가장 먼저 태어났을 때는 진짜 새끼를가짜로 오인해서 모두 쫓아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숙주 부모가 부지런히 일해서 보채는 기생 새끼의 입에 먹이를 털어 넣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와 새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개비 부모가 자손의 신호 중에서 시각 요소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거대한 뻐꾸기 새끼의 전체를 보지 않고 입이라는 특정 부위만 보는 것이다. 뻐꾸기 새끼의 입이 개개비 새끼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아무리 입을 벌려도 개개비 새끼 네 마리를 합친 것만큼은 되지 않는다. 킬너의 연구팀은 뻐꾸기의 신호 중에서 특별히 어미를 자극하는 다른요소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뻐꾸기 새끼와 크기는 같지만 생판 다른 종(이를테면 지빠귀류)의 새끼를 개개비의 둥지에 집어넣었다. 이때 개개비의 부모는 이 낯선 손님에게도 먹이를 제공했으나 뻐꾸기에게 보인 만큼의 열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뻐꾸기 새끼의 청각신호가 문제의 열쇠일 가능성이 높았다. 뻐꾸기는 빠른 속도로 "지, 지, 지, 지…" 하고 우는데, 마치 ‘모든‘ 개개비 새끼들이 우는소리처럼 들린다. 실제로 부화한 지 1주일 된 뻐꾸기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는 개개비 새끼 네 마리의 소리에 맞먹으며 며칠 후에는 심지어 여덟 마리에 맞먹게 된다! 원래대로는 개개비 부모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빠귀 새끼도 옆에서 모든 개개비 새끼 또는 뻐꾸기 새끼 한 마리에 해당하는 소리를 테이프로 틀어주었더니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환대를 받았다. - P210
똑같은 의문이 생긴다. 숙주 부모는 왜 침입자의 존재를 용인할뿐더러 오히려 더 많은 먹이를 제공하는 걸까? 단순히 기생 새끼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행태학의 초기(1930~1960년)에 콘라트 로렌츠 Konrad Lorenz 등은많은 동물의 행동 습성이 상한선보다 하한선(최소량의 자극만 있으면 반웅하는 습성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자연계에는 특정 자극이 과다하게 주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민감도가 지나치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없다는 것이 표면상 이유), 이것이 ‘초자극 supernormal stimulus‘ 개념이며, 이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이 많이 행해졌다. 일부 조류가 작은 알보다 큰 알을 선호하는 현상이 그 한 예다. 이들 조류는 어처구니없게도 큰 알일수록 더욱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구공 크기의가짜 알을 줘도 이들은 그것을 자기 둥지로 가져갈 것이다. 아마도보통은 많은 영양소를 저장할 수 있는) 큰 알이 작은 알보다 가치가 높기때문에 그런 편애 습성이 진화했을 것이다. - P212
숙주부모가 거대한 몸집에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뻔뻔스런 새끼에게 헌신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과 관련된 수수께끼는 이렇다. 그런 기생새끼가 숙주 부모로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초자극인가? 그러니까숙주 부모가 유전적 친자식보다 침입자인 뻐꾸기 새끼에게 더 많은사랑을 쏟으려면 뻐꾸기 새끼에게 그만큼의 부담을 감수할 만한 특별한 장점이 한 가지 이상 있어야 얘기가 된다. 그런데 뻐꾸기는 숙주 대상을 거의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뻐꾸기는 어떻게 수많은 숙주 종에게 통할 수 있는 수준 높은생리적 무기‘를 진화시킬 수 있었을까? 과연 열쇠 하나로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걸까? - P213
유전적으로 각인된 유전자가 어미에게 보내는 것으로 보이는 생리적 신호는 실제로 필요한 것을 솔직하게 담은 정보가 아닌 것 같다. 개개비 둥지를 차지한 뻐꾸기 새끼의 보채기처럼 이 신호는 과장된 정보를 담고 있다. 친족에게 이타적 행동을 베풀 경우의 포괄적응도 이익이 이기주의의 불길을 잠재울 만큼 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과장된 신호가 나타나는 것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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