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후, 미국인 선교사 존 모트 John Mort가 간디에게 평생 가장 창조적이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간디는 남아공에서겪었던 기차 일화를 들려주었다. 조용한 결의의 순간을 창조와동일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간디가 예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한다. 간디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고극장이나 미술관에 가는 일도 드물었다. 간디에게는 아름다움을보는 소로의 눈이나 음악을 듣는 쇼펜하우어의 귀가 없었다. 런던에서 댄스 교습에 등록한 적이 있었지만 곧 자신에게는 리듬이없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하지만 간디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결론이다. 일반적인 방식과 달랐을 뿐, 간디는 창조적인 사람이었다. 간디의 붓은 결의였고, 간디의 캔버스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악에 맞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헤맸다.
- P266

간디는 이 관점을 다음과 같은 짧은 단어로 요약했다. "욕망 없음" 나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욕망 없는 행위를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카르마 요기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많은 것을 한다.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만 빼고,
우리의 방식은 다르다. 우리는 결과 중심적이다. 헬스 트레이너, 비즈니스 컨설턴트, 의사, 대학, 세탁소, 갱생 프로그램, 영양사, 재정 자문가, 많은 곳에서 결과를 약속한다.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할 자격을 갖추면,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 P280

마침내 간다는 새로운 형태의 비폭력 저항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티아그라하, 사티아saty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이라는뜻이고, 마그라하agraha 는 ‘결의‘ 또는 ‘단호히 하다‘라는 뜻이다.
진리의 힘(영혼의 힘‘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이것이 바로 간디가 품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에는 수동적이거나 물렁한 면이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능동적인 힘"이다. 사티아그라히, 즉 비폭력 저항가는 무장한 병사보다도 더 능동적이며, 더 용감하다. 간디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는 그 어떤 위대한 용기도, 지능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오직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만이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간디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대의명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 P284

간디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대편을 친구로 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한다. 대부분의 폭력은 부도덕한 충동이 아닌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총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반한 반응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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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대한 아이디어를 낚아채려고 열심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본다. 그들은 원대한 아이디어가 자신을 그저 그런 사상가에서 선구자격 사상가로 바꿔주길 바란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숙고하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아이디어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에 내보낸다.
선구자격 사상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고되게 주의를 기울이고싶어 하지 않는다. 주의 기울이기의 고됨은 유도나 활쓰기가 고된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명상이나 양육이 고된 것과 비슷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고된 것과도 비슷하다. 주의력은 뜨개질이나 펜싱처럼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주의력은 정신 상태이며, 방향성이다. 우리는 주의력을 학습하기보다는 주의력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소크라테스처럼 멈취 서서 자기 머리 밖으로 나올 때에만 가능하다. 시몬 베유는 이를 "탈창조decreation‘라 칭했다.
나는 "자아 벗겨내기 unselfing" 라는 아이리스 머독의 용어를 더선호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자신이 경험한 자아 벗겨내기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머독은그날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한 마리가 보였다. 머독은 이렇게 말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다. 자만심에 상처 입은 음울한 자신은 사라졌다. 이제 황조롱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문제들은 전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 P238

관심은 질보다 양을 파악하기가더 쉽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가장 쉬운 것을 평가한다.
- P247

베유는 행동과 결과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한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관심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위험하다. 결과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유가 주창한 것과 같은 순수한 관심에는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출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묻어 있지 않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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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안느 선생님이 말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 정말 무섭고 힘든 일과 마주쳤을 때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열까지 세는 거야. 겁먹거나 놀랐을 때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멀리해야 할 것을 찾게 되거든."
나는 크게 겁먹은 적이 없다. 언니는 내가 겁이 없는 게 자폐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지금은 겁나고 무서웠다. 아나이스를 당장 감옥에서 빼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245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가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떠나는 거 싫어요. 정말."
조지안느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았다. "아직 몇 달은 더 남았어."
"그래도.…...
"오로르, 인생은 아주 거대한 이야기야. 우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곧 끝나겠지. 그래서 나는 조금 슬펐다. 물론 나는 선생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모든 모험이, 자기인생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다음 모험으로!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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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충이 된다.
우리는 데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경향을 염려했다. 그가 눈돌리는 곳마다 사람들은 정보를 통찰로 착각하며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과도한 양의 데이터 (사실상 소음)는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 P179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이겼다. 다른 모든 것(명성과 돈, 심지어 덕까지)은 그것이쾌락을 더 증가시키는 만큼만 중요하다. 에피쿠로스는 늘 그렇듯도발적인 문제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명예가 있는 자와 헛되이 그들을 찬양하는 자에게 침을 뱉는다." 쾌락은 우리가 그 자체로서 욕망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 심지어 철학까지도, 쾌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 P197

에피쿠로스는 많은 사람이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통 맨 위에 사소한 즐거움을 올려놓고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 P198

와인을 마시다 말고 멈춘다. 얼마큼이어야 충분하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렇게 자문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그 답은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더 많이‘는 움직이는 과녁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이 별난 인간 본성은 외 세 번째 크렘브륄레가 첫 번째나 두번째 크렘브륄레만큼 맛있는 법이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시운전때는 황홀했던 새 차가 길 위에서 한 달이 지나면 지루해지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우리는 새로운 쾌락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새로운 쾌락은 더 이상 새롭지도, 그리 즐겁지도 않은 것이 된다. 우리는 특히 내가 ‘조금만 더 - 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취약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예를 들면 돈과 명예,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많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갖게 되면 우리는 눈금을 재조정하고 생각한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우리는 얼마큼이어야 충분한지를 모른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 P212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기억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가? 어쩌면 결혼식처럼 커다란 사건일 수도 있고, 우체국의 말도 안 되게 긴 줄에서 뒤에 선 사람과 나눈 뜻밖의 다정한 대화처럼 작은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가장 주의를 기울인 순간일 확률이 높다.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이런 드문 순간에 우리는 베유가 "극도의 관심"이라 부르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이라 부른 정신 상태에 진입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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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학교! 어제부터 난 학교에 다닌다!
진짜 학교에 다니는 건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다!
이틀밖에 안 됐지만 학교가 좋다.
엄마 아빠는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전부 다 잘되고 있다.
카마일라르 담임 선생님도 정말 좋다.
수학도 정말 좋다.
하늘에서 빅뱅이 일어나 세상이 만들어진 것도 배우고, 과지모도가 주인공인 유명한 이야기도 읽었다. 사람들은 등에 큰 혹이있는 콰지모도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과지모도는 노트르담 탑에 갇힌 여자를 구했다.
- P5

"주말에 내가 누릴 수 없는 생활을 봤더니, 그냥 좀 슬퍼. 오로르를 가르치고 오로르가 아주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당연히 즐겁지.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힘든 게 있단다. 어른은 선택을 해야 하고,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을 계속 설득해야해. 그렇지만 그 선택이 썩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어."
- P22

클로에가 계속 말했다. "오로르는 자기 참모습대로 살면 돼, 다른사람을 괴롭히는 애들은 불안정한 동물들이나 마찬가지야. 혼자 있으면 불안하니까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뭉쳐다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자기 참모습을 들키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눈에 띄는 사람,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을 괴롭히지, 내가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참모습 그대로살아, 그리고 못된 애들이 그렇게 한심한 편지를 또 보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괴롭혀도 당황하거나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지 마."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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