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출발
배가 고프다. 먹고 먹고 또 먹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욱더 배고파진다.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다. 얼마나 경이로운 기기인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만 밀면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모든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지식을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충족되지 않는 이 배고픔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정보는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고,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 P6
철학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 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 다. 어떻게. 요즘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단어다. 어떻게를 알려주는 실용서는 출판계의 망신거리로, 마치 크게 성공했지만 무례한 사촌과 비슷하다. 진지한 작가들은 실용서를 쓰지 않고, 진지한 독자들은 실용서를 읽지 않는다(적어도 자신이 실용서를 읽는다는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실재의 본질은 무엇일까‘나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할까‘를 고민하며 밤늦게까지 잠 못 들지 않는다. 우리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처럼 어떻게를 묻는 질문이다. 과학과 달리 철학은 규범적이다. 철학은 세상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까지 말해준다. 작가 대니얼 클라인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다음과 같은 최고의 찬사를 던졌다. 에피쿠로스를 철학이라기보단 "삶을 고양시키는 시"라고 생각하고 읽을 것. - P12
마르쿠스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남겨두었다가 자신의 이기심에 내리꽂는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불 아래 남아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한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 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마르쿠스는 이러한 차이를 알았지만, 늘 그렇듯 스스로에게 그 차이를 다시 상기시켰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한다." 스토아학파나 황제, 심지어 로마인으로서가 아닌, 한인간으로서, - P36
어쩌면 신탁이 옳을지 모른다고, 소크라테스는 결론 내렸다. 어쩌면 정말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지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아는 지혜를 지녔는지도 몰랐다.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최악의 무지는 지식의 가면을 쓴 무지였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소크라테스가 인간 탐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것은 이 순진한 무지,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 "놀랍고 새로운 천진난만함"을 도입한 것이다. - P48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테네의 잔소리꾼을 기억하는것은 그가 알았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지식을 알게 된 방식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식은 곱게 늙지 못한다. 하지만 방법은 그럴 수 있다. 학자들은 변증법, 엘렌쿠스elenchus, 귀납적 추론 등 여러 멋진 용어를 이용해서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나는 더 단순한 용어를 선호한다. 바로 대화다. 이 단어가 그리 고급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 내게 노벨상을 낚아채주지도 않으리라는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건 맞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현대 철학자 로버트 솔로몬은 이를 "현명한 훈수질"이라고 부른다. 마음에 든다. 이 표현은 철학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 P51
한편으로 나는 우리가 속도를 줄이는 데서 오는 인지적 혜택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가 우리를 막고 생각하게 만들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고 말한다. 멈춤은 실수나 결함이 아니다. 멈춤은 말을 더듬는 것도, 말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 P57
"마음속에 당혹스러움을 심고 그것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것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없었다. ••••••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한 데에는 좋은 뜻이 있었다. 바로 더 선명한 시야를 위해서였다. 소크라테스는 검안사였다. 사람들은 잘못된 도수의 안경을 쓰고 돌아다닌다. 이런 실수는 당연히 보는 방식과 보는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왜곡된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착각한다. 심지어 자신이 안 맞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루 종일 휘청거리며 가구에 부딪치고 사람들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내내 가구와 사람들을탓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어리석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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